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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래 8시간전

두 번째, 돌멩이의 이야기

온기가 그리운 그대에게

  나는 돌멩이다. 내가 있는 곳은 오가는 이가 많지 않은 작은 해안가다. 변하지 않는 풍경 속에서 하루하루 지내다 보면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다 계절이 여러 차례 바뀌고 다시 처음의 계절이 찾아오면 사람들이 말하는 한 해가 지났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지나가는 햇수를 세는 것도 언젠가부터는 잊은 터라 내가 이곳에 얼마나 있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아주 오래 있었다는 것 밖에는. 다만 내가 처음부터 이곳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나의 기억은 매서운 바람이 부는 산 꼭대기에서 시작한다. 나는 산이었다. 정확히는 산의 일부였다. 모든 땅이 내려다 보였고, 가끔 구름이 끼면 하늘 위에 있는 것 같았고, 그리고 늘 추웠다. 그곳에도 계절이 있었겠지만, 언제나 눈으로 뒤덮인 나는 온기를 느껴본 적이 없었다. 어느 날 땅이 뒤흔들리며 바위가 되어 떨어져 나온 나는, 이곳에 닿기까지 구르고 또 굴러 부서졌고, 이 해안에 떨어진 후로는 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스치는 바닷물에 모난 모서리들이 둥글어졌다.

  산 정상에 있었을 때와 지금, 언제가 더 나은지 묻는다면, 글쎄. 아마도 지금이 더 좋다고 나는 생각한다. 너무 추운 것은 싫었다. 지금은 적당히 계절을 느낄 수 있고, 바닷물이 닿는 느낌도 좋으며, 끝없는 침묵이 이어지지 않는다. 바다가 물결치는 소리가 내가 이곳에 존재하고 있음을, 이 세상이 계속되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또한 바다 위로 해가 뜨고 해가 지며 어른거리는 풍경은 아무리 오랜 세월이 지나도 아름답다. 반복될지언정 하늘은 시간마다 그 색을 달리한다. 나는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그 모든 변화를 지켜본다. 연주황색 하늘이 분홍색으로 물들고 더 붉게 타들어 가다가 보라색으로 변하고 점차 어둡게, 짙게 색이 내려앉는다.

  이따금씩 철새나 소라게가 나를 지나친다. 나는 움직이고 이동할 수 있는 그들이 신기하다.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언제나 내가 아니니까. 땅의 흔들림이든 태풍이 만들어낸 바다의 커다란 물결이든, 나는 타의에 의해 움직인다. 나는 때때로 새에게 묻는다. "너는 어디까지 가 보았니, 그곳은 외롭지 않았니?"라고.

  그렇다. 사실 나는 외롭다. 외롭지 않음을 겪어본 적 없는데 어찌 외로움을 아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수 만 번 반복되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내가 외롭다는 것을 안다. 특히 서늘한 바람이 느껴지는 가을이 되면 그렇다. 그건 아마도 여름의 영향일 것이다. 여름에는 간혹 이 해변에 사람들이 찾아오니까. 사람들은 보통 서너 명씩 무리를 이루어 왔다. 대부분 유명지를 향한 휴가를 놓친 이들이다. 이곳에서라도 뒤늦은 여름휴가를 즐기기 위해 가족 단위로 찾아온다. 큰 사람들은 보통 모래 위에 누워 여름의 햇살을 만끽하고, 작은 사람들은 쉴 새 없이 움직인다. 어찌나 바쁜지 그들을 바라보는 나도 지루할 틈이 없다. 처음엔 이 해안의 맑고 푸른 바닷물에 몸을 담그고 헤엄을 친다. 작은 얼굴을 물속으로 넣었다 빼기를 반복하다가 이내 큰 사람들에게 가서 안긴다. 그러면 큰 사람들은 그들에게 장난감을 쥐어 준다.
작은 사람들은 장난감 삽으로 땅을 파고 성을 만들고 손뼉을 치며 웃어댄다. 무엇이 그렇게 재밌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나는 그들의 웃음소리가 좋다. 이곳에 살다 보면 그렇다. 까르르 넘어가는 소리가 얼마나 경쾌한지 얼굴도, 표정도 없는 나까지 웃는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그들이 모두 떠나고 나면 다시 긴 침묵이 이어진다. 이따금 철새가 날아들고, 다시 소라게가 나를 지나친다.

