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니아
오후 한 시. 햇빛이 집 안에 비스듬히 들어선다. 함께 지내는 식물을 볕에 둔다. “가자니아 너라도 잘 지내야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햇빛을 바라보고 자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둠을 삼켰을 때 어른이 되어가는 ’나‘. 햇빛을 삼키고 뿌리가 단단해지는 ‘너’는 뭐가 그렇게 다른 것일까? 나도 너처럼 햇빛을 바라보면 뿌리가 단단해질 수 있을까?
공통점을 찾고 싶었다. 가자니아를 이틀에 한 번씩 바라본다. 흙이 마르지는 않았는지 검지손가락을 잎 사이로 넣어 흙을 깊숙이 찌른다. 손가락을 빼서 흙의 질감을 느낀다. 말라있다. 관심을 못 받으면 마음이 마른다.
수돗물을 준다. 식물을 살 때 들었던 얘기다. 정수기 물은 물속 다양한 성분들을 걸러내는 데, 이 과정에서 식물에 필요한 영양소 일부가 제거될 수 있다는 말. 좋은 영양소만이 식물을 자라게 할 수 없다는 말. 힘든 순간들을 직면하는 것만이 단단해질 수 있다.
가자니아는 봄부터 늦가을까지 꽃이 피고 진다고 한다. 겨울이 오면 꽃이 추락한다는 일. 겨울은 아무런 이유 없이 무너지게 된다.
햇빛을 바라보고 자란다고 함부로 말했다. 앞으로도 가자니아는 목이 마를 테고, 안 좋은 영양소를 삼키며, 어렵게 피워낸 꽃을 한순간에 추락시킬 것이다.
햇빛을 바라보고 자라는 것이 아닌, 마르기 위해서 햇빛을 바라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르고, 삼키고, 추락하기 위해서.
가자니아를 멍하니 쳐다보며 햇빛이 움직이는 각도에 따라서 몇 시간째 데려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