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화. 성역 침범

by 연구소장

권력은 절대 정체되어 있지 않다. 그것은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끊임없이 팽창하려 들고, 팽창의 끝에서 필연적으로 다른 권력과 충돌하게 마련이다.


태성그룹 내에서 특별감사팀의 위상은 백도훈 전무 축출 사건을 기점으로 완벽하게 달라졌다. 과거에는 그저 재무 장부나 뒤적이는 귀찮은 부서쯤으로 치부되었지만, 이제 사내의 임원들은 22층 복도를 지날 때마다 행여나 지안과 눈이 마주칠까 봐 숨을 죽였다.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자신들의 목을 날려버릴 수 있는 ‘부사장의 가장 날카로운 사형 집행인’. 그것이 현재 서지안과 7명의 팀원들이 뿜어내는 공포의 실체였다.


하지만 태양 가까이 날아오른 이카루스는 반드시 누군가의 표적이 되는 법.


태성그룹이라는 거대한 제국에는, 특별감사팀의 이 급격한 팽창을 매우 불쾌하게 지켜보는 또 다른 거대한 권력의 축이 존재했다.


월요일 오전 10시. 본사 35층, 인사본부장실.


탁 트인 서울의 전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이 광활한 집무실의 주인은 태성그룹 인사본부장 최동욱 전무였다.


50대 후반, 은발이 섞인 포마드 머리에 완벽한 영국식 맞춤 수트를 입은 그는, 태성그룹 공채 1기 출신으로 무려 30년 가까이 사내의 모든 인사권을 쥐락펴락해 온 진정한 성역(Sanctuary)이었다. 현재 태성그룹 임원의 절반 이상이 그가 끌어주고 밀어준 이른바 '최동욱 라인'이었으며, 심지어 오너 일가인 부사장조차 그를 섣불리 대하지 못할 만큼 막강한 파벌을 형성하고 있었다.


“본부장님. 말씀하신 특별감사팀 최근 3개월 치 활동 내역 및 예산 집행 내역입니다.”


인사팀 기획실장이 조심스럽게 서류철을 내려놓았다. 최 본부장은 시가(Cigar)를 입에 문 채, 서류의 첫 장을 무심하게 넘겼다.


“서지안. 그 계집애가 요즘 아주 사내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다지.”


최 본부장이 시가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혀를 찼다.


“송태섭이야 원래 눈치 없이 굴던 양반이니 그렇다 치고, 부사장님이 그렇게 아끼던 백도훈까지 폐쇄 병동으로 쳐넣다니. 아주 사냥개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더군.”


“네, 본부장님. 문제는 특감팀의 권한이 도를 넘고 있다는 겁니다. 백 전무 사건 당시, 특감팀원들이 보안 요원들을 대동하고 30층 R&D 센터를 통제하는 과정에서 규정을 위반한 정황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게다가 요즘 부사장님께서 특감팀에 배정하는 특수 활동비 규모가 저희 인사팀 예산을 훌쩍 뛰어넘고 있습니다.”


기획실장의 말에 최 본부장의 짙은 눈썹이 꿈틀거렸다.


조직에서 인사권과 돈줄은 곧 생명줄이다. 그동안 태성그룹 임직원들의 생사여탈권은 오롯이 인사본부장인 최동욱의 손아귀에 있었다. 그런데 굴러들어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30대 여성 팀장이, 감찰이라는 명목하에 임원들을 마구잡이로 도륙하며 자신의 고유 권한을 침범하고 있는 것이다.


“부사장이 자기 손에 피 안 묻히려고 유능한 백정을 하나 들인 건 알겠는데… 그 백정이 들고 있는 칼날이 내 목을 겨누기 전에 꺾어버려야겠지.”


최 본부장은 서류를 덮으며 싸늘하게 웃었다.


“서지안 실장, 그리고 그 밑에 있는 7명의 팀원들. 그놈들 인사 기록 전부 가져와. 털어서 먼지 안 나는 놈들이 어디 있겠어. 특감팀 해체 기안서 작성해서 내일 오전까지 내 책상에 올려. 명분은 ‘권한 남용 및 사내 조직 문화 저해’로 잡고.”


“알겠습니다, 본부장님. 아주 확실하게 밟아놓겠습니다.”


기획실장이 허리를 굽히고 나간 뒤, 최 본부장은 시가를 비벼 끄며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수십 년간 구축해 온 자신의 견고한 성에 감히 균열을 내려는 쥐새끼들은, 초장에 완벽하게 밟아 터뜨려야 한다는 것이 그의 오랜 철학이었다.


