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의 크기가 거대할수록, 그리고 그것을 믿는 군중의 숫자가 압도적일수록, 그 거짓말은 묵직한 질량을 가진 완벽한 현실이 된다.
과거 파시즘을 지배했던 선전 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대중은 작은 거짓말보다 거대한 거짓말에 더 쉽게 속아 넘어간다고. 인간의 뇌는 진실을 피곤하게 교차 검증하기보다, 다수가 공유하는 자극적이고 단정적인 서사에 동조하는 것을 훨씬 더 효율적인 생존 방식으로 채택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견고한 성역이라 할지라도, 그 성벽을 이루고 있는 벽돌 하나하나가 의심에 감염되면 성은 스스로 붕괴한다. 서지안은 최동욱 인사본부장이 스스로 자신의 최측근들을 도륙하게 만든 직후, 사냥감의 숨통을 끊을 마지막 프로파간다(Propaganda)를 사내에 투척할 준비를 마쳤다.
금요일 오전 8시. 본사 22층 특별감사팀 집무실.
통유리창 너머로 아침 햇살이 비쳐들고 있었지만, 집무실 내부의 공기는 얼음장처럼 차갑고 서늘했다. 지안은 책상에 기대어 선 채, 박 대리의 듀얼 모니터에 띄워진 사내망 트래픽을 여유롭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박 대리. 어제 최동욱 본부장이 이성을 잃고 기획실장을 피투성이로 만들어서 쫓아낸 사건, 사내에 소문은 어느 정도 퍼졌습니까.”
“말도 마십시오. 이미 35층 인사팀 직원들 사이에서는 공포 정치 그 자체입니다. 어제저녁부터 사내 블라인드 게시판에 ‘인사본부장이 미쳤다’, ‘자기 심복들을 뚜렷한 이유도 없이 쳐내고 있다’는 목격담이 수십 건씩 올라오고 있습니다.”
“아주 좋네요. 땔감이 바싹 말라 있다 못해 아주 기름기를 머금고 있군요.”
지안의 붉은 입술이 매혹적인 호선을 그렸다.
“그 기괴한 폭주에 완벽한 인과관계를 부여해 줄 서사를 던져야겠습니다. 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 공포를 마주하면, 그것을 설명해 줄 아주 자극적인 거짓말을 기꺼이 진실로 믿게 되거든요.”
지안은 박 대리의 어깨를 가볍게 짚으며 나긋하게 지시를 내렸다.
“사내 익명 게시판과 외부의 증권가 찌라시 네트워크에 이렇게 뿌리세요. ‘최동욱 인사본부장, 수년간 채용 비리와 하청업체 리베이트로 모은 수백억 대 비자금을 현금화하여 오늘 밤 해외로 도주 예정. 어제 아침 자신의 기획실장과 심복들을 무자비하게 숙청한 이유 역시, 도주 전 자신의 꼬리를 자르고 완벽한 증거 인멸을 하기 위함임.’”
박 대리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멈칫했다. 그는 놀란 눈으로 지안을 올려다보았다.
“실장님… 최 본부장이 도주를 준비 중이라는 물증이 있습니까?”
“물증요? 그런 건 없습니다.”
지안이 너무나도 평온한 어투로 대답했다.
“최동욱은 지금 자신이 배신당했다고 맹신해서 의심병에 걸려 발악하고 있을 뿐, 자기가 수십 년간 쌓아 올린 이 태성그룹이라는 권력을 버리고 도망칠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을 겁니다.”
“그, 그런데 어떻게 이런 치명적인 찌라시를….”
“진실이 아니어도 상관없습니다. 이 찌라시의 서사는, 현재 최 본부장이 벌이고 있는 비상식적인 숙청 작업과 너무나도 완벽하게 아귀가 맞아떨어지거든요.”
지안은 커피잔을 들고 창가로 걸어갔다.
“수만 명의 임직원이 이 찌라시를 읽고 최동욱을 쳐다보는 순간, 그가 하는 모든 일상적인 행동은 ‘도주를 위한 증거 인멸’로 번역될 겁니다. 서류를 버려도 증거 인멸, 전화를 안 받아도 도주 준비, 화장실에 가도 밀항 브로커와의 접선으로 보이겠죠. 대중의 의심이, 없는 물증을 스스로 창조해 낼 겁니다.”
악마도 혀를 내두를 완벽하고도 끔찍한 프레임 씌우기.
박 대리는 등골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며, 마른침을 삼키고 해킹 프로그램의 엔터키를 세게 내리쳤다.
러시아와 동유럽 서버를 7중으로 우회한 거대한 프로파간다가, 사내망과 외부 네트워크를 타고 폭발적인 속도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오전 9시 30분. 본사 1층 로비 및 엘리베이터.
출근길의 공기는 평소와 달랐다. 삼삼오오 커피를 들고 모여 있던 직원들의 시선은 온통 스마트폰 화면에 고정되어 있었고, 그들의 입에서는 억눌린 짐승의 앓는 소리 같은 탄성들이 터져 나왔다.
“야, 너 지금 블라인드에 뜬 거 봤어? 최동욱 본부장 찌라시.”
