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화. 맹목적인 병사들

by 연구소장

인간의 도덕성이란 거대한 빙산과도 같아서, 평소에는 이성과 규범이라는 수면 위로 단단하게 솟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수면 아래에 막대한 자본과 권력이라는 뜨거운 해류가 흐르기 시작하면, 그 알량한 도덕성은 형체도 없이 녹아내리기 마련이다.


평범한 직장인을 피도 눈물도 없는 광신도로 만드는 데는 복잡한 세뇌가 필요하지 않다. 그들이 평생 만져보지 못할 압도적인 부를 쥐여주고, 그 부를 지키기 위해 저지르는 모든 악행을 ‘거대한 권력의 합법적인 지시’라고 포장해 주기만 하면 된다.


태성그룹 22층 특별감사팀의 7명은 이미 그 변이 과정을 완벽하게 끝마친 상태였다. 서지안이 하사한 1킬로그램의 순금 골드바, 그리고 부사장의 입에서 직접 떨어진 초법적인 권한 위임. 이 두 가지는 특감팀원들의 뇌 속에서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일말의 죄책감마저 완벽하게 소각시켜 버렸다.


이제 그들은 회사의 부정을 감시하는 감사 요원이 아니었다. 서지안이라는 절대적인 여왕을 숭배하며, 그녀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이라면 그곳이 지옥의 밑바닥이라도 기꺼이 뛰어들어 사냥감의 목줄을 물어뜯을 맹목적인 병사들이었다.


금요일 오후 1시 30분. 본사 22층 특감팀 집무실.


통유리창의 블라인드가 모두 빈틈없이 내려진 어두운 집무실 안. 대형 스크린 앞에는 7명의 특감팀원들이 군대의 특수부대원들처럼 일사불란하게 도열해 있었다. 그들의 눈빛은 피 냄새를 맡은 짐승들처럼 형형하게 번들거리고 있었다.


지안은 가장 상석인 가죽 의자에 여유롭게 앉아, 부사장이 방금 전 직접 결재 서명을 휘갈긴 ‘특별 감사 권한 위임장’을 테이블 위로 가볍게 밀어주었다.


“부사장님의 공식적인 명령입니다.”


지안의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적막한 방안을 갈랐다.


“현재 35층에 고립된 최동욱 인사본부장이 500억 규모의 비자금을 빼돌려 해외로 도주하려 한다는 명백한 정황이 포착되었습니다. 부사장님께서는 우리 특별감사팀에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최 본부장의 도주를 막고 횡령의 물증을 확보하라는 전권을 위임하셨습니다.”


지안은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팀원들의 앞을 걸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는 뜻은, 사내의 규정 따위는 가볍게 무시해도 좋다는 오너의 은혜로운 면죄부입니다. 불법 도청, 해킹, 물리적인 억압, 그리고 함정 수사. 그 어떤 짓을 저질러도 이 태성그룹 안에서는 여러분이 곧 법이고 정의입니다. 책임은 부사장님과 제가 집니다.”


그 말에 해커 출신 박 대리와 오 과장의 얼굴에 짙은 희열이 번졌다.


늘 합법의 테두리 안에서 흔적을 지우느라 전전긍긍했던 그들에게, 무소불위의 권력이 쥐여진 것이다. 그것도 1억 원이 넘는 황금을 품에 안겨준 구원자, 서지안의 입을 통해서 말이다.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실장님! 최동욱 그 늙은 여우 새끼의 뼛속까지 털어서 대령하겠습니다!”


오 과장이 주먹을 불끈 쥐며 충성을 맹세했다. 다른 팀원들 역시 홀린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눈에 최동욱은 더 이상 모셔야 할 임원이 아니었다. 자신들의 부와 권력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도륙해야 할 사냥감일 뿐이었다.


“좋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최동욱의 시각과 청각, 그리고 물리적인 퇴로를 완벽하게 절단하는 수술을 시작하죠.”


지안은 대형 스크린에 최동욱 본부장의 인적 사항과 사내 동선을 띄웠다.


“박 대리. 최동욱의 개인 스마트폰과 자택 피씨, 그리고 법인 차량의 블랙박스와 내비게이션 마이크까지 모조리 백도어를 심어서 감청하세요. 회삿돈으로 지급된 전자기기들이니 감사팀의 권한으로 뚫고 들어가도 명분은 충분합니다.”


“알겠습니다! 10분 내로 최동욱의 숨소리 하나까지 22층으로 끌어오겠습니다.”


“오 과장과 다른 팀원들은 지금 즉시 35층으로 올라가서 물리적인 봉쇄를 시작하세요. 인사팀 직원들에게 특감팀의 비상 통제권이 발동되었음을 알리고, 누구도 본부장실 근처에 접근하지 못하게 막으십시오. 최동욱이 외부로 전화를 걸려고 하면 사내 교환기를 통제해 발신을 강제로 끊어버리고, 그의 법인 차량 운전기사에게는 당장 차 키를 반납하고 퇴근하라고 지시하세요.”


지안의 명령은 차갑고 정교했다.


