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의 위기를 함께 극복하다.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은 발도로프를 하는 유치원으로 숲체험, 자연놀이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곳이었다. 다른 아이 친구들이 영어유치원에 다니거나, 1학년 때 하는 받아쓰기 준비를 미리 해주는 유치원에 다닌다는 소식을 들을 때 무언가 조급해지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실컷 바깥놀이를 하고 유치원 급식으로 살이 오르는 아이를 보며 이보다 더 바랄 것이 무엇이랴.. 하며 스스로를 자제시켰다.
'아빠와 함께 하는 등산', '각종 과일청 만들기', '아이들과 함께 만든 재활용품 공동작품' 등의 이벤트를 통해 타인과 함께 어울리는 법을 배우고, 자연과 공존할 줄 알며, 환경을 생각하는 전인교육을 꾀하는 교육관이 좋았다. 유치원 원장님께서 체육을 전공하신 분이라고는 알고 있었지만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에너지와 추진력으로 그 많은 유치원 행사를 이끄시는 것을 보면서 혀를 내두를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때로는 너무 일관적인 추진력으로 미세먼지가 와도 숲은 산소가 많다며 강행하시고, 다녀와서 아이가 비염과 기침으로 잠들기 힘들어할 때는 마음속에서 원망의 소리가 막 삐져나오기도 했다. 직장 어린이집이다 보니 워킹맘들은 아이들이 아픈 순간에 가장 힘들다. 그래도 잘 먹고 잘 움직인 덕에 잔병치례 횟수도 줄고 아이가 건강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유치원을 5세부터 7세까지 만족하고 다니던 중 졸업이 얼마 안 남았을 무렵 유치원에 큰일이 터졌다. 자세히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내가 가장 감사하고 신뢰하는 급식실에 문제가 생겼다. 급식실의 일부 인원이 유치원의 많은 업무가 고됐는지 유치원 원장님 및 실무진을 공격하는 사건이었다. 생각보다 일이 커져서 지역신문에도 나왔다. 학부모들의 이해를 위해 온라인 미팅으로 삼자대면을 하기도 했는데 해결은커녕 참담한 모습만 보게 되었다.
이 일로 가장 힘든 두 분은 아무래도 영양사님과 원장님이셨다. 아이를 데리러 갈 때마다 얼굴이 수척해지시는 두 분과 선생님들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 유치원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신뢰가 형성이 안된 일부 부모님들은 원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하기도 했다. 나는 3년 가까이 유치원을 지켜봐 온 학부모였고 그 열정으로 아이들이 얼마나 행복해졌는지를 눈으로 보아온 사람이었다.
나의 단단한 신뢰는 바쁜 학기말 업무가 어느 정도 마무리 될 때쯤 유치원에 무언가 도와줄 것이 없나 하고, 좋게 말해 도움의 손길, 속된 말로 오지랖으로 변해갔다. 마침 할로윈 행사가 가까워져 왔다.(그 당시는 이태원 사건 전이라 할로윈 행사를 활발하게 할 때였다.) 뭐라도 힘이 되고 도움이 되고 싶어서 할로윈 기념 자원봉사 영어수업을 하겠다고 자처했다. 내가 먼저 담임선생님께 이런 수업이 가능하니, 해도 될지를 여쭸다. 원장님 및 실무진은 버선발로 환영해 주셨고 할로윈 날 아이학급과 옆반의 영어 일일수업을 하게 됐다.
영어원서도 고르고, 동영상도 고르고, 아이들 할로윈 가면도 일일이 다 제작해서 갔다. 마지막으로 나눠 줄 'Trick or Treat' 간식도 가져갔다. 가장 형님반인 7세라서 그런지 수업태도도 너무 좋았고 집중력도 초등학생보다 훌륭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할로윈 캐릭터로 변신해서 하는 게임은 어찌나 적극적으로 참여하던지... 봉사를 하러 가서는 내가 힐링을 받고 왔던 것 같다. 아이들과 깔깔 대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먼발치에서 원장님께서 흐뭇하게 참관하고 계신 것이 보였다.
사실 그 모습이 보고 싶어 온 것이었다. 사기 저하된 원장님께 힘을 실어드리고 싶었다. 계란 알레르기 대체식에 문제를 제기했던 철없는 학부모를 포용해 주시고 3년 동안 아이의 음식에 신경 써주신 감사한 원장님께....
그리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신 유치원 선생님들께 어떤 형태로든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싶었다. 그냥 내가 잘할 수 있는 일 중 용기를 내었던 것인데 감사하게도 반겨주시고 좋아해 주셨다.
그 후, 아이들의 졸업과 1학년 입학이 다가올 때쯤 유치원에서 1학년 예비학부모 설명회를 요청하셨다. 사실 2년 동안 1학년 담임교사를 할 때였고 팬데믹 상황으로 온라인 설명회라 크게 부담은 없었다. 유치원에 오며 가며 만나는 다른 학부모님들께 대충 궁금한 것들이 무엇인지 사전조사 후 발표자료를 만들기 시작했다. 겨울방학은 무엇을 하며 보내야 하는지, 1학년 아이들이 배울 과목, 미리 알아두면 도움 되는 내용, 엄마표 영어 꿀팁 등을 이것저것 담아서 만들었다. 아마 두서없다고 느끼는 분들도 계셨겠지만 도움이 많이 됐다고 연락을 많이 주셨다.
학부모로서 할 수 있는 봉사를 했을 뿐인데 원장님께서 특히 고마워하셨고 나도 작게나마 유치원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런데 유치원에서는 나에게 뜻밖의 이벤트를 준비해 주셨다. 코로나상황이라 온라인 졸업식을 해야 했는데 학부모 표창을 받는 행운으로 유치원 졸업식을 직관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학부모 표창은 고사를 했지만 끝까지 받기를 원하셔서 부끄럽게도 졸업식에 참석하고 아이 졸업식 사진도 직접 찍을 수 있었다.
졸업식 날도 원장님 및 선생님들과 아쉬운 작별의 인사를 나누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아이의 유치원 3년은 사랑이고 행복이었다. 비록 그분들은 할 일을 했을 뿐이고 당연한 일을 했다고는 하시지만 그분들 덕에 아이는 가장 중요한 시기를 건강하게 보낼수 있었으리라... 소위 아낙플락시스라고 하는 쇼크 없이 아이가 원 생활을 마무리할 수 있게 물심양면으로 애써주신 분들께 마지막에 사랑과 희망을 보내드릴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다. 아이에게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반복해서 이야기해 주려고 한다. 그 사랑의 힘으로 아이는 자랄 수 있었으므로....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