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닥터》 4화
그날 저녁, 성준은 대학 동기 세린을 만났다.
그녀는 바이오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었다.
카페 창가.
유리창 밖에는 퇴근 시간의 사람들,
그리고 “건강검진 할인” 광고판이 보였다.
세린은 커피를 천천히 저으며 말했다.
“너, 진짜 몰랐어?”
“뭘.”
“우리가 하는 일.”
그녀는 웃었다.
“우리는 약을 만드는 게 아니라, 약이 필요해질 상황을 만드는 거야.”
“그건 너무 과장된 말 아니냐.”
세린은 고개를 저었다.
“과장 아니야.
임상 데이터도, 논문도, 전부 방향이 있어.”
그녀는 태블릿을 꺼냈다.
화면에는 논문 초안이 떠 있었다.
‘40대 이후 심혈관 위험 증가’
‘경미한 증상도 적극적 관리 필요’
‘예방적 건강기능식품의 필요성’
‘잠재적 위험군 확대 필요’
“이 문장들,
누가 쓴 줄 알아?”
성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마케팅팀이야.”
세린이 말했다.
“우리는 그걸 과학처럼 보이게 만들 뿐이고.”
그녀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덧붙였다.
“솔직히 말해서, 환자보다 투자자 눈치를 더 봐.”
성준은 말이 없었다.
그 순간, 자신이 의학을 공부한 이유가 갑자기 희미해졌다.
며칠 뒤, 동네 약국 앞에서 성준은 낯선 남자를 보았다. 오십대 중반쯤.
회사원처럼 보이는 남자였다.
손에는 종이봉투가 들려 있었다.
봉투 안에는 혈관 영양제, 유산균, 항산화제, 기억력 보조제, 면역 강화제.
약국 카운터 앞에서 약사 윤미경이 말했다.
“이건 아침에, 이건 점심에, 이건 자기 전에 드세요.”
남자가 물었다.
“이렇게 많이 먹어도 괜찮죠?”
미경은 잠시 망설였다.
그리고 말했다.
“괜찮다기보다… 안 먹는 것보단 낫죠.”
그 말은 의학적 조언이라기보다 위로에 가까웠다.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계산대 위에 카드를 올려놓았다.
결제 금액: 287,000원.
그 순간, 성준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저 남자는 환자가 아니라 고객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자신이 그 고객을 만든 사람이라는 사실을.
그날 밤, 성준은 다시 새벽에 나갈 방송에 앉아 있었다. 스튜디오 조명은 항상 새벽을 낮처럼 만들었다.
PD가 말했다.
“교수님, 오늘 키워드는
‘놓치기 쉬운 초기 신호’입니다.
조금만 더 불안감을 주세요.”
성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카메라가 켜졌다.
“요즘 이런 증상 느끼시는 분들, 많습니다.”
그는 차분하게 말했다.
카메라 너머 어딘가에서 아까 약국에서 본 그 남자가 이 방송을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문제는, 우리가 그 신호를 너무 늦게 알아차린다는 겁니다.”
그 순간, 그는 깨달았다.
자신이 말하고 있는 것은 질병이 아니라 불안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 불안이 이미 누군가의 삶을 조금씩 잠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방송이 끝난 뒤, 휴대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교수님이시죠?”
낯선 남자의 목소리였다.
“방금 방송 봤습니다.”
성준은 잠시 침묵했다.
“저… 저도 혹시 위험한 건가요?”
그 질문은 의학적 질문이 아니라 존재론적 질문처럼 들렸다. 성준은 대답하지 못했다.
잠시 뒤, 그는 천천히 말했다.
“검사를 한번 받아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 그는 한참 동안 휴대폰을 내려놓지 못했다.
자신이 방금 한 말이 진짜 의사의 말인지, 아니면 시스템의 말인지 구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날 밤, 성준은 처음으로 확신했다.
이 일은 단순한 방송이 아니라는 것을.
누군가는 이미 너무 깊이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자신이 그 입구를 설계한 사람 중 하나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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