권력자가 힘을 잃는 가장 빠른 방법은, 세상과의 소통 단절이다. 자신이 내리는 명령이 문턱을 넘지 못하고, 외부의 구원 요청조차 차단당하는 순간, 권력자는 완벽한 고립의 지옥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안의 붉은 입술이 가장 치명적인 독을 품고 호선을 그렸다.


“최동욱이 해외로 도망가려 했다는 물증이 없으면 우리가 만들어주면 됩니다. 박 대리, 딥웹과 차명 계좌 네트워크를 이용해서 최동욱의 이름으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행 편도 항공권을 예약하고, 페이퍼 컴퍼니로 거액의 달러가 송금된 것처럼 가짜 트랜잭션을 생성하세요. 아주 허술하고 추적하기 쉽게 흔적을 남겨서 말이죠.”


증거 조작. 범죄를 날조하여 멀쩡한 사람을 도망자로 둔갑시키는 명백한 불법 행위였다.


하지만 7명의 팀원 중 그 누구도 도덕적인 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이미 그들의 양심은 황금의 무게에 짓눌려 압사당한 지 오래였다. 그들은 그저 지안의 완벽한 시나리오에 감탄하며, 광신도처럼 눈을 반짝일 뿐이었다.


“명 받들겠습니다, 실장님! 지금 바로 작전 개시하겠습니다!”


팀원들이 우렁차게 대답하며 썰물처럼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문을 나서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지안은 우아하게 홍차 잔을 들어 올렸다. 피에 굶주린 맹견들의 목줄이 마침내 풀렸다. 도축장 안의 코끼리는 이제 사방에서 물어뜯기며 이성을 잃고 미쳐 날뛰는 일만 남았다.


오후 2시. 본사 35층 인사본부.


35층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오 과장을 필두로 한 특감팀원들이 차가운 표정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들의 기세는 마치 점령군과도 같았다.


“특별감사팀에서 나왔습니다! 현재 시각부로 35층 인사본부 전역에 대한 비상 통제 조치를 발동합니다. 전 직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마시고, 외부 발신 전화를 일체 금지합니다!”


오 과장의 쩌렁쩌렁한 고함에 인사팀 직원들은 기겁하며 고개를 숙였다. 아침부터 돌던 찌라시가 완벽한 현실이 되어 감사팀이 들이닥치자, 직원들은 최 본부장이 진짜로 횡령을 저질렀다고 확신하며 공포에 떨었다.


특감팀원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본부장실로 향하는 모든 복도를 차단하고, 사내 통신망 단자함에 감청용 디바이스를 꽂아 넣었다. 최동욱을 세상과 단절시키는 물리적이고 통신적인 완벽한 무균실이 순식간에 완성되었다.


그 시각, 굳게 닫힌 본부장실 안.


최동욱은 땀으로 흠뻑 젖은 셔츠 차림으로 파쇄기 앞에 주저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방 안은 산산조각이 난 서류 뭉치와, 열려 있는 금고에서 꺼낸 현금 다발들로 엉망진창이었다.


“서지안 이 독사 같은 년… 기획실장 그 쥐새끼랑 짜고 나를 몰아내려 들어? 어림없지. 내가 이 태성그룹에서 보낸 세월이 얼만데.”


그는 이성을 잃고 중얼거리며 개인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자신을 따르던 계열사 사장들과 외부의 국회의원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서지안의 미친 칼춤을 막아달라고 압력을 넣을 생각이었다.


최동욱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번호를 누르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뚜… 뚜… 고객의 요청으로 발신이 제한된 번호입니다.]


“뭐? 제한?”


최동욱은 신경질적으로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고 다른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고객의 요청으로 발신이 제한된 번호입니다.]


“이게 무슨 소리야! 내 폰이 왜 먹통이야!”


그가 책상 위에 놓인 사내 직통 전화기의 수화기를 집어 들었지만, 뚜- 하는 발신음조차 들리지 않는 완벽한 먹통 상태였다. 외부와 연결된 모든 선이 인위적으로 끊어져 있었다.


그 순간, 책상 위의 모니터가 지지직거리며 검게 변하더니, 붉은색 글씨로 하나의 알림 창이 떠올랐다.


[경고: 해당 계정은 보안 규정 위반(자금 횡령 및 도주 시도) 혐의로 특별감사팀에 의해 네트워크 접근이 차단되었습니다.]


“차단? 자금 횡령?! 도주 시도?!”


최동욱의 동공이 미친 듯이 확장되었다.


그제야 그는 자신의 바깥세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 소름 돋는 윤곽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서지안이 단순히 자신의 비리를 캐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지금 자신에게 거대한 횡령과 야반도주라는 끔찍한 프레임을 씌워, 사내에서 완벽하게 매장시키려 하고 있었다.


“이 미친년이… 없는 죄를 뒤집어씌워서 나를 죽이려고?!”


극도의 억울함과 분노가 편도체를 강타했다. 최동욱은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집무실 문으로 달려가 손잡이를 거칠게 돌렸다.


