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화. 보이지 않는 손

by 연구소장

완벽한 사냥은 사냥감이 자신이 사냥당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게 만드는 것이다.


가장 하수(下手)는 무기를 들고 정면으로 달려드는 자이고, 중수(中手)는 교묘한 함정을 파놓고 기다리는 자이다. 그리고 가장 압도적인 포식자는, 사냥감이 속한 무리 내부에 보이지 않는 의심의 씨앗을 뿌려 그들이 서로를 물어뜯다 스스로 자멸하게 만드는 자이다.


서지안은 최동욱 인사본부장이라는 거대한 성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대포를 쏘지 않았다. 그저 성 내부의 우물에 아주 미세한 독극물, ‘익명성’이라는 달콤하고 치명적인 독을 한 방울 떨어뜨렸을 뿐이다.


수요일 오전 8시 30분. 본사 35층 인사본부.


평소라면 출근의 활기로 가득해야 할 35층의 공기는 마치 얼음장처럼 차갑게 식어 있었다. 직원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모니터만 노려보았고,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조차 숨죽인 듯 작았다.


어제 오후, 최동욱 본부장의 핵심 라인이자 노조위원장의 아들인 이성민 대리가 갑작스럽게 지방의 외진 물류창고로 발령이 났다. 표면적인 이유는 ‘직무 순환’이었지만, 인사팀 내에서 그 말을 믿는 바보는 없었다. 점심시간 직후 본부장실로 끌려간 이 대리가 눈물범벅이 되어 쫓겨나듯 짐을 쌌다는 목격담이 이미 파다하게 퍼진 탓이었다.


“기획실장.”


본부장실 문이 거칠게 열리며 최 본부장의 차가운 부름이 들렸다. 기획실장은 식은땀을 훔치며 서둘러 본부장실로 들어갔다.


“네, 본부장님.”


“어제 이성민 그 새끼한테 협박 메시지 보낸 놈, 아이피 추적은 어떻게 됐어?”


최 본부장의 눈에는 핏발이 서 있었다. 밤새 한숨도 자지 못한 듯, 그의 완벽했던 포마드 머리칼은 조금 흐트러져 있었고 짙은 시가 냄새가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게… 사내 보안팀을 우회해서 비공식적으로 조사를 해봤습니다만, 해외 가상 사설망(VPN)을 무려 7중으로 겹쳐놔서 최초 발신지를 찾는 건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쾅!


최 본부장이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불가능해? 그럼 내 금고를 노린 그 개자식이 누군지도 모른 채 계속 당하고만 있어야 한단 말이야?!”


“본부장님. 진정하십시오. 제 생각에는… 십중팔구 서지안 실장 짓입니다. 22층 특감팀에 해커 출신 박 대리라는 놈이 있지 않습니까. 그놈 실력이면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나도 알아! 서지안 그 독사 같은 년 짓이라는 거.”


최 본부장은 넥타이를 거칠게 풀어 헤쳤다.


“문제는 증거가 없다는 거야. 심증만으로 부사장의 직속 사냥개를 건드릴 명분이 부족해. 게다가 그년은 지금 내 가장 치명적인 목줄인 ‘채용 비리 명단’을 쥐고 있어. 당장 내일이라도 그걸 터뜨리면, 내가 먼저 날아간다고!”


최동욱의 전두엽은 극도의 공포와 편집증에 잠식당하고 있었다. 수십 년간 자신이 쥐락펴락했던 정보력의 우위가 서지안에게 완전히 넘어갔다는 사실이 그를 미치게 만들었다.


“실장. 넌 어때.”


“네? 그게 무슨….”


“너도 서지안 그년이랑 뒤로 내통하는 거 아니야? 내 방 금고 비밀번호 아는 놈은 너랑 나 둘뿐인데, 이성민 그 등신 같은 새끼가 어떻게 한 번에 금고를 열었겠어. 네가 찌른 거 아니야?!”


의심병. 권력자가 통제력을 상실했을 때 가장 먼저 나타나는 치명적인 증상이었다. 기획실장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며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본부장님! 억울합니다! 제가 본부장님을 모신 세월이 몇 년인데 감히 그런 짓을 하겠습니까. 저는 절대 아닙니다!”


“닥쳐! 지금 이 35층 안에 있는 놈들 중 절반은 언제 내 목에 칼을 꽂을지 모르는 프락치 새끼들이야. 오늘부터 인사팀 내부 기밀문서 열람 권한 다 통제해. 그리고 기획실 애들 풀어서 우리 애들 중에 22층이랑 연락 주고받는 놈들 있는지 샅샅이 뒤져. 한 놈이라도 꼬투리 잡히면 가만 안 둬!”


