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3일 _ Sydney
어제 새벽 2시까지 Backpack에 묵는 동생들과 함께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시면서 한 친구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하더라.
“형님은 좋은 말씀 많이 해주시는데, 하나만 말하면 될 것을 너무 자세히 상세하게 다 설명하시려고 하네요. 안 그래도 될 거 같은데요.”
언젠가 병욱이에게 들었던 말인 듯 싶었다. 그 때도 ‘아, 내가 남들에게 굳이 할 필요가 없는 말까지 하는 사람이구나, 그런 모습은 좀 고쳐야할텐데’라는 생각과 다짐을 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여행와서 만나는 동생게게 그 말을 들었을 때, 화가 나기 보다는 나의 모습을 다시금 확인시켜주는 말이 너무도 감사했었다.
‘그래, A부터 Z까지 내가 모든 것을 설명할 필요는 없잖아. 단지 내가 하고 싶은 기본적인 말과 원칙만 전달하면 돼. 그들도 성인인데 나머지는 스스로 취사선택하면서 판단하고 받아들이겠지.’
앞으로 더욱 조심하면서 살아야한다는 바램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혹시 나는 그가 중학교만 졸업하고 나보다 다섯살 어린 동생이라고 얕보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러지 마라. 너 스스로가 대단한 사람이라고 착각하지 말자.
나는 그에게서 배우고 있었다. 그 시간은 나를 일깨워준 고마운 순간이었다.
아침에 8시에 알람시계가 나의 눈을 뜨게 했다. 하지만 8시간의 행군(?)과 과음으로 쉽사리 일어나지를 못하고 9시가 넘어서 눈을 떴다. 쓰린 속을 부여잡고 한 친구와 함께 라면을 끓여 먹었는데, 쓰린 속을 달래주기에 너무도 훌륭한 식사였다. 빈 속에 흘러들어가는 뜨거운 국물이 식도를 따라 위로 넘어가는 그 느낌은 나에게 과음의 후회를 달래주기에 충분했다.
식사 후에 간단히 빨래를 하고나서 Gap Park로 향했다. 서큘러키에서 ferry를 타고 Watsons Bay에 도착했다. Ferry를 탈 때 조금씩 오던 비는 이미 가랑비 수준을 넘어서고 있었다. 우산도 없었던터라 손수건으로 카메라를 둘러싼 채 길을 걸었다. 안내 책자에는 표지판이 있다고 했는데, 내가 찾아볼 수 있는 표지판이 눈에 띄지 않길래 Cliff St.라고 써있는 곳을 따라 무작정 걸었다. 하지만 내가 원하던 그러한 절벽을 발견하기에는 너무도 낮은 시골동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금 돌아가야하는가? 갑자기 남자 두명이 집 옆 담벼락을 따라 난 길로 가는 모습이 보여 저길이 아닌가 싶어 따라갔는데, 그 안에서 정말 훌륭한 모습을 보았다. 분명 사람들이 살고 있는 아담한 집 뒤에는 여느 해변에 못지 않는 부드러운 모래와 파도가 일렁이는 해변이 있었다. 그 안에서 여러 사람들이 바다를 즐기는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삶의 여유? 호주에 와서 여유라는 표현을 자주 쓰고 있는 듯 한데, 정말 휴식의 공간이란 집 뒤에 그러한 해변이 있다는 것이 더더욱 부러워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었기에 돌아왔던 길을 따라 다시금 원점으로 돌아왔다. 왠지 몇백미터 앞쪽에 사람들이 왔다갔다 하는 모습이 지형도 높아 보이고 저기에 가면 방향을 찾을 수 있을 듯 싶어서 그 쪽을 갔다. 거기에 ‘Gap Park’라는 간판을 찾을 수 있었다. 버스정류장으로부터 멀지 않은 그 곳에 내가 바라던 곳이 있음을 알았다. 짧은 시간의 걸음으로 해안절벽을 바라볼 수 있었다.
언젠가부터 해변에 나있는 높은 절벽이란 광경을 동경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여기서 바라보고 있었다. 눈앞에 펼쳐지는 넓은 바다, 눈 아래 펼쳐지는 아찔한 바위와 파도. 이런 것을 장관이라고 표현해야 하는 것인가. 깎아지른 듯한 벼랑이란 표현에 정말 어울리는 곳이었다. 바위 밑에서 일렁이는 파도는 그 절벽의 위엄을 더욱 높여주고 있는 듯 하고. 짧게 이어진 공원이었지만 그 곳을 돌면서 정말 아름다운 광경이라는 생각을 가졌다. 더불어 지금은 없지만 과거 전쟁 당시 포가 설치되어 있다는 정보를 보면서 살기 위해서 죽일 수 밖에 없었던 과거의 아픔도 공감할 수 있는 시간이었고.
어제 너무나 힘겨운 행군과 늦은 새벽까지의 과음으로 컨디션이 말이 아니었으나, 그래도 한 곳이라도 더 보고 싶은 마음에 본다이 비치를 찾았다. 시드니에서 유명한 해변이라고 했으나, 사실 골드 코스트나 바이런 베이의 해변과 비교하자면 정말 작은 곳이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그 곳에서 서핑과 선탠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여유와 휴가를 이곳에서 즐기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었다.
몸이 힘들었는지 이윽고 숙소로 돌아와서 저녁을 먹고 또다시 맥주를 마시고... 신학대학원을 휴학하고 온 친구와 저녁을 먹을 때는 또다른 삶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이었다. 맛없는 야채볶음을 맛있게 먹어주는 모습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지금 시각 12시 40분을 넘고 있다. 내일은 항상 그리던 Blue Mountain을 찾아갈 계획이다. 언제부터 그곳을 가고 싶어했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Cable TV에서 그 곳을 보고 꼭 한번 가보리라 다짐했었다.
그렇게 바라던 곳을 찾는다는 생각에 설레이는 맘이 든다.
오늘 야채를 볶아 내일 점심을 위해 남겨두었다. 아침에 도시락을 싸서 꼭 다녀와야지.
내일 하루도 호주의 추억을 남기기 위해서 노력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