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권력을 쥔 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외부의 적이 아니다. 자신의 등 뒤에 선 가장 가까운 심복의 그림자다.
공포로 통치하는 폭군은 필연적으로 모든 신하를 잠재적 암살자로 의심하는 지독한 편집증에 시달리게 된다. 이성은 마비되고, 아주 작은 엇박자나 우연조차 거대한 음모의 퍼즐 조각으로 둔갑한다. 적이 성벽 밖에서 활을 쏘기도 전에, 폭군은 스스로 성문을 닫아걸고 충신들의 목을 베기 시작한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뇌가 만들어내는 가장 끔찍하고도 고전적인 자멸의 메커니즘이었다.
목요일 오후 2시. 본사 35층 인사본부장실.
최동욱 전무의 집무실에는 끊임없이 전화벨이 울려대고 있었다. 평소라면 여유롭게 시가를 태우며 결재 도장을 찍었을 그였지만, 지금 그의 몰골은 밤샘 사냥에 쫓긴 늙은 짐승처럼 초조하고 피폐했다.
“아, 예. 성진정공 김 대표님. 제 말 좀 끝까지 들어보십시오. 따님을 대기발령 낸 건 징계가 아니라, 보호 차원에서 잠시….”
수화기 너머로 고막을 찢을 듯한 사자후가 터져 나왔다.
— 이봐, 최동욱이! 내가 자네한테 먹인 돈이 얼만데 내 딸년 목을 쳐? 보호 차원? 내 딸 피씨 압수해서 탈탈 털어놓고 감히 나를 능멸해?! 당장 태성그룹 납품 계약 다 끊고, 네놈이 나한테 받은 룸살롱 접대 내역 싹 다 이사회에 까발려 줄 테니까 목 닦고 기다려!
뚜뚜뚜.
일방적으로 전화가 끊겼다. 최 본부장은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수화기를 책상에 패대기쳤다.
오늘 아침, 그가 자신의 수족이었던 세 사람을 전격적으로 대기발령 낸 후폭풍은 상상을 초월했다. 하청업체 대표는 물론이고, 재무팀 박 대리의 아버지인 그룹 내 핵심 임원조차 최 본부장에게 전화를 걸어 쌍욕을 퍼붓고 절연을 선언했다.
자신의 견고했던 외부 파벌이 하루아침에 모래성처럼 허물어지고 있었다.
“이 등신 같은 새끼들이… 지 자식들이 먼저 내 뒤통수를 치려고 기밀을 빼돌렸는데, 방귀 뀐 놈이 성을 내?!”
최 본부장은 씩씩거리며 넥타이를 쥐어뜯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분노하는 늙은 부모들을 납득시킬 명확한 증거가 없었다. 세 명의 직원이 자신의 비위 자료를 복사하려 했던 정황만 포착했을 뿐, 그들이 그것을 서지안에게 넘겼다는 뚜렷한 물증을 확보하기 전에 화를 참지 못하고 먼저 목을 쳐버렸기 때문이다.
‘서지안… 이 모든 건 그 독사 같은 년의 계략이야.’
최 본부장의 핏발 선 눈동자가 허공을 헤매기 시작했다.
어떻게 서지안은 정확히 자신이 꽂아 넣은 낙하산 세 명만을 골라내어 그들의 트래픽을 폭주시켰을까? 채용 비리 명단은 세상에서 오직 자신과 아주 극소수의 심복들만이 아는 1급 기밀이었다.
서지안이 신이 아닌 이상, 인사팀 내부의 조력자 없이 그 명단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약점을 파고드는 것은 불가능했다.
‘내부에 쥐새끼가 있다. 내 일거수일투족을 22층에 가져다 바치는 놈이 있어.’
의심의 씨앗이 편도체에 깊게 뿌리를 내리는 순간.
똑똑.
집무실 문이 열리고 인사팀 기획실장이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최 본부장을 10년 가까이 보좌해 온 그의 최측근이자, 인사팀의 실질적인 2인자였다.
“본부장님. 임원진 쪽에서 걸려 오는 항의 전화가 빗발치고 있습니다. 대기발령 사유를 조금 더 완화해서 공지하시는 편이….”
그 순간, 최 본부장의 시선이 기획실장의 얼굴에 싸늘하게 꽂혔다.
금고 비밀번호를 아는 유일한 사람. 채용 비리 명단을 엑셀로 직접 정리하고 관리했던 실무자. 본부장실에 하루에도 수십 번씩 드나들며 자신의 모든 비위 사실과 룸살롱 접대 일정까지 스케줄링하는 자.
‘기획실장. 이 새끼밖에 없다.’
최 본부장의 눈매가 독사처럼 좁아졌다. 그는 애써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며, 의자에 깊숙이 몸을 기댔다.
