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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오면 진실해지는 걸까

3월 9일 _ New Castle

by 와이즈맨

New CastleNew Castle

어제밤 23:05분 버스를 타고 뉴캐슬로 건너왔다.


밤에 두시간 가량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면서 영화를 보는데, 술에 취한 건지 아니면 원래 그런 분인지 모르지만, 할머니 한 분이 옆에 와서 뭐라뭐라 중얼거리시고 있었다. 괜히 받아줬다가 골치 아픈 일이 생길까 싶어 응대를 안 했더니, 결국 다른 곳에 가서 앉더니 거기서도 또 중얼중얼... 결국 다시 옆에 와서는 담배를 달라고 하신다. 하나를 주었더니 두개를 달라고, 없다고 그랬더니 또 중얼중얼하면서 다른 곳으로 가시는데... 사람을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외지에 나와서 괜히 모든 것에 응했다가 실수하는 일이 발생할까 싶은 이유에 다소 불안에 떨었던 시간이었다. 사실 그 순간에 할머니가 나에게 뭔가 해꼬지를 해온다면 'Police, Police!'를 외칠 생각도 갖고 있었다.


23시 20분이 다되어서 버스가 도착했다. 야간버스에 사람이 많아서 둘이서 좁게 가는 수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기에 제일 먼저 버스에 올랐다. 누가 한국사람 아니라고 할까봐. ㅡ..ㅡ


심야의 야간 버스는 생각보다 힘들지는 않았다. 영화 한 편을 다 본 후에 잠이 들었는데, 그다지 피곤하지 않게끔 잠을 푸욱 잘 수 있었다. 춥다는 말이 있었는데, 오돌오돌 떨기보다는 약간의 한기가 느껴질 정도? 반팔, 반바지에 얇은 겉옷을 하나 챙겨입고 무릎 담요를 덮고 있었는데 아침까지 춥다는 생각없이 하룻밤을 보냈다.

(밤길 달리는 사이에 비가 오고 있었다. 브리즈번에서 만난 친구가 여행하는 날 비가 오면 일이 잘 풀린다는 속설을 말해주었는데, 야간버스를 타고 다시금 이동하는 여행에 비가 와주니 왠지 일이 잘 풀릴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이제 캔버라에서 멜버른까지 가는 9시간 코스가 남아있기는 한데, 그다지 걱정되는 일은 없다.


뉴캐슬에 도착했다. 뉴캐슬의 햇살도 다른 해변가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이미 익을대로 익어버린 어깨와 팔이 욱신거림을 느낀다. 우선 숙소를 찾아서 짐을 메고 나섰다. 책자에서는 터미널 건너편에 위치한 것으로 나와있는데, 그 곳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한 블럭을 돌고 난 후에 그 장소를 발견했고, 생각보다 작고 허름함에 아쉬움이 들었다.

'Backpackers by the beach'

4층짜리 건물로 1층에는 리셉션과 부엌을 겸한 식당이 있고, 지하에 인터넷과 샤워장이 있으며, 나머지 2,3,4층에 숙소가 있다. 누군가 이 글을 읽고 큰 시설이라 생각한다면 절대 오산! 화장실을 겸한 샤워장이 두개뿐이고, 각 층에 방도 3개뿐인 매우 작고 좁은 시설이다. 에어컨도 없고, 덕분에 처음 방에 들어갔을 때 느끼는 퀴퀴함은 어쩔 수가 없다. 후각이 피로를 느껴 답답함을 없애기를 기다리는 수 밖에.


짐을 맡기고 시내관광을 하고자 Visitor Center를 찾았다. 지도에서는 금방 갈 것 같았으나, 축적이 높았는지 10분여를 걸었던 듯 싶다. 그 안에서 지도와 관광 안내 책자를 짚고 30여분간 앉아있었다. 뜨거운 햇살과 떨어져 에어컨과 편안 의자가 있는 곳에서 작은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나름대로 시내에 대한 정보를 마스터하고 길을 나섰다. 오늘은 외곽을 한바퀴 쭈욱 돌고 내일은 시내를 구경하겠다는 생각에 외곽을 주로 다녔다. 다른 도시와는 달리 뉴캐슬은 언덕이 많은 지형이었다. 시내 중심은 다소 평탄한 지역이지만 그 외곽은 언덕이 높았다.

DSC_2039.JPG < 끝이 우거진 언덕길 >


오벨리스크였던가? 시내에서 조금 떨어져 가장 높은 언덕에 위치한 그 곳에서는 뉴캐슬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시내와 바다를 동시에 볼 수 있었으며, 그 곳에 서있는 기념비는 뉴캐슬에 처음 물을 공급했던 사람들을 기리고 있었다. 더불어 정상에서 부는 바람은 뜨거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상쾌함과 시원함을 전해주고 있었다.

