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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에 스미다, 교토6

by Dear Lesileyuki Feb 14. 2025

오후 11시쯤 불시검문처럼 이준이 갑자기 수선화 한 다발과 포트와인을 들고 찾아오더니 롯데월드로 스케이트를 타러 가자고 했다. 아직도 시인이 되지 못한 그는 분위기와 차림새만 보면 이미 시인처럼 보였다. 대학을 졸업한 후 대학원에 적을 둔 채 공부는 뒷전으로 팽개치고 돌아다니는 이준은 정말 언젠가는 시인이 되고 말 작정인 듯했다.

“커피 한 잔 주라. 아침부터 기름진 버터와 딸기잼 냄새가 어우러진 근사한 냄샌데..... 익숙하지 않은 이 냄새는 뭐지? 너는 일요일 아침은 항상 맥모닝이었잖아?”

“지랄, 너는 여기가 무슨 어쩌다 서는 간이역인 줄 아니? 생각나면 들리게. 그리고 너, 그 말도 안 되는 시 제발 메일로 보내지 마라. 내가 스팸메일처리를 하든지 해야지. 일요일 아침에 불쑥 나타나는 것도 그만해라. 남들이 보면 오해해.”

“나야 땡큐지. 그리고 이미 오해하는 것 같던데. 헤헤헤”

이준이 넉살 좋게 웃으며 말했다.  

한 대 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그가 알려준 비법 레시피의 프렌체 토스트와 커피를 이준에게 건네고 나도 한 잔 더 따라 마셨다. 아침에 내려놓은 커피치고는 맛과 향이 근사했다. 역시 그가 추천한 에티오피아 예가체프라서 그럴까?

“오, 아침 한 상! 오늘은 인심이 후하네?”

프렌치토스트와 커피 그리고 블루베리가 곁들여진 그릭요거트가 놓인 트레이를 보더니 싱글거리며 말했다. 내가 봐도 제법이었다. 이 정도면 나에게도 가히 혁신적인 브런치이다.

“처먹기나 해라. 그리고 다시 말하는데 그 유치 찬란한 시는 그만해. 어머님이 걱정하신다.”

“왜? 그거 연시라는 건데. 나는 너라는 해안가를 향해서 달려가는 파도야. 부서져도 다시 달려가고......”

“그 정도면 지랄도 원플러스 원이다. 하아......”

“넌 끊임없이 내 상상력을 자극하는 에스메랄다야.”

“그럼 넌 노트르담의 꼽추, 콰지모도냐? 그거 비극인 거 알지?”

“아니, 너와 나에게 비극은 없어.”

그가 얄밉게 시나몬 토스트를 한입에 넣으며 약 올리듯 말했다.

나는 그런 이준을 무시한 채 노트북을 켜고 잠시 미루었던 작업을 시작했다. 그는 내가 없어도 언제나 혼자서 잘 지내다가 이런저런 청소와 정리를 해준 후 소리 없이 사라지곤 했다. 이준과 나는 그런 사이다. 있어도 없는 것처럼 편하고, 없어도 빈 것 같지 않은 느낌이 둘 사이에는 존재한다.  

“이게 뭐야?”

어느새 이준이 가스레인지 옆에 걸어둔 프린트를 가지고 와서 흔들었다.  

야스무사가 보낸 이메일을 프린트한 것이었다.  

“보이는 그대로. 스파게티를 만드는 방법.”

“짓수, 일본에 아는 사람, 있어?”

그가 힘주어서 네 이름을 ‘짓수’라고 부르는 것은 기분 상했다는 증거이다.

“살다 보면 사랑이 문득 지나가기도 해. 그런데 말이지.......”

또 ‘지나가는 사랑’ 타령 시작이다.

“지금은 세계화 시대야. 지구촌 한가족이 된 지는 이미 오래됐지.”

나는 짧게 대답하고 다시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알기로 너 일본에 간 적도 없잖아.”

“무식하기는. 그래서 그대는 시인이 될 수 없는 거야. 상상력이 거의 빙점 이하 수준이니.

"뭐지? 이 불온한 기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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