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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가는 길

소방관은 불을 끄지 않는다  6편

by 곰탱구리 Mar 07. 2025


2층의 사무실에는 가지 않았다. 이미 필요한 자료는 다 보았다. 그녀의 이름은 길마리 만 43세 이혼녀. 다른 가족은 없고 혼자 월세로 해당 오피스텔에 2024년 6월부터 살고 있었다.  이혼경력이 있고 18세가 된 딸은 남자 쪽에서 양육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남자의 주소는 서울이었다. 잠실의 갤러리아 팰리스. 가장 작은 30평 대도 시가 20억이 넘어간다는 돈 많은 부류들이 사는 곳이다.


'아무리 이혼했다고 해도 왜 혼자서 이렇게 외지고 작은 오피스텔에서 월세로 사는 것일까? 위자료를 아무리 못 받았어도 잠실의 갤러리아 팰리스에 살정도 집안이면 최소 몇 억 이상은 챙겨 나왔을 텐데? 뭔가 있는 게 분명하긴 하네'

H는 생각에 골똘히 잠겨 소방서 정문 입구에서 잠시 멈추어 섰을 때, 흰색 SUV 한 대가 옆에 와서 멈추었다. 


"선생님 여기 소방서 앞이라 주정차 금지 지역입니다. 차 빼주세요"

정신을 차린 H가 운전석 옆 창을 두두리면 말했다. 창문이 스르르 열리기 시작했다.

"야 H! 나야 나! 본청 홍보팀 박찬기. 잘 지냈냐?"

"박찬기?"

H는 박찬기라는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였다. H가 그렇게 사교적인 성격도 아니었고 정치하고는 완전 상극이라 지방 소방서만 돌고 있었기에 본청의 사람들과의 교류가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눈길이 부담스러워 일단 아는 척을 해야 했다.


"아~! 그래 찬기야! 반갑다. 잘 지냈지?"

"아이~! 찬기야? 이 싸가지! 내가 네 친구냐? 이 썩을 놈의 시끼는 교육받을 때도 어리바리하더니 끝까지 어리바리 부르스네. 너 나 기억 안 나?" 

박찬기 소방령은 선글라스를 신경질적으로 벗으며 H를 올려다보았다. 

"아~! 선글라스 때문에 못 알아봤습니다. 박 소방령님"


이 인간은 지독히도 권위적인 인간이다. 후배가 본인 앞에서 짝다리 짚거나 차렷자세 이외의 자세로 서있는 꼴을 보지 못한다. 호칭은 무조건 계급으로 부르거나 팀장님이라고 '님'자를 반드시 붙이지 않으면 조인트를 사정없이 까는 인간이다. 신규교육 때도 내 경례 자세에 대하여 유난히도 트집을 잡고 얼차려를 주었던 인간이다.

"이 새끼 빠져가지고. 얼른 타!  빨리 가서 사진 몇 장 찍고 가야 돼"


아까 서장이 홍보팀이랑 같이 가라고 이야기했던 것이 기억났다. 기껏해야 소방사나 소방사시보 정도가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박찬기 팀장이 올 줄은 몰랐다. 의외였다. 귀찮고 생색나지 않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는 인간이었다.  

"어떻게 직접 오셨습니까?"

"본사에 인원이 남아도는 줄 아냐? 에이 스펄! 바빠 죽겠는데 인력충원은 해주지도 않고 이런 새까만 후배시끼나 모시고 다녀야 되고. 더럽다 직장생활"

"죄송합니다. 제가 운전하겠습니다"

"이 차를? 이게 얼마 짜리인지는 아냐? 잔말 말고 타기나 해. 나 시간 없어"




평일 오전이라 그런지 거리는 한산한 편이었다. 차는 막힘없이 병원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비싼 차라 그런지 조용하고 스므스하게 아스팔트를 헤치고 나가고 있었다. 타고나서 보니 동그라미가 4개가 차 앞에 떡 하고 붙어있었다. 무의식적으로 운전하겠다고 말했던 것이 민망스럽게 느껴졌다.

'쓰펄 큰일 날 뻔했네. 아우디 SQ5면 못해도 9천만 원 이상일 텐데 괜히 운전 잘못했다가 긁히기라도 하면... 에이고 상상조차 안 하련다. 끔찍하네. 근데 이 인간은 뭔 돈으로 이런 차를 몰고 다닌데?'

H는 어깨를 진저리 치며 부르르 떨었다. 


H가 두리번거리며 차 안을 둘러보자 박찬기는 전방을 주시한 채로 흘낏하고 눈만 옆으로 돌려 힐끗 쳐다보았다. 

