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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않는 유가족

소방관은 불을 끄지 않는다 7편

by 곰탱구리 Mar 14. 2025


사방이 완벽한 심연의 어둠에 잡아 먹혔다. H는 0.5㎥도 되지 않는 빛의 공간에 두려움에 떨며 서있었다. 죽음보다 고요한 적막이 모두를 감싸고 공기의 움직임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H는 숨이 막혀옴을 느꼈다. 산소가 무거운 분위기에 젖어 무쇠덩어리처럼 발아래로 떨어져 버린 느낌이었다.

'이게 뭐지? 이대로 죽는 건가? 큭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H의 손이 본능적으로 목으로 가려는 순간, 어디선가 뜨거운 열 폭풍이 몰아치며 후끈한 공기가 몰려들었다. 시체 보관소가 있는 앞쪽 방향에서 거센 열기가 몰려왔다. H는 바람이 몰려오는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H의 발 밑에서 시작된 불덩어리는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짙은 어둠을 잡아먹었다. 벽이었던 공간이 불 타오르고 천장이 불 타오르고 형광등이 불꽃에 먹혀 붉은 혀를  넘실거렸다.


그때 시체 보관소 쪽에서 다른 어느 것보다 뜨거운 열기가 덩어리로 뭉쳐 H를 향해 날아왔다.  

"천사다~! 천사! 엄마야! 천사! 엄마!"

검붉은 불덩어리에 휩싸인 여자가 H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밝은 화염에 휩싸인 여자의 얼굴은 순간순간 엄마로도 여자로도 변하며 해맑게 웃고 있었다.

"엄마 여기. 여기야 엄마!"


H가 환하게 웃으며 달려드는 불덩이를 온몸으로 껴안으려는 순간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흰색의 단조로운 벽, 흰색의 마이톤 천장, 깜박거리는 형광등, 적막한 공간..... 

모든 것은 그대로였다. 희열감에 빠져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H의 얼굴만 빼면 모든 것이 너무 일상적이었다. 그래서일까? H의 모습은 괴기스러움을 넘어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 봤다면 마약을 했거나 미친놈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불덩어리가 가슴속으로 들어오자 H는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렸다. 가슴을 부여잡고 소리 내어 흐느껴 울었다. 

"천사가, 천사가 내게 강림했어. 그녀는 천사였었어. 비록 내가 구해주지는 못했지만 엄마가 그녀를 구원해 줬어. 그녀는 내게 감사하다고 했어. 천사인 것을 알아봐 주어 고맙다고.. 더 많은 천사를 구해달라고"

H는 천사에게 사명을 부여받았다고 생각했다. 가슴에서 무언가 신성한 것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느꼈다. 

"난 천사의 사자야. 난 천사의 구원자야."

H는 구원자의 징표를 받은 것에 감격하며 아무도 없는 빈 복도에 한참을 무릎을 꿇고 있었다.


"아 뭐야? 어이 아저씨! 괜찮아요? 어디 아파요? 왜 복도에 그러고 있어요?"

H는 고개를 들었다. 검은 상복을 입은 50대 남자가 조심스럽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미친놈 아닐까 하는 염려가 얼굴에 가득 차 있었다. 여차하면 뒤로 도망가려는 듯 엉덩이가 뒤쪽으로 쭉 빠져 있는 모습이 조금 우습기까지 했다.

"아.. 아닙니다. 발을 헛디뎌 넘어졌습니다. 괜찮습니다."

H는 벌떡 일어났다. 남자는 조심스럽게 H를 지나갔다. 가면서도 계속해서 뒤를 힐끔거리는 것이 안심이 안 되는 모양이었다.




조금 낡은 회색의 철문이 불편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예상외로 시체보관소의 내부는 환하고 깔끔했다. 복도와는 다르게 수많은 전등이 내부를 밝히고 있었고 하얀 가운을 입고 마스크를 착용한 병원 관계자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H는 담당자 한 명에게 다가갔다. 

"길마리 씨 시신 확인하려 오셨죠?"

"네"

"원래 유가족이나 경찰 관계자가 아니면 공개가 불가능한데 망자를 구조하시려 소방관이라 특별히 보여드리는 겁니다."

"네 감사합니다. 직접 추모기도라도 드리지 않으면 제가 너무 힘들 것 같아서 어렵지만 부탁드렸습니다."


