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천루의 저주

위쪽의 공기는 어떠십니까?

by 허용수

나는 키가 작다.

내 키는 국가 기밀이라 밝힐 수는 없지만 160은 넘고 2미터는 안 된다.

유전이라 우리 형제들이 다 작고 나의 아이들도 작다.

170이 넘는 아들이 우리 집에서 제일 거인이다.

발육과 영양상태가 좋은 요즘 젊은 세대치고는 그것도 작은 편이다.

지금 우리나라 젊은 성인 남자들은 평균 키가 180은 되 않을까 싶다.

그래서인지 이제 모든 시설 기준이 그에 맞게 변해가고 있다.


작년에 태국으로 가족 여행을 갔었다.

갈 때는 괜찮았는데 올 때는 신형 비행기인데도 뭔가 좀 편하지가 않았다.

좌석이 높아 발이 바닥에 닿지 않았던 거다.

머리 위 수하물칸도 높아서 까치발을 해도 물건을 넣고 빼기가 쉽지가 않았다.

신형 비행기라 규격이 키가 커진 기준에 맞추어진 양이다.


비행기뿐만 아니다.

남자 화장실의 소변기 높이도 높아지고 있다.

소아용 낮은 소변기가 한 두 개씩 따로 마련되어 있기는 하다만 그렇다고 어른이 소아용을 쓸 수도 없고 참 난감하다.

나는 아마 북유럽에 가면 소변도 못 볼 것 같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수컷이 몸을 크게 보이게 해서 적에게 위압감을 주려는 본능이 있다.

사람도 동물인지라 수사자가 갈기를 세우듯 위기가 닥치면 털이 쭈뼛 곤두서서 소름이 돋는 것도 그러한 동물적 본능 현상이다.

또 가장 강한 수컷 한 마리가 모든 암컷을 독차지하는 고릴라나 바다사자 같은 무리의 수컷 대장은 점점 몸집이 크게 진화되어 간다.

인간 세상 역시 키가 커야 여자들에게 어필이 된다.

키 작은 남자를 루저라 하지 않나.

이러니 키 작은 남자들이 여성의 하이힐처럼 키높이 구두에 깔창을 깔고 위태롭게 걸어야 하는 것이다.

발이라도 접질리게 되면 발목이 아작 난다.

유전적으로 작은 아이들에게 무리하게 비싼 돈을 들여 성장호르몬제 주사를 맞히고 각종 키 크는 치료법이 병원마다 성행하고 있다.

현대 문명사회에서 아직도 이러한 동물의 왕국 같은 원초적인 논리가 통해야 하는지 서글프다.

원래 인류의 원숭이 조상들은 키가 그리 크지 않았다는데 영양이 좋아지니 쓸데없이 덩치가 크게 진화한 듯하다.

오히려 작은 키가 순발력도 있고 민첩해서 야생에서는 훨씬 유리하다.

크면 둔해서 적의 표적이 되기 쉽다.


키가 크면 심장의 부담도 크다.

큰 키만큼 혈관 길이도 늘어나니 혈류를 더 멀리 보내야 해서 심박출량이 커져야 한다.

심장이 부담하는 압력은 부피에 비례하므로 길이의 세제곱씩 커다.

거인 중에 장수하는 사람이 드문 이유다.


기럭지가 긴 친구들이 훤칠해 보여 부럽기는 했지만 나는 지금껏 살아오면 키가 작아서 불편했던 적은 없었다.

키가 작으니 손도 작아서 좁은 입안에서 치과 치료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

다만 새옷을 사면 아까운 밑단을 뭉텅 잘라 해서 귀찮기는 하다.

요즘 젊은 남자들의 7부 바지가 리폼을 하지 않아도 되기에 딱 좋다.

위쪽의 공기가 궁금해서 지금은 고층 아파트에 살고 있다.

하지만 무릇 생물들은 대지의 기운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너무 높은 곳은 생육에 불리하다고 한다.

탁 트인 시야를 제외하고는 식물들도 잘 자라지 않고 별로 좋은 줄 모르겠다.


유전공학 기술의 발달로 GMO(Genetically Midified Organism)같은 유전자 변형 식품도 나오고 슈퍼돼지처럼 가축을 크게 형시켜 식량 문제를 해결 하려는 연구도 있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그런 기술을 이용해서 사람을 오히려 작아지게 할 수도 있지 않까.

소설 '개미'의 작가 베르나르가 쓴 '제 3인류'라는 소설과 데이먼이 주연으로 나온 '다운사이징'이란 영화에도 그런 내용이 나온다.

인류를 지금보다 십분의 일 크기로 작아지게 만들어 식량문제, 환경 오염문제, 택지 부족 문제, 자원 낭비 문제 등 각종 난제들을 한꺼번에 해결하는 것이다.

효율적인 면에서나 가성비 측면에서도 작은 사람이 훨씬 낫다.


건축물도 마찬가지다.

한 때 미국에서는 고층빌딩들이 높이 경쟁을 하더니 이제는 동양과 중동에서 더 치열하다.

세계에서 최고 높은 빌딩인 아랍 에미리트에 있는 부즈할리파를 비롯해 2위와 3위는 각각 말레이시아와 중국 상하이에 있다고 한다.

빌딩의 높이가 경신되는 나라는 경제가 어려워진다는 마천루의 저주도 있듯이 유치하고 소모적인 자존심 경쟁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건물의 높이가 곧 그만큼의 허영의 높이가 아니겠는가.


소싯적에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면서 파리 과녁을 조준하는데 '잉?' 파리가 움직이는 게 아닌가.

그림이 아니라 살아있는 파리였다.

오기로 끝까지 추적해서 기어이 익사시켰을 만큼 힘 좋던 시절도 있었다.

이젠 나이도 먹었고 저 높은 곳을 향해 불안하게 호스를 들어 올려야 세가 되었다.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니라는데 아예 남자들도 모두 좌변기로 가서 깨끗하게 앉아서 쏘자.

아니면 좀 낮추고 겸손하게 살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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