“실장. 넌 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 같나?”
“네? 그게… 22층 특감팀에서 저희를 고립시키기 위해 무슨 수작을 부린 게 분명합니다. 당장 특감팀 해체 기안을 부사장님께 올려서 승부를 봐야 합니다.”
“수작이라.”
최 본부장은 손가락으로 책상을 톡톡 두드렸다.
“그런데 말이야. 서지안이 도대체 어떻게 내 금고 안에 있는 명단을 알고, 정확히 그 세 놈을 타겟으로 삼았을까? 무당이라도 되는 건가?”
“그, 그건…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그쪽에 해킹 전문 인력이 있으니까….”
기획실장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상사의 눈빛이 평소와 달랐기 때문이다. 짐승이 먹잇감의 목덜미를 노리듯 끈적하고 기괴한 시선.
“해킹? 해킹만으로 아날로그 금고 속의 서류를 읽어낸다고? 실장, 너 나를 바보로 아는구나.”
“본, 본부장님.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나가 봐.”
최 본부장은 손을 휘저었다. 기획실장은 당황한 표정으로 쭈뼛거리며 물러났다.
문이 닫히자마자, 최 본부장은 개인 스마트폰을 꺼내 보안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보안팀장 역시 그가 인사권을 쥐고 흔들어 자리에 앉혀둔 그의 라인이었다.
“어, 나다. 지금 당장, 우리 기획실장 자리 피씨를 몰래 모니터링해. 외부로 나가는 이메일, 메신저, 접속 기록 하나도 빠짐없이 긁어와. 특히 22층 서지안 쪽과 단 한 번이라도 통신한 흔적이 있으면 당장 나한테 보고해.”
수십 년의 충절은 의심의 씨앗 앞에서 한 줌의 재로 변했다.
이제 35층 인사본부는 적을 향해 칼을 겨누는 대신, 자신들의 심장부를 찌르기 위해 스스로 칼춤을 추기 시작했다.
같은 시각. 22층 특감팀 집무실.
지안은 모니터 화면에 띄워진 35층의 패킷 흐름을 지켜보며 느긋하게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실장님.”
해커 출신 박 대리가 킬킬거리며 보고를 올렸다.
“방금 보안팀 쪽에서 인사팀 기획실장의 사내 피씨를 실시간으로 미러링하기 시작했습니다. 최 본부장이 결국 자기 최측근이자 오른팔인 기획실장을 의심하기 시작한 겁니다.”
“아주 교과서적인 몰락이네요. 권력은 가장 가까운 곳부터 썩어 들어가는 법이죠.”
지안은 책상 서랍에서 작은 유에스비 하나를 꺼내며 박 대리에게 넘겼다.
“불안에 떠는 노인네에게 아주 확실한 확신을 심어주어야겠군요. 이 유에스비 안에 있는 텍스트 파일을, 인사팀 기획실장의 개인 클라우드 백업 폴더 안에 조용히 심어두고 오세요. 보안팀이 모니터링하다가 가장 먹음직스럽게 발견할 수 있는 경로에다가.”
박 대리는 유에스비를 받아 들고 고개를 끄덕였다.
“내용이 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아주 사소한 인사말입니다. ‘약속한 보상은 차질 없이 진행하겠습니다. 조금만 더 버텨주십시오. - S’라는 짧은 메모죠. S가 누구의 이니셜일지는, 편집증에 걸린 본부장님의 훌륭한 뇌가 알아서 상상해 줄 겁니다.”
가짜 증거의 이식.
이성적인 상태라면 조작을 의심했겠지만, 이미 확증 편향에 빠져 배신자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된 최 본부장에게 그 메모는 완벽하고도 치명적인 물증이 될 터였다.
박 대리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경쾌하게 날아다녔다. 단 몇 줄의 코드가 사내망을 우회하여, 기획실장의 컴퓨터 깊숙한 곳에 아주 예쁜 시한폭탄을 설치했다.
금요일 오전 9시. 본사 35층.
인사팀의 공기는 그야말로 살얼음판이었다. 직원들은 기침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모니터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어젯밤 야근을 마치고 퇴근하려던 기획실장은, 최 본부장의 호출을 받고 들어갔다가 밤새 집무실에서 나오지 못했다. 방음이 철저한 집무실이었지만,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와 짐승 같은 고함은 35층 전체를 공포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집무실 안.
기획실장은 입술이 터지고 뺨이 퉁퉁 부어오른 채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바닥에는 산산조각이 난 태블릿 피씨와 서류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본, 본부장님… 제발 믿어주십시오! 저는 정말 모르는 일입니다! 저 메모가 왜 제 폴더에 있는지 저도 모릅니다!”