DSC_2098.JPG < 결국 호주도 섬이었다. 물이 귀한 섬나라 >


그 곳을 내려와 공원을 지나서 해변가를 돌았다. 뉴캐슬은 여러 Beach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골드 코스트나 바이런베이에서 봤던 해변과는 다소 차이점이 있었다. 지난 곳들에는 바다와 모래가 있었다면, 뉴캐슬에는 바위가 많았다. 마치 제주도의 해변을 보는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 바위가 많다보니 그 안에서 펼쳐지는 키높이를 넘는 파도의 부서짐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강한 인상을 남겨주고 있었다. 더불어 100여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인공 수영장은 아직도 사람들이 많이 찾고 있으며, 바닷물을 그대로 가져오고 있어서 깨끗함도 유지하고 있었다.

(내일은 나도 저 곳에서 수영을 해보리라…)

DSC_2156.JPG < 제주를 떠올린 바닷가 >
DSC_2157.JPG < 이 곳이 수영장이라니 >


'해변과 공원이 많은 도시' 뉴캐슬을 이렇게 부르고 싶다. 그렇다보니 당연 삶속에서 느껴지는 여유 또한 더욱 커다란 도시였다. 지금까지 4번의 도시를 지나쳐왔지만, 사람이 많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한적한 시골마을도 아닌 뉴캐슬이 나는 가장 맘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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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풍경이 아름다웠던 뉴캐슬이 하루 >


3시경에는 the Blackbutt Reserve를 향했다. 코알라와 야생동물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동물원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했었지만, 야생 원시림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고, 그 안에 작은 우리를 두어 동물을 키우기도 하고 있었다. 어렵게 버스를 타고 입구에 내렸을 때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른 인상이었다. 마치 산기슭에 내린 느낌? 관광객이 지나간 흔적보다는 등산객이 보다 많을 것 같은 느낌. 코알라를 보고 싶다는 생각에 온 곳이기는 하지만, 그 안을 걸으며 느낀 것은 마치 우리나라 휴양림에 온듯한 느낌이었다. 사실 관광지로 개발할 수도 있었겠지만, 자연을 보호한다는 취지에서 관광지화 시키지 않고 누구나 찾게끔 만들어놓은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길을 걷는 중 갑자기 2~3m앞에서 뭔가가 부스럭 거리면서 지나갔다. 긴꼬리가 보인다.

'헉, 뱀이다.'

호주에 맹독성의 뱀들이 많다는 얘기를 들었던 관계로 순간 겁이 났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그건 도마뱀이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보아왔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게 컸다. 50cm정도? 그래도 뱀이라는 생각에 앞으로는 땅바닥을 잘 보면서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뱀에 물려 외지에서 죽는 일은 없어야겠기에... (사실 한국에서는 뱀을 봐도 큰 느낌이 없었는데, 외지에 나오니 의뢰로 겁이 생기나 보다.)

DSC_2228.JPG < 과연 코알라를 보았을까? >



한시간여 그 안을 돌아다니다 이제 하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길을 찾았으나, Oops! 길을 잃었다. 작은 우리에 찾아온 손님이 있어 길을 물었으나, 그 곳에는 사람이 아닌 차만 다닐 수 있는 길이 있었다. 그 길을 따라 다시 20여분을 걸어 작은 마을에 도착했고,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버스를 타고 시내로 돌아올 수 있었다.

아, 차도를 따라 걷는 시간,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 그 시간이 왜 그리도 길게 느껴졌는지. 물론 시내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은 안했지만, 말도 안 통하는 외지에 와서 길을 잃었다는 생각에 Good & Bad의 생각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던 듯 싶다.


지난 일주일간 빵만 먹고 산 것 같다. 단 한번의 밥, 한번의 라면 그게 내가 먹은 마지막 한국음식이었다. 왠지 기름기 가득한 고추덮밥이나 잡채밥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내에 도착하여 마켓에 들어서 기름, 감자, 당근, 큰 피망(이름을 모르겠다), 참치, 쌀, 양배추, 샐러드 드레싱, ......을 사들고 숙소로 갔다. 다행히 아직 6시가 안된 시간이라 밥을 하는 사람들이 적어서 식당을 편안히 쓸 수 있었다. 쌀을 씻어 밥을 얹히고, 고추와 양파를 썰어 볶고 있는데, 동양인이 오더니 “혹시 한국사람이세요?”라고 묻는데, 이렇게 반가울 수가. 워킹으로 온 대학생인데 뉴캐슬에서 job을 구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알고 보니 나와 같은 방을 쓰고 있는게 아닌가. 미리 알았더라면 밥을 더 많이 했을텐데, 그래도 만난 기념으로 적지만 함께 나누어 먹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나 역시 덕분에 오랜만에 고추장과 김을 맛볼 수 있었으니 더욱 좋은 기회였다.

저녁에는 그 친구와 함께 맥주를 마셨다. 7시경 마시기 시작한 맥주는 어느새 12시가 되어있었다.


여행을 오면 진실해지는 걸까?

굳이 말해도 되지 않은 서로의 지난 과거와 고민을 이야기하면서 힘이 되어주는 관계가 되어 있었다. 난 그렇게 또 한 명의 친구를 만들고 있었고......

더불어 그렇게 오늘 하루도 저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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