같은 시각. 22층 특별감사팀 집무실.


지안은 느긋하게 홍차를 마시며 사내 결재 시스템 망을 모니터링하고 있었다. 그때, 해커 출신 박 대리가 헐렁한 후드티 차림으로 헐레벌떡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의 표정은 평소의 여유로움 대신 다급함이 가득했다.


“실장님! 큰일 났습니다.”


“숨부터 고르고 말하세요, 박 대리. 무슨 일이죠?”


“조금 전에 인사팀 내부 서버 패킷을 감청하다가 이상한 트래픽을 발견했습니다. 인사팀 기획실에서 저희 특감팀 7명 전원의 과거 5년 치 인사 기록과 법인카드 사용 내역을 통째로 열람해 갔습니다. 게다가…”


박 대리는 태블릿을 내밀며 말을 이었다.


“‘특감팀 해체 및 부서 재배치’라는 키워드가 포함된 기안서 폼이 방금 생성되었습니다. 기안자는 인사팀 기획실장, 최종 결재자는 최동욱 인사본부장입니다.”


순간, 지안의 찻잔이 허공에서 멈칫했다.


최동욱 인사본부장.


태성그룹 내에서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가장 거대하고 늙은 코끼리. 지안은 언젠가 그와 충돌할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상대방이 이렇게 선제적으로 빠르고 무자비하게 칼을 뽑아 들 줄은 몰랐다. 특감팀 해체. 그것은 곧 지안을 향한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다.


“인사팀에서 명분을 아주 그럴싸하게 잡을 겁니다. 우리가 그동안 사냥을 하면서 규정을 우회했던 꼬투리들을 잡아서, 부사장님조차 우리를 비호하지 못하도록 압박하겠죠. 최 본부장 파벌의 임원들이 이사회에서 벌떼처럼 들고일어나면 부사장님도 우리를 꼬리 자르기 할 수밖에 없습니다.”


박 대리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지난주에 1킬로그램짜리 황금의 단맛을 본 사냥개들에게, 부서 해체와 좌천은 견딜 수 없는 공포였다.


하지만 지안의 붉은 입술은 곧 우아하고 서늘한 호선을 그렸다. 그녀는 찻잔을 테이블에 소리 없이 내려놓았다.


“이런, 내가 너무 우아하게 사냥을 했더니 늙은 사자가 내 발톱을 우습게 본 모양이네요.”


지안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압도적인 위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뇌는 오히려 차갑게 식어 이성적인 연산을 시작했다. 전두엽이 미친 듯이 회전하며 상대의 약점을 스캔하기 시작했다.


“박 대리. 인사본부장의 힘의 원천이 뭐라고 생각합니까.”


“그야… 사내 인사권 독점과 그로 인해 형성된 막강한 파벌 아니겠습니까? 부장급 이상 임원들치고 최 본부장에게 줄 안 댄 사람이 없으니까요.”


“맞아요. 견고한 파벌. 하지만 그 파벌이라는 건, 본부장이 권력을 쥐고 있을 때나 유지되는 얄팍한 모래성에 불과하죠. 누군가 그 모래성의 가장 아랫부분을 살짝만 걷어차 주면, 지들끼리 짓밟고 올라서기 위해 피 터지게 싸우는 게 바로 인간의 본성입니다.”


지안은 몸을 돌려 박 대리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방어는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선제공격으로 인사팀의 심장부를 바로 타격할 겁니다. 최동욱 본부장의 숨통을 한 번에 끊어버릴 치명적인 독극물이 필요해요.”


지안의 뇌리에 스치는 하나의 키워드가 있었다. 인사팀이 가장 민감하게 숨기고, 대중이 가장 분노하는 기업의 아킬레스건.


“박 대리. 최근 3년간 태성그룹 본사 공채 합격자 명단과, 최동욱 라인 임원들의 친인척 명부. 그리고 하청업체 고위직들의 자녀 명단까지 전부 크로스 체크해서 대조하세요.”


박 대리의 동공이 크게 확장되었다.


“채용 비리… 말씀이십니까?”


“그렇죠. 최 본부장이 수십 년간 권력을 유지하며 자기 사람들에게 베풀었던 가장 확실한 혜택. 분명히 합격자 명단에 보이지 않는 뒷구멍으로 들어온 벌레들이 우글거릴 겁니다. 오늘 밤 12시까지, 엑셀 파일로 정리해서 내 책상 위에 올려두세요.”


“알겠습니다, 실장님!”