“명심하겠습니다, 본부장님!”


기획실장이 도망치듯 방을 빠져나가자, 최 본부장은 금고 앞에 주저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자신이 쌓아 올린 견고한 성에 쥐새끼가 돌아다니는 환청이 들리는 듯했다.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완벽한 고립. 지안이 의도한 불신의 지옥이 최 본부장의 뇌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그 시각, 22층 특별감사팀.


지안은 모니터에 띄워진 인사팀 내부의 실시간 트래픽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박 대리가 해킹을 통해 띄워놓은 35층의 패킷 데이터들은, 어제보다 눈에 띄게 줄어들어 있었다. 기획실장이 내부 기밀문서 열람 권한을 일괄 통제하고, 부서 간 메신저 사용을 감시하기 시작한 탓이었다.


“실장님, 최 본부장이 완전히 이성을 잃은 것 같습니다. 기획실을 동원해서 자기 부하 직원들 뒷조사를 시작했어요.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완전한 스탈린 체제입니다.”


박 대리가 혀를 차며 보고했다. 지안은 커피잔을 가볍게 빙글 돌리며 나긋하게 웃었다.


“예상대로네요. 권력자들은 위기에 처하면 합리적인 판단을 멈추고, 가장 원초적인 방식으로 꼬리를 자르고 내부를 단속하려 들죠. 하지만 그럴수록 부하들의 반발심과 불안감은 커지는 법입니다.”


지안은 책상 서랍에서 열쇠를 꺼내, 어젯밤 고이 넣어두었던 두꺼운 서류철을 다시 꺼냈다.


[태성그룹 최근 3년 채용 비리 연루자 명단 14인]


이성민 대리를 제외하고 남은 13명의 이름이 붉은 형광펜으로 선명하게 그어져 있었다.


“자, 이제 우물에 독을 한 방울 더 떨어뜨려 볼까요.”


지안은 13명의 명단 중 세 사람의 이름을 골라냈다.


인사팀 소속 과장 1명, 재무팀 대리 1명, 그리고 영업본부 소속의 사원 1명. 이들은 모두 최 본부장의 직권으로 점수가 조작되어 입사한 태성그룹 주요 임원들과 하청업체 대표의 자녀들이었다.


“박 대리. 이 세 사람에게 어제 이 대리에게 보냈던 것과 동일한 내용의 익명 메시지를 보내세요. 단, 이번에는 요구 조건이 다릅니다.”


지안은 펜을 들어 메모지에 짧은 문장을 갈겨썼다.


[당신이 면접에서 받은 진짜 점수, 그리고 당신의 부모가 최동욱 본부장에게 건넨 청탁의 대가를 알고 있습니다. 조용히 덮고 싶다면, 최동욱 본부장의 개인적인 비위 사실(법인카드 사적 유용, 룸살롱 접대 등)을 증명할 수 있는 자료를 내일 정오까지 이 번호로 전송하십시오. 거절 시, 당신과 당신 부모의 이름은 내일 오후 언론에 공개됩니다.]


메모를 읽은 박 대리의 동공이 크게 확장되었다.


“실장님… 이건, 인사팀 내부를 넘어서 다른 부서에 있는 최 본부장 라인들까지 완벽하게 분열시키겠다는 뜻입니까?”


“맞아요. 최동욱의 힘은 인사팀뿐만 아니라 사내 곳곳에 박아둔 그의 낙하산들에게서 나오죠. 그 낙하산들에게 자신들의 생존과 최동욱에 대한 충성심 중 하나를 선택하게 만드는 겁니다.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이니까, 십중팔구 최동욱을 팔아넘기고 자기를 구하려 들겠죠.”


지안의 서늘한 미소가 집무실을 채웠다.


그녀는 자신이 직접 나서서 최동욱의 비리를 캘 필요가 없었다. 최동욱이 쥐고 흔들던 수족들이, 스스로 살기 위해 주인의 약점을 물어뜯어 22층으로 가져다 바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이 시장을 통제하는 방식이었다.


“바로 전송하겠습니다.”


박 대리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날아다녔고, 세 통의 치명적인 독화살이 사내망을 타고 세 사람의 개인 스마트폰으로 날아갔다.


수요일 오후 2시.


영업본부 14층 화장실 칸막이 안.


영업 2팀의 김 사원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스마트폰 화면을 노려보고 있었다.


[당신이 면접에서 받은 진짜 점수, 그리고 당신의 부모가 최동욱 본부장에게 건넨 청탁의 대가를 알고 있습니다.]


