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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발로 툭툭 차고 싶다.

by Dear Lesileyuki

7층 중증암병동 <날라리 삼총사>의 결과가 궁금했다. 수술 후 운동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간호사의 말 때문이라도 암 병동을 한 바퀴 돌 필요가 있었기에 직접 가서 확인하기로 했다. 한번 움직일 때마다 나를 따라다니는 여러 부속물 때문에 죽을 맛이지만 그래도 밤에 고통에 신음하는 노인보다는 나은 거라고 자신을 스스로 위로하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예전에 원기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해서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던 나는 ‘잊어주세요’가 되어버렸음을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실감한다.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마흔넷의 여자가 죽은 특실 근처는 제외하고 빙빙 돌며 병동을 산책한다. 그곳만 가면 그날 울고 있던 소녀의 모습이 떠올라서이기도 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생전 처음 본 죽음의 현장을 피하고 싶기 때문이다. 시트를 들고 복도를 달리던 간호사, 엄마의 급작스러운 죽음에 어쩔 줄 모르고 울음을 터뜨리던 소녀, 친정엄마의 애간장을 녹이는 듯한 처절한 울음소리. 그날의 모든 것이 뇌리에 박혀 잊히지 않는다. 언젠가 갑작스러운 나의 마지막 날에 연출될 수도 있는 장면일 수도 있기에.

혹시라도 영혼이 딸 때문에 그곳을 못 떠나고 배회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말도 안 되는 나의 상상력 때문에 처음엔 얼씬도 하지 않았다. 2인실에서 6인실로 가려면 특실을 지나쳐 가는 것이 제일 빠른데도 나는 그런 이유로 빙 돌아서 6인실로 갔다.

6인실은 그 사이 몇몇 침대는 다른 사람들로 물갈이가 되었다. 금옥 여사가 환자복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맞은편 침대의 새로운 환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무튼 타고난 사교성이다.

금옥 여사가 링거에 오줌주머니까지 달고 나타난 나를 보고 반색한다.

“2인실 좋아?”

“아뇨. 여기가 더 좋아요.”

“소변 주머니는 아직도 달고 있어?”

“실패했어요. 방광이 아직도 제 임무를 망각하고 있어서…. 그런데, 결과 나왔어요?”

나는 입원하는 첫날부터 활짝 웃던 문숙 할머니의 빈 침대를 보며 물었다. 빈 침대 옆엔 할머니의 딸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딸의 얼굴이 몹시 어두웠다.

“수술 들어가셨는데 벌써 열 시간 째야.”

걱정이 얼굴에 가득한 금옥 여사가 빈 침대를 보며 말했다.

“왜?”

“열어보니까 여기저기 전이가 됐데…. 다 조금씩 전이가 됐다네.”

남의 일 같지 않은지 금옥 여사의 표정이 심란하다.

“아….”

나는 탄식을 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입원할 때만 해도 날라리 삼총사의 리더답게 밝게 웃으며 ‘살 빠져서 좋아했더니 그게 암이래서 그랬던 거더라고 나도 참 미련했어.’라고 하셨는데, 열 시간 동안이나 수술 중이라는 말에 할 말을 잃었다.

“아줌마는 결과 나왔어요? 난소에 종양 있다는 거 뭐래요?”

“나도 난소암 이래. 방광에도 전이가 됐다는 거 같아.”

금옥 여사의 얼굴이 어두워진다.

“오래되진 않았다죠?”

“그런 거 같기는 하다는데. 그래도 심란하네. 10년 전에 자궁 들어낼 때 아예 난소를 없앨 걸 그랬나 봐.”

“잘 될 거예요.”

나는 금옥 여사를 애써 위로했다. 이심전심이란 말이 요즘처럼 실감 나는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다.

그때 화장실에서 푸들처럼 파마해서 머리를 부풀린 티나 여사가 나왔다. 역시 얼굴이 어둡다. 그녀를 그림자처럼 시중들던 남편이 그녀가 나오자 일어나서 부축한다. 늦게 결혼한 탓에 둘 사이에 아이가 없어서 신혼 같다는 그녀의 남편은 아내를 지극정성으로 챙겼다.