박 대리가 헐레벌떡 집무실을 빠져나가자, 지안은 다시 책상으로 돌아와 앉았다. 그녀의 눈빛은 마치 먹잇감의 가장 부드러운 목덜미를 꿰뚫어 보는 맹수처럼 형형하게 빛났다.


상대가 성역을 내세우며 나를 부수려 든다면, 나는 그 성역의 토대부터 썩어 문드러졌음을 만천하에 까발려 주면 된다. 최동욱이라는 거대한 신화를 무너뜨리기 위한 이단심문관의 가장 치명적인 반격이 시작되고 있었다.


자정 무렵.


텅 빈 22층 복도를 지나, 박 대리가 두꺼운 서류철을 들고 지안의 집무실로 들어왔다. 그의 눈가에는 극도의 피로가 몰려 있었지만, 그가 들고 온 결과물은 그 어떤 폭탄보다 강력했다.


“실장님. 찾았습니다. 썩은 냄새가 진동을 합니다.”


박 대리가 테이블 위에 서류를 펼쳤다. 형광펜으로 붉게 칠해진 이름들이 빼곡했다.


“최근 3년간 신입 공채 및 경력직 채용 합격자 중, 서류 전형과 1차 면접 점수가 합격선 미달이었음에도 최종 면접에서 최동욱 본부장의 직권으로 점수가 조작되어 합격한 케이스가 무려 14건입니다.”


“14건이나?”


지안의 미간이 흥미롭다는 듯 좁혀졌다.


“그 합격자들의 면면이 아주 화려합니다. 그룹 내 주요 임원들의 조카, 태성그룹의 최대 하청업체인 성진정공 대표의 아들, 심지어 노조위원장의 딸까지 끼어 있습니다. 최 본부장이 이들에게 채용이라는 특혜를 주고, 그 대가로 사내외의 권력을 쥐고 흔들었던 명백한 증거입니다.”


지안은 붉은 형광펜이 칠해진 이름들을 하나하나 손가락으로 짚어 내려갔다. 완벽했다. 이 데이터 하나면 최동욱을 당장 경찰에 구속시키고 인사팀을 공중분해시킬 수 있었다.


“훌륭해요, 박 대리. 당장 내일 아침 부사장님 밥상에 올려도 될 만큼 완벽한 요리네요.”


하지만 지안의 다음 행동은 박 대리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지안은 그 치명적인 증거 서류를 서랍 깊숙한 곳에 던져 넣고 자물쇠를 채워버렸다.


“어? 실장님? 그걸 왜… 당장 이걸로 최 본부장을 쳐야 저희 팀 해체를 막을 수 있지 않습니까?”


“박 대리. 이건 최동욱이라는 거대한 짐승을 단숨에 죽이기엔 너무 아까운 카드예요.”


지안은 서랍 열쇠를 챙기며 나긋하게 웃었다.


“채용 비리 증거를 들고 곧장 부사장님이나 감사실에 들이밀면, 최 본부장은 어떻게든 꼬리를 자르고 빠져나갈 겁니다. 실무진의 실수였다고 우기거나, 자신이 심어둔 법무팀 임원들을 동원해 증거를 무효화시키겠죠. 코끼리를 쓰러뜨리려면 코끼리에게 직접 총을 쏘는 게 아니라, 코끼리가 딛고 서 있는 땅을 늪으로 만들어버려야 합니다.”


지안은 모니터를 켜고, 사내 메신저 창을 띄웠다.


“진정한 공포는, 적이 어디서 공격해 오는지 알 수 없을 때 극대화되는 법이니까요.”


지안은 박 대리가 가져온 14명의 특혜 채용자 명단 중, 가장 취약한 고리 하나를 선택했다.


인사팀 소속의 입사 2년 차 대리, 이성민.


그는 태성그룹 노조위원장의 아들로, 최 본부장의 직접적인 점수 조작 덕분에 인사팀이라는 최고 권력 부서에 안착한 인물이었다.


지안은 추적이 불가능한 익명 계정을 생성한 뒤, 이성민 대리의 사내 이메일과 개인 스마트폰 메시지로 단 한 줄의 문장과 사진 한 장을 전송했다.


[당신이 2년 전 면접에서 받은 진짜 점수, 그리고 당신의 아버지가 최동욱 본부장과 나눈 거래를 알고 있습니다.]


첨부된 사진은 이성민의 원래 면접 점수가 적힌 엑셀 파일의 캡처본이었다. 합격 커트라인에 한참 못 미치는 초라한 점수.


