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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툰 부모

by 옆집아줌마

남편은 3살 즈음에 아버지께서 사우디로 일을 하러 가셔서 아버지와의 어릴 적 추억이 없다고 했다.

몇 년에 한번씩 한국에 들어오셨지만 아버지가 집에 와 계시는 동안 남편은 아버지가 어렵고 낯설어 거실에도 안 나오고 방에만 있었다는 이야기를 한적이 있다.

남편은 어린 시절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아버지의 사랑과 관심으로 인해 우리 아이에게는 정말 다정하고 좋은 아빠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현실은 꽝! 이었다. 아버지와 추억이 없어서인지 아들을 대하는 모습은 실수 투성이 였다.

대표적인 예로 아들이 초등학교 2학년때 있었던 일이 하나 생각난다. 내가 약속이 있던 어느 날, 남편과 아이 둘이 이른 저녁식사를 하며 생긴 일이었다.

집에 들어가니 집안 분위기가 쎄~ 하다.

“ 무슨 일 있어?”

아무도 무슨 일이 있는지 말을 해 주지 않는다. 남편은 설거지를 하고 있었고 아들은 억울한 듯 얼굴빛이 벌겋게 올랐다. 아들에게 물었다.

“ 유성아? 무슨 일이야? 저녁 먹으면서 무슨 일 있었어? ”

아들은 마치 곧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얼굴로 아빠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 아니 ~ 오늘 단원 평가 봤는데 아빠가 잘 봤냐고 해서 잘 봤다고 했더니 몇 점 맞은 것 같냐 고 해서 100점 맞은 것 같다고 했더니 아빠가 갑자기 화내면서 - 진짜야? 진짜 100점 맞았어? 너 책임 질 수 있어? 뭐가 그렇게 자신만만해? 100점 안 맞으면 어쩔꺼야? 핸드폰 뺏아버린다!!! - 이랬어.”

엥??? 이게 어느 별의 대화 수준인가? 싶을 정도로 남편에게 실망스러웠다.

남편은 아들의 100점 맞은 것 같은 자신감을 자만심이라 표현하며 겸손하지 않다고 말했다.

나는 그날 남편에게 아빠 학교가 있으면 아빠 학교 가서 수업 좀 받으라고 했다. 아들을 응원하는 아빠이길, 아빠와 아들이 진짜 친해지길 바랬지만 남편은 항상 아들은 강하게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남편은 ‘강하게’와 ‘주눅들게’의 차이를 모르는 것 같다.

‘ 당신이 아들을 대하는 건 ‘강하게’ 가 아니라 ‘주눅들게’ 라구~~~!!!’

그 날의 대화는 무척 잘못된 것 임을 설명해주었다. 내 아이가 자신감 있게 100점 맞은 것 같다고 했다. 그럼 부모로서의 반응은 자랑스러움과 칭찬이여야 한다.

“진짜?? 오~ 대단한데~ 아빠도 기대되는 걸~”

이렇게 한마디면 아이의 기분도 끌어올리고 즐거운 저녁식사 시간이 되었을 것이다.

설령 아이가 그 점수를 받지 못했다 해도 아빠의 긍정적인 기대를 본 아이는 다음 시험에 더 잘 보려 노력했을 것이다.

아빠의 격려와 기대감은 아이가 스스로를 더 발전시키려는 원동력이 된다.

나는 남편에게 그 부분을 지적해 주었고 남편은 인정했고 아이에게 직접 사과를 했다. 아빠가 너무 서툴러서 사랑의 방법을 잘못 알고 있었다고 아빠가 더 노력 하겠노라고 아이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다.

이럴 때 드는 생각은 ‘내 남편은 참 멋진 사람이 분명하다.’

보편적으로 아들을 강하게 키우고 싶은 이유는 스스로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고 자신을 지킬 수 있도록 자립심을 키워주는 이유 아닐까? 아들에게 목표를 향해 노력하고 약점을 극복하는 능력을 가르쳐 줄 수 있는 아빠였으면 좋겠다.

하지만 남편은 부자간의 관계를 배우지 않아서 서툴다고 말하곤 한다. 어릴 적 아버지의 부재로 자신의 정체성과 자아 개발에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아버지의 지지와 사랑을 받지 못해 정서적인 공백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며 자신감 결여와 대인관계에도 영향이 있었을 수 있다.

나는 사춘기가 시작될 아들에게 아빠의 어릴 적 허전함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강압적이지 않고 아들의 성장과 발전을 응원하며 사랑으로 지도하는 마음을 가진 아빠로 함께 성장하자고 격려했다.

친정 엄마가 친정 아빠의 병간호로 집을 떠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있었던 일이 생각난다.

