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심는 치과

임플란트가 대세이긴 합니다.

by 허용수

지금의 치과 의료 시장은 단연 임플란트가 대세다.

임플란트가 치과의사들을 먹여 살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최초로 임플란트를 개발한 사람은 치과의사가 아니.

스웨덴의 정형외과 의사인 브라네막 박사는 토끼의 골절된 뼈를 고정하는 실험에서 우연히 티타늄 금속나사를 사용하였는데 나중에 다시 나사를 제거하기가 무척 어렵다는 사실을 발견하다.

억지로 제거하려니 되려 뼈가 부러진다.

녹이 슬거나 조직과 거부 반응이 없이 이 정도로 뼈와 강하게 유착되는 금속이라면 턱뼈에 심어서 빠진 치아를 대신할 수도 있겠다 싶어 개발한 것이 세계 최초의 치과용 임플란트인 브라네막 임플란트다.




임플란트는 비단 치과 외에도 의학 전반에 걸쳐 두루 응용되고 있는데 특히 재건의학과에서 함몰된 광대나 의안, 귀 등 암환자들의 수술 후 심미적 조직 재건에도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내 생각에는 대머리로 고생하시는 분들에게 두피 아래 두터운 두개골에 5mm정도 짧은 임플란트를 몇 개 심어 태풍이 불어도 절대 벗겨지지 않는 가발을 만드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임플란트는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아서 내가 대학을 다닐 때만 해도 임플란트를 접하지 못했다.

해외 유학파나 개업의들 중에 일부 선각자들이 해외 세미나 등을 통해 임플란트를 배워와서 사설 연수회 과정을 통해 국내파들에게 보급하기 시작한 것이다.

대학이 아닌 일반 개원가에서 먼저 시작된 것이다.

그러므로 초창기 임플란트는 대학에서 충분한 연구와 장기간의 임상 데이터가 부족했으므로 극히 조심스럽고 제한적으로만 이루어졌다.

안정성을 보장할 수없어 실패에 대한 위험 부담이 있었기에 치료비도 엄청 비쌌다.

하지만 국내 치과계는 치과의사의 배출이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르러 경영 악화로 인한 새로운 수익 창출이 절실히 요구되던 때였다.

그러므로 모든 치과의사들이 너도나도 발 빠르게 임플란트를 임상에 도입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외국과는 달리 국내에서는 교정과 의사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치과의사가 임플란트를 심게 되었으며 임플란트가 건강 보험이 적용되는 유일한 나라가 되었다.

인구의 고령화로 앞으로 수요는 더 늘어날 전망이어서 임플란트를 생산하는 국내 기업들이 우후죽순 생겼고 대학과 기업의 자체 연구소에서 끊임없는 연구 개발을 통해 눈부신 성장을 해왔다.




이제 임플란트의 안정성을 의심하던 단계는 이미 지났다.

임플란트는 뼈에다 금속 나사못을 심는 것이다.

따라서 뼈의 절대량이 부족하거나 약한 뼈에는 튼튼한 임플란트를 심을 수 없었기에 얇은 뼈를 쪼개어 벌리거나 다른 부위의 뼈를 떼어와 이식하는 등 아프고 위험한 수술을 해야만 했었다.

하지만 현재는 임플란트의 디자인을 공학적으로 개선하고 표면처리 기술을 발전시켜 열악한 상황의 뼈에서도 최대한 덜 침습적인 수술이 가능하도록 개발되고 있다.

또한 디지털 장비의 도움으로 칼로 절개를 하지 않고도 잇몸 밑의 뼈를 정확하게 관찰할 수 있어서 가이드 수술(네비게이션 수술이라고도 함)을 면 출혈도 없고 봉합도 필요 없 수술이 가능하다.

이제 임플란트는 수술이 아니라 시술이라 부를 만할 정도로 편리해졌다.



현재 한국 치의학의 위상은 세계적인 수준이며 임플란트 강국이다.

K-임플란트 수출은 2024년 기준 세계 1위인 스위스에 이어 2위로 도약했다.

전 세계 98개국에 수출이 이루어졌으며 말리와 세네갈, 가나 등 아프리카 지역에도 진출했다.

과거 초창기에는 우리나라 치과의사들이 멀리 해외 학회에 참석해 세미나를 듣고 인증서(certification)를 받아와서 치과에 자랑삼아 걸어두곤 했었.

