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무균실을 만들기 위해서는 단 하나의 예외도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온도와 습도는 통제자의 의도대로 세팅되어야 하며, 예측 불가능한 돌연변이나 자생적으로 번식하는 박테리아는 그 즉시 소각로에 던져져야 한다. 서지안에게 태성그룹이라는 거대한 조직은 자신이 설계하고 지배해야 할 무균실이었다.
원칙을 내세우며 조직의 흐름을 가로막던 송태섭 부장이 첫 번째로 소각된 폐기물이었다면, 통제 불능의 오만함과 기괴한 직관으로 무균실을 어지럽히던 백도훈 전무는 두 번째로 제거된 치명적인 바이러스였다.
수백 명의 이사진이 지켜보는 무대 위에서 자신의 토사물에 처박힌 채 질질 끌려 나간 천재. 그 처참하고도 스펙터클했던 생방송 자살 쇼가 끝난 지 정확히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서울 외곽, 삼엄한 경비가 깔린 최고급 정신 질환 및 알코올 중독자 전용 폐쇄 병동.
창살이 덧대어진 두꺼운 방음문을 열고 들어가자, 옅은 소독약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일체의 위험한 물건이 제거된 그 적막한 독방 한가운데에 환자복을 입은 사내가 무릎을 끌어안고 웅크려 있었다.
백도훈.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수백억의 예산을 쥐락펴락하며 자신을 신이라 칭하던 사내는, 이제 덥수룩하게 자란 수염과 푹 파인 볼, 쉴 새 없이 덜덜 떨리는 손끝을 가진 흉물스러운 껍데기만 남아 있었다.
또각, 또각.
서늘한 하이힐 소리가 독방의 정적을 깼다.
죽은 듯 웅크려 있던 도훈의 어깨가 크게 움찔거렸다. 핏발이 서고 초점이 흐려진 눈동자 너머로, 티끌 하나 없는 검은색 정장을 차려입은 서지안의 실루엣이 보였다.
“도훈 선배.”
지안의 나긋나긋한 목소리에 도훈의 텅 빈 눈동자가 기괴하게 흔들렸다.
“지, 지안 씨… 서 실장….”
도훈은 두 팔을 바닥에 짚으며 짐승처럼 지안의 발밑으로 기어 왔다.
“나… 나 좀 여기서 꺼내줘. 다들 미쳤어. 부사장 그 쓰레기 새끼가, 내 천재성을 질투해서 날 불법으로 여기 가둔 거라고! 이거 명백한 범죄야! 당장 변호사 불러줘!”
지안은 바닥을 기는 도훈을 내려다보며, 입가에 서늘한 조소를 머금었다.
“불법 감금이라뇨. 단단히 착각하고 계시네요.”
“뭐…?”
“대한민국 법이 그렇게 허술한 줄 아십니까. 본인이나 가족 동의 없이 사람을 정신병원에 가둘 순 없죠. 선배를 이곳에 입원시킨 건 부사장님이 아닙니다. 선배의 친형님과 어머니십니다.”
지안의 입에서 나온 가족이라는 단어에 도훈의 숨이 턱 막혔다.
“그, 그럴 리가… 우리 가족이 왜 나를….”
“제가 선배의 본가로 찾아가서 정중하게 말씀드렸거든요. 백도훈 전무가 무대에서 벌인 난동으로 회사의 주가 하락과 프로젝트 지연 손실액이 약 1,200억 원에 달한다고요.”
지안은 몸을 숙여, 혼란에 빠진 도훈의 귓가에 독사처럼 속삭였다.
“태성그룹 법무팀이 선배 개인과 가족들을 상대로 천문학적인 손해배상 소송을 걸고 가압류를 걸 예정이었죠. 하지만, 가족들이 선배의 ‘중증 알코올 중독 및 조현병’을 인정하고 즉각적인 폐쇄 병동 강제 입원 동의서에 도장을 찍어준다면… 회사는 그 소송을 덮어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도훈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빚더미에 나앉을 공포에 질린 가족들은, 회사의 협박과 회유 앞에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도훈을 정신병원에 버리는 길을 택했다. 가장 믿었던 혈육조차 자신을 미치광이로 인정하고 꼬리를 잘라버린 것이다.
“아… 아아아….”
도훈의 내면을 지탱하던 마지막 자존심의 기둥이 우지끈 부러져 내렸다. 그제야 그의 망가진 전두엽 한구석에서 끔찍한 깨달음이 스치고 지나갔다. 자신의 주변에서 벌어졌던 연구원들의 배척, 탕비실에 나돌던 찌라시, 무대에 오르기 직전 자신의 손에 쥐여졌던 술병, 그리고 가족들의 입원 동의서까지. 그 모든 것이 눈앞의 이 악랄한 여자가 합법적이고 치밀하게 설계한 거대한 거미줄이었다는 것을.
