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밤 나를 바라보는 달빛이 참 슬펐다. 그래서인지 오전 내내 서러웠다. 갑자기 마음의 습도가 높아지더니 건드리기만 해도 주루륵 흘러내릴 것 같았다. 귀퉁이가 찌그러진 블라인드도 찔끔거리는 것 같은 건 온전히 기분 탓일까? 밥도 절반도 채 먹지 않고 남기자 동생이 커피라도 사 오겠다며 나갔다. 동생이 틀어 놓고 간 SNL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입에서 나도 모르게 ‘거지 같다’라는 말이 튀어나와 버렸다. 어느 노래의 가사처럼 16층에서 지하 3층으로 떨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오락가락하는 감정을 추스를 수가 없을 정도로 화가 났다. 벽을 부술 수만 있다면 부숴버리고 싶었다. 미친 듯이 욕을 하고 싶었다. 내가 아는 욕이란 욕은 죄다 중얼거리고 있는데 청소해 주시는 아주머니가 들어왔다. 그녀는 내가 중얼거리는 욕을 들었는지 흘깃 한번 보더니 비어 있는 옆 침대로 가서 말없이 시트를 정리한 후 조용히 나갔다. 이어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붉은 스카프를 한 여자가 대뜸 들왔다. 그녀는 무엇이 맘에 안 드는지 못마땅한 얼굴로 병실을 둘러본다. 나 역시 그녀가 마음에 안 들었다. 왜 그런 사람이 있다. 보는 순간 그냥 싫은 사람.
“지랄했다고 병실을 옮겨. 1인실에 있지.”
그녀의 느닷없는 소리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혹시라도 그녀와 눈이 마주칠까 봐서 슬그머니 시선을 천정을 돌렸다. 정말 마음에 안 드는 여자다.
“저기, 글쎄 1인실에 있다가 갑자기 2인실로 옮긴다지 뭡니까?”
초면의 그녀가 다정하게 나를 부르더니 말했다. 맥락 없이 대뜸이다. 내가 저를 언제 봤다고. 그러나 병실 안에는 그녀와 나 단둘뿐인지라 이제는 그녀를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네?”
“1인 실에 있었거든. 근데 갑자기 이인실로 가잖아.”
“따님이요?”
함부로 말하는 게 엄마와 딸 쯤의 관계로밖에는 생각되질 않아서 그렇게 물었다.
“딸은 무슨. 간병인이야 나. 근데, 내가 집안일도 하고 간병인 노릇도 하는데 월급은 쥐꼬리야.”
평생 싸라기 반 토막만 드시고 사셨는지 그녀는 초장부터 반말이다. 그녀의 요사스런 혀를 반토막 내버리고 싶었다.
“집에서는 잘 돌아다니면서 병원에 항암 치료만 받으러 오면 그렇게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날 부려. 아주 죽는시늉한다니까.”
결코 자연산이 아닐 것 같은 쌍꺼풀눈가에 불편한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그녀는 첫눈에 보기에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이는 육십 후반 정도 됐을까? 몸은 날렵하고 군살 하나 없어 보였다. 그러나 손가락만은 실체를 숨길 수가 없었다. 누런 금반지가 끼워진 험한 손은 마디마디가 튀어나와서 평생 거친 일을 해왔음을 말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심하신가 봐요?”
“심하긴. 삼 년 전에 자궁 수술받고 입원해서 항암 치료받고 퇴원하고 그래. 돈 준다고 아주 나를 볶아먹어. 밤엔 내가 잠을 못잖다니까. 그리고 낮에 자. 그러니 내가 미치지.”
내 눈에는 그녀가 1인실에서 마음대로 텔레비전 보고, 쉴 기회를 박탈한 것에 불만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차피 그녀의 사모님은 말처럼 낮엔 잠만 잘 터이니 말이다.
