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쓰아더(엄마가 쓰고 아빠가 더하다) 1_좌충우돌 수학분투기
## 무안공항 제주항공 희생자분의 명복을 빕니다.
## 12.3 내란 사태가 조속히 해결되기를 기원합니다.
아이(앨빈)가 중1이 되었다. 그 해 3월, 아내(풍뎅이)는 집 근처 W학원의 마지막 무료시험 기간에 앨빈의 수학테스트를 받아본다. 중 3-1까지 집에서 선행하였다고 하니 테스트는 볼 수 있다고 했단다. 중 1인데 테스트는 중 3-1 과정의 이차방정식과 이차함수다. 점수는 생각보다는 잘 나왔고, 집에서 수학을 했다고 하니 학원에서 놀라워했단다. 누가 가르쳐 줬냐 해서 혼자 했다고 하니 더 놀랬다고(집에 돌아와 남편인 나에게 얘기했더니, 왜 아빠 얘기를 뺐냐고 내가 말했단다. 아내의 반응은 ‘아이고, 그 정도 시간으로??!!’였고)
학원에서는 영재학교 대비반 막차로 보면 된다고, 실력 정석을 할 수 있겠다고 말한다. 아내는 고민한다. 무한질주로 수학·과학을 달려야 하는 하드코어 레이스에 과연 울아이를 올려야 하는지. 책 읽기, 영어, 미술, 음악, 놀기, 다 stop 해야 하는 그 레이스에.
아내와 아이는 학원은 일단 여전히 보류하고, 수학 정석을 집에서 공부하기로 한다.
1. 아내(풍뎅이)의 글 (중1-1학기 동안)
2015.3.16 월욜
지난 토요일, 남편과 앨빈과 풍뎅이 동네서점에서 수학의 정석 수학 1 기본편을 샀습니다.(일부러 남편이 사 주면 좋을 것 같아 모시고 갔는데, 이 양반이... 사 준다는 건 돈을 내야지, 나한테 내라고)
중등 과정처럼 고등 수학도 독학으로 풀어 보기. 기본부터 차근차근 풀어 보는 걸로 일단 시작을 합니다. 아이가 책을 보더니 지금까지 보아 왔던 수학문제집과는 다르다고 합니다. 일단 생긴 모양부터 다르지요. 66년에 홍성대 씨가 처음 발간해서 저도 남편도 요 수학책으로 공부를 했지요(저는 공부라고 하기에도 부끄럽네요.). 아빠도 이 책으로 수학공부를 했다고 하니 무지 신기해합니다.
양보다 시간으로 정했구요, 영어학원 안 가는 날은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 영어학원 가는 날은 한 시간 정도(시험기간은 못 할 것이고). 답안지가 뒤에 짝 붙어 있는 게 중등까지와는 다르구만요~
2015.3.28 토욜 하우스수학을 위한 엄마의 노오력.
정석은 문제집이라기보다 책 느낌이다. 독서대에 올려 주고, Beats 헤드폰에, 스벅텀블러에는 아이스코코아 넣어 주고, 아이퐁에 팝송 10곡까지. 엄마의 역할은, 수학은 풀지 못하니 요런 것들 조성해 주기.
2015.4.17 금욜
중간고사 대비 수학은 교과서 있는 문제 풀기와 풀었던 문제집들 그리고 <알찬>에 나와 있는 수학문제 풀기. 영어학원 외에는 따로 다니는 학원이 없으니 집에서 공부해야 한다.(들어 보니 다들 내신대비로 학원에서 어마어마 푸나 보다. 뭐, 안 하는 놈들은 안 하겠지만)
중등 과정까지만 집에서 독학으로 하고 고등 과정은 학원으로 가야지 했는데, 중등을 집에서 하다 보니 역시 수학은 혼자 푸는 힘이라는 생각이 들어 고딩 수학도 집에서 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심증이 있다. 속도는 느릴 수 있지만 차곡차곡 모이는 실력을 생각한다면 결코 느리게 가는 건 아니지 않을까 하는.
학교 수학문제 수준은 <쎈C> 정도 나온다고 하니 틀린 문제 다시 보라하고 주말에만 <최상위>. <에이급> 틀린 문제 다시 풀고 그래도 틀리면 아빠에게 물어보기.
남편이 사다 준 펜텔샤프 두 자루 중 하나가 고장이 나서, 며칠 전에 팬텔이긴 한데 다른 디자인의 펜텔을 남편이 또 사 왔다. 아마 회사 근처에 있는 교보서점 문구에서 구입한 듯. 참 자상한 분. 아이가 그러니 아빠를 좋아할 수밖에 없다(아빠는 올라가고 나는 쩝...)
학교에 가져갈까 하더만 잃어버릴까 봐(요 노마가 이전 꺼보다 더 비싸다는 말을 듣고) 집에서만 쓰겠다고 한다 ㅎㅎ 아빠가 사다 준 샤프^^ 오늘도 아이는 그 샤프로 공부한다.
