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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수필집 1 17화

나에게 기계공학이란 (8)

by Neutron

나는 학교에서 배운 기계공학을 업무에 활용하고자 노력하였다. 팀 선배들은 그런 내가 이상하고 기특해 보였다고 했다. 버튼을 누르는 힘을 수식으로 계산했던 것이 내가 처음이라고 했다. 내가 배운 지식을 사회에서 써먹어야 한다는 강박증이 있었던 것 같다.


이 회사에서 본격적으로 설계를 배웠다. 해가 거듭될수록, 설계를 알면 알수록 선 하나 긋는데 대한 무게감이 증가하였다. 내가 도면에 그은 선 하나로 인해 제품의 두께가 달라지고 재료비가 달라진다. 재료비가 달라지면 영업이익률이 달라지고 이런 것들이 쌓이고 쌓여 적자 회사냐 흑자 회사냐가 결판난다. 그렇다고 마냥 두께를 줄일 수는 없다. 제품의 내구성과 품질도 회사 매출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 적절한 타협점을 찾는 것이 설계의 핵심이었다. 수많은 변수들 속에서 그 최적점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또한 내가 이 회사에서 배운 가장 중요한 개념은 ‘공차(Tolerance)’였다. 학교에서는 가장 이상적인 상황을 상정해 놓고 여러 가지 이론들을 적용시킨다. 그 이론에 의해 계산된 값은 단 한 가지였다. 공차론을 배우긴 하였지만 실제로 적용해 본 적이 없어서 체감되지는 않았었다. 그러나 실제 제품 개발에서 공차라는 것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였다.


지름이 100mm인 강봉을 만든다고 해 보자. 선반에 지름이 110mm 정도 되는 강봉 원자재를 끼워놓고 지름이 100mm가 될 때까지 깎는다. 지름 100mm를 세팅해 놓고 작업을 완료하였다면 이제 그 치수를 재어보자. 정밀한 마이크로미터로 지름을 재 보니 99.99mm 였다. 그럼 이 가공은 작업자가 원하는 대로 된 것인가? 아닌가? 목표 치수인 100mm를 어겼으니 불량품이 되어야 하는 것인가? 해답은 그 부품의 역할에 있다.


그 강봉이 어떤 구멍에 끼워져 회전을 해야 한다면 조립되는 구멍의 지름이 강봉의 지름보다 커야 한다. 손으로 돌릴 정도의 느린 속도라면 강봉과 구멍의 치수 차이는 헐거울 정도로 커도 된다. 그러나 강봉의 회전 속도가 빠르다면 그 치수 차이는 매우 타이트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진동에 의한 파손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공차란 어떤 부품을 제작할 때 그 역할에 따라 치수 범위를 정하는 것이다. 강봉의 지름 100mm에 +-0.1의 공차를 주면 99.9~100.1mm까지의 치수는 모두 합격이 된다. 그 범위를 벗어난 치수는 불합격이고 폐기된다. 상대 부품과의 조립을 고려하여 공차를 선정하는데, 공차가 작으면 작을수록 정밀한 기계가 필요하고 사람의 손이 더 간다. 재료비가 올라간다는 말이다. 조립과 상관없는 외형 치수에 타이트한 공차를 주는 것은 돈을 낭비하는 일이다. 나는 산업 현장에서 기계공학이 왜 필요한지 몸으로 체득하고 있었다. 기계공학은 비용, 매출 등 돈과 직결되어 있었다.


나는 주로 금형 업체와 공차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경험이 많은 금형 업체 과장님은 내가 제작한 도면의 구석구석 공차에 대하여 의견을 주었다. VCR 앞면에 늘어선 버튼들의 조립 공차는 너무 타이트하면 조립이 어려워지고 공장 생산 라인의 작업자 분들이 힘들어한다. 이 공차가 너무 느슨하면 작업 효율은 올라갈지 모르지만 외관에 편심이 져서 제품이 안 이뻐 보인다. 도면에 공차를 표기하는 것도 최적의 타협점을 찾아내기 위한 고민의 연속이었다. 물론 선배들이 만들어 놓은 매뉴얼이 있었으나, 새로운 기능을 가지는 신제품에는 새로운 설계가 적용되어야 하였다.