[첨부파일: 면접평가표_원본.jpg]


김 사원의 아버지는 태성그룹에 부품을 납품하는 거대 하청업체 ‘성진정공’의 대표였다. 그녀는 자신의 실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아버지가 최 본부장에게 건넨 수억 원의 뒷돈 덕분에 공채에 합격할 수 있었다. 그 비밀은 오직 아버지와 최 본부장, 그리고 자신만이 아는 무덤 속의 진실이어야 했다.


“어, 어떻게 알았지… 미쳤어, 이건 미쳤어….”


만약 이 사실이 언론에 공개된다면, 자신의 인생이 끝나는 것은 물론 아버지의 회사인 성진정공 역시 태성그룹과의 계약이 끊겨 파산할 것이 뻔했다.


그녀의 시선은 익명 메시지의 두 번째 줄에 꽂혔다.


[최동욱 본부장의 개인적인 비위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자료를 내일 정오까지 이 번호로 전송하십시오.]


‘최 본부장님의 비리….’


김 사원의 머릿속이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영업본부에서 일하며 그녀는 수시로 접대 자리에 불려 다녔고, 최 본부장이 강남의 최고급 텐프로 룸살롱에서 법인카드를 한도 초과로 긁어대며 하청업체 사장들로부터 은밀한 접대를 받는 것을 여러 번 목격했었다. 심지어 그 결제 내역을 교묘하게 회식비로 위장하여 처리하는 과정에 자신이 실무자로 관여한 적도 있었다.


‘내가 최 본부장님을 팔아넘겨야 내가 산다. 아빠 회사가 망하게 둘 순 없잖아.’


도덕적 갈등은 1분을 넘기지 못했다. 극도의 공포는 인간의 뇌를 마비시키고 이기적인 생존 본능만을 남긴다.


김 사원은 황급히 화장실을 빠져나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과거 영업본부 서버 깊숙한 곳에 백업해 두었던 ‘최동욱 본부장 접대 관련 비용 영수증 및 법인카드 부정 결제 내역’ 폴더를 개인 USB에 몰래 복사하기 시작했다.


같은 시각. 인사팀 소속 최 과장과 재무팀 소속 박 대리 역시 완벽하게 동일한 덫에 걸려 허우적대고 있었다.


그들은 익명의 협박범이 자신들의 목줄을 쥐고 흔든다는 공포에 질려, 평소 자신이 모시던 최동욱 본부장을 배신할 핑계를 찾기 바빴다. 최 과장은 과거 최 본부장이 특정 임원의 인사를 조작하라고 지시했던 녹취 파일을 찾기 위해 자신의 클라우드를 뒤졌고, 재무팀 박 대리는 최 본부장 앞으로 매달 지급되는 출처 불명의 활동비 내역을 엑셀로 몰래 빼내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늙은 코끼리를 향해 겨눠진 창끝이 조여오고 있었다.


수요일 저녁 8시.


퇴근 시간이 지났음에도 본사 35층 인사본부장실에는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다. 최동욱 본부장은 책상에 다리를 올린 채 신경질적으로 시가를 씹고 있었다.


“기획실장. 어떻게 됐어. 내부에 프락치 새끼들 잡아냈어?”


“그게… 본부장님. 아주 이상한 징후가 포착되었습니다.”


기획실장이 파랗게 질린 얼굴로 태블릿을 내밀었다.


“오늘 오후 내내, 영업본부의 김 사원, 인사팀의 최 과장, 그리고 재무팀 박 대리. 이 세 명의 사내망 트래픽이 비정상적으로 치솟았습니다. 보안팀에 뇌물을 주고 몰래 패킷을 까봤더니… 이놈들이 본부장님의 과거 법인카드 결제 내역과 인사 지시 관련 파일들을 개인 디바이스로 은밀하게 복사한 정황이 드러났습니다.”


“뭐라고?!”


최 본부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태블릿을 낚아챘다.


김 사원, 최 과장, 박 대리. 이 세 명은 모두 자신이 채용 비리를 통해 태성그룹에 꽂아 넣은 자신의 절대적인 심복이자 수족들이었다.


“이 개새끼들이… 나를 배신하고 내 뒤통수를 쳐? 내가 지들을 어떻게 사람 만들어줬는데!!”


최 본부장의 눈이 분노로 뒤집혔다.


어제 이성민 대리의 배신에 이어, 오늘은 자신이 가장 믿었던 세 명의 낙하산들마저 자신의 약점을 캐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건 명백한 음모야. 서지안 그 독사 같은 년이 내 수족들을 매수해서 나를 찌르려는 게 분명해! 안 그러면 이놈들이 단체로 이럴 리가 없어!”


