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은 정은. 성은 원. 원정은.
정은 씨는 실패작이다. 소히 말하는 사회적인 그 어떤 성취를 얻지 못한 별 볼 일없는 그저 그런 패배자이다. 정은 씨는 어린 나이에 부모의 불륜을 목도한다. 그 뒤로 정은 씨는 이성을 믿지 않게 됐다. 아니, 사실은 단 한 번도 믿은 적이 없었다. 더 포괄적으로는 사람이라는 종족에 대한 불신이 태동했다. 사람은 과연 믿을 만 한가? 애당초 믿어야 할까?
정은 씨의 유년기는 가부장적인 아버지 밑에서 의기소침하고 본인의 주장을 무시당하여 사랑을 갈구하는 그런 의존적인 아이로 자라 버렸다. 단 일말의 호의를 비추면 정은 씨는 앞뒤 재단하지 않고 곧장 돌진을 하는 그런 진취적이지만 저돌적인 사람이다. 본인의 사랑을 거절당하거나 그에 걸맞은 반응을 얻지 못할 시에는 정은 씨는 꽤나 서운하고 급진적으로 화가 난다. 정은 씨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것에 큰 행복감을 느끼는 무지한 존재인 동시에 불쌍한 존재이다. 이 얼마나 강압적인 행위와 사고인가?
정은 씨의 하루는 단출하다. 눈을 뜨기 싫다. 이 쳇바퀴 같은 하루가 정은 씨의 동공을 뒤덮으면 시야확보가 어렵다. 중압감에 눌린 아침을 또다시 반복한다. 그 자체로 중압감을 형성해 정은 씨를 짓누른다. 오늘 정은 씨는 하기 싫은 일을 벌써 두 개나 처리했다. 하나는 밥을 먹고 곧바로 설거지를 완료한 것이고, 또 하나는 부모님을 목적지까지 데려다 드린 것이다. 정은 씨는 운전을 극도로 싫어한다. 아니 바퀴 달린 운송 수단을 겁내한다가 더 정확한 이유이다. 하지만 두 번째 감정을 육성으로 꺼내는 일을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바퀴 달린 것을 무서워하는 사유가 있긴 하지만 사유의 정당성과 유효기간이 논의해봐야 할 대목으로 변주되는 것이 불편할뿐더러 그 후에 연쇄적으로 받을 심판의 눈빛이 매우 정은 씨를 안절부절못하게 했다. 정은 씨와 바퀴 달린 것들 사이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을 다 경청해 주고 진정으로 공감받기 어렵다는 이유에서 정은 씨는 소위 트라우마라고 부르는 정신적 외상을 수면 위로 끌어내지 않는다. 정은 씨의 사고는 이해받지 못할 거면 차라리 존재하지 말자라는 관념을 중심으로 구축되어 버렸다. 이러한 사고를 가진 정은 씨는 천연덕스럽고 비굴하다.
이런 정은 씨를 사랑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