플라스틱 제품에는 고질적인 문제가 있었다. 사출 시 발생하는 '웰드라인(Weld Line)' 문제였다. 웰드라인이란 금형으로 흘러들어 가는 플라스틱 수지가 서로 만나서 생기는 아주 미세한 골 같은 것이다. 이 골은 도색을 하여도 없어지지 않고 오히려 드러나 보인다. 제품 외관에 금이 간 것처럼 보여 소비자의 구매욕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된다. 이 웰드라인을 없애기 위해 여러 번의 시사출을 하여 사출 조건을 찾아간다. 심하면 금형에 손을 대고 설계 도면 자체를 변경해야 하는 수가 있다. 시사출 비용, 금형 수정 비용 등이 다 돈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새로운 설계 방법을 도입할 필요성을 느꼈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전공한 나는 '몰드플로우(Mold Flow)'라는 사출해석 프로그램을 설계에 도입하자는 제안을 하였다. 팀장님은 내 제안을 수락하셨다. 나는 프로그램을 구매하고 사용법을 교육받았다. 프로그램으로 여러 경우를 시뮬레이션해 보니, 플라스틱 수지의 온도가 높을수록 웰드라인이 생기는 가능성이 낮아졌다. 그러나 수지의 온도가 높으면 금형에서 제품을 냉각시키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려 생산성이 떨어진다. 수지의 온도를 올리는 것 말고 수지가 서로 만나는 시점을 당겨서 온도가 높은 상태로 웰드라인이 형성되게 하였다. 그러기 위해서 게이트(녹은 플라스틱을 주입하는 입구)의 숫자와 위치를 바꾸어야 했고, 여러 가지 경우에 대하여 시뮬레이션을 해 보았다.


그림. Mold Flow 출처 : Google


프로그램 시뮬레이션으로 최적의 게이트 개수와 위치를 찾아내었고, 이를 금형에 적용하였다. 수정된 금형으로 시사출을 하기 위하여 나는 구미에 위치한 사출업체를 방문하였다. 공장장님은 나를 반기며 검지 손가락이 없는 오른손을 내밀었다. 닫히는 금형에 끼어 손가락을 잃었다고 했다. 나는 악수를 하였고, 미안하고 슬프기도 했지만 우리나라 제조업 발전을 위해 희생된, 그래서 내가 이 업계에서 일할 수 있게 해 준 그 손가락이 고맙게 느껴졌다.


공장장님과 나는 프로그램에서 세팅했던 최적 조건으로 사출기를 세팅하고 시사출을 진행하였다. 금형이 열리고 제품이 떨어져 나왔다. 고질적이었던 웰드라인은 온 데 간데없었고, 그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여러 모델의 설계를 경험하고 여러 난관에 부딪혀 보고 여러 성공 사례를 경험하는 동안 어느새 나는 대리가 되어 있었다. 팀에 후배 사원들도 제법 들어왔다. 모두 기계과 출신이었는데, 그중에는 나의 직속 후배도 있었다. 대학원 시절 내 조교 수업을 들었던 학생도 있었다. 이런 데서 만나다니 기계과 출신들이 많긴 많은가 보다 했다. 물리학을 포기한 대신 선택한 기계공학은 사회에서 여러모로 쓰임이 많은 것 같았다. 취업을 위해서는 잘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후배 사원들의 교육은 내 담당이 되었다. 나는 후배 사원들에게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과 경험을 모두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야만 그 위에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얹어 기술이 발전하고 회사가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후배 사원들은 잘 따라와 주었고 나는 그들의 멘토가 되었다. 가끔 후배들에게 술도 사주고 불만도 들어주면서 그들이 이 팀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덧 내가 이 회사에 입사한 지 7년이 되었다. 나의 일에 대한 열정과 달리 회사의 경영 환경은 날이 갈수록 어려워졌다. 매출도 지속적으로 줄었고 인원 감축도 심했다. 그래도 회사는 연구개발 인력을 줄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경쟁사에 비하여 턱없이 부족한 R&D 예산은 회사를 신제품 경쟁에서 뒤처지게 하였고 점점 시장을 잃어가게 만들었다. 회사는 워크아웃을 지나 법정관리에 들어가게 되었고 마침내 VCR 사업을 접으며 우리 팀은 공중 분해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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