“네년이… 네년이 나를 처음부터…!”
도훈이 핏발 선 눈을 부릅뜨며 지안을 향해 달려들려 했다. 하지만 며칠을 굶고 알코올 금단 현상에 시달린 육체에는 일말의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는 바닥으로 고꾸라져 머리를 쥐어뜯으며 절규했다.
지안은 바닥을 구르는 도훈을 서늘한 눈으로 내려다보다가, 핸드백에서 은은한 광택이 도는 물건을 꺼냈다. 순은으로 세공된 휴대용 플라스크. 프레젠테이션 직전, 도훈의 이성을 완벽하게 끊어버렸던 그 독배였다.
순간, 도훈의 절규가 뚝 멎었다.
지안이 플라스크의 뚜껑을 열자, 60도짜리 캐스크 스트랭스 독주의 농밀한 향기가 퍼졌다. 도훈의 편도체는 모든 분노와 배신감을 잊고 오직 눈앞의 알코올만을 갈구하기 시작했다.
“주… 주세요. 제발. 한 모금만….”
가족에게마저 버림받고 영혼이 거세당한 사내가, 알코올 한 모금을 위해 눈물을 콧물과 섞으며 지안의 구두코에 이마를 비비며 애원했다.
지안은 플라스크를 거꾸로 들어 바닥에 두세 방울 툭, 툭 떨어뜨렸다. 도훈은 망설임 없이 바닥에 코를 박고 대리석에 묻은 알코올을 핥아먹기 시작했다.
“가끔은 면회를 오죠. 알코올성 치매로 뇌가 녹아 죽어가는 그날까지, 이 부적은 내가 넉넉히 공급해 줄 테니까.”
지안은 플라스크를 도훈의 품에 조롱하듯 던져주고는 철문을 향해 걸어갔다. 백도훈이라는 우상은 그렇게 완벽하게 사회와 격리되어 영원한 어둠 속에 봉인되었다.
그날 오후. 태성그룹 본사 32층, 부사장 집무실.
최고급 마호가니 책상 뒤에 앉은 부사장은 연거푸 담배만 뻐끔거리고 있었다. 지안은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정장 차림으로 부사장의 책상 앞에 섰다. 그녀의 손에는 묵직한 결재 서류 한 부가 들려 있었다.
“부사장님. 지시하신 백도훈 전무에 대한 내부 감사 보고서, 최종 갈무리해 왔습니다.”
부사장은 미간을 찌푸린 채 서류를 받아 들었다.
“백도훈의 알코올 중독 및 망상 장애로 인한 업무상 배임, 연구비 사적 유용, 그리고 부하 직원들을 향한 폭언과 갑질 행위 일체 인정. 가족 동의하에 폐쇄 병동 입원 완료….”
서류를 읽어 내려가는 부사장의 표정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지안이 작성한 보고서는 완벽했다. 백도훈이라는 개인이 철저하게 타락하여 저지른 일탈일 뿐, 그를 스카우트하고 보호했던 부사장의 리더십이나 인사 검증 시스템에는 어떠한 책임도 묻지 않는 완벽한 꼬리 자르기 서사였다.
“수고했어요, 서 실장. 하마터면 내 목까지 위태로울 뻔한 거대한 폭탄이었는데, 특감팀이 가족들 입단속부터 병원 수속까지 아주 신속하게 처리해 줬어. 내 손발이 되어 가장 더러운 일들을 참 합법적이고 깨끗하게 치워주는군.”
부사장의 눈빛에 지안을 향한 짙은 신임이 묻어났다. 그는 책상 서랍을 열어, 묵직한 서류 봉투 하나를 꺼내 지안의 앞으로 밀어주었다.
“R&D 센터 연구비 명목으로 쌓아두었던 특수 활동비 중 일부요. 기록에 남지 않는 깨끗한 비자금이지. 특감팀 녀석들이 최근 들어 밤낮없이 고생이 많잖아. 그 녀석들 입단속 확실히 시키고, 앞으로도 내 눈과 귀가 되어서 사내의 불순분자들을 색출해 주시오.”
지안은 그 봉투의 두께를 가늠하며 우아하게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기대에 부응하겠습니다, 부사장님.”
부사장실을 나서는 지안의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번졌다. 자신이 손수 괴물로 만들어버린 사냥감을 처형하고, 그 공로로 진짜 사냥감인 부사장에게 맹목적인 신뢰와 두둑한 비자금까지 하사받았다. 태성그룹이라는 체스판은 온전히 그녀의 손아귀에 있었다.
밤 10시. 서울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최고급 호텔의 최상층 펜트하우스.