아이고, 요 놈, 풀다 말고 응아 하러 갔네. 글고 보니 객관식 문제를 다 암산으로 풀어놨다. 더 이상 머리 아파 암산으로는 못 풀겠다며 샤프 들고 손으로 푼다. 고딩 수학은 어쩔 수 없이 손으로 풀어야 하니 푸는데 중딩 수학은 암산으로도 된다고 생각하나?? 방금 하는 말, "엄마, 이제 편하네, 손으로 푸니." 거 참~~~
2015.6.6 토욜
처음 중등 수학 시작했을 때 적응시간이 필요했던 것처럼 고등 수학도 그랬던 것 같다. 낯선 정석문제집에 어찌할 바를 몰랐던 앨빈과 풍뎅이. 반 정도 지나니 이래서 정석이 여전히 사랑을 받는구나 라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무엇보다 혼자 풀기에 너무나 좋은 책이다.
다만, 유제에 답이 나와 있다는 것이(답안지에 연습문제와 유제풀이 과정이 있는데, 유제풀이과정 풀이과정은 처음에는 없었다고 한다. 그랬나? 홍석대 저자의 자식들이 넣어야 한다고 해서 마지못해 넣었다고 한다. 홍석대 저자는 기본을 충실히 읽었다면 유제도 당연히 풀 수 있다라고 생각했다는데...)
공부진행 방법은 기본 문제와 유제 문제 풀 때 곁에 있어 준다. 답을 가려 주고 풀이 과정을 비교해 준다. 풀이 과정에 틀린 부분이 있으면 말해 준다. 연습문제는 혼자 풀게 한다. 기본문제에 나와 있는 문제들을 잘 이해한다. 중등 수학을 심화까지 해서 그런가 어려워하지는 않는다.
역시 수학은 혼자 푸는 힘이다. 초딩 때 잠깐 사고력 수학학원을 다닌 게 전부라 이번 여름방학 때 경험 삼아 보내 볼까 한다. 좀 자극도 받고, 친구들은 어떻게 하나, 학원은 어떤 분위기인지.
대형학원 말고 괜찮은 동네학원을 보낼까 몇 군데 돌아 댕겨 보니 진도가 안 맞다. 동네학원은 시험 한 달 전은 내신준비. 젤 빠른 진도가 중 3꺼(심지어 어떤 학원 원장님은 에이급까지 혼자 했다고 하니 너무 놀래하셔서 내가 깜놀 ㅠㅠ). 좀 괜찮은 학원은 아이 테스트해 보고 원장이 직접 수업해 주는 반을 만들어 주겠다고 하는데 비슷한 수준의 친구가 없을 것 같다.
결국 울 동네에서 영재고과학고 준비한다는 학원으로 가는 게 젤 나을 성싶어서 전화해서 물어봤더니 한 곳은 <실력정석>으로 하고 있고, 다른 한 곳은 <기본정석>이 이번 달에 끝난다고 한다. 기말고사 끝나고 <기본정석 2>가 시작된다 하니 진도가 그나마 젤 맞다.
집수학을 하면 학원 보내고 싶어도 진도가 맞지 않아 보내기가 쉽지 않다. 다음 주까지 부지런히 해서 끝내기로. 느긋하게 하다가 하루에 한 단원씩 하려 하니 쉽지 않네.
2015.6.9 화욜
미친 계획이었다!! 하루에 한 챕터씩 정석을 한다는 건. 꼼꼼하지 못한 나이기에 뭐 대충 생각해서 말한 건데 아이도 덥석 물어 말도 안 되는 계획이었는데, 일주일 휴업덕(?)에 오전 저녁으로 수학공장 가동 중이닷.
3개월에 걸쳐 10단원을 했는데(중간고사 준비 기간이었던 4월을 빼면 2 달이지), 9일에 걸쳐 9단원을 하려 하니 이건 뭐 읽고 풀고 또 풀고. 한 번에 다 하긴 지겨워 오전에, 오후에 나눠서 하는 중이닷.
15 챕터 평면좌표 중간까지 진행했다. 중 2-1, 중 3-1 수학을 잘 알고 있으면 이해하기엔 어렵지 않다. 연습문제에 좀 까다로운 문제들이 섞여 있다. 이렇게 초스피드로 진도를 나가는 이유는 처음으로 수학 학원에 보내기 위하여!! 맨날 엄마랑 지지고 볶느라 엄마표 수학이 전부인 앨빈에게 학원표 수학도 맛 좀 보라는.
기말 끝나고 방학 때 보낼 계획이라 학원진도에 맞춰 열나게 달리고 있다. 나두 좀 앨빈수학에서 자유 좀 찾고 싶다. 지지리도 못하는 수학으로 중등까지만 이라 생각했는데 여기까지 왔다!!! 방학 때로 끝날지 계속 수학학원을 다닐지는 본인이 결정하겠지.
앨빈아!! 아들아!! 너두 수학 못하는 엄니 옆에서 고생 많았다. 나는 너의 수학에서 좀 자유로와 지고, 너는 나에게서 벗어나 좀 다른 수학의 세상을 보거라.