나는 아이들 어릴 때 한번도 기저귀를 갈아준 적 없었고 아이들이 아플 때 뜬 눈으로 날을 새며 열을 체크해 주시던 친정엄마를 믿고 참 편안한 생활을 했다.

그러다 아이들을 온전히 보살피게 되었고 그때 아들이 열 감기에 무척 많이 아팠다.

할 수 있는게 하나도 없던 나는 쪼그리고 앉아 서글피 울었다. 초등 1학년이던 아들은 구토가 쏠리는지 화장실로 막 뛰어가 오바이트를 했다. 아이 곁에 작은 바가지를 놓아주며 화장실까지 뛰어가려면 기운 없으니 가져온 바가지에 오바이트를 하라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는 작은 바가지에도 하지 못하고 이불에 잔뜩 오바이트를 하고 말았다.

나는 그때의 나를 생각하면 아직도 엄마 자격이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괴로워진다.

열이 펄펄 나고 기운 없는 작은 아이가 이불에 오바이트 하는 걸 보고 당황스럽고 기저귀도 갈아 본적 없는 내가 오바이트 잔뜩 인 이불을 어찌 빨아야 할지 난감하고 화가 치밀어 아픈 아들의 등 짝을 세차게 3대나 때렸었다.

그때의 나는 서툴다 못해 미친 엄마였다.

우린 새해 1월 1일이 되면 새벽 산을 올라간다. 운동신경 좋은 아들은 산에 오를 땐 아빠와 발을 맞춰 올라가고 내려올 땐 천천히 나와 발을 맞춰 내려온다.

나는 그때마다 아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내려오다 또 아들의 어린시절 내가 저질렀던 잘못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진심 어린 사과를 한다.

그럴 때면 아들은

“ 괜찮아 엄마, 엄마도 그땐 마음이 많이 아픈 상태 였잖아. “

라고 말하며 나를 더 많이 위로해 준다.

벌써 마음이 어른처럼 커서 나를 위로하는 아들을 더 많이 아끼고 응원하는 부모가 되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딸이 친구들은 다 엄마랑 시내 구경 간다고 나와 함께 시내 구경 가보고 싶다는 제안을 했다. 아이가 좋아할 만한 옷을 입고 시내로 향했다.

가는 내내 우린 말 한마디 없었다는 것을 나는 모르고 있었다. 우리가 시내에 도착할 때까지 말 한마디 안하고 손만 잡고 있었다는 사실을 딸은 내 기분을 살피며

“엄마, 우리 여기 올 때까지 말 한마디 안 했어.” 우리가 말 한마디 안 하고 오는 동안 나는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고 아이는 불편했다. 나는 또 나의 어릴 적이 떠올랐다.

나는 어릴 때 엄마랑 단둘이 어딜 다녀보지 않았다는 사실, 아이가 불편함을 느끼며 우울했을까봐 마음이 슬펐다.

집에 돌아오는 길 아이는 또 얘기를 꺼낸다.

“엄마랑 둘이 오래 있었는데도 우리 말을 안 했어.. 엄마가 일을 다시 했으면 좋겠어. 엄마가 우울해 보이는게 싫어”

‘아, 다시 일을 해야겠다. 내가 일을 그만 둔 이유는 이런 상황이 오게 하려던 게 아니야. 아이들에게 집중하고 싶었는데 더 나의 우울에 집중하고 있었어.’

폐업을 한지 7개월 만에 나는 다시 오픈을 했고 아이들은 엄마가 다시 일을 하게 된 것에 즐거워했다.

어느 책 표지 한쪽에 적혀있던 말이 생각난다.

[1살짜리 아이는 엄마 품을 그리워하지만 10살짜리 아이는 능력 있는 엄마를 원한다]

나는 다시 미용실 오픈을 하며 다 잘하는 완벽함을 추구하기 보다, 남편과 협력하여 아이들에게 건강한 가정이 무엇인지 실천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여주자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큰아이의 초등 5학년이 다가오고 있었다. 오픈을 하고 아침 일찍 아이들을 준비해 등교시키고 출근을 하는 나의 모습이 이제 다시 정상으로 돌아온 우리 집의 모습인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나는 일과 육아 모두를 완벽하게 할 수는 없지만, 아이들에게 더 에너지를 쏟고 싶은 마음에 미용실을 완전 예약제 샵으로 돌려 일을 시작했다.

일을 할 수 있는 즐거움, 아이들을 돌볼 수 있는 시간, 이 두 가지의 적절함이 양질의 육아와 건강한 가정을 이루는 한가지 요소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의 양육을 위해 엄마의 경력을 포기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아이에게도 엄마에게도 좋은 선택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직접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엄마 이전에 직장인으로서의 존재감 상실은 다른 부분에도 영향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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