"왜? 좋아 보여? 당연히 좋지. 니 월급으로는 상상도 못 할 가격인데. 이거 풀옵션으로 1억 3천 주고 산 거야. 기름도 일반 휘발유가 아니고 고급만 넣어야 돼. 알아?"

H는 고급 휘발유라는 것을 주유소 간판에서만 보았지 한 번도 직접 사서 주유해 본 적은 없다. 물론 지금 몰고 있는 친구한테 500만 원 주고 싸게 산 중고 산타페도 경유차라 경유 이외는 잘 모른다. 아~! 고아원에서 나와서 처음 독립 했을 때 돈이 없어서 시골 빈집에서 석유난로 하나로 세 번의 겨울을 넘기면서 등유는 몇 번 사봤었다. 기름 살 돈이 없어 산에서 주워온 죽은 나무를 때면서 버티던 시간이 더 많기는 했지만.

"아 네~! 그래서 그런지 차가 무지하게 좋아 보이네요"


어차피 병원까지 얻어 타고 가는데 굳이 어색한 분위기를 만들기는 싫어서 그냥 좋게 한마디 하고 다시 앞만 쳐다보았다. 아무리 막히지 않아도 20분 이상은 가야 되는데 이 인간하고 말을 계속 섞기는 싫었다. 

"부럽지 임마? 넌 소방생활하면서 내가 어떻게 이렇게 좋은 차를 몰고 다닐 수 있는지 알아?"

"모릅니다"

"융통성 없는 시끼. 내가 너보다 2 기수 밖에 빠르지 않은데 벌써 소방령이 된 이유가 뭔지 알아? 직장은 어디든 본청! 본사! 즉 높은 곳에 줄을 잘 대야 돼. 줄을 잘 서야 출세할 수 있는 거야. 지방에서 죽어라 일해봐야 지방에서 잘하면 팀장 정도나 돼서 현장이나 좃빠지게 다니다 퇴직금 몇 푼 받고 끝나는 거야"


H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뭐라 답변해야 할지 몰랐다. 잠시의 침묵이 흘렀다. 박찬기 소방령은 슬쩍 H를 다시 쳐다보고선 말을 이어나갔다.

"야~! 이번에 서장이 너 좀 띄어달라 그러던데 내가 멋지게 드라마 한번 써줄까?"

"예? 드라마요? 무슨"

"너 요구조자가 불에 휩싸이는 거 보고는 오열하며 비명 지르고 슬퍼했다며? 진짜냐? 뭐 진짜든 아니든 상관은 없다만. 암튼 내가 드라마 한번 멋지게 만들어줄까? 대본 잘 나오면 너 쭉쭉 출세할 수 있는데?" 


H는 박찬기를 아무 말 없이 쳐다보았다. 뭐 속물이라 느꼈다거나 혐오스러운 감정을 느낀 것은 아니었다. H는 애초 진급에는 별 뜻이 없었기도 했지만 이제는 천사로서의 임무 말고는 그 어느 것도 중요게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뭐 나도 대본 만들려면 경비도 좀 필요하고 하니까 수고비나 조금 챙겨주면 내다 아주 기쁜 마음으로 멋지게 대본 써줄 수 있을 텐데. 내가 하는 말 무슨 뜻인지 알겠지?"

박찬기는 아주 은근한 목소리로 다시 분위기를 몰고 갔다. 그러나 H는 더 이상 말을 이어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냥 앞만 보고 있었다. 차는 다행히 병원 입구에 도착하였다. 

"다 왔네. 암튼 잘 생각해 보고 전화해"

박찬기는 떨떠름하게 입맛을 다시며 본인의 명함을 콘솔박스에서 꺼내 건네주었다.




예상대로 빈소는 아직 제대로 차려지지 않았다. 도착한 유가족이 아무도 없어 검시조차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에 유해도 시체보관소에서 대기 중이라고 하였다. 

"에이 이거 시간 좀 걸리겠네. 최소한 유가족하고 같이 찍은 사진은 하나 꼭 있어야 되는데... 야! 어디 가서 좀 쉬다 오자. 들어오다 보니 싸우나 있던데 거기 가서 기다리자. 관리실에 전화해 달라고 하면 되니까."

"다녀오십시오. 저는 망자도 한번 찾아뵙고 여기서 유가족도 기다리겠습니다."