규정상으로 제삼자가 망인의 유해를 함부로 볼 수는 없다. 그러나 H는 자신에게 당연한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지상에서 천사를 알아보고 찾아서 구원해 줄 수 있는 사명을 지닌 구원자는 본인 밖에 없고 그렇기에 천사가 남긴 껍데기를 만날 권리가 당연히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체검안소 관리실에서도 당당히 요구했고 의외로 관리자도 순수히 허락하였다. 이것은 시흥소방서 서장이 홍보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병원장에게 미리 협조를 부탁해 놓았기 때문이었으나 H는 그러한 것을 알지 못하였기에 자신이 천사의 비호를 받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이리 오시죠. 시간은 많이 못 드립니다. 시신이 너무 끔찍해서 좀 보기 그러실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담당자는 7번의 문을 열고 트레이를 꺼냈다. 진한 탄내와 노린내가 섞여 나왔다. 

"불에 탈 때 여러 건축자재들과 뒤섞여 형체도 그렇지만 냄새도 좀 심해서 방향처리를 과하게 했는데도 좀 그렇네요. 빨리 보시고 나와주세요"

담당자는 역겨운 냄새와 괴기한 시신의 모습에 견딜 수 없다는 듯 자리를 피해버렸다. H는 하얀색의 천을 조심스럽게 들쳐보았다. 팔목이하의 한 손과 무릎이하의 두 발을 제외하고는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훼손되어 있었다. 뽀얀 맨발이 보였다. H는 그녀의 발목을 확인해 보았다. 역시 아무런 자국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쇠사슬이 없었음을 확인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것은 천사의 유해가 화상의 상처로 끔찍하기는 하였으나 분실되거나 없어진 곳이 없이 멀쩡하다는 것이었다. 특히 H가 화재 시에 분명히 머리 윗부분이 뒤로 갈라지며 뒤로 넘어가는 것을 보았는데 지금의 유해는 전혀 그런 흔적이 없었다. 혹시 머리 쪽을 봉합이라도 해 놓았나 싶어서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입 주변을 비롯하여 머리 뒤쪽으로도 전혀 상처가 났었던 자국이 없었다. 


H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이 잘못 본것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천사이기에 그랬을 수도 있다고, 자신의 눈에만 그러한 천사의 탈피 모습을 보여준 것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하였다. 

"천사님~! 하늘에서 행복하세요"

H는 간단히 기도를 마치고 시체보관소를 나왔다. 

'음~! 천사님의 몸은 확인했고 이제는 그녀의 살아온 여정을 확인해야 되는데... 최소한 딸은 장례를 치르기 위해 병원으로 오겠지? 딸을 만나봐야겠구나'




유가족은 생각보다 쉽게 오지 않았다. 병원에 온 지 4시간이 지났지만 그녀의 빈소에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물론 유가족의 검시참여도 없었으니 빈소 자체가 차려질 수 없었지만 다른 희생자들의 빈소와 함께 우선 빈 빈소라도 꾸며 놓았던 것이다. H는 빈소 앞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아무래도 어제의 피곤이 다 풀리지는 않았던 것이었다. 


"마! 니 조냐?"

박찬기가 느적느적 걸어와서 졸고 있는 H의 뒤통수를 손바닥으로 내려쳤다. 

억~! 뭐야?"

"뭐긴 뭐야. 나다 씹새끼야!"

박찬기는 옛 영화 해바라기의 김래원 말투로 느물거리며 댓구했다. 그러고는 재미있다는 듯이 다시 말을 이어갔다.

"유가족 오면 전화하랬지? 지금 몇 시야? 쓰벌 자다자다 지겨워서 왔다"

"유가족이 아직 안 왔습니다. 저도 기다리고 있는데요"

"알아 알아 쓰댕아! 경찰에 알아보니 5시 정도에 도착한다고 했다네. 부검 입회 검사도 그때쯤 올 거야. 지금 몇 시냐?"


H는 뚱한 표정으로 시계를 보았다. 4시 20분! 40분만 있으면 유가족이 도착할 것이다. 박찬기에게 시간을 보고하고 다시 의자에 앉았다. 텅 비어있는 빈소에 국화꽃만 잔뜩 장식되어 있었다. 

'아직 고인의 영정사진도 없는데 저따위 국화가 뭐가 중요하다고 저렇게 많이 꽂아 놓은 거야?'

H는 마음이 불편해졌다.

