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오늘은 '굴뭇국'이다.
반갑게 가을을 맞이한 게 엊그제 같은데 무언가에 쫓기듯 벌써 가을이 갈 채비를 한다. 성큼성큼 다가오는 겨울 때문일까. 서둘러 갈 준비를 하는 가을에 놀라 다급히 월동준비를 시작한다. 가장 먼저 옷장 위에 올려뒀던 서랍들을 하나씩 내린 뒤 옷장에서 한 계절을 지내며 입었던 옷들을 꺼내어 한편에 쌓는다. 다가오는 계절에 맞는 옷들을 옷걸이에 걸어 차곡차곡 다시 텅빈 옷장을 채운다. 비어있는 서랍에는 지나간 계절의 옷들을 정리하여 넣는다. 마지막으로 알아보기 쉽게 항목을 적은 종이를 각 서랍의 잘 보이는 곳에 꽂은 후 서랍들을 다시 옷장 위로 올린다. 한바탕 옷 정리가 끝나면 다음은 이불 정리다. 얇은 이불과 사용한 베갯잇을 세탁기에 돌린 후 햇볕에 잘 말려 이불장에 개어 넣은 후 사용할 베갯잇에 솜을 몽기작 몽기작 집어 넣어 두꺼운 이불과 같이 침대에 놓는다. 마지막으로 소파 위 쿠션 커버까지 바꿔주면 우리집 월동준비는 얼추 끝난다.
한 계절이 가고, 다음 계절이 오면 옷 정리 말고도 해야 할 정리가 또 하나 있다. 바로 마음 정리다. 날씨의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함께 했던 마음의 계절도 정리가 필요하다. 만약 마음의 계절을 정리하지 않고 다음 계절을 맞이하게 되면 이전 계절에 미련이 남아 다가온 계절에 적응하지 못할 수 있다. 그래서 올 가을을 보낸 나의 마음을 조심스레 쓰다듬어 본다. 괜찮다고, 잘 지냈다고, 다가올 계절에는 보다 씩씩하게 지내보자고 마음과 조용히 담소를 나눠 본다. 어, 잠깐. 담소에는 음식이 빠질 수 없잖아. 계절을 마무리하는, 다음 계절을 맞이할 담소이니 이왕이면 따뜻한 음식이면 좋겠다. 다가오는 겨울만큼 하얗고 포근한 음식으로는...
그래, 오늘은 ‘굴뭇국’이다.
굴은 석화, 어리굴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석화(石花)’는 바위에 부착하여 생활하는 굴이 먹이를 먹을 때 입을 벌리는 모습이 ‘바위에 핀 꽃’과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어리굴’은 자연산 굴을 말한다고 한다. 어리굴의 ‘어리’에는 ‘어리다, 작다’라는 뜻이 있는데, 양식으로 키우는 굴보다 자연산 굴이 작기 때문에 자연산 굴을 지칭할 때 어리굴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고 한다. 또한 굴은 철분, 칼슘, 아연 등이 풍부하여 ‘바다의 우유’라고도 불린다. 양식이 가능해지면서 1년 365일 굴을 매일 먹을 수 있게 되었지만 특히 굴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때가 있다. 9~12월, 바로 지금이다. 드디어 마음껏 굴을 즐겨도 되는 시기가 왔다.
차가운 성질의 ‘굴’과 어울리는 따뜻한 성질의 재료들은 많지만 오늘 나의 선택은 ‘무’다. 차가운 성질의 ‘굴’과 따뜻한 성질의 ‘무’가 만나 선사하는 부드러움은 눈이 소복하게 쌓인 겨울의 들판을 떠오르게 한다. 바다를 머금은 굴의 시원함과 뭉근하게 끓인 무가 주는 뜨끈함이 어우러진 ‘굴뭇국’은 식탁 위에 놓인 겨울 그 자체이다. 누군가에게는 시원한 날것의 굴이 겨울의 맛이겠지만 나에게는 내려간 체온을 다시 끌어올려줄 따뜻한 굴이 겨울의 맛이다. 시원한 맛이 아쉽다면 다른 회를 곁들이는 방법이 있다. 나는 가장 좋아하는 광어회와 함께 해본다. 미리 느껴보는 겨울의 맛. 아무튼 올 겨울도 잘 부탁드립니다, 굴님.
[굴뭇국]
1. 굴을 소금으로 씻는다.
2. 무를 본인 취향에 맞게 썬다. (개인적으로는 네모 반듯 납작하게!)
3. 냄비 2개를 꺼내 하나는 육수를 낸다.
4. 다른 하나에 들기름을 두른 후 무를 볶다가 육수를 붓는다.
5. 바글바글 끓으면 굴을 넣고, 다진 마늘, 국간장, 액젓을 넣다.
6. 두부, 어슷썬 대파를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