"뭔~! 니 맘대로 해라. 난 피곤하다. 그럼 유가족 오면 네가 전화해라. 야! 그러지 말고 같이 안 갈래? 혼자 심심한데"


H는 가슴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마음은 조급한데 자꾸 걸리적거리는 박찬기가 꼴 보기 싫었다. 유가족들이 오기 전에 그녀의 시신을 본인 눈으로 확인도 해야만 했다. 또한 그녀의 삶에 대하여 유가족을 통해 알아봐야 할 것도 많았다. 

'이 그지 같은 속물 새끼가 더럽게 나대고 있네. 콱 죽여버려?'

H는 순간 깜짝 놀랐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한다고? 난 내성적이고 겁이 많아서 웬만해서는 이렇게 과격한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는데? 뭐지? 가슴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이 격한 감정은? 다 태워버리고 싶다. 다 죽여 버리고 싶어. 아냐 아냐 나에게는 주어진 숙명이 있어. 오로지 엄마처럼 지상에 유배온 핍박받는 천사들을 구원하는데 전력을 다해야  해. 천사를 찾는 것이 내 숙명이야'


박찬기는 말없이 자신을 노려보는 H의 정강이를 발로 힘껏 차버렸다. 

"이 새끼야~! 상관이 물어보는데 대답이 없어? 아 쓰펄 더러워서 혼자 간다. 나 바쁘니까 유가족 오면 재깍재깍 전화해!"

H는 끝까지 아무 말없이 찬기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의 뒷모습을 마치 벌레 보듯 바라보면서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서있었다. 

'확실히 어제 그 일 이후 내 성격이 좀 바뀐 거 같아. 아냐 바뀐 게 아니라 원래의 나를 찾은 거야. 내 사명을 깨닫게 된 거야. 확신할 수 있어. 확인해 봐야 돼. 그녀가 천사였는지 아니면 구더기였는지 확인이 필요해'


H는 시체안치소 방향으로 발길을 돌렸다. 시체 안치소는 병원 지하 2층 외딴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복도는 조금 바래기는 했지만 희뿌연 회색으로 온통 칠해져 있었다. 두서너 개 건너 주기적으로 깜빡거리는 형광등의 불빛이 아무도 없는 복도를 조용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한 걸음 옮길 때마다 메아리가 복도 벽에 부딪쳐 발걸음을 흉내 내며 바짝 따라붙는다. 지독히도 인적이 없는 산속을 걷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로 고요했다. 


'저벅저벅' '저벅저벅'

H의 발자국 소리에 복도가 0.01초 늦게 반응한다. 

'저벅저벅' '저벅 쓰윽 저벅 쓰윽'

'저벅저벅' '저벅 쓰으윽 저벅 쓰으윽'

발자국 소리의 울림에서 이상한 소리가 섞여서 들리기 시작했다.

'뭐지? 왜 발자국 소리가 이상하게 들리지?'

뒤를 돌아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다시 발걸음을 서둘렀다.

'저벅저벅저벅' '저벅 쓰으윽 저벅 쓰으윽 저벅 쓰으윽'

무언가에 끌리는 듯한 발걸음의 울림도 H의 속도에 맞춰 빠르게 변했다. 복도는 끝이 없이 이어지고 있었고 H가 걸음의 속도를 높일수록 복도의 울림도 알 수 없는 위화감을 품은 채 쫓아오고 있었다. 


"누구 있어요?"

H는 두려운 느낌에 뒤를 돌아보며 허공에 대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회색의 복도는 조용히 H의 목소리를 삼켜버렸고 아무것도 남겨놓지 않았다. H는 눈을 이리저리 돌려 복도의 가장 먼 곳까지 확인하였다. 눈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뭔가 있는 것 같은 위화감에 쉽사리 고개를 돌릴 수가 없었다. 영원히 멈춘 것 같은 정적 속에서 1분 정도 지났을까? H는 더 이상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가 없었다. 보이지 않는 위압감이 저 멀리 복도 끝에서부터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마치 용암이 터져 나오는 듯한 뜨거운 기운이 멍하게 서 있는 H의 검은 눈동자 속을 훅하고 밀려들었다. 


H는 몸을 돌려 뛰어가기 시작했다. 아니 뛰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복도의 앞쪽은 뭔가에 막힌 듯 H의 도주를 허락하지 않았다. 앞쪽 복도의 공간이 서서히 이지러지기 시작했다. 스치로풀 조각이 불에 타 오르듯 복도가 서서히 녹아내리고 있었다. 뒤쪽의 열기는 H가 서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H의 발아래를 제외한 모든 공간이 녹아내리고 시꺼먼 암흑으로 변해 끝이 보이지 않는 나락으로 모든 것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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