그녀가 나를 보더니, 반색하며 다가왔다.

“오줌줄 아직도 달고 다녀?”

“소변보는 거 밤새도록 연습했는데 실패해서 다시 달았어요. 너무 힘주다가 피 주머니 떼어낸 자리가 터져서 마취 없이 이상한 철심 같은 걸로 여덟 번 씀 박았는데 순간 너무 아파서 욕 나오더라고요.”

“마취하고 하지?”

“않는 게 덜 아프다던데요? 그나저나 결과는”

갑자기 티나 여사가 씁쓸한 미소를 짓는다. 가만히 보니 하루 사이에 6인실을 채우던 <날라리시스터즈>의 명랑 쾌활 모드가 사라졌다. 순간 또 불안해진다.

“...... 폐에 종양이 있데. 항암 치료받으라는데. 작아서 수술도 못 한대”

“아….”

다시 할 말이 없어진다. 전후 사정이야 어찌 됐든 간에 나야 이미 암으로 인해 날릴 건 날리고 수술한 이후 집에서보다 더 편하게 보내고 있는 처지라 이제 막 암이란 사실과 마주한 그들에게 해줄 말이 없었다.

“그래도 작다니까 다행이지 뭐.”

역시 낙천적인 티나 여사가 웃으며 말한다.

“나도 낼 그 옆방으로 가야 해.”

금옥 여사가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원래대로라면 오늘 퇴원해야 하는데 혹이 난소암으로 판명되는 바람에 입원하고 수술하게 된 금옥 여사는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정말?”

“친구로 지내게 생겼네?”

조금 전까지 걱정이 한가득이던 금옥 여사가 신이 나서 말한다.

“아휴 저야 좋지요.”

병원에서는 이상하게 30분만 지나면 금방 친구가 된다. 처음에 입원했을 때는 항암 치료로 인해 머리카락이 한 올도 없는 사람들이 지나다닐 때마다 한숨이 나오곤 했는데 이제는 누가 더 근사한 모자를 썼는지 평가를 하는 습관까지 생겼을 정도다

휴게실에서 금옥 여사와 티나 여사랑 나란히 앉아서 자판기 커피를 마셨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사람들처럼 창가에 앉아서 한강의 지는 저녁놀을 바라봤다. 환자복을 입은 세 명의 여자가 못난이 인형들처럼 창가에 붙어서 붉은 놀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이상한지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한 번씩 보고 간다.

“지는 저녁노을이 참 곱다. 누가 저런 색으로 스카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역시나 청회색과 살구색 그리고 짙은 산호색으로 물든 하늘을 보며 감상적인 티나 여사가 감탄한다. 그녀의 눈빛 속에서 붉은 놀이 춤을 춘다.

“인간의 노을은 곱지 않으니 큰일이지.”

금옥 여사가 중얼거렸다.

“왜요?”

나는 노을이 아니라 눈물이 살짝 걸린 금옥 여사의 눈을 보며 물었다.

“날 봐, 나이 들고, 머리는 염색약 없으면 안 되고, 병들고…. 그냥 낙엽 지듯이 훅하고 떨어져서 사라질 수는 없는 걸까? 자식들도 다 키워서 시집, 장가보냈으니 아쉬운 것도 없고.”

난소암 판정이 금옥 여사를 우울하게 했다. 자궁암 수술 10년 만에 다시 암이라니 그럴 만도 하다. 환자복 주머니에 손을 넣고 서 있는 그녀의 작은 체구가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덩달아 내 마음도 습해진다.

문숙 할머니가 드디어 수술실에서 병실로 귀환했다. 그녀의 가족들이 모두 침대 곁으로 달려들었다. 정신을 차리지 못한 문숙 할머니의 모습을 보는 나나 티나 여사, 금옥 씨 모두 심란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틀 전까지만 해도 깔깔대며 장을 비우는 약을 함께 먹고 소풍처럼 병원 생활을 나름 즐겁게 보냈는데 수술실에서 나오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의사의 말로는 너무 전이됐단다.