메시지 전송 버튼을 누른 지안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자, 이제 인사팀 내부에서 스스로 의심의 씨앗이 피어오르는 걸 지켜보죠. 도둑질한 자들은 아주 작은 발소리에도 기절할 듯 놀라는 법이거든요.”


화요일 오전 9시. 본사 35층 인사본부.


최동욱 본부장의 지시대로 특별감사팀 해체 기안서를 작성하던 기획실장은, 밖에서 들려오는 소란스러운 소리에 인상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일이야? 아침부터 소란스럽게.”


기획실장이 파티션 밖으로 고개를 내밀자, 그곳에는 인사팀 이성민 대리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서류를 떨어뜨린 채 덜덜 떨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인사팀의 다른 직원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 대리. 왜 그래? 어디 아파?”


“아,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 대리는 황급히 바닥에 떨어진 스마트폰을 주워 주머니에 찔러 넣고는 도망치듯 화장실로 뛰어갔다. 그의 등 뒤로 동료들의 의심 어린 시선이 꽂혔다.


화장실 칸막이 안으로 숨어 들어간 이 대리는 떨리는 손으로 다시 한번 메시지를 확인했다.


자신의 가장 치명적인 비밀. 아버지가 노조의 파업을 무마해 주는 조건으로 최 본부장에게 청탁하여 얻어낸 이 직장. 이 완벽한 비밀을 도대체 누가 알고 있단 말인가.


‘설마… 내부 고발자? 인사팀 내부에 최 본부장님을 치려는 프락치가 있는 건가?’


극도의 불안감에 휩싸인 이 대리의 전두엽이 마비되기 시작했다. 그는 이 사실을 당장 최 본부장에게 보고해야 할지, 아니면 아버지가 있는 노조로 달려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만약 이 사실이 외부로 알려진다면 자신은 범죄자로 낙인찍혀 쫓겨나고, 아버지의 노조위원장 자리도 끝장날 것이 뻔했다.


그런 이 대리의 심리를 꿰뚫어 보기라도 한 듯, 두 번째 익명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조용히 덮고 싶다면, 오늘 오후 2시까지 인사본부장실 금고에 있는 '올해 하반기 임원 승진 내정자 명단'을 복사해서 이 번호로 보내. 거절하면 내일 아침 사내 게시판에 네 실명과 점수를 공개하겠다.]


지안의 두 번째 덫이었다.


그녀는 채용 비리를 폭로하겠다고 협박하여, 오히려 인사팀의 1급 기밀문서를 빼내 오도록 요구한 것이다. 이것은 이 대리를 완벽한 꼭두각시로 만드는 동시에, 최 본부장의 가장 예민한 역린을 건드리는 행위였다.


“미치겠네… 미치겠어….”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이기적인 인간의 뇌는, 결국 도덕적 판단을 멈추고 당장의 공포를 피하는 쪽을 택한다. 이 대리는 식은땀을 훔치며 화장실 칸막이를 나섰다. 자신이 속한 조직의 수장을 배신해야만 내가 살 수 있다는 달콤하고도 끔찍한 타협.


그날 점심시간. 최 본부장이 외부 오찬을 위해 자리를 비운 사이, 이 대리는 청소 카트에 몸을 숨기고 본부장실로 잠입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평소 어깨너머로 외워두었던 금고 비밀번호를 눌렀다.


띠릭.


금고 문이 열리고, 이 대리는 그 안에 들어있던 극비 문서인 ‘승진 내정자 명단’을 스마트폰으로 황급히 촬영했다.


하지만, 도둑은 결국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다.


너무 당황한 나머지 엑셀 서류철의 순서를 뒤바꿔 놓았고, 금고 문을 닫으면서 넥타이 핀 하나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만 것이다.


오후 3시. 오찬을 마치고 돌아온 최동욱 본부장은 집무실에 들어서자마자 기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수십 년간 사람을 다뤄온 그의 후각은 아주 미세한 공기의 변화조차 놓치지 않았다. 책상 위 결재판의 위치가 미세하게 틀어져 있었고, 무엇보다 금고 앞 바닥에 떨어져 있는 은색 넥타이 핀이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건… 이성민 대리 놈이 달고 다니던 거잖아.”


최 본부장의 눈매가 무섭게 좁아졌다. 그는 다급하게 금고를 열어 내부를 확인했다. 문서들이 흩트려져 있었고, 임원 승진 내정자 명단 파일이 삐딱하게 꽂혀 있었다.


“기획실장!! 당장 들어와!!”


최 본부장의 사자후에 기획실장이 사색이 되어 뛰어 들어왔다.


