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은 불을 끄지 않는다 5편
'일단 그녀에 대하여 조사해봐야 해. 오피스텔의 그녀는 정말 단순한 구더기였을까? 혹시 천사는 아니었을까? 쇠사슬이라는 조건을 맞추기 못해서 천사로 탈피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내일 출근해서 알아봐야겠어. 고통과 핍박을 받던 인간이었다면 천사일 가능성이 높아. 그렇다면 단지 조건을 맞추지 못해서 고치 속에서 죽은 거야. 아직은 정보가 부족해 확신이 안 생기네. 이틀간 쉬라고 했지만 내일 나가봐야겠어. 죽은 여자에 대하여 좀 알아보고 화재원인도 확인해 볼 필요도 있고. 만일 천사였다면.... 조건 부족으로 탈피 못한 것이라면.... 그렇다면........'
H의 지쳐버린 육체는 더 이상의 생각을 거부했다. 세상이 암흑 속으로 잠겨 들었다.
"뭐야? 푹 쉬랬더니 왜 아침부터 기어 나오고 지랄이야?"
"뭐 형님한테 지랄? 성중이 넌 암튼 고놈의 주둥아리. 얼마나 맞아야 정신 차리려나?"
"아쭈 이 자식 봐라. 좀 살만한가 보네"
"그래 어제 아주 푹 쓰러져 잤더니 힘이 넘친다"
"입으로만 힘이 넘치면 뭐 해? 얼굴은 완전 맛이 갔는데.. 야! 무리하지 말고 들어가 쉬어"
사실 그랬다. H의 두 눈은 퀭하고 볼은 쏙 들어간 게 몇 년 이상 고된 노동에 혹사당한 인부처럼 보였다.
"자료 정리 좀 하고 들어갈 거야. 근대 성중아! 어제 그 여자는 어떻게 됐냐? 혹시 구조는 되었냐?"
"내가 올라갔을 때도 그 모양이었는데 좀 어려웠지. 그나마 니가 넘어지면서도 소방수를 계속 쏴서 진화가 빨리되었는데 연기 때문에 질식으로... 마! 그래도 덕분에 유해는 크게 훼손된 곳 없이 잘 구했다"
성중이는 뒷말을 아꼈다.
"그래 H! 너 덕분에 8층 화재가 넓게 퍼져나가지 않고 조기 진화되었어. 수고했어. 그런데 임마! 그때 뭐..... 아니다 됐다. 이왕 나온 김에 상황보고서나 작성하고 들어가!"
팀장님이 뭔가 말을 하려다가 급하게 끊어버리고 자리로 돌아가 서류를 들고나가버렸다.
"왜 그래? 뭐 있어?"
"야! 잠깐 나와봐"
성중이는 급하게 H의 팔을 잡고 옥상으로 끌고 갔다. 옥상에는 후배 소방사 2명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가 깜짝 놀라서 담배를 뒤로 숨기며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아~ 아냐 편하게 담배 피워. H야 우리 저쪽으로 가자"
성중이가 H를 반대쪽 흡연장으로 밀었다. H는 제복 좌측 윗주머니에서 담배 하나를 거네 입에 물면서 걸어갔다.
"하나 줘?"
"응. 불도"
"주둥이만 달고 나니야?"
"달고다니기는 뭘 달고다녀? 이 주둥이는 접착식 아냐. 고정식이지"
"그걸 농담이라고 하고있냐? 암튼. 근데 뭔데? 뭐가 있지?"
성중이는 담배를 한 모금 깊게 빨았다.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는 결심했다는 듯이 '후'하고 길게 내뱉었다.
"아니 뭐 내가 듣기에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인데 어제 니가 9층에서 진압하고 있을 때 8층에서도 다른 팀이 같이 진압하고 있었거든 안산소방서에서 지원 나온 팀인데...."
"뭘 그리 뜸 들여? 뭔 데?"
"그래 빙빙 돌리는 거 내 성질에 안 맞아.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볼게. 너 넘어져서 그 여자 쳐다보며 뭐라고 소리 질렀냐?"
"뭐?"
H는 사과하나 훔치다 편의점 사장에게 들킨 7살 소년처럼 얼굴이 붉게 확 달아올랐다.
