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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의 아이

소방관은 불을 끄지 않는다 3편

by 곰탱구리 Feb 14. 2025


"야이 새끼야! 사람은 시발 착하게 살아야 돼. 예수니 공자니 그런 잘난 사람들이 다 그렇다고 말 하잖아. 그런말 들어봤지? 맞아 틀려?"

"네. 들어봤어요"

7~8세 정도의 삐쩍 마르고 군데군데 찢어진 허름한 내복을 입은 사내아이는 앙상한 두 팔을 하늘로 쳐들고 무릎을 꿇은 상태로 꺽꺽 울며 대답하였다. 

"착하게 산다는 게 뭐야? 어떻게 사는 게 착하게 사는 거야?"

"아빠한테 효도하는 거요. 아빠 말 잘 듣는 거요"

"그래 아빠말 잘 들어야 착한 사람인거지?"

"네"

"엄마처럼 말 안 들으면 어떻게 해야 된다고?"

"잘못했어요. 아빠. 잘못했어요"

아이는 두 손을 싹싹 빌며 울면서 빌었다.

"누가 너 잘했는지 못했는지 물었어? 엄마처럼 대들면 어떻해야 한다? 똑 바로 대답해 이 새끼야. 어떻게 해야 된다고? 엉? 대답해!"

"맞아야 돼요. 맞아야 인간이 돼요 엉! 엉! 엉"

"그래 맞아야 되는 거야. 아빠의 말을 안 들으면 매를 맞아야 착한 사람이 되는 거야. 말로 안돼면 매로 가르쳐야 되는거야. 그래서 옛말에 매가 약이다라는 말도 있잖아"

"엉! 엉! 흑흑. 네 맞아요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공포에 질린 아이의 시선은 남자의 손에 들려져 있는 피 묻은 검은 줄에 고정돼 있었다. 희미한 백열등 불빛에 번들거리는 검은색의 줄은 가죽으로 만들어진 허리띠였다. 일반적인 허리띠와는 다르게 매우 두껍고 길었다. 땅에 질질 끌리고 있는 허리띠의 끝 부분에는 반짝이는 커다랗고 날카로운 톱니 모양의 금속이 달려있었다. 남자는 일부러 허리띠를 이리저리 끌며 금속이 바닥에 부딪치는 자극적인 소리를 내었다. 

"그래 그래~! 니 엄마처럼 아빠를 거역하면 맞아야 돼. 그래야 인간이 되는 거야. 넌 착한 아들이니까 아빠 말 잘 들어야 해. 알았지?"

"네. 엉엉엉 아빠. 말 잘 들을게요."

남자는 낡아빠진 식탁으로 걸어갔다. 식탁 위에는 너덧개의 소주병이 그 내장을 모두 비운채 널부러져 있었고 유일하게 반정도 남은 병을 집어들어 사정없이 목구멍으로 들이 붓는다.  


한없이 늘어난 누런 난닝구 사이로 남자의 검은 젖꼭지가 소름 돗듯이 도드라지게 솟아올라 있었다.

"일어나! 이제 나가있어"

"네."

아이는 땟구정물로 꼬질꼬질해진 얼굴에 아직 마르지 않은 눈물방울을 내복 소매로 쓱 훔치고 밖으로 나갔다. 아이가 나가는 문 쪽에는 피가 떨어지는 코를 움켜쥐고 독기 어린 눈으로 남자를 쳐다보는 여자가 쓰러져 있었다. 여자는 아이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이리 와 이년아~!"

남자는 거친 손길로 여자의 머리카락을 휘어잡았다. 남자의 눈은 음흉함과 욕정이 가득 차 있었다. 남자는 무을 발로 차서 쾅하고 닫아 버렸다. 밖으로 나가자 마자 아이는 여자의 비명소리를 피해 귀를 꼭 막고 울며 서 있었다. 아이가 서있는 곳은 차가운 동장군이 지배하는 어둠만이 지배하는 허허 벌판이었다. 희미한 백열등 불빛에 비치는 남자 그림자가 여자 그림자의 머리카락을 사정없이 휘어잡아 내동댕이 쳤다. 짐승처럼 헉헉거리는 남자의 신음 소리와 여자의 악 바친 욕설과 비명이 비닐하우스 안에서 쉴 새 없이 터져나와 울고 서있는 아이를 매정하게 때리며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죽여. 차라리 죽여. 이 미친 사이코 새끼야~!"

"입 닥쳐 이년아! 입을 찢어버리기 전에"

아이는 도망갈 곳이 없었다. 귀를 틀어막았지만 악다구니에 뒤섞여 목이 졸린 듯 끽끽거리는 여자의 소리를 피할 수 없었다. 아이는 울고 서있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아이의 맨발 위로 떨어진 눈물이 방울 방울 얼음이 되어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었다. 1월 새벽 벌판에 홀로 선 내복차림의 아이에게 추위는 잔혹한 폭력 보다 더 무서운 공포로 다가왔다. 이대로 있으면 죽을 것이라는 생각에 아이는 하우스의 비닐에 몸을 바짝 붙였다. 그러나 추위는 조금도 가시지 않았다. 곱은 손을 사타구니에 집어넣고 비닐에 몸을 기댄 채 정신을 잃어가던 아이의 눈에 빨간색의 무언가가 보였다. 남자가 홧김에 밖으로 집어던졌던 일회용 가스라이터였다. 추위에 정신을 잃어가던 아이는 라이터를 줏어들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갑자기 비닐하우스에서 불이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 붉은 화염이 혓바닥을 낼름 거리며 비닐을 태우기 시작했다. 남자와 여자가 있던 방을 외부로부터 막고 있었던 비닐이 맥없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여자 위에서 흉측한 나체를 드러낸 남자는 놀란 얼굴로 주변을 드리번 거렸다. 여자를 바닥에 팽개친 남자는 불을 피해 밖으로 나가려고 일어섰다. 불이 아직 번지지 않은 쪽으로 황급히 나가려던 남자는 무언가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에이 씨발 뭐야?"