처음 본 순간부터 불평하던 그녀가 갑자기 사라지더니 잠시 후 노인을 태운 휠체어를 밀고 들어 왔다. 그녀는 조금 전과는 달리 노인에게 말끝마다 계속 ‘사모님’ 자를 붙이며 지극 정성이었다. 아수라가 따로 없었다. 사람의 목소리와 표정이 저렇게 달라질 수 있는지 그것도 재주라면 재주다.
그녀가 말하는 ‘사모님’은 귀티가 흐르는 노인이었다. 빠진 머리카락 때문에 검은 모자를 쓴 노인은 간병인의 부축을 받으며 겨우 침대에 올랐다. 몸 하나 가누기조차 어려워 보이는 노인은 손이 예뻤고, 기력이 빠졌음에도 안경 너머의 눈빛은 예리했다.
“아줌마, 나 진통제 좀.”
“아까 먹었잖아요, 사모님. 이렇다니까, 또 잊어버렸어.”
그녀가 나를 슬쩍 보며 웃는다. 누렇고 비버처럼 큼지막한 왕이빨 사이로 흘러나오는 그 웃음이 너무 교활했다.
“그랬나? 그런데 너무 아파서.”
노인이 힘없는 목소리로 말하며 허공을 쳐다본다. 노인은 침대 옆 사이드 테이블 위에 놓인 책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입원한 이후로 나 말고 책을 들고 온 환자는 노인이 처음이라 그녀의 책을 유심히 봤다. 여행 서적 두 권이었는데 하나는 이탈리아 다른 하나는 프랑스를 소개한 책이었다. 둘 다 lonely planet에서 나온 여행 책자였다.
여행을 가고 싶은 걸까? 아니면 가봤던 곳을 추억하기 위해 들고 온 것일까? 갑자기 노인이 지나온 이력이 궁금해진다.
노인은 계속 아프다고 호소를 했다. 하지만 간병인 여인은 노인의 아픔을 무시했다. 간병인이 또 시작됐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며 웃었지만 나는 그런 그녀의 웃음이 싫었다. 몸에 착 붙는 검은 바지로 인해 드러난 엉덩이도 너무 싫었고 그놈의 빨간 스카프도 싫었다.
그녀와 눈을 마주치기 싫어서 여기저기로 눈을 돌리고 있는데 때마침 동생이 커피 한잔을 사 들고 왔다. 이 인실 병원이 갑자기 진한 원두커피 향으로 인해 채워지고 덩달아 가슴이 울렁거렸다. 너무 마시고 싶었던 커피인지라 냉큼 받아 들었다.
“그런데 커피 마셔도 돼?”
동생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묻는다.
“자궁경부암은 메커니즘이 다르다는데?”
“누가 그래?”
“하느님 다음이신 주치의 샘이 그러던데.”
모처럼 만의 커피가 들어가 선지 심장이 기분 좋게 뛰었다.
“형부가 또 전화했는데 왜, 전화 안 받아?”
“그냥 심란해. 받고 싶지 않아.”
나는 정말 남편의 전화를 받고 싶지 않았다. 머나먼 니카라과에서 수시로 하는 전화가 감동적이지 않은 이유는 이 모든 것의 원인 제공자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또다시 노란 카톡이 떴다. 남편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는 척하고 싶지도, 나의 상황을 알려주기도 싫었다. 무관심한 그쪽 집안의 전화도 받지 않았다. 구구절절 나의 상태를 설명하기도 싫었고, 나를 걱정하는 듯한 형식적인 말들도 듣기 싫었다. 이 시점에 남편과 나의 정서적 거리는 한국과 니카라과의 거리만큼 떨어져 있음을 실감한다. 당분간은 그를 내 곁에서 치워버리고 싶다.
다시 밤이 됐다. 병원에 있어서 좋은 점은 완벽하게 혼자라는 점이다. 암으로 인해 입원하지 않았다면 내가 이런 고요한 상황을 맞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한 번도 고요해 본 적이 없는 인생이라. 갑자기 나의 시간에 우아함이 끼어든 것 같고, 드디어 내 몸에서 자궁 림프 난소를 제거하고 사유라는 것을 하게 된 셈이다.
