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나의 이야기를 잠깐 하자면 엄마는 나를 낳고 아프셔서 아빠가 아픈 엄마를 돌보느라 나를 차가운 윗목에 눕혀놓고 죽어도 된다고 했다고 한다. 할머니께서 나를 데려 가셔서 나는 외갓집에서 자랐다.
사춘기에 나는 아주 어릴 적 엄마에게 ‘버려지거나, 거절 당했었다’ 는 생각으로 혼란스럽고 외롭고 우울한 사춘기를 보냈다.
성인이 된 30대의 나는 친정 아빠의 병간호를 위해 내려간 엄마를 보며, 한때 잊고 있었던 버려짐과 거절당했던 우울함을 다시 느끼기 시작했다.
친정 엄마 없이, 아기 때도 돌보지 않았던 두명의 초등학생 아이들을 잘 돌볼 수 있을지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 두려움과 우울함이 커졌다.
출근을 하고도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 제때 식사를 챙겨줘야 하는 책임감, 그리고 손님의 머리를 하느라 바빠 아이들의 식사를 챙기지 못하는 날이 잦아지면서 이러한 두려움과 걱정이 점점 더 커져만 갔다.
늦은 시간에 저녁을 먹이며 속상해서 우는 날이 많아졌다. 숙제도 못 봐주고 준비물도 못 챙겨주고 나의 일도 나의 육아도 모두 엉망이 되어 가는 듯 했다.
육아로 인한 우울증은 일반적인 스트레스나 피로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내 업무에 대한 자신감 상실까지 오는 것이어서 결국 약을 복용해야 할 지경이 되었다.
우울증 약을 처방 받으며 나는 무엇에 집중해야 할 때인지를 냉정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에 진학하는 3월, 나는 결국 가게를 폐업하기로 결정했다. 가게를 폐업하고 전업주부가 된 나를 아이는 무척 좋아했으며 나에게 한가지 부탁을 했다.
내가 집에만 있는 다른 아줌마들처럼 하고 있는게 싫다고 했다.
예쁘게 출근하던 날처럼 매일 화장하고 예쁘게 옷 입고 집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어려운 일 같지 않아 나는 매일 아침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꽃 단장을 하고 있었다.
이러한 새로운 일상을 한 달간 지속하면서, 임신 중에도 겪어보지 못한 휴식이 오히려 나에게 무기력증과 더 깊은 우울증을 가져다 줬다.
내가 일을 그만둔 이유는 아이들을 잘 보살펴 주기 위함이었는데 일을 할 때 보다 더 보살피지 못하고 일하며 느낀 우울함 보다 더 깊은 우울이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놓고 아침부터 울다 지쳐 잠들고 아이들이 하교 후 집에 돌아오면 자다 일어나 무기력한 엄마의 모습만 보여주고 있었던 것 이다.
폐업한 지 5개월쯤 지났을 때, 큰 아이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 엄마, 엄마가 그냥 일을 다시 했으면 좋겠어. 엄마가 매일 아픈 사람처럼 누워 있는 거 싫고 집에 오면 내가 많이 슬퍼.”
아, 내가 원한 결과는 이게 아니었는데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내 우울은 어디서 왔을까? 친정 엄마 찬스가 끝나고 나에겐 몇가지 불편한 상황들이 발생했다.
육아와 가사 부담이 커져서 시간과 에너지 소모가 컸다. 내가 쉴 수 있는 시간은 없었고 집안일을 하다 잠자리에 들 때만 겨우 쉴 수 있는 피곤한 날들 이었다.
집안일은 내게 즐거움을 주지 못했다. 그런 이유로 급격한 감정적 변화들이 생겼다. 사랑만 주고 싶었던 아이들에게 점점 짜증 내는 일이 많아졌다.
우울증과 무기력감이 쌓이면서 남편과 조금 더 집안일을 분담하기로 했고 우울증 극복을 위해 운동과 주변지인들을 만나며 나에게 조금씩 시간을 쓰기 시작했다.
미용실을 폐업하고 집에서만 지내기로 한 결정이 아이들을 더 잘 돌보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전업주부가 되었다고 해서 아이를 더 만족스럽게 돌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남편과 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보살핌이 좋은 것인지 방법을 상의했고 나의 우울증을 없애기 위해 남편도 집안일을 많은 부분 함께 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