편집증에 사로잡힌 최 본부장의 뇌는 이미 합리적인 상황 판단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였다. 그는 서지안이 익명으로 협박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그저 자신의 부하들이 서지안과 내통하여 자신을 배신했다고 맹신해 버렸다.


“실장. 당장 내일 아침 인사위원회 소집해. 저 배은망덕한 새끼들 셋 다 대기발령 내버리고, 보안팀 동원해서 개인 피씨 다 압수해! 내 약점을 쥐고 서지안한테 붙으려는 놈들은 내 손으로 먼저 목을 쳐버릴 테니까!”


“보, 본부장님. 하지만 그 세 명은 모두 그룹 내 주요 임원들과 하청업체 대표 자녀들입니다. 명분 없이 대기발령을 내면 그쪽 부모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요….”


“내가 인사본부장이야! 내 권한으로 쳐내는 데 무슨 명분이 필요해! 시키는 대로 해!”


최 본부장의 짐승 같은 고함에 기획실장은 식은땀을 훔치며 고개를 숙였다.


거대한 파벌의 수장이, 스스로 이성을 잃고 자신의 손과 발을 도끼로 찍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목요일 정오. 22층 특별감사팀 집무실.


지안은 블라인드가 내려진 어두운 집무실에서 최고급 홍차를 마시며 여유롭게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었다.


[삐빅-]


박 대리의 해킹 전용 노트북에 세 개의 알림이 동시에 울렸다.


어제 익명 메시지를 보냈던 세 명(김 사원, 최 과장, 박 대리)으로부터 날아온 대용량 첨부 파일들이었다.


“실장님! 떡밥을 물었습니다. 세 놈 다 본부장님의 치명적인 비위 자료들을 싹 다 긁어모아서 보내왔습니다. 룸살롱 결제 내역, 인사 조작 녹취록, 비자금 장부까지… 완벽한 세트입니다.”


박 대리가 흥분한 목소리로 보고했다.


“잘됐네요. 살아남기 위한 인간의 이기심은 언제나 제 기대를 저버리지 않죠.”


지안은 찻잔을 내려놓고 우아하게 미소 지었다.


“자, 이제 어제 최 본부장이 저지른 짓의 결과를 감상해 볼까요?”


사내 게시판에는 아침 일찍부터 최 본부장의 지시로 내려진 ‘김 사원, 최 과장, 박 대리 3인에 대한 직위 해제 및 대기발령’ 공지가 떠 있었다. 이 갑작스러운 숙청은 태성그룹 전체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이 세 명의 부모들 반응은 어떻습니까?”


지안의 물음에 박 대리가 태블릿을 확인하며 입을 열었다.


“난리가 났습니다. 하청업체 성진정공 대표는 노발대발하며 태성그룹과의 납품 계약을 끊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고, 재무팀 박 대리의 아버지는 이사회에 최 본부장의 독단적인 인사 전횡을 고발하겠다며 길길이 날뛰고 있습니다. 최 본부장 파벌 내부에서 거대한 내전(內戰)이 터진 겁니다.”


완벽한 자멸의 시나리오.


최 본부장은 자신의 배신자를 처단했다고 믿었겠지만, 사실 그것은 지안이 파놓은 가장 치명적인 함정이었다. 최 본부장이 스스로 자신의 낙하산들을 쳐냄으로써, 그는 자신을 지지해 주던 막강한 외부 세력(하청업체, 주요 임원)들과 완벽하게 척을 지게 된 것이다.


이제 최동욱은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고립무원의 늙은 코끼리로 전락했다.


그리고 그 코끼리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채용 비리 증거와 수많은 비위 장부)은, 오롯이 서지안의 서랍 속에 얌전히 잠들어 있었다.


“실장님. 이제 이 자료들을 부사장님께 넘기고 최 본부장의 목을 칠 차례입니까?”


박 대리가 기대에 찬 눈빛으로 물었지만, 지안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아직입니다. 피를 흘리며 쓰러져 가는 짐승에게 곧바로 칼을 꽂는 건 재미가 없죠. 코끼리가 자신의 살을 뜯어 먹는 하이에나 떼들에게 둘러싸여 가장 비참하게 무너져 내릴 때, 그때 내가 아주 우아하게 나타나 구원자의 얼굴을 하고 숨통을 끊어줄 겁니다.”


지안은 모니터의 붉은색 기밀 파일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붉은 입술을 말아 올렸다.


보이지 않는 손이 만들어낸 끔찍한 불신과 배신의 지옥. 그 거대한 무균실 안에서, 사내 최대 권력을 자랑하던 인사본부의 철옹성은 이미 소리 없이 붕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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