같이 지켜보고 싶었는데 문숙 할머니가 깨어나는 걸 보지 못하고 이인실로 돌아왔다. 갑자기 가을이 병실에 있다고 카톡을 보냈기 때문이다. 수술은 했으니 퇴원할 때까지 조용히 병원 생활을 즐길 작정으로 누구도 오지 말라고 했는데 갑자기 가을이 나타났다니까 왠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정말 가을이 연애라도 하는 걸까?

소변 주머니를 건 행거를 밀고 병실 안으로 들어섰다. 가을이 창가에 앉아서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파란 셔츠를 입고 긴 머리를 고무줄로 묶은 가을의 하트형 얼굴이 눈부시다. 나는 냉장고 속에서 말라가는 레몬 같은 신세인데 말이다.

사월 같은 가을이 나를 보고 환하게 웃는다. 정말 사랑을 하는 것 같다. 유난히 발달한 작가적 촉이 그렇다. 그런데 왜 나에겐 숨겼을까? 갑자기 심술이 나려고 한다.

소변 주머니를 정리해서 걸고 침대에 어기적거리며 올라가 앉았다. 진땀이 나고 열이 확 오른다. 이게 모두 호르몬 탓이라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결국 인간이란 호르몬의 조정을 받는 하찮은 존재란 말인가? 짜증이 나서 한숨이 나왔다. 무심코 침대 옆을 보니 사이드 테이블에 난데없는 화분이 놓여있었다. 노란색 카랑코에 이다. 분명 가을의 취향은 아니다.

옆의 노인은 잠이 들었고, 간병인이 전화하는 가을을 살그머니 옆 눈으로 살피고 있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딸내미가 이쁘네’ 한다. 나는 가능하면 그녀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아서 어설픈 웃음으로 마무리하고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엄마는 환자가 어딜 그렇게 다녀?”

전화를 끊은 가을이 말했다.

“6인실에 있을 때 사귄 아줌마들 보러 갔었어.”

나는 꼬인 링거액 줄을 풀면서 말했다. 왠지 가을과 눈을 맞추기가 싫었다. 왜냐하면 순간 나는 가을의 뒤에 있는 남편의 흔적을 봤기 때문이다.

“엄마 혼자 있는 거 좋아하지 않았어?”

“아니거든.”

“그래? 맨 날 엄마 사유할 시간이 없어서 명작을 못 쓴다고 울부짖던 걸로 기억하는데.”

"각설하고 내가 오지 말라고 했는데, 웬일?”

“모처럼 시간도 나고, 우리 작가님 또 병원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단편소설 거리 없나 헤집고 다닐 것 같아서 와 봤지. 어때?”

“난생처음이야. 매일 밤 숙면해 보기는. 생선이 좀 많이 나와서 그렇지. 밥도 먹을 만하고. 밑에 거의 백화점에 버금가는 쇼핑센터도 있고, 카페도 있고, 아주 좋아.”

“설마 소변줄 달고 지하 몰 돌아다니는 거 아니지?”

“운동 삼아서. 돌지 말고 직구로 말해. 아빠가 가보라고 해서 온 거지?”

“아니 왜 아빠 전화는 안 받아서 아빠가 나한테까지 전화하고 카톡에 불나게 만들어?”

“원인 제공자잖아. 상놈의 자식 같으니라고.”

“엄마, 그거였어? 받아들이고 정리된 줄 알았는데 뒤끝 작렬이다.”

가을이 어이없다는 듯이 웃는다.

“주먹이 안 날아간 것만 해도 다행인 줄 알라고 해. 너도 잘 알 거야. 의사니까. 인터넷에 자궁경부암 치면 나오더라. 후진국의 여성에서 많이 발생하는데. 그런데 우리나라는 후진국도 아닌데 남자들의 문란한 생활로 인해 부인들이 감염된다잖아. 나는 결혼한 이후 정말 하늘을 우러러 외길 인생이야. 적어도 성적으로는. 그런데 이런 결과가 나온 게 봄이가 잘 쓰는 말 그래, 아주 빡친다. 뭐, 처음엔 쿨하게, 대인배 정신으로 인정했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냉탕과 온탕을 오락가락해봐라. 용서하고 잊었던 원수도 다시 생각날 판이다.”