  겨울에도 종종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다. 그들은 보통 혼자 와서 하염없이 바다를, 파도를 바라본다. 어두운 저녁이 될 때까지 그러고 있다가 휘적휘적 바다를 향해 걸어 들어가는 이들도 있다. 아직까지 사라져 버린 사람이 없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다른 누군가 나타나 끌고 나오든지, 자기가 마음이 바꾸고 돌아 나오든지. 사라지고 싶을 만큼의 마음이란 어떤 것인지 돌멩이인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사라짐이 무엇인지는 안다. 물결이 나를 스치기를 반복하면서, 나는 내가 점차 작아지고 있다는 것을 안다. 신기하지 않은가. 부드럽게 스치는 물이 조금씩 나를 가져간다. 나는 여름에 오는 작은 사람들처럼 자라나지 않으니까 그저 작아질 뿐이다. 언젠가 이 물결의 끝에 내가 사라질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면 나는 무엇이 되는 것일까? 산이었던 나는, 바위가 되고 조약돌이 되고 모래가 되는 나는, 마지막 물결에 스치면 무엇이 될까? 그저 사라지는 것일까? 나는 이 물음이 어떤 의미도 지니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나는 움직일 수 없으니까. 그 소멸조차도 누군가의 힘에 의해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나의 삶을 외롭게 기억할 것이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이었다. 늦은 휴가를 즐기러 온 가족이 있었다. 큰 사람 둘은 모래 위에서 책을 읽었다. 햇살이 너무 세지 않게 물결이 반짝일 정도로만 내리쬐는 날이었다. 나는 작은 사람들의 웃음소리를 즐기고 있었다. 파도가 밀려오면 사라져 버릴 모래성을 다지고는 그 주변을 빙 돌며 뛰어다니던 작은 사람들. 그들이 어느새 내 근처로 와서 나를 바라보았다. "예쁜 돌멩이다!"라고 그들이 말했다. 이윽고 조금 덜 작은 사람이 나를 주워 들었다. 내 몸이 하늘로 올라 나는 잠시 어지러웠다. 그 작은 사람은 나를 중요한 물건이라도 되는 듯이 두 손으로 감싸더니 큰 사람들에게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말했다. "우리 이거 가져가도 돼요?" 큰 사람들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무해한 돌멩이니까. 해가 저물고 그들의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나는 갑작스레 일어난 모든 일이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여전히 계속되는 작은 사람들의 웃음소리, 그리고 큰 사람들의 미소에 나는 어쩐지 설렜다. 설렌다는 것, 그런 것을 내가 느껴본 적이 있었나.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곳에서 아무것도 변하게 하지 않는 내가 그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있었던가.

  늦은 밤 그들의 집에 도착했다. 집으로 들어서자 따뜻한 냄새가 났다. 테이블의 꽃병에 예쁘게 피어있는 꽃들이 집을 더욱 생기 있게 했다. 이윽고 네 발의 동물이 금빛 꼬리를 흔들며 달려왔다. 작은 사람들의 얼굴을 핥고 그들의 품을 파고들자, 작은 사람들은 금빛 털을 몇 번이고 쓰다듬었다. 덜 작은 사람의 손에 있는 나를 보자 금빛 털이 자신의 커다란 얼굴을 들이밀었다. 검은 코가 바삐 움직이며 냄새를 맡더니 내 표면에 코 모양의 자국을 남겼다. 이내 커다란 입을 벌리며 나를 물고 가려 하자 작은 사람들이 까르르 웃으며 말렸다.

"그건 먹을 수 없어. 우리의 추억이야. 엄청 단단하다고."

  작은 사람들은 나를 방으로 데려갔다. 그들은 색색의 도구들을 꺼내 내 위에 무언가 그리기 시작했다. 나는 어쩐지 그 행위가 나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서 좋았다. 조금 간지러웠지만 그 놀이가 재밌기도 해서 잠자코 있었다. 어차피 나는 움직일 수도 없으니. 작은 사람들이 알록달록해진 나를 들고 큰 사람들에게로 달려갔다. 그들은 나를 테이블 위 꽃병 옆에 놓아두었다. 며칠이 지나며 나는 여전히 모든 것이 낯설었지만 내가 이곳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침이면 고소한 빵과 커피 냄새가 흘렀고, 작은 사람들은 가방을 메고 나에게 인사를 했다.

"다녀올게, 돌멩이."

  그들이 떠난 집에는 여전히 온기가 있었고 때로는 큰 사람들이 틀어 놓은 음악이 있었다. 틈틈이 금빛 털이 나를 궁금해하는 눈빛으로 다가와 침을 묻혀대곤 했지만, 나는 그 축축한 온기마저 좋았다. 오후가 되면 다시 작은 사람들이 문을 열고 들어와 내게 인사를 했다.

"잘 있었어, 돌멩이?"

  금빛 털북숭이는 자기 배를 드러내고 카펫을 굴러댔다. 작은 사람들과 큰 사람들이 주고받는 이야기가 저녁의 공기를 채웠다. 나는 더 이상 파도 소리를 들을 수 없었지만. 이야기 소리를 듣는 것이 좋았다. 그 소리에는 물결 소리에 없던 온기가 있었고, 나는 이 세상에서 소멸하는 날이 조금 늦춰졌음을 알 수 있었다. 모두가 잠든 밤, 창 밖으로 비치는 별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지금 나는, 처음으로 외롭지 않다고.



[고래가 드리는 글]


  우리는 이 세상에 솟아난 이후로 내내 깎이고 부서지고 구르다가 어느새 조약돌처럼 작아진 스스로를 마주합니다. 어른이 되면서 몸은 더 커지는데, 마음은 왜 점점 작아지는 걸까요. 저는 큰 파도에 부딪혀 깨지기도 하지만, 일상의 작은 물결에도 조금씩 닳아서 이러다 제가 없어지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렇게 작아진 나와 넓기만 한 세상을 느낄 때 마음이 한없이 차가워집니다. 그 마음을 치유하는 것이 다른 존재와의 '관계' 그리고 '관심' 아닐까 생각하며 이 글을 적었습니다. 돌멩이가 어두운 밤, 외롭지 않음에 가슴 벅차하는 것은, 돌멩이를 가져온 가족의 손길 '관계'를 만들었고, 아이들 건네는 인사가 '관심'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자꾸 뜨듯한 콧김을 들이대는 이 집 강아지의 호기심도 한몫을 할 겁니다. 우리는 서로를 모르지만 지금 이 글을 쓴 저와 이 글을 읽는 당신을 '우리'라고 부를 수 있기에 지금 우리 사이에도 관계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시간 내어 '관심'을 보내주신 그대에게 '온기'로 보답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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