암에 걸려서 수술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러니하게 나는 세 딸과 남편이 없는 이 시간이 너무나 좋다. 한 번도 그들과 완전히 분리된 삶을 살아본 적이 없어서일까? 암만 아니라면 콧노래까지 나올 지경이다. ‘사유하고 읽고 쓰고’가 전부인 단순한 시간이 눈물 나도록 좋다.
그러나 6인실과는 달리 2인실은 밤이 우울했다. 하지만 나는 그 한밤의 미묘한 우울조차 즐기고 싶었다. 딸들과는 통화가 아닌 카톡으로 안부를 전했다. 침대에 앉아 있으면 마치 나만의 둥지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허 편집장이 가져다준 아이패드와 핸드폰만 있으면 내가 원하는 때 언제든 세상과 일방적인 소통할 수 있고. 그러고 싶지 않으며 전원을 꺼버리면 그만이다.
동생은 집으로 돌아가고, 커튼을 친 채 웅크리고 앉아서 또다시 정약용의 시집을 읽었다. 유배지에서 쓴 그의 시를 읽으며 비록 암으로 인해 갖게 된 시간이지만 나의 기분 좋은 유배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했다. 이 시간이 영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렇게 나를 위로했다.
한밤중에 고통을 참느라 내는 가는 앓는 소리가 들렸다. 옆 침대의 노인이 내는 신음이었다. 밤에 잠을 못 잔다던 간병인은 간간이 코까지 골며 잔다. 돌아누운 노인의 앓는 소리가 조용한 병실의 하얀 벽에 달라붙는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했다.
이 주간 달고 있던 소변줄을 빼면 집에 보내준다는 주치의 말에 2시간 간격으로 소변을 체크하느라 침대를 오르락내리락하다가 옆 침대를 우연히 보게 됐다.
낮에 쓰고 있던 검은 모자는 잠을 자느라 벗어서 머리카락이 한 올도 없는 노인의 머리가 희미한 불빛 아래서 반짝이고 있었다. 노인은 신음하며 모로 누웠다. 간이침대에는 붉은 스카프를 맨 간병인이 자고 있었다. 모포를 목까지 덮고 노인과는 달리 너무도 편안하게 잠들어 있다.
순간 낮에 노인이 치료받으러 간 사이에 그녀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평생을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떠받들려 살아선지 지가 마신 물컵 하나 안 치우고 그 자리에 놓고 가버린다니까. 그러면 뭘 해? 평생 내 손으로 벌어먹은 내가 더 건강하잖아. 안 그래?”
놀랍게도 노인보다 두 살 적다는 그녀는 자랑스럽게 말하며 노인이 누워 있던 침대를 보며 비웃듯 웃었다. 결국은 누구나 평등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건가? 하지만 그녀는 모른다. 죽음 앞에서는 평등할지는 모르지만, 병 앞에서는 평등하지 않다는 걸. 그녀도 언제인가는 돌보는 ‘사모님’처럼 병에 걸릴 것이고 그 순간 불평등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화장실에 들어가려는데 얼핏 노인과 눈이 마주쳤다. 나는 슬픈 눈빛의 노인에게 습관처럼 웃어주었다. 노인도 달빛 그림자 같은 미소를 내게 보였다. 노인이 내게 말하는 것 같았다. 소변 그것쯤은 별거 아니라고.
밤새도록 노력한 보람도 없이 소변량을 통과하지 못했다 나는 분명 200cc를 받아서 신이 나서 들고 갔는데 간호사가 내 배를 만져보더니 더 있는 것 같다며 인위적으로 소변을 뺐는데 무려 350cc가 나왔기 때문이다. 절망이다. 내일 집에 가기는 다 틀린 셈이니까.