"아니 솔직히 나는 니가 뭐라 소리 지르는 것은 들었는데 뭐라고 했는지 제대로 들을 수가 없었거든. 내가 올라가는 동안에도 그렇고 바스켓에 도착했을 때도... 암튼 미친놈처럼 소리 질렀잖아"
"아마도... 근데 안산소방서에서 뭐라는데?"
"뭐랄까? 바스켓에 두 놈이 타고 있었는데 한 놈은 니가 미친 듯이 웃으면서 그 여자에게 빨리 타 죽으라고 저주, 그래 마치 저주하듯이 소리 질른 것 같다고 하고 다른 한 놈은 반대로 말하고 있어. 안 된다고 힘내라고 하면서 니가 울고 있었다고 진술했어. 두 사람의 진술이 완전히 극과 극이라고 하더라. 그래서 그 문제 가지고 서장님하고 간부들이 회의 중이야."
H는 어제 그 순간을 목격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아침에 깨자마자 발생할 수 있는 사항과 변명할 만한 몇 가지 대답을 미리 연습했었다.
'역시 인간들! 내 예상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군. 뭐 둘 다 사실이지. 물론 그 여자가 불쌍해서 울거나 소리친 거는 아니지. 저주가 더 맞지. 탈피조차 못한 구더기로 보였으니까'
붉게 달아올랐던 H의 얼굴은 어느새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예습으로 미리 준비했던 범위의 질문이었다. H는 미리 준비한 성실한 모범답안을 내놓기로 하였다.
"내가? 야 시발! 그 장면을 보고 웃을 수 있는 인간이 몇이나 되냐? 그게 사람이냐? 악마지? 성중아 나도 7년이나 이 생활했지만 사람이 불에 타 죽는 장면을 직접 본건 처음이야. 얼마나 충격받았는지 알아? 내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지금도 그 장면만 생각하면 두 손이 덜덜 떨린다."
"그렇지?"
"그렇고 말고. 나 그때 정말 제정신이 아니었어. 솔직히 내가 뭐라 그랬는지도 기억조차 안 나. 웃었는지 울었는지도. 마구 소리를 지른 건 기억이 있는데 뭐라고 했는지는 모르겠어. 그리고 부끄러운 일이지만 나 사실은 방화복에 오줌까지 싸버렸어. 너무 놀라서"
"엥?? 오줌까지? 하긴 나도 조금 지리기는 했다만"
"나 그 여자 유해라도 구조되었는지 궁금해서 나온 거야. 고인에게 너무 미안하고 죄스러워. 구해주지 못해서. 내가 부족해서 못 구한 것 같고 너무 마음이 아파서...."
"그래 짜식아! 미안하다. 많이 힘들 텐데 이런 말 물어봐서, 팀장님에게는 내가 보고해 줄 테니까 얼른 들어가 그리고 안산에도 동기 놈 하나 있으니까 그놈한테 성질 좀 부려야겠다."
성중이는 나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리고는 힘 있게 잡아 주었다.
'아마도 이 녀석이 거품 물고 변명해 주겠지. 다혈질인 데다가 본인이 옳다고 생각하면 멧돼지처럼 밀어붙이는 성격이라 우리 간부들한테는 몰라도 안산소방서는 싹 다 뒤집어 놓을 테니 굳이 변명하겠다고 남아있을 필요는 없겠네'
친구를 이용해 먹는 다는 기분이 들기는 했지만 그다지 죄의식이 들지는 않았다.
자리로 돌아온 H는 PC를 켜고 공용 보고함을 클릭했다. 어제 화재에 대한 초안보고서는 서장님까지 이미 결재가 나있었다. 내용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사망자 6명, 중상자 18명이 발생한 대형 사고였다. 그나마 최근에 지어진 오피스텔이라 고층에서 스프링클러가 정상 작동되었고 옆 건물과의 거리가 가까워서 옥상에 긴급 제작한 비상연결 통로로 대규모 인원이 탈출할 수 있었기에 엄청난 재난을 피할 수 있었다. 사망자는 대부분 유독가스에 의한 질식사로 판명되었으며 한 명만 화재에 의한 분사로 사망하였다. 그 한 명이 H가 보았던 그 여자였다. 대규모 화재에도 불구하고 단 한 명만 분사하였다니 어쩌면 기적 같은 일이었다.
