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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설국' 감상

은하수를 품으러 설국으로 간 시마무라

by 조지조 Dec 13. 2024

‘시작의 설국’ :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어둠의 설국’ : 국경의 산을 북쪽으로 올라 긴 터널을 통과하자, 겨울 오후의 엷은 빛은 땅밑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간 듯했다. 낡은 기차는 환한 껍질을  터널에 벗어던지고 나온 양, 중첩된 봉우리들 사이로 이미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는 산골짜기를 내려가고 있었다. 이쪽에는 아직 눈이 없었다.


‘산돌림, 몸울림의 설국’ : 멀고 가까운 높은 산들이 하얗게 변한다. 이를 ‘산돌림’이라 한다.  또 바다가 있는 곳은 바다가 울리고, 산 깊은 곳은 산이 울린다. 먼 천둥 같다. 이를 ‘몸울림’이라 한다. 산돌림을 보고 몸울림을 들으면서 눈이 가까웠음을 안다. 


‘절정의 설국’ : 사방의 눈 얼어붙는 소리가 땅속 깊숙이 울릴 듯한 매서운 밤 풍경이었다. 달은 없었다. 거짓말처럼 많은 별은, 올려다보노라니 허무한 속도로 떨어져 내리고 있다고 생각될 만큼 선명하게 도드라져 있었다. 별무리가 바로 눈앞에 가득 차면서 하늘은 마침내 저 멀리 밤의 색깔로 깊어졌다. 서로 중첩된 국경의 산들이 이제 거의 분간할 수가 없게 되고 대신 저마다의 두께를 잿빛으로 그리며 별 가득한 하늘 한 자락에 무게를 드리우고 있었다. 모든 것이 맑고 차분한 조화를 이루었다.


‘은하수 설국’ : 은하수는 두 사람이 달려온 뒤에서 앞으로 흘러내려, 고마코의 얼굴이 은하수에 비추어지는 듯했다. 올려다보고 있으니 은하수는 다시 이 대지를 끌어안으려 내려오는 듯했다.


‘정지한 설국’ : 여자의 몸은 공중에서 수평이었다. 비현실적인 세계의 환영 같았다. 경직된 몸이 공중에 떠올라 유연해지고 동시에 인형 같은 무저항, 생명이 사라진 자유로움으로 삶도 죽음도 정지한 듯한 모습이었다.


‘은하수를 품은 설국’ : 발에 힘을 주며 올려다본 순간, 쏴아 하고 은하수가 시마무라 안으로 흘러드는 듯했다.




눈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진다. 위는 하늘이고 아래는 땅이다. 눈은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진다. 


은하수는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다. 위는 은하수고 아래는 대지다. 


요코가 위에서 아래로 수평으로 떨어진다. 


은하수가 시마무라 안으로 흘러든다.



‘꿈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은하수였다. 은하수가 내 안으로 흘러들었다’



George 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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