회진을 돌던 주치의가 소변을 자력으로 보지 못하면 주말에도 집에 가지 못할 거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더구나 며칠 전의 긍정적인 메시지와는 달리 조직검사가 오래 걸리고 이상 있을 시에는 늦어질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순간 머릿속이 쥐가 나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던지고 무림 고수처럼 흰 가운 자락을 날리며 표표히 사라지는 주치의 선생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또 시작이다. 지엄하신 그 말씀 ‘모든 것은 검사 결과에 따라서’가 다시 시작되려고 한다. 그렇게 다독여 놨음에도 불구하고 가슴이 철렁한다. 화장실 앞에서 검사 결과 때문에 방사선 치료나 항암 치료받아야 한다고 우울해하던 6인실 동기 환자를 봤기 때문에 심란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소변 문제도 스스로 조절하지 못하고 있으니. 콜라 한 캔 정도의 소변량이 나를 슬프게 한다.
아침밥이 제대로 넘어가지 않았다. 밥알이 입에서 구슬처럼 맴돌아 발효되어 술이 되기 일보 직전이다.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고등어가 또 나왔다. 고등어 앞에서 거의 묵념 수준으로 밥을 바라보고 있는 내게 노인이 말을 걸어왔다.
“안 넘어가지요?”
노인 역시 밥을 앞에 두고 고민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네. 제가 다 잘 먹는데 생선은 좀. 전생에 아마도 제가 생선이었나 봅니다.”
“아줌마?”
노인이 웃더니 옆에 서 있던 간병인을 부른다.
구석에서 이제나저제나 노인의 아침 식사가 끝나기만을 기다리던 간병인이 슬리퍼를 질질 끌며 노인의 앞에 와서 선다. 또 무슨 심부름을 시키려고 그러냐는 눈빛이다.
“가서 커피 두 잔이랑 샌드위치 두 개 사 와요.”
그 순간에는 오랫동안 사람을 부리며 살아온 사람의 여유와 포스가 느껴졌다. 어젯밤에 진통제에 취해서 몸을 가누지 못하던 노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사모님 좀 걸릴 텐데?”
“그래도 사 와요. 어제 저 이가 딸기도 줘서 영감님이 잘 먹었잖아.”
어제 동생이 사 온 딸기를 마침 영감님이 병문안을 왔기에 혼자 먹기 뭐해서 건넸던 걸 기억하고 있었다.
“그냥 나눠 먹은 건데요.”
“그래도 고맙지. 아줌마, 어서 다녀와요.”
간병인이 그녀의 ‘사모님’ 에게 돈을 받고 나갈 준비를 하는데 영 못마땅한 얼굴이다. 마지막에 아줌마도 먹고 싶은 거 사 먹으라고 하자 그제야 문을 닫으며 활짝 웃는다.
갑자기 단둘이 되자 할 말이 없었다. 노인은 종일 잠을 잤고, 나 역시 커튼을 치고 소리를 줄인 텔레비전을 보거나 책을 읽었기에.
“내겐 시간이 없어요. 할 것도 없지. 남은 건 맛있는 거 먹는 일뿐인데 나도 생선은 정말 싫거든.”
갑자기 노인이 말했다.
“예….”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아요. 그래도 길지가 않아.”
과거에 여대 학장이었다는 노인은 정신이 있을 때는 눈이 반짝거렸다. 그런 눈으로 노인이 나를 본다. 나이 들어서도 웃는 모습이 예쁜 노인이 젊었을 때 얼마나 귀티가 나고 아름다웠을지 상상이 간다.
“참 이쁘세요.”
달리 할 말이 없어서 그렇게 말했다.
“내가?”
노인이 담담한 표정으로 나를 본다.
나는 노인의 표정에서 모든 것을 놓아버린 사람의 초연함을 읽었다. 암 환자는 서로의 병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다. 밖에서 볼 때는 암이 놀랄만한 일이지만 암 병동 안에 들어서면 일상일 뿐이다. 미래를 사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살고 있기에 오늘만을 본다. 그러나 노인은 그 현재도 보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한때 여대의 학장이었고, 누구보다 지적인 삶을 영위해 왔을 터인데 고통에 힘들어서 의식을 잃고 진통제에 의지해서 하루를 소멸시키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슬퍼진다.
