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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nny Brown, 보금자리를 찾다

때론 과감한 행동이 마음을 끌고 가기도 한다

by Bunny Brown Feb 23. 2025
오빠, 여기 어때?


숙박플랫폼 광고 같지만, 지금의 Bunny Brown 작업실과 인연을 맺게 해 준 아내의 첫 대사다. 작업실을 구하는 건 6개월쯤 뒤로 예정되어 있었는데, 성격 급한 아내가 벌써부터 집 근처 부동산을 뒤지다가 맘에 드는 곳을 발견했다. 


아내는 항상 이런 식이다. 뭔가에 꽂히면 바로 움직인다. 아파트에 살다가 땅 사서 집 짓고 살면 어떨까 이야기 꺼냈다가 1주일만에 임장을 시작했고, 1개월만에 땅 계약을 맺은 것도 모두 성격 급한 아내 덕이었고, 애들 데리고 유럽 한 번 다녀오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나온지 3일만에 파리행 비행기표를 반값에 결제한 것도 아내 덕이었다. 


컴퓨터 화면을 통해 들여다 본 공간은 꽤 괜찮았다. 벽이며 타일이며 아주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화장실도 실내에 있어서 좋았다. 시스템 에어컨도 설치되어 있고, 무엇보다 주변 경관이 좋아서 나중에 손님들이 찾아오면 여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월세는... 글쎄... 예산으로 잡았던 것보다 다소 높았지만, 깨끗하고 편리하고 분위기 좋은 공간에 추가 비용을 투자할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다고 판단했다. 집에서 멀지 않은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다음날 바로 가서 살펴 보기로 했다. 






집에서 차로 5분 거리, 이전에 파주로 처음 이사 와서 동네 여기저기 구경하면서 들러보았던 구역이어서 대충 어떤 느낌인지는 알고 있었지만, 다른 목적으로 방문하니 공간이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작업실은 사진으로 봤던 것 이상으로 넓고 쾌적했다. 


특히, 바닥에 깔린 초록색 타일이 이국적이면서도 고급스러웠다. 이 곳을 방문하는 손님들도 좋겠지만, 매일 이 곳에서 초콜릿을 만들 아내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의 얼굴을 보니, 이 사람 또한 여기로 해야겠다고 이미 마음을 먹은 듯 했다. 집으로 돌아와 바로 부동산에 연락을 했고, 1주일 뒤 주말에 부동산에서 건물주와 함께 만나기로 했다. 


 



건물주는 예상했던 것보다 많이 젊어 보였다. 서류 작업을 위해 서로의 신분증을 꺼내서 주민번호를 확인하는데, 건물주의 나이가 나랑 같았다. "사장님, OO년생이시군요. 저랑 동갑이네요." "아, 그런가요? 반갑습니다." 서로 나이가 같음을 확인하니 한결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그 때 갑자기 부동산 사장님이 끼어 들었다. "어? 저도 OO년생입니다." 공교롭게도 그 날 부동산에 모인 세 사람이 모두 동갑내기 친구였다. 이번 만남이 좋은 인연이 되어 앞으로 친하게 지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약이 끝나자마자 우리 부부가 한 일은 작업실에 싱크대와 가벽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기존에 사무실 용도로만 사용하던 곳이어서 씽크대 설치가 필요했고, 꽤 넓은 공간을 작업실과 매장으로 같이 사용하기 위해 가벽으로 공간 분리가 필요했다. 마침, 건물주 사장님이 인근 싱크대 설치 작업자를 소개해 줘서 수월하게 진행되었고, 가벽 설치는 숨고에서 견적을 받아 진행했다. 



인테리어나 수리 기사님 찾을 때는 숨고에서 견적을 받아 보고 결정하면 좋다. 대충의 면적과 요구사항들을 숨고에 올렸더니 하루 만에 10개 가까운 견적을 받았다. 업체마다 견적 차이가 컸는데, 가장 저렴한 견적을 준 곳을 선택했는데 다른 곳들과 비교했을 때 거의 절반 정도 되는 가격이었다. 물론, 싸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 분의 기존 레퍼런스들을 잘 체크해 보아야 하고, 품질에 있어서도 최상은 아닐 수 있음을 어느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 







가벽 페인트는 셀프로 아내와 둘이서 하기로 했다. 예전에 아내가 플라워 공방을 운영한 적이 있었는데, 비용절감을 위해 내가 직접 실내 페인팅을 했었다. 그 때 경험을 살려 이번에도 직접 해 보기로 했다. 페인팅을 셀프로 하면 최소 50만원 정도의 비용을 아낄 수 있다. 물론, 전문가가 하는 것보다 마감 퀄리티는 조금 부족할 수 있지만 크게 거슬릴 정도는 아니다.


던에드워드 홈페이지에서 페인팅에 필요한 페인트와 브러시, 붓, 마스킹 테이프 등의 도구를 주문하고, 퍼티(일명 빠데) 작업을 위한 핸디코트와 헤라 주걱은 동네 철물점에서 구입했다. 총 비용은 약 30만원 정도. 


페인팅 작업 순서는 대충 이렇다. 

1. 페인팅이 벽이나 바닥에 묻지 않도록 마스킹 테이프와 커버링 테이프를 벽과 바닥에 붙인다.

2. 퍼티 작업을 위해 석고 보드 틈새를 연결해 주는 조인트 테이프를 붙인다. 

3. 석고 보드 틈새에 퍼티를 얇게 펴 바르고 마르길 기다린다. (2회 반복)

4. 퍼티가 다 마르면 사포질을 열심히 해서 평탄화 작업을 한다. 

5. 페인트를 칠한다. (2회 반복, 프라이머 밑작업 생략) 



아내와 함께 토요일에는 퍼티 작업을, 일요일에는 페인트 작업을 해서 주말 이틀 동안 페인트 작업을 마무리하고, 다음 주 일주일 내내 두 사람 모두 근육통으로 고생을 했다. 


그럴거면 그냥 돈 좀 더 주고 전문가에게 맡기는 게 좋지 않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반대다. 나에게 있어 셀프 페인팅은 단순히 비용 절감이 아니라, 공간에 대한 애착 형성 과정이다. 내가 직접 페인트칠을 한 공간은 나에게 무척 소중한 곳이 된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기회가 된다면 직접 페인팅을 해 보면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2주쯤 지났을까, 장인장모님이 집에 놀러왔다. 저녁식사를 함께 하며 초콜릿 가게에 대한 계획을 말씀 드렸더니, 장인어른 얼굴에 근심이 어렸다. 아직 준비가 많이 부족한데 벌써 작업실 계약부터 한게 너무 섣부른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고 하셨다. 


그 때, 평소에도 여장부 스타일인 장모님이 장인어른의 말을 단 칼에 끊으면서 말씀하셨다.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뭐라도 바로 해야지. 
생각만 해서는 아무 것도 못 해, 잘 했어.

장모님이라고 걱정이 안 되는 것은 아니었을 거다. 다만, 이미 칼을 빼 든 자식이 이왕이면 그 칼로 멋지게 호박이라도 썰 수 있게 용기를 주고 싶었던 거겠지. 장모님의 말 한마디에 또 큰 용기가 생겼다. 


작업실 계약까지 했으니 이제는 진짜 물러설 수도 없고, 멈춰 있을 수도 없다. 우리에게는 오로지 앞으로 나아가는 선택지만 있다. 모든 것음 마음먹기에 달렸다지만, 때론 과감한 행동이 마음을 끌고 가기도 한다. 어쩌면 이렇게 무턱대고 행동으로 옮겨보는 것, 그것을 우리는 낭만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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