“날 잘못 잡았네.”

가을이 천장을 올려다보며 끌탕을 한다.

“무슨 날?”

“엄마한테 소개할 사람 데리고 왔거든.”

“.......... 어디? 누구?”

역시 나의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특히 나쁜 예감은 더 그렇다. 부녀가 아주 나를 쥐락펴락한다.

“잠깐 커피 사러 갔어.”

“오기 전에 간략하게 브리핑해 봐.”

수술한 부위 때문에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서 가을이 무슨 말을 할지 기다렸다. 갑자기 체온이 확 올라간다. 이게 다 사라진 난소 탓이다. 아니 가을의 사랑 탓일 수도 있다.

“연하야. 나보다 여섯 살 어려.”

“미친 거 아냐?”

너무 급하게 몸을 일으키느라 소변줄이 빠질 뻔했다. 그런 나를 딸은 너무도 침착한 얼굴로 바라본다.

“엄마는 작가면서 그런 편협한 사고를 하고 세상을 보면 안 되지.”

“편협이고 나발이고 간에 그럼 스물두 살인데, 군대는 갔다 왔어? 학교는, 전공은?”

나의 상상력은 거기까지였다. 하지만 상상하는 것, 그 이상의 일이 이미 오래전에 벌어졌다. 영리한 딸은 내가 심신이 미약(?)해진 순간을 치고 들어온 것이고.

언더그라운드에서 잘 나가는 로커이고 음악적 열정과 재능은 그 바닥에서 다 인정을 한단다. 그러면 뭐 하나? 재야의 고수는 영원한 재야의 고수로 남을 확률이 더 큰 법이다. 비주류가 주류로 진입하는 것,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아무래도 친정엄마의 저주(?)가 실현된 것 같다.

“결혼을 전제로 사귀려고.”

갑자기 친정엄마의 손뼉을 치며 웃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러고 싶어. 앨범도 낼 거야. 그 애의 재능은 대단해 엄마. 내가 반드시 주류로 만들 거야.”

“개 풀 뜯어먹는 소리 하고 있네. 개구리 수염 나기를 바라지. 재야의 고수는 영원한 재야의 고수야. 그렇다 치고 딸 등신 네 아빠 뒤로 넘어가겠다. 너 그거 평강공주 콤플렉스야. 내가 그거 해봐서 아는데 무지 힘들거든.”

상상이 간다. 남편이 거품을 물고 뒤로 넘어가는 모습이. 그에게는 사위에 관한 로망이 있다. 남편은 아들 같은 사위를 맞이하는 것이 꿈이다. 본인은 교회는 초등학교 이후로 한 번도 나가지 않는 무신론자이고 물신 숭배자이면서 제사 안 지내는 기독교 집안의 둘째 아들을 사위로 맞아서 일요일엔 테니스도 치고, 등산도 같이하는 등등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면서 살았는데 그 모든 것이 일순간 날아가게 생겼으니 말이다.

“분명 아빠 취향은 아니지만, 일단 엄마에게는 소개하고 싶어서.”

“유구무언이다.”

“몸은 어때?”

“병원이 너무 편해서 죽을 지경이다. 잠도 잘 자고.”

“봄이는 미대 간다고 열심히던데.”

“...... 어서들 다 독립해라. 아주 지겹다. 특히 너!”

나는 가을을 노려보며 말했다.

“엄마는 별 같은 세 딸이 있어서 행복한 줄 아셔.”

뭘 해도 당당한 가을의 포스는 도대체 누굴 닮아서인지 모르겠다.

“지랄하네. 별이 될지, 폭탄이 될지는 두고 봐야 아는 것이고. 그리고 하필 왜 이런 때 데리고 오냐? 병원에 널브러져서 힘없고 마음 약해져 있을 때 얼렁뚱땅 넘어가려고 그런 거지?”

“뭐, 안 그랬음 엄마 성질에 그냥 넘어갔겠어? 예전에 내가 날라리 뽕짝한테 화이트데이에 초콜릿 준다고 광분하더니 전날 엄마가 다 먹어 치운 전력이 있는데.”

