벼락치기로는 안될 걸
내가 치과대학을 다닐 때 가장 황당하고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 바로 '유급제'였다.
만일 한 과목이라도 과락이 나면 다른 과목에서 아무리 A학점을 받더라도 학년 진급을 못하고 유급되어 다음 해에 낙제한 과목뿐만 아니라 전 과목을 다시 들어야 한다.
도대체 이런 무식하고 낭비적인 제도가 어디 있나 싶었다.
일 년을 좌우하는 엄청난 정신적 압박감을 견디지 못하고 실제로 시험 도중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간 사람도 보았다.
또 어떤 학생은 군대까지 다녀오면서 십수 년 만에 겨우 졸업을 하고 국시에 합격해 천신만고 끝에 의사 면허를 땄지만 스트레스로 인해 개업한 지 얼마 안 돼 암에 걸려 세상을 뜬 분도 있었다.
나는 졸업한 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재시험을 보는 악몽을 꾸기도 한다.
하지만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고 이 살벌한 과정을 지나온 지금에 와서는 '유급제'가 일견 타당하다는 생각도 든다.
나무 물통을 이루는 각각의 나무판자가 깨져서 어떤 것은 10%쯤 이가 나가고 어떤 것은 30%, 어떤 것은 반쯤 이가 나갔다면 이 물통에는 아무리 물을 부어봐야 절반 이상 채우지 못할 것이다.
의사들은 소중한 인체를 다루어야 하므로 결코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의학도에게 의학 지식의 습득에 있어서만큼은 결코 타협이 있을 수 없는 엄격함이 요구되는 것이다.
전 국민의 인기를 끌었던 '슬기로운 의사생활'이라는 의학 드라마가 요즘도 간간이 재방영되고 있다.
주인공들은 공부도 잘하는 교수들인 데다 환자의 고통을 이해하고 어루만지는 마음 따뜻한 의사 선생님들이다.
게다가 기타도 잘 치고 다들 잘생긴 선남선녀에 싱글이기까지 하다.
이런 모든 조건과 자질을 완벽히 갖춘 비현실적인 캐릭터가 과연 현실에 있긴 할까.
착하고 기타도 잘 치고 잘생긴 싱글이지만 수술 실력은 영 별로인 의사와 반대로 심술궂고 배 나온 유부남이지만 수술 하나만큼은 기막히게 잘하는 의사 중에서 만일 내가 반드시 수술이 성공해야 살아날 수 있는 절체절명의 순간이라면 어떤 의사에게 수술을 받겠는가.
모든 조건이 완벽할 수 없다면 의사는 일단 사람은 살려 놓고 봐야 하니까 모름지기 실력이 최우선적인 조건이 아닐까.
이는 의사뿐 아니라 환자를 다루는 의료 현장의 모든 의료진에게도 마찬가지다.
치과의 간호사에 해당하는 치위생사도 국가고시를 통해 자격을 취득하는 전문인이다.
만일 우리 치과의 직원들이 모두 똑똑해서 임상지식이 뛰어난 데다 부지런하고 성실했으면 좋겠지만 어디 그렇기만 할 수 있나.
똑똑하지만 불성실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부족한 임상지식을 부지런함으로 대신하는 사람도 있을테고 똑똑하지도 성실하지도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중 인체를 다루는 의료 현장에서는 지식이 부족한데 부지런한 사람이 가장 위험하다.
뭘 모르면서 열심히 하다 보니 시키지도 않은 일을 시시각각 사고를 치고 다녀 뒷수습이 감당이 안될 땐 간담이 서늘해진다.
최근 우리 치과에서도 소위 코로나 학번이었던 신입 직원을 재교육시키느라 애를 먹었다.
코로나가 절정인 해에는 학교에서 대면수업도 어려웠을 테고 각 치과의원들이 학생들의 임상실습을 못 받아주었기 때문에 교수님들이 학생 교육에 큰 애로를 겪으셨을 것이다.
이렇듯 인체를 다루는 전문 의료인들의 양성은 단기간에 벼락치기로는 불가능하다.
의대 증원 문제로 인한 의정 갈등이 벌써 해를 넘긴 지 오래다.
치과의사는 이번 사태에선 한 발짝 물러서 있지만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마냥 강 건너 불구경하듯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
정부는 의료를 공공재라고도 하고 국민들은 허준과 같은 의로운 의사상만을 바라지만 자본주의 사회의 현실에선 의료도 의사 개인에게는 직업이고 생계 수단이다.
비싼 의대 등록금을 부담하고 유급되지 않게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한다.
병원 개업 비용도 다 의사 개인 부담이며 의료 사고도 직접 감당해야 한다.
