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서 벌고, 달려서 남기다
일곱 평 남짓한 원룸을 신혼집으로 계약하고, 우리는 이사 준비를 시작했다. 넉넉하진 않지만 성실하게 살아오신 양가 부모님 덕에, 우리는 그래도 각자의 방은 가진 채로 부모님과 살고 있었다. 문제는 그 방 두 개 분량의 짐을 모두 비좁은 원룸에 옮겨오는 일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결국 쌓아둔 물건을 처분해서 살림살이에 보태기로 했다.
얼마 타지도 않고 처박아 놓은 인라인 스케이트, 선배들 따라 폼 좀 잡는답시고 시작한 골프에 구색을 갖춘다고 사들인 골프채 세트, 충동적으로 사놓고 거들떠보지도 않은 기타와 앰프... 나 스스로도 잊고 있던 물건들이 끝도 없이 쏟아져 나왔다. 월급이 대체 어디로 사라지나 궁금했는데, 답은 바로 여기 있었다. 물건들을 바라보며 웃음과 추억이 스치기도 했지만 곧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바보 같은 소비를 하고 있었다'는 자조가 밀려왔다.
팔 수 있는 건 중고로 처분했고, 나머지는 폐기물 처리비를 내고 버렸다. 손에 쥔 돈을 세어 보니, 산 가격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턱없는 돈이었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스트레스를 풀던 시절 고민 없이 마구잡이로 돈을 쓴 대가였다. 이때의 경험으로 나는 지금까지도 새 물건을 잘 사지 않는다. 가지고 있을수록 가치가 떨어지는 물건에는 결코 비싼 돈을 지불하지 않는다. 자동차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이 습관은 자산을 모아 나가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새로 개통한 지하철 9호선은 급행이 있어 편리했지만, 다른 호선보다 요금이 꽤 비쌌다. 천 원 한 장도 아깝던 우리에게, 출퇴근으로 매일 나가는 교통비는 아깝기 짝이 없는 지출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출근길 만원 전동차에서 사람들 틈에 낑겨 있던 내 시야에 광고 하나가 들어왔다. 서울지하철 9호선 시민 참여 요원 모집. 옴짝 달짝 못하면서도,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개통 당시 9호선은 대한민국 최초의 민간 운영 도시철도 노선이었다. 반드시 수익을 내야 하는 민간 기업이 운영하고 있었기에 다른 노선들보다 비싼 요금을 징수했고, 공적인 색채가 짙었던 기존 노선들에 익숙해져 있던 승객들과 여론의 비난을 초래하게 되었다. 운영 주체였던 '서울시메트로 9호선' 측에서는 이런 비난 여론을 잠재우려는 여러 시도를 하였는데, 이 중 하나가 시민 참여 요원 제도였다.
9호선을 주로 이용하는 시민 몇 명을 뽑아 개선 의견을 제보하고, 9호선의 편리함과 쾌적함을 홍보하도록 하는 방식이었다. 대가는 활동 기간 동안 무료승차권 제공. 매주 한 번 차량 기지 및 사무실이 있는 개화역에 가서 다과와 함께 활동 발표회를 하고, 간단한 리포트를 제출하면 됐다. 나는 덕분에 6개월간 9호선을 무료로 마음껏 이용했고, 과자와 음료수는 허락을 얻어 집으로 챙겨 오기까지 했다.
교통비는 물론 간식값까지 아낀 셈이니, 나에겐 작은 월급이 하나 더 생긴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