“걘 인사성도 없고, 정말 날라리 뽕짝이었거든.”

“그런데 이걸 어쩌나 그 날라리가 나랑 같이 레지던트 하는데.”

할 말이 없어진다. 가을이 씩 웃으며 그런 나를 본다.

“정말?”

“어, 정말. 아주 잘 컸더라고. 엄마가 사람 보는 눈이 없어요.”

“그래. 내가 보는 눈은 상당히 없지.”

“어째 뼈가 있는 듯?”

“그나저나 얘는 커피 농장 갔어? 이것 봐라, 사람이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암튼 연애만 해. 연애만 응?”

안타깝게도 가을은 마이동풍 병에 걸렸나 보다. 대답이 없다. 순간 과거의 내가 스친다. 어디서 본 듯한 저 모습과 태도는 과거의 나를 보는 듯했다.

모든 일에는 타이밍이 있다. 적절할 때 나타나 주는 센스조차 없는 한 청년이 커피 두 잔을 가지고 병실 안으로 들어섰다. 옆 침대의 노인이 통증 치료를 받으러 가고, 간병인이 그사이 식사를 하러 갔기에 망정이지 연세가 지긋한 노인들은 눈 뜨고는 못 볼 것 같은 차림새였다.

이가 서 말은 나올 것 같은 치렁치렁한 머리 하며 뭔 쇠사슬 그렇게 주렁주렁 달고 있는지 보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남편이 상상으로 만들어 놓은 딸의 남자친구와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다. 더운 여름에 무좀 걸리기 딱 좋은 부츠를 신은 꼬락서니로 봐서는 분명 교회 근처도 안 갈 것 같은 위인인데 목엔 바로크양식의 십자가가 하나도 아니고 큰 것 작은 것, 두 개씩 걸고 있다. 작은 십자가는 쇠골에 큰 십자가는 푹 파인 셔츠 때문에 드러난 가슴 한복판에 달려 있다. 예수님은 아시는지 모르겠다. 저 청년의 신앙심을. 게다가 테니스 하다가 오 분 만에 쓰러질 것 같은 ‘에겐남’ 스타일이다. 가을이 언제부터 병약 미남 스타일에 꽂힌 걸까?

무표정한 얼굴, 아니 얼빠진 얼굴로 청년을 바라보는 나를 가을이 보며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이다. 예전 그 날라리가 오늘날 의사가 될 줄 알았다면 바로 앞에 있는 이 생날라리를 피할 수 있었을까?

“안녕하십니까, 이 지호입니다.”

커피 두 잔을 손에 들고 선 채로 청년이 인사를 한다. 가위손에 나온 배우를 닮은 게 딱 노래해 먹기 좋은 비주얼이다.

“내가 안녕한 걸로 보여요?”

“아뇨.”

청년이 냉큼 대답한다.

“커피 드십시오!”

청년이 넙죽 들고 있던 커피를 내민다.

나는 말없이 청년의 눈을 보며 커피를 마셨다. 청년이 씩 웃는데 어디서 많이 봤던 웃음이다. 모전여전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생각보다 화는 나지 않았다. 너무 어이가 없어선지 아니면 암 수술하고 나서 모든 일에 무심해진 탓이지 잘 모르겠지만 생각만큼 핏대가 오르지 않았다, 아무래도 암세포가 내 안의 오기와 독기까지 흡수해버렸나 보다.

“엄마, 잠깐 나갔다 올게. 지호 너는 여기 있어. 우리 엄마 좀 챙기고.”

역시 머리 좋은 여우 같은 딸이다. 둘만 있게 할 심산으로 자리를 피하는 가을에게 눈을 흘겼다. 하지만 그 여우 같은 딸은 나의 눈 흘김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알았어. 갔다 와.”

큰 키에 비해 몸이 가는 지호가 휘청거리며 일어나더니 가을의 어깨를 살짝 감싸 안는다. 가을이 활짝 웃으며 여섯 살이나 어린 남친을 본다. 눈꼴이시다는 말이 바로 이런 경우를 말함이리라.

