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이 얼떨떨했다.
머릿속으로 수만번 그려봤던 순간인데
합격이면 어떻게 행동하고
불합격이면 어떻게 행동할지
눈물이 날까?
화가 날까?
모든 경우의 수를 다 상상해 봤는데도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눈물이 나지도 않았다.
그냥 수업을 듣고, 밥을 먹고, 친구들과 대화하고
평소와 똑같은 시간들이 흘러갔다.
그래도 담임 선생님께 말씀드려야겠다 싶어서 아이들이 나가고 조용히 말씀 드렸다.
"선생님, 저 떨어졌어요 ㅎㅎ"
선생님의 눈이 토끼처럼 커지셨다. 내 어깨를 토닥이시며
"금이가 안되면 정말 안되는건데... 누가 뽑혔나..."
뻔한 위로멘트일 수 있지만 선생님의 눈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진심이라는 걸
나만큼 아쉬워하고 속상해하신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교장 선생님께도 말씀 드렸다.
교장 선생님의 첫 마디는
"미쳤네" 였다.
"감히 금이를 떨어뜨려? 말도 안되지, 사람 볼 줄 모르네 그 학교!!"
평소에 무척 조용하시고 선하신 분인데 그렇게 나 대신? 화를 내주시는 모습을 보니
웃음이 나면서 또 씁쓸한.. 아주 진한 모과차를 마신 그런 기분이였다.
수업을 모두 마치고 집 가는 길에 담임 선생님과 교장 선생님을 만났다.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는데 그때 울컼 눈물이 터져나왔다.
아 울고 싶었나보다.
선생님들은 계속 나에게 개그를 치셨다.
울다가 웃다가 난리도 아니였다.
'아 이게 사랑이겠다'
사실 내 대학 합격 여부는 선생님들께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닐 것이다.
그분들은 나보다 많은 세월을 걸어오셨고 내가 겪어보지 못한 일들을 견뎌내고 이겨내셨을테니까
어느 대학에 떨어지고 붙고... 가 삶에 있어 결정적인 것이 아님을 아실테니 말이다.
"에이 그거 별거 아니야! 괜찮아!" 라는 위로가 아닌
대신 화내주고 속상해해주고 울어주는 것은 나를 사랑하기 때문이겠지.
내 눈높이에서 나를 안아주려고,
사회의 첫 쓴 맛을 본 내가 스스로 이 순간을 이겨내길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나를 위로하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입학한 순간부터 그리고 졸업을 맞이하고 있는 지금까지
내가 좌절하고 낙담할 때마다
그들은 나를 위로했다. 그들의 방식이 아닌 나의 방식으로
아 그래, 이게 사랑이겠다.
그러니 나도 이제 일어나야겠다.
온 힘을 다했던 기억으로.. 내 추억 상자에 담아놓아야겠다.
내일은 웃으면서 학교에 가야겠다.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교장실을 꾸며야겠다.
장난도 치고 크게 웃으며 하루를 보내야겠다.
나도 그들을 사랑하니까
그러니 일어나야지. 내가 웃으면 그들도 웃을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