꼴사납게 넘어져버린 남자는 아래쪽을 살펴보았다. 여자의 가냘픈 손목이 보였다. 여자는 발목에 채워진 수갑에서부터 길게 연결되진 쇠사슬로 남자의 발목을 칭칭 감아 버렸다.

"어딜 가! 어딜 가! 혼자 살겠다고? 난 이렇게 묶어놓고 너 혼자 살겠다고? 못가! 차라리 같이 죽어. 죽어"

"이년이 이거 못 놔? 죽을래? 뒤져 봐야 정신 차리지? 놔 이년아!"

남자의 무자비한 주먹질이 여자의 얼굴에 쏫아져 내렸다. 그럼에도 여자는 쇠사슬을 꼭 잡고 놓지 않았다. 여자의 얼굴에는 악마 같은 미소가 퍼지기 시작했다. 아이는 겁에 질려 그 광경을 울면서 보고 있었다.

"이러다 다 죽어~! 이거 풀어. 그럼 너도 구해줄게.  이거 빨리 풀어 이 씨발년아"

"10년을 속아왔어. 죽지 못해 살아왔어. 내가 널 믿을 것 같아? 어차피 살아도 지옥이야. 여기가, 너란 새끼가 살아있는 이곳이 지옥이고 너란 새끼가 지옥이야!"

"이런 씨팔"

남자는 이제 주먹이 아닌 발로 여자를 마구 차면서 문쪽으로 기어가기 시작했다. 부러질 듯 가냘프고 야윈 여자의 몸으로 버틸 수 있는 폭력이 결코 아니었다. 무자비한 폭력에도 여자는 웃고 있었다. 무시무시한 힘으로 쇠사슬을 부여잡고 있었다.

"엄마~! 엄마~!"

아이는 가까이 가지 못하고 울고 있었다. 발을 동동 구르며 엄마를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하늘에서 이글거리는 불덩어리가 두 사람 위로 떨어졌다. 화르르륵 하는 불의 소리는 주변의 모든 소리를 집어삼켰다. 심지어 남자의 악에 바친 욕설과 소름 끼치는 비명소리까지도.

"엄마"

아이의 비명에 여자가 고개를 서서히 아이 쪽으로 돌렸다. 아이도 엄마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여자의 머리가 환한 빛으로 가득 찼다. 머리카락에 불덩이를 이고도 여자는 아이를 보며 웃고 있었다. 부드러운 미소가 아니었다. 귀기가 가득 찬 웃음이었다. 입을 활짝 벌리고 아이를 보며 큰 소리로 웃었다. 크게 벌어진 여자의 입에는 쇠사슬이 가로질러 걸려있었다. 여자는 비명을 지르고 있는 것이었다. 남자가 자신의 발에 묶인 쇠사슬로  여자의 입을 묶어 조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년아 죽어~! 혼자 죽으란 말이야. 죽어 이년아"

남자의 야차 같은 폭력에 여자는 쇠사슬에 매달려 이리저리 휘둘리고 있었다. 머리카락과 몸은 천장에서 불이 붙은 채 떨어진 비닐덩어리와 하나가 되어 붉은색으로 타오르고 있었고 비웃음에 가까운 기괴한 소리를 내며 눈을 허옇게 까뒤집고 있었다. 여자의 몸을 기어오르는 불덩어리는 여자와 붙어있는 남자의 투실한 허벅다리를 타고 올라 슬금슬금 온몸으로 퍼지고 있었다.

"앗 뜨거! 씨발 씨발 아악 비켜 이년아"

"그륵 그륵 그륵 캬캬캬 주으윽어 그르륵"


또 한 번 천장에서 불덩이가 둘의 몸으로 떨어졌다. 두 사람은 하나의 불덩어리가 되어 뒹굴기 시작했다.

'절그럭 절그럭'

미친듯한 몸놀림에도 그들을 묶고 있는 쇠사슬 때문에 아무도 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이글이글 불타는 두 사람을 멍하니 바라보던 아이의 눈에 갑자기 환한 빛이 쏘아져 들어왔다. 엄마였다. 엄마의 얼굴이 불타고 있는 비닐을 뚫고 나타났다. 아이는 눈물을 그쳤다. 엄마의 얼굴이 너무나 아름다워 보였다. 엄마는 자신을 보면 웃고 있었다. 입꼬리에서 귓불까지 이어진 붉은 줄은 크게 벌어진 엄마의 입을 점점 더 크게 만들어 가고 있었다.

'엄마가 웃네. 어마가 나를 보고 웃고 있어'

아이는 울음을 멈추고 엄마를 따라 웃었다. 엄마의 얼굴은 강한 빛으로 물들어갔다. 너무나 아름다웠다. 마치 천사 같았다. 엄마는 천사가 된 것이었다. 남자의 몸이 여자와 한 덩어리로 붙어서 조그마한 여자의 얼굴에 커다란 몸뚱이는 무척이나 그로테스크하게 보였다. 아이의 눈에는 만화에서 보았던 뚱보 천사처럼 보였다. 아이는 자신의 몸에서 무언가 격렬하게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때까 꼬질꼬질하고 닮아빠진 내복은 아이가 분출하는 오줌으로 척척하게 젖어갔다. 아이는 엄마의 얼굴이 땅으로 떨어져 검은색으로 변해가는 것을 보며 척박한 벌판 위에서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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