가을이 나가버리자 딸의 어린 연인은 창가에 비스듬히 걸터앉는다. 저도 할 말이 없기는 할 게다. 이리저리 눈을 피하다가 스캔하듯 자신을 바라보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저 웃는다. 웃는 모습이 예쁘기는 하다. 보조개까지 있다. 저 마성의 미소에 훌러덩 넘어온 애들이 가을이 말고 몇이나 있을지 궁금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을에게 투자한 본전 생각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딸의 어린 연인이 바로 앞에서 해맑게 웃고 있다. 몰골은 영락없는 거지 사촌 꼴이라 보고 있자니 한숨이 나온다. 본디 곱슬머리 인지 아니면 파마를 한 건지 모르겠지만 조막만 한 얼굴에 맷방석만 한 머리채가 영 부담스럽다. 어찌어찌해서 결혼한다고 해도 딱 가을이 평생 먹여 살려야 할 것 같은 얼굴이다. 생각만 해도 아득해지는 일이다. 이들의 연애는 결코 결혼까지 가서는 안 된다는 결론을 내린 나는 다시 한번 딸의 연인을 봤다. 역시 무리다.

“전공은 뭐지요?”

“건축입니다.”

“건축과 노래라….”

더는 할 말이 없어진다. 나는 그에게 노란 고무줄로 묶어 놓았던 만두 상자를 건넸다. 그가 가을의 눈에는 신비하고 몽롱한 눈빛으로 보였을 그 멍청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만두는 먹고, 그 노란 고무줄은 버리지 말고 머리 좀 묶어요.”

“아. 제 머리가 싫으시구나.”

딸의 어린 연인이 눈치 빠르게 노란 고무줄로 머리를 매더니 나를 보고 씩 웃는다. 이놈은 눈만 마주치면 웃는다. 저 미소로 가을을 꼬인 걸까? 사내 녀석이 눈웃음이나 흘리고 영 맘에 들지 않는다. 어디서 본 듯한 소년미가 불쾌하다.
“제가 맘에 안 드시죠?”

먹성은 좋은지 왕만두 하나를 입에 다 넣고 우물거리며 말한다.

“그런 것 같아요?”

“당연하죠. 하지만 저는 누나를 사랑해요. 만난 지는 3년밖에 안 됐지만. 처음 만난 순간 필이 확 왔어요.”

돌겠다. 삼 개월도 아니고 삼 년 이란다. 대체 몇 살에 만난 걸까? 아주 애를 키워서 애인으로 삼은 건가? 나에겐 그 삼 년이 ‘삼 년씩이나’인데 딸의 어린 연인은 아쉽다는 듯이 말한다.

갑자기 가족에게 사기당한 기분이다. 나의 DNA를 절반이나 받았고, 골 빠져가며 글 써서 번 내 돈으로 공부를 한 딸이 삼 년 동안 사기를 쳤다. 금값 한 참 오를 때 예물로 받은 금반지, 금목걸이 심지어 다이아몬드반지까지 팔아 공부시켜서 의대까지 보냈는데. 웅장한 미래를 만들어 주고 싶었던 나의 계획은 아무래도 쪽박인 듯하다.

가을이 동생과 병실 안으로 들어섰다. 동생은 가을의 어린 연인을 이미 알고 있었는지 놀라지도 않는다. 아니나 다를까 딸의 어린 연인이 꾸뻑 인사를 한다. 모종의 사전 모의가 있지 않다면 이런 일은 일어날 수가 없다. 완전 삼류소설 버전이다. 그 버전에 동생이 참여했다는 사실 때문에 버럭 울화가 치민다. 내가 그가 쌓은 공든 탑은 이미 황성옛터 버전으로 전락했다.

동생은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얼굴이다. 유사 이래 배반자는 늘 곁에 있었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뭐 언니도 사랑을 해봐서 알잖아?”

동생이 씩 웃으며 말한다.

“입 열면 죽는다. 아무리 네가 내 동생이고, 암 수술하는 동안 내 시중 들어줬지만. 한가을 이젠 가보시지?”

“왜?”