기획실장이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애원했다. 하지만 책상 위에 걸터앉아 골프채를 쥔 최 본부장의 눈빛은 이미 살기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모른다고? 보안팀이 네 컴퓨터에서 직통으로 빼낸 자료야! ‘약속한 보상은 차질 없이 진행하겠습니다. S’. 이 S가 서지안이 아니면 누군데! 네놈이 그 독사 같은 년이랑 뒤로 붙어서 내 금고 비밀번호를 넘기고, 내 채용 명단을 팔아넘긴 거잖아!”
“아닙니다! 이건 누군가의 함정입니다! 본부장님, 이성적으로 생각하십쇼! 제가 왜 10년을 모신 본부장님을 배신합니까!”
“왜긴 왜야! 서지안이 그년이 내 목을 치고 네놈을 인사본부장 자리에 앉혀주겠다고 꼬드겼겠지! 너도 내 밑에서 시다바리 짓 하는 데 지쳐서 꼭대기로 올라가고 싶었던 거 아니야?!”
합리성은 완전히 붕괴되었다.
최 본부장은 기획실장의 변명을 모두 권력욕으로 해석했다. 자신이 수십 년간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남을 짓밟고 배신했던 것처럼, 부하 역시 자신을 밟고 올라서려 한다는 끔찍한 투사였다.
최 본부장이 골프채를 들어 올렸다.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네놈이 감히 내 등에 칼을 꽂아? 넌 오늘부로 해고야. 내 파벌의 모든 힘을 동원해서 네놈이 업계에 다시는 발을 못 붙이게 철저하게 밟아버릴 테니까!”
“본부장님! 제발!”
“경비 불러! 이 배신자 새끼 당장 끌어내!”
문이 열리고 건장한 사내 경비원들이 들어와 엉망이 된 기획실장을 질질 끌고 나갔다.
10년을 함께하며 궂은일을 도맡았던 오른팔이 잘려 나가는 순간.
인사팀 직원들은 그 처참한 광경을 숨죽여 지켜보았다. 그들의 눈동자에 깃든 것은 이제 수장을 향한 존경이 아니라, 언제 자신의 목이 날아갈지 모른다는 극도의 혐오와 공포였다.
스스로 수족을 모두 자르고 텅 빈 집무실에 홀로 남은 최 본부장.
그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책상에 기대어 섰다. 외부의 동맹들은 모두 등을 돌렸고, 내부의 최측근들은 자신의 손으로 도륙했다.
자신을 지켜주던 견고한 파벌이라는 성벽이 하룻밤 새 완벽하게 무너져 내렸다. 넓고 화려한 본부장실이, 이제는 늙은 코끼리를 가두는 차갑고 비좁은 도축장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같은 시각. 22층 특별감사팀.
통유리창 너머로 따뜻한 아침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지안은 자신의 책상에 앉아, 완벽하게 다려진 새하얀 수트의 소맷단을 가볍게 정돈했다. 그녀의 책상 위에는 박 대리가 올려둔 최신 보고서가 놓여 있었다.
[인사본부 기획실장, 즉각 직위 해제 및 사옥 퇴거 조치 완료]
“훌륭하네요.”
지안의 붉은 입술이 우아한 호선을 그렸다.
총 한 발 쏘지 않고, 사내 최대 권력을 자랑하던 최동욱의 진영을 완벽한 폐허로 만들었다. 의심이라는 작은 씨앗은 늙은 권력자의 뇌를 갉아먹으며 거대한 파멸의 숲을 이뤄냈다.
이제 최동욱은 이빨도, 발톱도 없는 가련한 초식동물에 불과했다.
“박 대리.”
“네, 실장님.”
“이제 수확을 하러 갈 시간입니다.”
지안은 책상 서랍에 자물쇠를 채워두었던 두꺼운 서류철을 꺼냈다.
[태성그룹 최근 3년 채용 비리 연루자 명단 14인] 그리고 세 명의 심복들이 바쳤던 [최동욱 본부장 부정 결제 내역 및 비자금 장부].
최동욱을 영원한 사회적 매장으로 이끌, 흠결 없는 완벽한 사형 선고문이었다.
“이 자료들 복사본, 부사장님 책상 위에 다이렉트로 올려두세요.”
지안은 묵직한 원본 서류철을 자신의 핸드백에 조심스럽게 밀어 넣었다.
“부사장님이 그 서류를 보시고 분노로 노발대발하실 때쯤… 저는 늙고 병든 코끼리의 마지막 유언을 들으러 35층으로 가보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지안의 하이힐 소리가 22층 복도를 경쾌하게 울렸다.
사냥감이 제 발로 뼈와 살을 분리하여 도마 위에 올라누운 완벽한 세팅. 현대의 이단심문관이 가장 끔찍하고 우아한 처형의 스위치를 누르기 위해, 도축장의 문을 열고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