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11일 미추홀구 대책위의 안상미 위원장과의 미팅
1. 전세사기 경고
2022년 6월경부터 주택세입자법률지원센터(세입자 114)를 통해 이상한 상담이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전세집의 집주인이 바뀌었는데, 새로운 집주인과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상담이 빈번하게 반복되었다. 또한 저렴한 전세라는 명분으로 집값 상당을 전세가격으로 제시하는 사례가 많이 확인되고 있었다.
전세금은 본질적으로 무이자 대출이기 때문에, ① 집주인의 신용과 ② 집에 대한 담보가치가 중요한데, 전세계약 이후 집주인이 바뀌고 있다는 상담과 함께 집의 담보 가치도 점점 전세금보다도 못한 깡통 전세가 늘어가고 있다는 상담이 많이 접수되고 있었다. 이에 당시 깡통전세 및 전세사기 상황에 대한 경고 방송을 하기 위하여 2022년 7월 13일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현하여 당시 깡통 전세 및 전세사기 상황에 대해 경고를 하였으나, 당시까지만 해도 전세사기 사건이 이렇게 폭발적으로 증가할 지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다.
2. KBS 시사직격 인터뷰
그 후 2022년 8월 말경 KBS 시사직격팀으로부터 인천 미추홀구에 이상한 전세계약이 있는데, 그곳 상황에 대해 법률자문을 요청받았다. 당시 KBS 담당 PD는 인천 미추홀구에 공동주택이 있는데, 소유자 명의는 모두 다른데, 실질적으로는 건물주가 한명이고, A주택의 명의상 건물 소유자가 B주택의 공인중개사이고, C주택의 주택관리업체 대표라고 하였다. 당시 나의 반응은 “에이, 설마, 그게 말이 되나요? 그거 입증하면 대박”이라고 답변하였는데, 결국 2022년 10월 7일 KBS 시사직격에서는 “집없는 죄, 전세보증금과 회장님” 편에서 미추홀구의 전세사기 사건을 정면으로 보도하였고, 당시 건물주는 모든 사실을 인정하였다. 주택 임대차에 대한 나의 상식이 통째로 허물어지는 사건이었다.
3. 미추홀구 대책위 안상미 위원장과의 만남
그 후 2023년 1월 11일 정의당의 연락을 받고 미추홀구 전세사기 대책위(이하 미추홀구 대책위, 위원장 안상미)로부터 법률 상담이 필요하다는 연락을 받고 만나게 되었다. 상담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설령 전세사기를 당했다고 하더라도 피해 세입자 가족들이 당연히 최우선변제금이라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현행 주택임대차보호법은 모든 전세사기 피해자들에게 최우선변제금(추후 설명)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었다. 주택세입자 법률지원센터(세입자 114)의 운영위원장으로서, 지난 몇 년간 세입자 편에서 법률상담을 해오던 나조차도 그러한 사정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 당황스러웠고, 그러한 상황을 그대로 방치할 경우에는 전세사기 피해를 입은 세입자들의 생존이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전세금은 한국의 평균적인 세입자들이 최소 5년 또는 10여년간 모아놓은 삶의 종자돈이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상황을 깨달은 순간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하나?”, 나는 머리를 감싸쥐었다. 머리가 아파왔다.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 세대가 2,500세대가 넘는다는데, 미추홀구 대책위의 표본 조사 결과, 이 중 30% 가량이 최우선변제금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었고, 여기에다 청년 세입자 중 상당수는 전세대출까지 받고 있어, 그대로 방치할 경우에는 전세금도 날린 세입자들이 전세대출금까지 변제해야 했기 때문에, 당시 삶의 희망을 잃은 전세사기 피해 가족들의 생명과 안전이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현행법에 따라 민, 형사상 재판을 거칠 경우 재판은 이기겠지만, 실제로 전세금을 회수할 방법이 여의치 않아, 희망을 잃은 세입자들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그리하여 당장 민, 형사 재판을 진행하기 보다는 국회를 통해 새로운 법을 만드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고, 미추홀구 대책위와 함께 2월 8일 국회에서 전세사기 대책 마련을 위한 토론회를 진행하였다. 다행히도 정의당의 심상정 의원실과 민주당의 허종식 의원실에서 도와주었다. 국회 의원회관의 좁은 간담회실에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분들이 100여분 모이셨고, 고맙게도 심상정 의원은 전세사기 피해 세입자들의 힘든 사정을 세심하게 들어주셨다. 이 정도면 됐구나 싶었고, 앞으로의 대책은 국회에서 만들면 되고, 나는 나의 소임을 다 했다고 생각했고, 국회 토론회를 끝으로 하루 빨리 나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4. 첫번째 전세사기 희생자의 발생
그러나 2023년 2월 28일 안상미 미추홀구 대책위원장과 함께 방송 촬영에도 응하면서 미추홀구 대책위에서 활동하던 84년생 피해자 박oo씨는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대책위원회로부터 많은 위로를 얻었지만 더는 못 버티겠다. 나라는 제대로 된 대책도 없고 이번 계기로 더 좋은 빠른 대책이 나왔으면 좋겠다"라는 유언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미추홀구 대책위는 본인의 희생을 통해 전세사기 대책이 신속하게 마련되길 바랬던 한 청년 세입자의 희생을 추도하기 위해 3월 6일 인천 주안역에서 추도식을 진행하였다. 당시 인천 주안역 광장에서 구슬피 흘러나오던 추모 노래가 나의 영혼과 교감하기 시작하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세월호 사건의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 노래였다.