“지호 군도 일 있을 거 아냐?”

“얘 일없는데. 오늘 나도 오프고.”

“그럼 만들어. 암튼 반가웠고, 고마워요.”

나는 가을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놈의 삼 년 사귀었다는 말만 안 들었어도 이렇게 화가 치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떻게 삼 년을 감쪽같이 속일 수 있느냐 말이다. 딸년이 연애 지능사기범으로 변하는 것은 순식간이다. 가을을 앞에 두고 내가 안 키우고 자연과 시간이 키웠다고 지난날 큰소리쳤던 것은 다 뻥이고 오만이었음을 인정한다. 나의 피와 땀과 기원으로 키운 딸의 배반으로 나는 돌 지경이다.

“다음에 또 찾아뵙겠습니다.”

긴 몸을 구십도 각도로 접으며 인사하는 연인을 딸년은 어머니 같은 미소를 지으며 바라본다. 이럴 때 나는 엄마의 단골 멘트였던 ‘밸 빠진 년’ 소리를 안 할 수가 없다.

“아, 그 말은 안 들은 걸로.”

“네?”

“죽 입원해 있으란 말이잖아.”

“그럼 재발하지 마시고, 건강하세요.

해맑아도 너무 해맑은 딸의 어린 연인을 보고 있으니 억울해서 눈에서 불이 나오려고 한다. 믿었던 가을이 내 머리 위에서 놀고 있던 걸 나만 모르고 있었다.

세상에 많고 많은 남자 중에 얼마든지 마음만 먹으면 고를 수 있는 조건을 패대기치고 제 엄마 딸 아니랄까 봐 사랑에 몰빵을 했다. 아니 나보다 더 멍청한 선택을 했다. 더 화가 나는 건 영민해 보이는 가을과 상거지 같은 차림에 날라리 뽕짝 같은 로커, 지호가 너무나 잘 어울린다는 점이다.

가을은 내게 주치의 선생 말 잘 듣고 퇴원할 때까지 공손하게 잘 지내라고 잔소리를 했다. 아마 소변 주머니만 달고 있지 않았다면 예전처럼 이단 옆차기를 했을지도 모른다.

“됐고, 사라져라.”

“엄마 지금 꺼지라고 말하고 싶은데 지호 때문에 사라지라고 한 거지?”

가을이 싱글거리며 물었다. 생전 않던 애교까지 부리는데 도무지 접수가 안 된다. 그야말로 주먹을 부르는 애교이다.

“한가을, 어디다 대고 애교질이야! 하나만 물어봐도 되나요, 지호 군?”

“뭐든지.”

“앞으로 죽 로커 할 거예요?”

“네 다음 생에도 할 겁니다.”

뭐가 그렇게 신이 나는지 잘도 웃고 시원스럽게 답을 한다.

“그냥 이번 생에만 해요. 뭘 다음 생까지 하고 그래. 가을이 왜 만나요? 내가 알기로 쟤는 좋은 여자친구가 될 재능이 별로 없는데.”

“알아요. 자기 맘대로 하는데 같이 있으면 행복해요.”

그 순간 또 가을과 딸의 어린 연인 지호가 눈을 맞추며 웃는다.

“이제 가봐. 엄마도 쉬어야지.”

눈치 빠른 동생이 두 연인을 거의 몰아내다시피 하면서 병실에서 내보냈다.

나는 더는 할 말이 없다. 사랑은 나도 해볼 만큼 해본 사람이기에. 하지만 그 무모함과 허무함을 알기에 불안하다. 아마 남편은 당분간 모르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커피 맛 참 우울하다. 커피나 사랑이나 식으면 죄다 우울해.”

창가에 선 동생이 딸의 연인이 사 온 커피를 마시며 말했다.

“나도 우울하다. 딸년이 나한테 삼 년간이나 사기를 치고.”

“하긴 의외야. 나는 어릴 때부터 별종이고 야무져서 변호사나 같은 의사하고 결혼할 줄 알았는데 참, 인생 아이러니하네. 하긴 언니도 아이러니하게 결혼하긴 했다. 모전여전인가? ”

“죽는다. 너.”