“누가 내 방에 들어왔어? 점심시간에 내 방 출입 기록 다 뽑아와! 이성민 그 새끼 당장 내 방으로 끌고 와!”


조직의 권력자는 자신의 통제력이 미치지 않는 내부의 배신을 가장 두려워한다.


몇 분 뒤, 바들바들 떨며 본부장실로 끌려온 이성민 대리는 최 본부장이 던진 넥타이 핀을 보자마자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본부장님… 죄, 죄송합니다! 제가 살려고… 협박을 받아서 어쩔 수 없이….”


“이 개새끼가 미쳤나! 내 금고에서 뭘 빼돌렸어! 누가 널 협박해!”


최 본부장이 골프채를 집어 들고 짐승처럼 소리쳤다. 이 대리는 눈물 콧물을 쏟으며 자신의 스마트폰 메시지 내역을 보여주었다.


[당신이 2년 전 면접에서 받은 진짜 점수, 그리고 당신의 아버지가 최동욱 본부장과 나눈 거래를 알고 있습니다.]


그 문장을 읽은 순간, 최 본부장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셨다.


채용 비리. 자신과 몇몇 핵심 측근들만이 은밀하게 진행했던 그 무덤 속의 비밀이 밖으로 새어 나갔다. 게다가 자신을 찌르기 위해 협박한 대상이 다름 아닌 자신이 부정하게 꽂아 넣은 부하 직원이라니.


“어떤 놈이야… 어떤 새끼가 이걸 알고 널 협박한 거야!”


“저, 저도 모릅니다! 그냥 익명 계정으로 날아왔습니다… 본부장님 살려주십시오. 명단 찍은 건 당장 지우겠습니다….”


최 본부장의 전두엽이 미친 듯이 경고음을 울렸다.


이 비밀을 알고 있는 자는 사내에 극소수다. 누군가 자신의 등에 칼을 꽂기 위해 인사팀 내부를 샅샅이 뒤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얼굴.


“서지안… 그 독사 같은 년.”


최 본부장은 골프채를 바닥에 내팽개치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어제 자신이 지시한 특별감사팀 해체 기안이 올라가기도 전에, 서지안이 먼저 선빵을 날린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증거가 없었다. 심증만으로 특감팀을 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지금 자신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채용 비리)이 적의 손에 넘어가 있는 상태였다.


“기획실장. 이성민 이 새끼 당장 지방 물류창고로 발령 내서 눈앞에서 치워버려. 그리고 오늘 밤, 기획실 애들 비상 대기시켜. 서지안 그년이 무슨 패를 쥐고 있는지 당장 알아내야겠어.”


오만한 성역에 치명적인 균열이 생겼다.


지안이 쏜 단 한 발의 익명 메시지는, 철옹성 같았던 인사팀 내부에 불신과 배신의 독을 완벽하게 퍼뜨렸다. 최동욱은 이제 이성을 잃고 의심병에 사로잡힌 채 스스로 수족을 자르며 무너져 내릴 준비를 마친 짐승이 되어 있었다.


오후 5시. 22층 특감팀 집무실.


지안은 모니터에 띄워진 인사팀 내부의 트래픽을 여유롭게 감상하고 있었다.


이성민 대리의 지방 발령 공지가 긴급하게 떴고, 인사팀 내부 서버는 혼돈 그 자체였다.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는 불신의 늪.


“실장님, 말씀하신 대로 이 대리가 명단을 찍어서 보낸 직후 최 본부장에게 발각되어 숙청당했습니다.”


박 대리가 감탄을 금치 못하며 보고했다.


“예상대로네요. 권력자들은 위기에 처하면 합리적인 판단 대신 가장 폭력적이고 원초적인 방식으로 꼬리를 자르려 들죠.”


지안은 창밖의 노을을 바라보며 나긋하게 웃었다.


그녀의 책상 서랍 속에는 최동욱 본부장의 목숨줄인 채용 비리 명단 14명의 데이터가 고스란히 잠들어 있었다. 지안은 이 남은 13명에게도 차례대로 익명의 덫을 놓아, 최동욱이 스스로 미쳐 날뛰며 자신의 파벌을 파괴하게 만들 작정이었다.


“박 대리. 내일부터 인사팀 직원들 사이의 메신저 감청 수위를 최고로 올리세요. 최 본부장의 편집증이 아주 볼만하게 터져 나올 테니까.”


이단심문관의 가장 우아하고 잔혹한 심리전이, 그룹 내 최대 권력인 인사본부장의 심장부를 소리 없이 썩어 들어가게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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