“나의 사진 앞에서 울지 마요
나는 그곳에 없어요
나는 잠들어 있지 않아요
제발 날 위해 울지 말아요
나는 천개의 바람
천 개의 바람이 되었죠
저 넓은 하늘 위를 자유롭게 날고 있죠
가을엔 곡식들을 비추는 따사로운 빛이 될게요
겨울엔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는 눈이 될게요
아침엔 종달새 되어 잠든 당신을 깨워줄게요
밤에는 어둠 속에 별 되어 당신을 지켜 줄게요
나는 천 개의 바람
천 개의 바람이 되었죠
저 넓은 하늘 위를 자유롭게 날고 있죠
저 넓은 하늘 위를 자유롭게 날고 있죠”
그 후 인천 미추홀구 피해대책위원회와 서울의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전세사기로 인한 더 이상의 희생자를 막기 위해 3월 8일 서울역에서 용산 대통령 집무실까지 “전세사기, 당신의 탓이 아닙니다”라는 피켓을 들고 침묵 추모행진을 진행하였다. 당시 “당신의 탓이 아닙니다”라는 구호는 성폭력 피해자들에게만 어울리는 구호인 줄 알았는데, 아무런 죄 없는 전세사기 피해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해서도 더할 나위 없는 구호였다. 당시 전세사기 피해 가족들이 스스로를 탓하는 게 일상화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5. 두번째, 세번째 전세사기 희생자의 발생
그 후 이 사건을 그대로 방치하면 더 큰 일이 생길 수 밖에 없었고, 이에 3월 중에 안상미 위원장과 함께 방송의 힘을 빌리기로 하였고, 전세사기 피해 구제를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방송을 하게 되었다. 당시 YTN에서 방송을 녹화하던 중, 진행자가 안상미 위원장에게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가족들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대책이 무엇이지요?”라고 묻자, 안상미 위원장은 “지금 당장 경매를 중지해야 합니다”라고 답변을 하였다. 나는 법률가로서, 채권자들의 권리 행사 수단인 경매 절차를 중지시킨다는 발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아, 경매 절차를 중단해야 하는구나! 그런데 법률적으로 경매 절차 중단이 가능할까?’라며 스스로 의심하던 중, 4월 14일과 4월 17일에 또 다시 2분의 희생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4월 14일에 돌아가신 97년생 청년 세입자는 고등학교때부터 인천 남동공단에서 식료품 공장을 다니면서 전세금을 모아왔던 사연이 알려지며, 많은 사람들이 가슴 아파했고, 4월 17일에 돌아가신 92년생 청년 세입자는 “죽음으로 탄원한다”는 유서를 남기고 돌아가셨다. 전세사기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그분들의 사연을 들으면서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더 이상 다른 방법이 없었다. 전세사기피해주택에 대한 경매 절차를 중단시켜야 했다. 그렇게 다시 전세사기 사건이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면서, 4월 18일에 다시 인천 주안역 광장에서 전세사기 희생자에 대한 추모제를 진행하였고, 그날 서울과 인천의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미추홀구 대책위를 중심으로 “전국 전세사기 피해 대책위원회”를 발족하였다(전세사기추모제, https://www.youtube.com/live/cZt8OqUGFMk?si=ZjLnNBv8al6sZgsO).
6. 전세사기 특별법의 제정
당시 인천 미추홀구 대책위에서는 법률가들이 생각하지 못한 전세사기 피해주택에 대한 경매 절차 중지를 먼저 주장하였고, 나와 같은 법률가들은 그분들의 주장을 따라서 외치기 시작했다. 그 후 법률적으로 불가능할 것으로 여겨졌던, 채권자의 당연한 권리 행사 수단으로 여겨졌던 경매 절차는 중단되었고, 당시 더 이상의 희생자를 막아야 한다는 마음이 사회적 합의로 모아지고 있었다. 그 후 한달이 넘는 열정적인 싸움과 지난한 협상 끝에 국회는 5월 25일 이른바 전세사기 특별법(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전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였다. 이 과정에서 여당인 국민의 힘은 정말 아무 일도 하지 않았고, 어떠한 일도 하고 싶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