“미친 거 아니야? 비자금 500억? 오늘 밤에 해외로 튄다고?”
“와, 어쩐지. 어제 아침에 기획실장 피투성이 만들어서 쫓아낼 때부터 알아봤어. 자기 혼자 돈 다 들고 튀려고 밑에 애들한테 횡령 독박 씌우고 꼬리 자르기 한 거네!”
소문은 불과 한 시간 만에 수만 명의 임직원들에게 전염되었다.
거짓말이 압도적인 다수의 입에 오르내리자, 그것은 더 이상 찌라시가 아니라 ‘명백한 사실’로 둔갑했다. 어제 인사팀에서 벌어졌던 숙청 작업은 찌라시의 신빙성을 100퍼센트로 끌어올리는 완벽한 조미료가 되어 주었다.
가장 심각한 타격을 입은 곳은 다름 아닌 35층, 인사본부였다.
오전 10시. 본사 35층 인사본부.
35층의 공기는 숨 막히는 공포와 기묘한 흥분감으로 들끓고 있었다. 직원들은 업무를 완전히 전폐한 채, 굳게 닫힌 본부장실의 육중한 오크목 문만 힐끗거리며 사내 메신저로 쉴 새 없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야, 어떡하냐. 저 인간 진짜 돈 들고 튀면 우리 부서 전체가 검찰 압수수색 받는 거 아니야?]
[당연하지. 우리가 실무 짰다고 공범으로 다 엮일걸? 어제 기획실장님 잘려 나간 거 봐. 자기 살자고 우릴 다 방패막이로 쓸 인간이야.]
[그럼 어떡해? 빨리 경찰이나 22층 감사팀에 신고해야 하는 거 아냐?]
집단 착각은 순식간에 인사팀 전체를 집어삼켰다.
어제까지만 해도 최 본부장을 하늘처럼 떠받들며 굽실거리던 부하 직원들은, 이제 그를 자신들을 버리고 회삿돈을 횡령해 도망치려는 파렴치한 범죄자로 완벽하게 규정했다. 그들의 편도체는 감옥에 갈지도 모른다는 공포로 비대해졌고, 이성을 관장하는 전두엽은 완전히 마비되었다.
그때였다.
위잉, 위잉.
굳게 닫힌 본부장실 안에서, 육중한 대형 문서 세단기가 맹렬하게 돌아가는 소리가 복도까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사실 집무실 안의 최 본부장은 도주를 준비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가장 믿었던 기획실장마저 서지안의 프락치라고 오판한 탓에, 극도의 불안증과 편집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서지안이 언제 감사팀을 동원해 자신의 방을 덮칠지 모른다는 공포.
그 공포에 질린 최 본부장은, 자신의 금고 안에 있던 치명적인 비밀 장부들과 불법적인 인사 청탁 서류들을 꺼내어 스스로 갈아 없애고 있는 중이었다. 철저하게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하지만 밖에서 그 세단기 소리를 듣는 인사팀 직원들의 뇌 속에서는, 찌라시의 내용과 결합하여 전혀 다른 해석이 내려지고 있었다.
“들었어? 지금 안에서 서류 미친 듯이 갈아버리는 소리.”
“와, 미쳤다. 진짜 증거 인멸하고 있나 봐! 비자금 장부 다 파쇄하고 튈 준비 하는 거 확실해!”
“야, 이건 진짜 빼도 박도 못하는 도주 정황이야! 빨리 누가 제보해!”
공포에 질린 군중은 살아남기 위해 기꺼이 자신들의 수장을 제물로 바치기로 결심했다. 인사팀 직원들은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화장실로 뛰어가거나 사각지대로 숨어들어, 사내 익명 제보 시스템에 접속하기 시작했다.
[긴급 제보합니다. 현재 35층 인사본부장실 내부에서 최동욱 본부장이 대량의 서류를 파쇄하며 증거를 인멸하고 있습니다. 찌라시에 돌고 있는 도주 시도가 확실해 보입니다. 당장 출국 금지와 압수수색을 요청합니다.]
자신이 통치하던 철옹성 안에서, 자신이 거느리던 부하들에게 실시간으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고 밀고당하는 권력자. 서지안이 심어놓은 의심의 씨앗은 인사팀을 완벽한 지옥으로 변모시켜 놓았다.
정오. 본사 32층 부사장실.
넓고 화려한 부사장실의 분위기는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처럼 위태로웠다. 부사장은 책상 위에 올려진 태블릿을 넘기며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화면에는 오늘 아침부터 증권가와 사내 게시판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최동욱의 ‘500억 비자금 횡령 및 해외 도주설’ 찌라시가 띄워져 있었다.
“최동욱… 이 노망난 늙은이 새끼가….”
부사장의 입에서 살기 어린 욕설이 터져 나왔다. 처음 이 찌라시를 보았을 때만 해도 부사장은 반신반의했다. 아무리 최동욱이 탐욕스러워도, 평생을 바친 태성그룹을 등지고 도망칠 위인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때, 비서실장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뛰어 들어왔다.