그런데 이제는 상황이 완전 역전 되었다.

한국의 교수님, 박사님들이 세계적 석학이 되고 저명한 연자가 되어 전 세계 치과의사들을 가르치고 있다.

SIDEX니 YESDEX니 하는 국내에서 열리는 국제 치과 박람회에 해마다 많은 해외 치과의사들이 임플란트를 배우기 위해 모들고 있고 많은 제품들의 무역이 이루어지고 있다.

나도 YESDEX의 조직위원장을 역임한 적이 있었는데 외국의 치과의사들에게 우리의 이름으로 된 인증서를 발급하게 되니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다.

나는 지금 임플란트 외산을 쓰지 않고 국산만 사용한다.

외산은 비싸고 규격이 달라 부속이 서로 호환되지 않기에 불편한 데다 국산이 품질도 훨씬 우수하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임플란트의 르네상스이다.

이제 노래방에서 혼자 노래하지 않고 버티기가 힘들 듯이 치과의사로서 임플란트 안 하고 버티기가 어운 세상이다.

이는 곧 임플란트를 하지 않고 일반적인 치과 진료만으로는 운영하기가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치과의사들이 자연치아를 살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충치가 생기면 때웠고 더 썩으면 신경치료해서 씌웠다.

그러고도 더 상한 이는 그제서야 뽑아서 보철을 하고 틀니를 했었기에 치아 하나로 중간중간 치료 단계 별로 수입원이 생겼고 환자도 그만큼 자기 치아를 오래 보존할 수 있어서 좋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게 애써 치아를 살려내면 바보가 되는 세상이다.

동네 치과의사로서 주치의의 정성으로 기껏 치아를 살려 놓았더니 몇 년 후에 덤핑하는 대형치과의 유혹에 빠져 냉큼 뽑아버리고는 임플란트를 심어서 나타날 때는 허탈하기만 하다.

너무 싸니까 어쩔 수 없었다며 미안해하는 분도 있지만, 진즉 뽑고 임플란트 했더라면 이렇게 좋을 걸 괜히 살린다고 고생했다며 오히려 원망을 하실 때는 과연 내가 잘못한 건가 싶기도 하다.

아픈 치아는 동네치과에서 보험으로 싸게 치료받고 임플란트는 대형치과에서 어 온다.

넘치는 환자로 정신없는 대형치과에서는 번거로운 치료보다 웬만하면 뽑고 임플란트를 권하니 과잉진료가 될 수밖에 없고 월급의사들을 여럿 고용해 공장식으로 돌린다.

누구는 임플란트 할 줄 몰라서 안 했나.

먼저 뽑고 임플란트 깃발을 심어놓지 않으면 남 좋은 일만 시키는 거다.

이러니 동네 치과들도 살아남기 위해선 임플란트를 치료의 우선순위에 둘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 치과의사란 곧 임플란트나 심는 의사라는 인식이 고정되었다.

문제는 임플란트 이후의 치료가 없다는 점이다.

임플란트가 탈 나면 다시 임플란트를 해야 하는데 이미 뼈가 많이 녹아버려 쉽지가 않다.

중간 단계를 거치지 않고 처음부터 섣불리 임플란트로 건너가게 되면 환자나 치과의사 모두에게 손해다.




자연치아를 살리려는 치과의사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기 위해선 교정과 의사들처럼 임플란트를 안 하고도 충분히 경영이 유지될 수 있게 일반 진료의 수가가 현실화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환자와 치과의사 상호간의 신뢰다.

동네 주치의는 치아를 살리려는 노력을 먼저하고, 환자는 나중에 그 치아를 뽑게 되었을 때도 돈 몇푼에 배신하지 않고 동네 주치의에게 계속 임플란트도 한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이미 말했다시피 아저씨 아주머니 같은 동네 치과의사들도 임플란트 심는 데는 도가 튼 사람들이다.

임플란트는 그저 심기만 했다고 끝이 아니다.

한 번씩 풀린 나사도 조여줘야 하고 청소와 관리를 꾸준히 받아야 오래 쓸 수 있다.

그럴려면 언제든지 부담없이 방문할 수 있는 친하고 가까운 치과가 좋다.

정신없는 공장에 매번 다닐건가.

비록 차가운 임플란트를 심더라도 그 임플란트를 가지게 될 환자는 더운 심장이 뛰는 사람임을 명심해서 사랑을 심는다는 마음으로 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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