핏대를 올리며 그렇게 말했지만 역시나 유구무언이다.

“그나저나 형부는 당분간 모르는 게 났겠지?”

“보고도 모르니? 걔가 형부가 납득하고 접수할 수 있는 비주얼이니?”

“허긴. 그래도 정리 좀 하면 죽여주는 비주얼이던데 뭐.”

“너도 비주얼이냐? 인물 뜯어먹고 사는 것도 아닌데.”

“언니도 인물 봤어. 형부 인물이 좋잖아. 나는 사실 그 성격 무지 좋은 윤재오빠랑 결혼할 줄 알았거든. 그거 모르지? 언니 대학 어디 지원할 거냐고 매일 전화했었어. 결국 서울대 안 가고 언니가 간 대학원서 내더라. 그리고 내가 이 말은 안 하려고 했는데 윤재 오빠, 언니 수술하던 날 제주도에서 올라왔었어. 저 수국 오빠가 가지고 온 거야. 언니 얼굴 한번 보더니 깨기 전에 간다고 가더라.”

“그랬어?”

“어. 언니한테는 비밀로 하라고 해서 내가 지금까지 입 다물고 있었다. 근데 둘이 뭐야? 정말 미스터리야. 그 긴 시간 동안 남녀가 부부가 아닌 친구로 그렇게 만날 수 있는 거야?”

“.......”

예전이라면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단언컨대 ‘그렇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가 없다. 역시 흔들리는 중년에서 나 역시 예외일 수는 없는 것일까?

“나는 언니가 결혼할 때 그런 생각을 했어. ‘아, 인생은 참 맘대로 안 되는구나’라고.”

“그게 뭐 대단한 비밀이라고 말을 안 해?"

“윤재 오빠가 언니 딱 3분 보더니, 비행기 시간 때문에 가야 한다며 부탁하던데 언니 걱정한다고.”

“지 마누라 걱정이나 하지….”

나는 말없이 수국을 바라봤다. 처음엔 청보라였다가 서서히 빛이 바래며 분홍빛으로 변해가는 수국이 그가 두고 간 마음 같아서.

“암튼 언니도 엄마에게 예측불허였듯이 가을이도 그런 그거로 생각하면 좀 위로가 될 거야. 사실 엄마가 언니에게 좀 공을 들였어? 전두환이 과외 금지하기 전까지 흑석동 족집게 과외 선생에게 보냈지. 대학 갈 때는 무릎연골 다 닳을 정도로 절에 가서 기도했지, 정말 엄마는 할 만큼 했다.”

맞다. 나 역시 엄마의 기획 상품이었다. 내가 가을을 두고 기획했던 것처럼 말이다. 수녀가 되고 싶었고 시인이 되고 싶었던 엄마는 본인이 이루지 못한 꿈을 나에게 대입했다. 초등학교 일 학년 딸을 고전 읽기반에 등록시키고, 다행히 책을 좋아하고 재능이 보이자 신이 난 엄마는 내게 무한정 책을 사주셨다. 소설로 등단이라는 본인이 이루지 못한 작가의 꿈을 실현해 주었을 때 엄마는 너무나 감격해서 나에게 보라색 원피스를 사주셨다. 빨강이 아닌 보라색으로. 나는 그 보라색 원피스를 입고 미팅에 나가서 남편을 만나고 첫눈에 반해서 결혼했다.

친정엄마는 결혼식 당일 웃고 있는 딸을 보며 얼마나 패주고 싶었을까? 지금 내가 가을을 보면 그런 기분이 든다. 역시 인생은 돌고 돈다.

내가 수술하는 동안 남편은 중남미로 출장을 갔는데 윤재는 제주도에서 올라와 여섯 시간 동안을 기다리고 있었단다. 나는 창가에 놓인 수국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생각했다. 수국을 닮은 보라색 원피스를 입고 도대체 왜 나는 그날 미팅을 나갔을까?

인제 와서 인생은 대체 왜 나한테 이럴까?

정말 발로 툭툭 차주고 싶다. 아니 이단 옆차기로 날려버리고 싶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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