죽어가는 환자를 살려주면 절이라도 할 듯 고마워하다가도 환자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죽일 듯 달려들어 의료인을 폭행하는 사건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의대 공부를 마치고 수련을 마친 뒤 한 사람의 전문의가 나오기까지 정부에서 지원해 주는 건 아무것도 없다.
이렇게 의사들을 자유 경쟁을 하게 해 놓고 돈만 밝히는 한심한 집단으로 매도해서는 곤란하다.
의료 공백을 대체하고자 외국에서 의사를 수입하는 방안도 고려한다길래 동남아나 필리핀 등지에서 가정부 수입하듯 의사를 수입하는 건가 우려하기도 했다.
정부는 우선 군의관들과 공중보건의들을 긴급 투여하여 급한 불을 끄고자 했다.
그들도 의사들이지만 군인이고 국가 공무원이니 정부의 뜻에 두말없이 따라야 했다.
그러니 정부와 맞서는 의료인들을 마음대로 다루려면 전 의료인을 공무원 화하면 될 것이다.
모든 병원을 나라에서 다 지어서 의사들을 월급 주고 고용하는 거다.
그러면 의료 편중 없이 전국적으로 고루 배치할 수 있을 것이다.
하루에 환자를 열 명을 보든 백 명을 보든 정해진 월급을 받는데 굳이 경쟁할 필요가 없으니 의대 정원을 2000명이 아니라 만 명을 늘린 들 어떠하랴.
하지만 이런 사회주의식 의료도 답은 아닐 것이다.
의료의 수준도 문제가 되겠지만 의료인의 사명감은 아예 기대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복지부동 공무원처럼 위험한 수술에 환자를 살리겠다는 사명감만으로 무리수를 두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피해는 국민들이 고스란히 감내해야 한다.
그렇다고 마냥 의료가 영리화되도록 방치해서도 안될 것이다.
공익적 진료를 하는 국공립의료원들은 정부가 보조금을 지원해서라도 적자를 보전해서 존립시켜야지 각자도생 하라고 한다면 폐쇄되거나 아예 영리화되어 필수의료과와 외상센터보다는 덜 위험하고 돈 되는 인기과나 장례식장만 운영하려 할 것이다.
의원급 산부인과에서는 출산률도 줄었고 의료사고도 잦아 위험한데다가 동물병원보다 수가가 낮아 산과는 보지 않고 부인과만 보는 데가 많다고 한다.
이제 아기를 낳으려면 동물병원을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초기엔 의료대란을 우려해 여러 가지 대책 방안들이 강구되었고 환자들도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병원을 전전하다가 사망하기도 하는 등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이젠 국민들도 어느 정도 적응을 한 것 같다.
대안이 없으니 어쩔 수없이 감내하기도 했지만 의대생과 전공의들이 떠난 대학병원과 소위 빅 5 대형병원들이 적자를 보는 가운데 중소형병원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호황을 맞았다.
일반 개원가에서는 매일 보는 환자들의 90% 이상은 감기나 배앓이 같은 거다.
생사가 오가는 심각한 병은 10%로도 안된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는 제대로 치료를 받으려면 무조건 KTX를 타고 서울로 가야 한다고 믿었다.
의료대란을 겪고서야 오히려 의료의 전달체계가 어느 정도 안정화된 것 같다.
이제 새로운 정권하에서 의료사태의 정상화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의사불패의 신화처럼 이번에도 모든 의대생들과 전공의들을 최대한 관용적으로 복귀를 보장한다는 특혜 논란이 있다.
인내했던 환자들의 입장에선 속상하기도 할 테고 살벌했던 유급제를 경험한 입장에선 과연 계절학기 등을 통해 얼마나 의학 수업이 제대로 이루어질런지 의문스럽기도 하다.
유급은커녕 아마도 얼른 얼른 빨리 진급시키려 하지 않을까.
이참에 전공의들의 처우문제도 꼭 개선되었으면 한다.
아무리 도제식 수련이라 해도 잠이 부족해 멍한 상태로 응급환자를 보는 전공의들을 보면 음주운전처럼 불안하기 그지없다.
영리를 목적으로 전공의들을 싸게 부릴게 아니라 부족한 의사를 더 채용해서라도 충분한 휴식으로 최고의 컨디션을 지닌 의료진을 만나고 싶다.
나는 기타도 치고 술 한잔 하면 노래방에서 열창을 하건만 타고난 외모 자체가 이미 오징어이고 배 나온 유부남이라 어차피 완벽한 치과의사가 되긴 글렀다.
나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의료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젊은 의사들 틈에 끼어 세미나라도 열심히 들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