'그럼 그 여자 마지막 보았을 때까지 살아있었단 이야기잖아. 내쪽으로 내밀던 손가락이 분명 살려달라는 구조요청이었군.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가 천사일 수 있을까? 역시 구더기였던 걸까? 아냐! 인간세상에서 폭력과 핍박에 본인이 천사임을 잊어버렸다면 그럴 수도 있지. 가만 그 여자 안치된 병원이 어디지? 그 여자의 주변이나 상황에 대한 내용이 아직은 보고서에 자세히 기재 안 되어있군. 안치실로 직접 가봐야겠어'
"뭘 보고 있어?"
팀장이 피곤한 듯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사무실로 들어왔다.
"아! 어제 화재에 대한 보고서 좀 보고 있었습니다"
"성중이한테 이야기는 들었다. 안 그래도 회의 끝나면 물어보려 했는데 성중이가 먼저 나서서 내가 좀 편해졌어. 서장님께는 보고 드렸다. 잠시 가자. 서장님께서 찾으신다."
"예? 무슨 일로?"
"가보면 알아. 너한테 나쁜 일은 아니니까 지금 바로 가자"
H와 팀장은 서장실이 있는 2층으로 걸어 올라갔다. 팀장은 매우 지친 듯 아무 말도 없이 앞만 보고 걸었다. H는 다시 한번 질문 나올만한 사항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 모범답안도 꼼꼼히 생각해 놓았다.
"오 어서 앉아. H는 커피? 아니면 주스?"
서장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직접 현장에 뛰어들기보다는 보안과나 예방과 등의 비교적 안전한 행정적인 일만 해와서인지 뱃살에 제복이 터질 듯이 빵빵하였다. 처세술에 달인 인 데다가 소방청에 탄탄한 인맥을 구축해 놓은 한마디로 전도 유망한 간부의 표상이었다. H가 아무말 없이 서장의 배만 처다보고 있자 서장이 커피 한잔을 가지고 오며 먼저 말을 꺼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자네가 그렇게 슬프게 울부짖었다더군. 불길에 휩싸인 요구조자를 구하지 못한 안타까움에 정신까지 잃었다던데 몸은 괜찮나?"
"안타까웠던 건 사실이지만 그것 때문에 정신을 잃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요구조자가 불에 타는 것을 보는 순간 저도 모르게 겁이 ㄴ"
"으으음! 아니야 자네는 겁에 질린 게 아니라 요구조자의 안타까운 순간에 소방관으로서의 사명을 다하지 못한 자책감에 울부짖고 기절까지 한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지?"
서장이 손가락을 좌우로 흔들며 H의 말을 중간에 끊고 말했다.
"네? 네네"
"그래 김팀장이 이틀 휴가 줬다면서? 푹 쉬고 나오게. 자네 이야기는 소방신문에 기고하도록 할 거야. 우리 홍보팀이 초안 잡아 보내면 쉬면서 읽고 확인해"
H는 실소를 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걸 또 이렇게 이용하다니 서장은 역시 천부적인 정치꾼이었다.
"아 그리고 집에 가기 전에 세림병원 영안실에 잠시 들렀다 가라고. 혼자 가지 말고 우리 홍보팀하고 같이 가. 준비가 덜 되어있으면 유가족들에게 인사만이라도 하고 오라고. 무슨 말인지 알지?"
H는 묵묵히 고개만 꾸벅 숙이고 서장실을 나왔다.
"김팀장은 홍보실 연락하고 원고는 미리 준비하라고 해. 난 빈소 다 차려지면 잠깐 갈 테니까. 사진은 그때 찍기로 하고. 시장님도 관심 많이 갖고 계시는 사건이니까 휴머니스트적인 부분을 부각하고 우리 소방서의 교육에 대한 부분을 반드시 넣도록 이야기 하고"
서장이 김팀장에게 지시하는 소리가 끈적하게 서장실에서 새어 나왔다.
"시팔~!"
진득하게 묻어나는 욕망의 소장의 소리는 H의 귀에 상당히 거슬리게 들렸다. H는 입에서 자동적으로 흘러나오는 욕을 나지막하게 읊조리고 서둘러 병원으로의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