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2일 _ Sydney
어제 마신 술 덕분에 8시 예상기상보다 30분 늦게 일어났다. 9시경 식빵과 잼, 양배추 샐러드로 아침을 대신했다. 오늘은 시드니 시내 전역을 돌아볼 생각이었기에 점심을 대신할 식빵도 두조각을 챙겼다. 시드니란 도시에도 공원이 많으리란 생각에 별도로 물은 챙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재앙의 시작이 될 줄은...)
킹스크로스 지역을 시작해서 Royal Botanic Garden을 둘러보기로 했다. 해안을 따라 걸으면서 이번 여행에서 아직까지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어제 밤 세차게 내리던 비가 오늘 시내 여행을 힘들게 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오늘 날씨는 정말 해변의 그것을 방불할만한 것이었다. (얼굴에 가득 Sunblock을 발랐는데, 팔과 다리는 여지없이 타겠구나.)
Mrs. Macquaries Chair를 시작으로 해안을 따라 Opera House까지 향했다. 누구의 것인지는 모르지만 바다 위에 떠있는 요트는 시드니 항구의 경치를 더욱 여유있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Opera House로 향하는 길에 한국 사람을 만났다. 아랍에미리트 항공에서 일하는 승무원이라고 하는데, 비행기로 출국 전에 잠시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고 했다. 10여분 같이 걷다가 헤어지고 나서 친구하자고 할 걸 하는 후회가 잠시 들기도 했다. 후회? 난 어떤 의미로 후회라는 말을 썼을까?
과거 사진에서 보던 오페라 하우스는 정말 맑은 바다 위에 서있는 깨끗하고 화려한 건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 가까이 바라본 오페라 하우스는 생각과는 좀 다른 모습이었다. 물론 건물의 나이를 생각하면 지금도 깨끗하고 아름다운 건물임에는 분명하지만.
오페라 하우스를 지나 시내중심과 Darling harbor, 록스지역을 거쳐 Sydney Harbor Bridge를 건너 쭈욱 여행을 했다. 지금까지도 충분히 많이 걸었는데 오늘은 그간의 Walking의 하이라이트가 아닌가 싶었다. 10시 30분에 출발한 여행은 다시 그 다리를 건너을 때 6시 30분을 가르키고 있었다. 중간중간 무릎과 다리가 너무 아파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으나, 내일 다시 이곳을 찾아오는 고생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다소 무리를 했다. 시드니에서 3일의 시간이 남았는데, 그 사이는 다소 편안하게 여유를 즐기고 싶다는 생각이 너무 강했다.
어제 옥스포드 Road에서 오래된 건물을 아직도 잘 관리하고 활용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는데, 생각과는 달리 시드니 시내에도 오래된 건물이 아직 많이 남아있었다. 특히 시청 건물은 100년을 훌쩍 넘긴 지금도 훌륭한 건축물로서 도심의 미관을 빛나게 하는 듯 싶었다. 또한 Martin Place는 마치 세종문화회관 뒷편의 작은 공원을 연상시키는 곳이었다. 12시경에 그 거리를 지나쳤는데, 점심시간의 여유를 즐기려는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앉아서 정오 시간을 즐기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비록 의자는 아니지만 돌계단에 앉아서 담소를 나누고, 버거와 캐밥으로 식사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들이 직장이란 경제활동 속에서도 얼마나 자신들의 여유를 챙기고자 하는지 느끼고 있었다. 바쁘다 바쁘다 하는 것 역시 내가 나를 통제하지 못함이요, 그 안에서도 얼마든지 충분한 여유를 내가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고 실천할 수 있어야 할 것인데... 나뿐만 아니라 내가 만나는 모든 이들이 그런 여유를 찾기를 바란다.
그리고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뭐라해도 Harbor Bridge가 아니었나 싶었다. 그 다리에서는 관광상품으로 Climbing을 하기도 한다는데 높은 곳을 무서워하는 나는 감히 엄두를 못낼 것이었다. (물론 300불에 육박하는 돈도 돈이었지만, 외지에 나와서 목숨 걸고 뭔가를 하기에는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고, 살아야 할 시간이 너무 많았다. ) 올라갔다 내려올 때의 성취감이 형언하기 어렵다고는 하지만, 나는 아직 자신이 없다. 다리를 건너서 전철을 탈 생각이었기에, 다리를 건너는 중 저녁 햇살에 비치는 오페라 하우스를 담고자 난간으로 가는 순간, 난 정말 소심해지고 작아지는 나를 느낄 수 있었다. 아니 정말 무서워서 다리가 저릴 정도였다. 철망으로 된 난간 밑으로 보여지는 바다는 마치 건물 옥상에 올라있는 듯한 아찔함을 건네었다. 거기에 버스나 큰 차가 지나가면서 다리가 흔들릴 때는 정말 아찔아찔함이 몸으로 건네어 왔다. 하지만 어쩌리... 돌아가기에는 더 많은 시간을 걸어야했기에 전진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그 와중에서 오페라 하우스를 한번이라도 더 찍어 보고자 연신 셔터를 눌러댔지만, 그 때마다 느껴지는 아찔함은 정말 다시금 그 다리에 서고자 하는 욕심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다리를 거의 다 건널 때쯤 다리 아래를 내려다 보는 모습을 사진에 담고 싶었으나, 차마 고개를 내밀지 못하고 손만 뻗어서 사진을 찍었는데... 정말 언제부터 이렇게 높은 곳을 무서워하게 된건지... 예전에는 2층에서도 잘 뛰어 내리고 했던 거 같은데. 아마 2002년도 래프팅을 하면서 바위 위에서 뛰어내릴 때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한데.
어쨌든 곧 나는 전철을 타러 간다. 이제 쉬러간다.
오늘밤은 정말 잠이 잘 올 듯 싶다.
가는 길에 보틀 샵이 있으면 맥주라도 한 잔 마시면 기분이 정말 좋을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