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미용사였던 친정 아빠를 이어 받아 나는 미용사가 되었다. 여느 여자 미용사들처럼 나 역시 친정 엄마의 도움으로 평생 아이들을 맡기며 일만 하며 살거라 생각했다.
29살 나는 둘째를 낳고, 친정 엄마 손에 아이 둘을 맡긴 채 출산 3주 만에 미용실을 오픈했다.
오픈 축하를 위해 미용실에 방문한 지인의 아내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근데, 애는 엄마가 키워야 좋은 거 아니예요? "
나는 큰 죄를 지은 것처럼 당혹스럽고 약간 언짢은 기분이었지만, 그 마음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더 당당하게 대답했다.
“ 아이를 잘 키우는 엄마는 아이를 키우면 되고요. 일을 더 잘 하는 엄마는 일을 하면 됩니다. 일을 더 잘하는 엄마가 아이를 키우겠다고 일을 멈추고 하루 종일 아이에게 집중해서 잘 키우면 다행이지만, 육아가 스트레스가 된다면 그건 좋은 육아가 아닌 것 같아요. 저는 육아보다 일을 더 잘 할 것 같고, 저에게 맡는 육아를 선택한 것 뿐이예요.”
육아에 대한 나의 평소 소신을 말했지만, 내 마음은 괴로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큰 아이는 이미 2년째 외할머니 댁에 맡겨져 있었고, 2주에 한 번씩 전주로 내려가 아이를 만날 때마다 아이는 엄마 아빠를 보며 반가워 달려와 하는 첫마디가
“엄마~~!! 오늘 자고 갈 꺼야 아니면 그냥 갈 거야? ” 였다.
그런 아이의 말을 모른척하며, 둘째도 친정에 맡기고 몸조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로 미용실 오픈을 감행했다. 그래서인지 누군가의 말이 나에게 곱게 들릴 리가 없었다.
그 즈음, 나를 위로해 준 것은 바로 책이었다.
워킹맘에게 힘을 주는 책들, 육아와 자신의 일 사이에서 고민해야 하는 워킹맘들에게 육아만큼 중요한 것이 자신을 사랑하고 커리어를 쌓는 일이라는 메시지를 담은 책들을 읽었다.
그 중, 레기네 슈나이더의 [아이의 미래를 위해 일하는 엄마]와 베티나 뮌히의 [일이냐 아기냐 아무것도 포기할 수 없는 여자]는 나를 위로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어릴 적 기억들이 떠올랐다.
나를 낳고 몸이 아팠던 엄마는 나를 외할머니 댁에 맡기고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데려가지 않았다.
엄마 아빠는 나에게 너무 낯선 사람들이었고, 엄마 아빠가 있는 집은 눈치가 보이고 편안함이 없어 즐겁지 않았던 곳 이었다. 내 아이들도 언젠가 나에게 돌아왔을 때 어릴 적 내가 느꼈던 낯설음을 느낄거라 생각하니 불안하고 슬펐다.
아이들을 하루빨리 데려오고 싶어 친정엄마에게 제안을 했다. 우리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만 우리 집에서 같이 지내 달라고 부탁을 했다.
엄마는 오랜 시간 고민하셨고 큰아이가 3살이 되었을 때, 우리는 함께 살 수 있게 되었다.
모든 일에 잘 협조해주는 남편과 함께 우리가 이제 아이들과 어떻게 잘 살아갈 지에 대해 고민했다.
서툰 부모로서, 잘해주고 싶은 마음만 가득하고실제로는 아무것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았다.
부모도 교육이 필요하다. 마치 부모 자격증이 있어야 할 것처럼, 무작정 두 사람의 사랑만으로 아이를 낳고 육아에 매달리는 것은 서로에게 즐거운 일이 아니었다.
친정엄마의 많은 도움 덕분에 아이들이 잘 자라고 있었지만 마음까지 잘 자라고 있는지는 항상 의심스러웠다.
할머니는 아이들에게 무한한 따뜻함을 주시며 아이가 혼나야 할 상황에서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나직한 목소리로 편안하게
“ 다현이가 한번 생각해 봐 ~ “ 라고 말씀하신다.
아이는 한참 화가 나있고 흥분이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때도, 혼자 고집을 피우다가 결국
“할머니, 다현이가 생각해보니까 다현이가 잘못한 거 맞아요.” 라고 인정하는 순간이 있었다.
그렇게 아이는 한 가지씩 배워간다. 나는 친정엄마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엄마가 나를 다현이 와 유성이에게 하듯이, 다그치지 않고 조용히 이야기해 주었다면, 내 인성이 지금보다 더 훌륭하고 좋은 사람이 되었을 텐데. 엄마, 왜 나한테는 우리 아이들에게 하듯이 못했어?” 라고 물었던 적이 있다.
엄마는 말했다. “그땐 혼내야 잘 크는 줄 알았어. 근데 안 혼내도 잘 크는 애들은 잘 크더라.
혼내면 주눅만 들지 뭐가 좋아. 다현이 봐라~ 조곤 조곤 얘기해도 다 알아 듣잖아. 아가가 말이야 ~”
친정엄마는 먹이는 돌봄과 정서적 돌봄을 다 하고 계셨다. 그렇게 우리는 친정엄마의 많은 도움을 받으며 잘 자라는 우리 아이들을 옆에서 지켜보며 손쉽게 키울 줄 알았다.
2016년 12월 친정 아빠가 위암에 걸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빠의 병은 우리의 모든 삶을 통째로 바꿔놓았다. 엄마는 아빠 수술로 인해 우리 아이들을 놓고 아빠 곁으로 가야했고, 일찍 퇴원하실 줄 알았던 아빠는 무슨 문제인지 42일동안 병원에 입원해 계셨다. 그때부터 우리의 서툰 육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두렵고 낯설고 힘들 것 같았던 육아를 친정엄마 없이 나와 남편만의 힘으로 해내야 했다.
갑자기 이미 다 커버린 초등 3학년, 1학년 아이들의 진짜 양육자가 되었다.
벌써 8년전 이야기이다.
나의 아이들은 이제 고등학교 3학년, 고등학교 1학년이 된다. ‘어떻게 하면 아이를 잘 양육할 수 있을까?’ 는 모든 부모의 공통된 고민일 것이다.
책을 읽고 고민하며 시도한 끝에 내가 느낀 진정한 양육이란 아이의 시기를 이해해야만 완성될 수 있는 것을 깨달았다. 그 시기를 이해하지 못하고 부모의 생각만을 고집한다면 좁혀질 수 없는 거리를 만들게 되고 아이로 힘들어하며 쓸모 없는 괴로움에 에너지를 소비하게 된다..
눈높이에 맞춘 소통, 아이의 선택과 의견 존중, 규칙 설정, 관심과 이해는 육아에 대한 전문서적에서 모두 강조하는 중요한 주제들이다.
우리가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육아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이유는 아이의 양육보다 ‘나’ 자신을 우선시하는 순간들이 많기 때문이다.
어느 덧 아이는 사춘기에 접어들 정도로 크게 자라버린다. 어둡고 긴 터널 같은 사춘기를 곧 지나갈 아이들을 위해 부모는 이해와 인내, 사랑으로 그 터널 끝에서 기다려 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