'비록 엄마가 나타나 구원이 되기는 했지만 조건이 충족되지 못하여 고치 속에서 고난 받은 천사를 생각하면 저따위 꽃이 아니라 온갖 보석으로 치장해도 위로가 안 될 텐데'

"아 씨 갈까? 야 H! 너 사진 찍을 줄 알지? 사진기 줄 테니까 유가족 하고 사진 몇 장 찍어올래?"

"제가요? 뭐 못 찍을 건 없지만 제가 사진에 소질이 없기도 하고 또 유가족 하고 같이 찍으려면 삼각대라도 있어야 고정해 놓고 찍을 수 있을 텐데..."

"관광지 왔냐? 삼각대는 무슨.. 그냥 심심해서 장난한 거야. 뭘 심각하게 받아들여? 쓰펄 시간 되게 안 가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빈소 끝쪽 복도에서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가 젊은 여자와 함께 걸어오고 있었다. 

"이제야 왔나 보네. 스펄"

남자와 여자는 찬기와 H를 슬쩍 쳐다보고는 빈소 안으로 들어갔다. 빈소를 한번 슬쩍 들러본 남자는 핸드폰을 꺼내 들고 전화를 걸었다. 그러고는 담담하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통화하기 시작했다. 나름 중저음의 매력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응 나야! 뭐 나야 전처니까 굳이 여기 있을 이유야 없는데 소영이는 또 다르니까. 비서실 시켜서 상조회사에 연락하고 소영이 전담보좌해 줄 알바도 하나 같이 구해서 보내라 그래. 뭐 상조회사에 없으면 비서실에서 한 명 선발해서 보내. 시간 외 수당 두둑이 준다고 하고.... 내 체면도 있고 하니까 하청업체 몇몇 군데 전화해서 근조화한도 좀 보내라고 하고... 아니 굳이 조문은 오지 말라고 해. 나도 정리만 해주고 갈 거니까. 소영이 불편하지 않게 세팅만 좀 해주고 갈 거야"


남자는 제법 규모가 있는 회사의 고위직인 것 같았다. 사무적인 말투로 이것저것 지시하고는 젊은 여자가 들어간 유가족휴게실로 따라 들어갔다. 잠시 후 여자애는 상주복으로 갈아입고 남자를 따라 나왔다. 

"시신이 화재로 많이 훼손되었다고 하더라. 넌 여기 있어. 아빠가 확인하고 올게"

"........  네"

젊은 여자는 빈소의 상주 자리에 철퍼덕하고 앉았다. 

"근데 누굽니까?"

남자는 다소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듯한 위압적인 목소리로 박찬기에게 물었다.


"아~! 저희는 시흥소방서에서 나왔습니다. 얼마나 상심이 크시겠습니까?"

전형적인 강약약강의 표본다웠다. 나름 아주 정중하고 안타까움이 가득 묻어나는 목소리로 박찬기가 남자에게 오른손을 내밀며 다가갔다. 남자는 찬기의 오른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가볍게 한 손을 내밀어 쥐었다. 

"무슨 일이신가요?"

"아 네! 저희 소방서에서는 고 길마리 씨의 죽음에 깊이 애도하고 있으며 최선을 다했음에도 안타깝게 구조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심심한 사죄를 드리려고 왔습니다."

"뭐 소방관이 슈퍼맨은 아니니까. 알았습니다."

"이 친구가 고 길마리 씨를 구하려고 애썼던 소방관 H입니다. 눈앞에서 고인을 구하지 못하고...."

"난! 유가족이 아닙니다. 전 부인이라 지금은 나랑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요. 저 안에 내 딸이 유가족이니까 이야기할 게 있으면 딸에게 하시오. 난 장례문제로 좀 바빠서.."


아까보다 더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마친 남자는 찬기와 뻘쭘하게 서있는 H를 피해 장례식장 관리사무실 쪽으로 걸어갔다. 

"쓰펄! 더럽게 차갑네. 뭐 전 마누라는 마누라 아니야? 뭐 전 마누라가 바람이라도 펴서 헤어졌나?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뭐 저렇게 쌀벌해? 돈 많은 것들이란 다 똑같아. 저기 딸내미 한 테나 가보자고"

박찬기는 남자의 냉대에 짜증 섞인 혼잣말을 웅얼거리며 H의 어깨를 툭치고는 여자 쪽으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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