수백만 원짜리 샴페인이 얼음 바스켓 안에서 식어가고 있고, 이 압도적인 공간 안에는 서지안을 필두로 한 7명의 특별감사팀원들이 모여 있었다. 사냥을 마친 그들의 얼굴에는 피로 대신 탐욕과 승리의 도파민이 터질 듯이 차올라 있었다.
“다들 수고 많았습니다.”
소파에 몸을 기댄 지안이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녀의 앞에는 부사장이 하사했던 서류 봉투와, 거대한 검은색 철제 가방이 놓여 있었다.
“송태섭 부장부터 백도훈 전무까지. 여러분은 한 달도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이 거대한 태성그룹의 기둥 두 개를 완벽하게 썰어냈습니다.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사내 여론을 완벽하게 통제한 여러분의 능력에 감탄했습니다.”
박 대리를 비롯한 팀원들이 황홀한 표정으로 지안을 바라보았다.
“회사는 항상 충성을 강요하면서도 보상에는 인색합니다. 위에서 시키는 대로만 하면 소모품으로 버려지죠. 하지만 우리 무균실의 법칙은 다릅니다.”
지안은 테이블 위에 놓인 거대한 철제 가방의 잠금장치를 풀었다.
찰칵.
경쾌한 금속음과 함께 뚜껑이 열리자, 펜트하우스의 화려한 조명을 받은 무언가가 시력을 잃게 할 만큼 찬란한 빛을 뿜어냈다.
“헉….”
7명의 팀원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들의 눈동자가 팽창했다. 가방 안에는 한국은행의 직인이 선명하게 찍힌 1kg짜리 순금 골드바 7개가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오늘 오후, 부사장님이 우리 특감팀의 노고를 치하하며 내려주신 특별 활동비입니다. 출처가 남지 않는 완벽하게 세탁된 비자금이죠. 제가 제 몫을 떼고 남은 것들을, 여러분이 가장 좋아할 만한 현물로 환전해 왔습니다.”
지안은 평온한 어투로 말했다.
“1kg 골드바 하나. 현재 시세로 1억 1천만 원 정도 하겠군요. 각자 하나씩 챙겨 가십시오. 이번 사냥에 대한 보너스입니다.”
일개 직장인이 만져보기 힘든 압도적인 보너스. 오 과장과 박 대리의 눈에서는 이성을 상실한 탐욕이 흘러넘쳤다.
“실장님… 저희가 감히 이런 거액을….”
“거액이라뇨. 여러분이 무너뜨린 그 오만한 천재, 백도훈의 목값에 비하면 푼돈에 불과합니다.”
지안은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테이블을 돌며 7명의 팀원들을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기억하세요. 이제 여러분은 언제든 해고당할 수 있는 비루한 샐러리맨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이 태성그룹이라는 숲을 통제하고, 썩은 나무들을 베어내는 진정한 지배자들입니다.”
지안은 덜덜 떨리는 박 대리의 손을 잡아끌어, 차갑고 묵직한 골드바 하나를 쥐여주었다. 황금의 서늘한 감촉이 손바닥에 닿는 순간, 박 대리의 뇌리에 남아있던 도덕적 죄책감마저 완벽하게 소각되었다. 멀쩡한 사람을 병동에 처넣었다는 찝찝함은, 1억 원이라는 묵직한 중량감 앞에서 한낱 먼지처럼 흩어졌다.
“회장의 말은 어겨도, 제 명령은 어기지 마십시오. 저는 언제나 여러분의 헌신에 이토록 확실한 현물로 보답할 테니까요.”
7명의 팀원들은 황금을 꽉 쥐고 일제히 지안을 향해 허리를 굽혔다.
“명심하겠습니다, 실장님!”
“명령만 내려 주십시오!”
돈과 권력이라는 가장 원초적인 자극으로 인간의 양심을 완전히 거세하고, 그들을 자신만의 광신도로 조립해 낸 완벽한 의식. 지안은 그들의 정수리를 내려다보며 샴페인 잔을 들어 올렸다.
“자, 그럼 다음 사냥감을 물색해 볼까요.”
지안은 창밖으로 끝없이 펼쳐진 빌딩 숲을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뱀처럼 서늘한 시선은 이제 인사팀의 실세이자 사내 최대 파벌을 형성하고 있는 인사본부장,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자신을 사냥개로 부리려 드는 부사장을 향해 똑바로 뻗어가고 있었다.
“이번엔, 좀 더 크고 덩치 있는 짐승의 목줄을 끊어봐야겠군요.”
피비린내가 완벽한 무균실 안에서 아주 조용하고 우아하게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현대의 이단심문관이 지휘하는 잔혹한 사냥은 이제 막 본 게임에 돌입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