“부사장님! 지금 22층 특별감사팀의 내부 제보망 서버가 폭주하고 있습니다. 35층 인사팀 직원들 수십 명이 실시간으로 최 본부장님의 동향을 제보해 오고 있습니다.”
“내용이 뭐야!”
비서실장은 마른침을 삼키며 보고서를 내밀었다.
“최 본부장님이 아침부터 외부와의 연락을 모두 끊은 채 집무실 문을 걸어 잠그고, 대형 세단기로 쉴 새 없이 중요 서류들을 파쇄하고 있다고 합니다. 게다가 개인 금고에서 현금 다발을 꺼내 여행용 가방에 챙겨 넣는 것을 목격했다는 비서의 진술도 방금 올라왔습니다.”
“뭐라고?!”
부사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자신을 뒷받침하는 든든한 주춧돌인 줄 알았던 인사본부장이, 사실은 자신의 눈을 속이고 회사의 고혈을 빨아먹은 것도 모자라, 위기가 닥치자 회삿돈을 챙겨 야반도주를 준비하고 있다.
이 거대한 찌라시의 내용과 직원들의 생생한 현장 제보가 부사장의 뇌 속에서 완벽한 인과관계로 결합되었다.
“이 개새끼가… 내 돈을, 내 회삿돈을 빼돌려서 도망을 쳐?! 그래서 어제 자기 수족들을 다 쳐내고 꼬리 자르기를 한 거였어!”
거대한 프로파간다는 그룹의 2인자인 부사장의 이성마저 완벽하게 마비시켰다. 권력에 대한 배신감은 이성적인 교차 검증의 과정을 가볍게 건너뛰게 만들었다.
“비서실장! 당장 서지안 실장 내 방으로 호출해! 최동욱 그 미친 늙은이가 출국장으로 빠져나가기 전에 당장 목줄을 채워야겠어!”
오후 1시. 부사장 집무실.
호출을 받은 지안은 한 치의 흔들림 없는 완벽한 자세로 부사장의 책상 앞에 섰다. 부사장은 분노로 씩씩거리며 담배를 연거푸 피워대고 있었다.
“서 실장. 밖에서 도는 찌라시 내용, 그리고 35층에서 올라오고 있는 제보들 다 확인했나?”
“네, 부사장님. 특감팀 내부에서도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최 본부장님의 동선을 실시간으로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부사장은 책상을 주먹으로 쾅 내리쳤다.
“예의주시?! 지금 그 새끼가 돈가방 싸 들고 공항으로 튀게 생겼는데 한가하게 예의주시를 해? 당장 보안팀 끌고 가서 그 새끼 뒷목 잡아끌고 와!”
지안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매우 곤란하다는 듯한 연기를 시작했다.
“부사장님. 분노하시는 마음은 십분 이해합니다만… 아직 명확한 물증이 없습니다. 찌라시와 익명 제보만으로 사내 최대 파벌인 인사본부장의 집무실을 강제 압수수색했다가는, 이사회 쪽에서 저희 특감팀의 권한 남용을 문제 삼아 역풍을 맞을 수 있습니다.”
아주 교묘하고 우아한 도발.
지안은 부사장의 분노를 더욱 부채질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법과 규정을 들먹이며 한 발짝 물러섰다.
“역풍? 권한 남용?!”
부사장의 눈이 시뻘겋게 뒤집혔다.
“내가 부사장이야! 내가 이 태성그룹의 실질적인 오너라고! 최동욱 그 새끼가 훔쳐서 도망가려는 그 돈이 다 내 돈이야! 증거? 서 실장이 특감팀 애들 풀어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불법 도청을 하든 함정을 파든 무조건 만들어 내!”
부사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지안의 어깨를 꽉 쥐었다.
“서 실장. 특감팀 7명한테 내 권한으로 사내 모든 통신망 감청 권한과 물리력 행사 권한 다 풀어줄 테니까, 최동욱이 그 새끼 횡령 증거 어떻게든 잡아내. 내일 아침 해가 뜨기 전에 그 새끼 손목에 수갑 채우면, 내가 서 실장과 특감팀 애들 평생 먹고살게 해줄 테니까. 알았어?!”
오너의 입에서 직접 하달된 초법적인 권한 위임.
이것은 특감팀이 앞으로 저지를 모든 불법적인 함정 수사와 감청 행위에 대해, 부사장이 완벽한 방패막이가 되어주겠다는 공식적인 선언이었다.
“명 받 받들겠습니다, 부사장님.”
지안은 우아하게 고개를 숙였다. 바닥을 향한 그녀의 붉은 입술이 치명적인 승리의 호선을 그렸다.
자신의 손에는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사내 여론을 완벽하게 선동하여 타겟을 고립시켰다. 게다가 흥분한 부사장으로부터 합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무소불위의 칼날까지 하사받았다.
이제 특감팀 7명의 맹목적인 사냥개들의 목줄을 풀어, 도축장 안에 갇힌 늙은 코끼리를 물어뜯게 할 시간이었다. 진실을 파헤치는 감사팀이 아니라, 권력의 단맛에 취해 도덕적 판단을 상실한 광신도들이 보여줄 잔혹한 사냥이 막을 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