네 단원 남았다. 과연, 네 단원이 끝나면 앨빈의 수학선행에서 난 자유로와 질 수 있는 것이란 말인가??!!(저번 주말에 수학 땜시 지지고 볶는 소리를 들은 남편의 호출. 앨빈 불려 가고 나 불려 가고. 그래도 남편이 아이 앞에서 너의 영어, 수학이 이 정도 인 건 엄마의 공이 크다고 블라블라 얘기해 주니 눙물이 앞을 가리려고. 구래구래, 그래도 알아주는 건가??!!!)
2015.6.20
반가운 빗님이 내리신다. 도시에 살고 있으니 어떤 상황인지 잘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가뭄이 얼마나 극심한가를. 자라는 농작물에 흠뻑 내려 주삼~~
네 시 이후엔 가족 모임이 있어 앨빈은 기말고사 공부 중이다. 많이 했다고 자화자찬보다는 조금밖에 못했다고 앨빈이 아쉬워하면 엄니인 나는,
“좀 쉬면서 해라~~ 잉~~”
그러면 아드님은
“어머니. 좀만 더 하고용”
라는 대답을 하는 그런 날은 언제 오남??!
아웅!! 비야!! 쫘악짝!!! 내려라!!
2. 남편(티솜리)의 덧말(2025.1.2)
수학 정석을 내가 처음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진학 바로 전인 중3 겨울 방학이었을 것이다. 지방 소도시라 수학 학원도 없었고, 선택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혼자서 공부해야 하는 시절이었다. 실력정석의 연습문제 한 문제를 풀기 위해 한 시간 이상 끙끙대곤 했던 기억이 있다. 우리 아이는 기본정석으로 시작하기는 했지만 나보다 거의 3년이나 이른 중 1에 정석을 혼자서 집에서 시작했다. 아이의 그 나이 또래 다른 아이들은 이미 학원에서 그 과정을 끝내고 반복 학습을 하기도 하는 그런 시절로 변해있었다.
체육, 음악 등의 조기 교육이랑 수학, 과학의 조기 교육은 다를까? 아이가 고1이 되는 시점에 나는 ‘조기교육-스포츠와 학문에서의 이중 잣대에 관한 단상’이라는 제목의 글을 내 블로그에 적었던 적이 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이 열리는 해였고, 2000년생인 한국계 미국인 클로이 킴이 스노보더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였다.
(전략)
우리가 알만한 운동선수들은 거의 모두가 초등학교(혹은 그 이전) 때부터 특정 종목의 운동을 시작했다. 축구의 박지성, 야구의 이승엽, 피겨스케이팅의 김연아 등등 최고의 위치에 올라선 스포츠 스타 중에 중학교 이후 에서야 운동을 시작한 경우가 있는지 나는 잘 알지 못한다. 스노보더 클로이 킴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스노보드를 조기교육 받았고, 지금껏 스노보드에 올인해왔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운동선수들의 조기교육에 감탄하고, 그들의 노력을 칭찬한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우리 사회에서 위대한 학자(수학자, 물리학자, 공학자, 또는 역사학자 등)가 되고자 꿈꾸고, 운동선수 클로이 킴처럼 아주 어린 시절부터 해당 분야의 학문에 올인하여 ‘빡쎄게’ 연습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떤 부정적인 분위기가 있다.(사실 내가 그런 고민에 오랫동안 빠져 있었다)
예를 들어 과학영재고에 입학하려면 초등학교 5~6학년부터 준비해야 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고, 이러한 세태에 대한 비난 여론이 압도적이다. 그런데, 스노보드를 좋아하는 클로이 킴처럼 수학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클로이 킴이 전문 코치의 지도아래 빡쎄게 스노보드를 연습하듯이 전문 수학학원에서 전문 강사의 지도아래 빡쎄게 수학을 연습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 빡쎈 연습의 시간들을 클로이 킴처럼 힘들어하면서도 즐긴다(물론 클로이 킴이 흔하지 않듯이 그런 예비 수학자도 흔하지 않다).
둘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점이 없다. 한 명은 스노보드를, 또 한 명은 수학을 좋아할 뿐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 둘의 조기교육에 이중 잣대를 들이밀곤 한다. 왜일까? 그건 바로 스노보더는 ‘모두’에게 강요되는 것은 아니지만, 수학은 모두에게 강요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말이다. 사실 전문적인 조기교육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 아니, 매우 유익하다. 문제는 재능과 관심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일률적으로 강요된다는 사실에서 발생한다.
(중략)
우리 대한민국 교육의 문제는 조기교육이나 특목고 제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대학 학벌과 그 학벌에 의한 사회적 빈부격차에 의한 것이다. 본인이 좋아해서 일찍 시작하는 빡센 교육은 아무런 죄가 없다. 물론 다시 말하지만, 본인이 좋아하는 경우에 한해서 말이다. 학문을 하든 운동을 하든 음악을 하든 장사를 하든 그림을 그리든 춤을 추든 그것은 본인 개인의 자유이자 개인의 책임이다. 우리 모두가 그러한 개인들과 나 자신을 그대로 존중해 준다면, 우리 사회가, 그리고 각자의 삶이 조금 더 아름다워질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