암이라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망치로 맞는 것 같았어도 눈물 같은 것은 흘리지도 않았다. 수술 실로 갈 때도 누구는 서러움에 눈물을 흘렸다는데 나는 그런 것도 없었다. 그런데 바로 옆 침대의 노인을 보는 순간 눈물이 나려고 했다.
퇴원과 입원을 번복하며 항암 치료를 받는 노인은 삶에 기대하는 것이 없었다. 그냥 하루를 보낸다고 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기에 유일하게 할 수 있는 먹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다.
간병인이 지하 몰의 베이커리에서 줄을 한참 섰다며 호들갑을 떨면서 병실로 들어섰다. 전리품을 들고 온 것처럼 의기양양한 그녀의 양손에는 캐리어에 담긴 두 개의 커피와 샌드위치가 들려있었다.
“사모님, 사람이 밥을 먹어야 해. 이런 빵 쪼가리 먹고, 커피 마셔서 암 걸린 거야. 내가 이걸 사느라 삼십 분 넘게 줄을 섰다. 사모님 너무 기다리실 것 같아서 난 밥도 안 먹고 왔다니까.”
간병인이 빨간 스카프를 풀며 본인의 노고를 자화자찬하는 동안 노인은 엷은 미소를 띤 채 커피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있지, 사모님, 단 거 너무 좋아하셔…. 암세포가 포도당을 그렇게 좋아한 데잖아요. 우리 사모님은 늘 주머니에 초콜릿이랑 사탕을 넣어서 다니면서 먹잖아.”
나중의 말은 나를 보고 한 말인듯한데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왜냐하면 단 것이라면 나도 사족을 못 쓰고 달려드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줌마 가서 아침 먹고 와요.”
커피를 흘린 듯이 바라보고 있던 노인이 한마디 하자 간병인이 냉장고에서 두유 한 팩을 꺼내더니 노인에게 건네고 나간다.
“말이 참 많아.”
간병인이 나가는 뒷모습을 지켜보던 노인이 나를 보며 말했다.
노인의 크고 동그란 눈이 반짝거리고, 젊었을 적엔 립스틱 라인이 곱고 단아했을 입술을 오물거린다. 눈으로는 이미 커피를 마시고 샌드위치를 다 먹은 듯 보였다.
아침 햇살이 시간의 흐름을 따라 하얀 침대보 위를 옮겨 다니며 그림을 그리는 사이 노인과 나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것 같은 아메리카노와 클럽샌드위치를 아주 천천히 음미하듯 먹었다.
“남편은?”
커피를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 비운 것이 아쉬운 듯 종이컵을 바라보고 있던 노인이 눈이 마주치자 갑자기 물었다.
“출장 중입니다.”
“아, 남자들은 늘 출장 중이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노인은 샌드위치 속의 야채를 사각사각 소리 내어 씹으며 다 알고 있다는 듯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이 웃다가 사레가 들었다.
“오늘은 조찬이 참 맛있네. 영원히 기억할 거야”
노인이 웃으며 말했다.
말은 많이 하지 않지만, 처음부터 이심전심 같은 게 노인과 나 사이에 흐르고 있었다. 아마도 살아가는 동안 나는 죽 노인과 함께한 소박한 ‘조찬’을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나른한 목소리로 ‘남자들은 늘 출장 중이지.’라고 했던 노인의 목소리도.
노인과 나는 침대에 나란히 앉아서 영화채널에서 방영하는, 젊은 날 알랭 들롱이 말 그대로 태양처럼 눈부시게 나왔던 <태양은 가득히>를 봤다. 샌드위치를 먹던 노인의 눈빛이 알랭 들롱을 보더니 반짝거린다. 아무래도 코미디 프로그램보다는 오랫동안 지적인 생활을 해온 노인에게는 역시 영화채널이 통했다. 밥만 먹으면 자던 노인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놀라운 집중력으로 영화를 봤다. 영화 속의 절벽에 걸린 아름다운 도시와 푸른 바다가 나오자 노인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타오르미나에 다시 갈 수 있을까? 거기엔.....”
나는 그런 노인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타오르미나에 무엇인가를 두고 온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