덜컥, 덜컥.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밖에서 오 과장이 묵직한 자물쇠를 채워버린 탓이었다.


“문 열어!! 이 개새끼들아! 내가 인사본부장 최동욱이야! 당장 문 열지 못해!!”


쾅쾅쾅!


최동욱이 주먹으로 문을 부서져라 내리치며 악을 썼지만, 밖에서는 어떤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블라인드 틈새를 통해 보이는 바깥 풍경은 그를 더욱 미치게 만들었다.


자신이 거느리던 수십 명의 부하 직원들은 벽에 붙어 벌벌 떨며 자신을 벌레 보듯 쳐다보고 있었고, 그들을 통제하고 있는 것은 서지안의 수족인 특감팀 요원들이었다. 수십 년간 자신이 지배했던 왕국이, 단 하루 만에 자신을 가두는 완벽한 감옥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서지안… 서지안!!!”


최동욱은 이성을 완전히 상실한 채 핏발 선 눈으로 집무실 안을 헤집고 다녔다.


사방이 막힌 독 안에 든 쥐. 인간의 뇌는 극단적인 고립과 생존의 위협을 느끼면 합리적인 사고를 완전히 멈추고 파괴적인 본능만을 뿜어낸다.


자신의 전화를 끊어버리고, 부하들을 돌아서게 만들고, 자신을 횡령범으로 조작한 그 악마 같은 여자. 서지안의 목을 졸라 죽여버리고 싶다는 살의만이 최동욱의 뇌리를 꽉 채웠다.


그의 시선이 집무실 한구석에 세워져 있는 최고급 수제 골프백에 꽂혔다.


오후 2시 30분. 22층 특별감사팀 집무실.


지안은 모니터에 띄워진 최동욱의 집무실 내부 해킹 영상을 감상하며, 향긋한 자스민 차를 입가로 가져갔다.


화면 속 최동욱은 완전히 미쳐 있었다. 그는 눈물과 땀으로 범벅이 된 채 골프채 중 가장 무겁고 날카로운 아이언 하나를 뽑아 들고, 집무실의 모니터와 유리창을 미친 듯이 때려 부수고 있었다.


챙그랑! 와장창!


스피커를 타고 넘어오는 짐승의 끔찍한 파괴음.


“실장님.”


박 대리가 침을 꿀꺽 삼키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작업 완료했습니다. 최동욱의 차명 계좌를 통해 블라디보스토크행 항공권 예매 기록을 남겼고, 홍콩의 페이퍼 컴퍼니로 100만 달러가 이체된 가짜 흔적을 심었습니다. 이제 누가 봐도 명백한 해외 도주 시도입니다.”


“완벽하네요, 박 대리. 수고했어요.”


지안은 모니터 속에서 골프채를 휘두르며 난동을 부리는 최동욱을 보며 우아하게 미소 지었다.


“오 과장에게 연락하세요. 이제 본부장실 문에 채워둔 자물쇠를 풀고, 보안 요원들을 뒤로 물리라고요. 독 안에 갇혀 미쳐버린 맹수에게, 복수를 향해 달려갈 길을 열어줄 시간입니다.”


“네? 자물쇠를 푼다고요? 저렇게 골프채를 들고 미쳐 날뛰는 인간을 풀어주면….”


박 대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 무기를 들고 곧장 이곳, 22층 제 집무실로 뛰어오게 만들 겁니다.”


지안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차분해서 오히려 섬뜩했다.


“최동욱이 자기 사무실 안에서만 발악하다 끝난다면, 우리는 기껏해야 그를 횡령 미수나 배임 정도로밖에 엮지 못해요. 그가 저 무거운 쇳덩어리를 들고 22층으로 난입해서 기물을 파손하고, 나를 죽일 듯이 협박하는 아주 스펙터클하고 폭력적인 씬(Scene)이 필요합니다.”


지안은 찻잔을 내려놓고 옷매무새를 단정히 고쳤다.


“경찰에 신고하세요. ‘인사본부장이 횡령을 들키자 이성을 잃고 흉기를 든 채 특감팀 여직원들을 살해하려 한다’고. 경찰이 사이렌을 울리며 22층에 도착하는 순간, 최동욱이 내 방 거울을 골프채로 박살 내고 있어야 타이밍이 딱 맞겠군요.”


박 대리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적을 파멸시키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가장 연약하고 억울한 살인 미수의 피해자로 세팅하는 소름 돋는 연출. 지안의 뇌 속에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도덕이나 공포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사냥감을 가장 완벽하고 극적으로 도축하기 위한 냉혹한 계산만이 살아 숨 쉴 뿐이었다.


“명령대로 실행하겠습니다.”


박 대리는 홀린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35층에 대기 중인 오 과장에게 무전을 쳤다.


철컥.


모니터 화면 속, 최동욱을 가두고 있던 본부장실의 문이 마법처럼 스르륵 열렸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피 묻은 손으로 아이언 골프채를 꽉 쥔 최동욱. 그의 시뻘건 눈동자가 열린 문틈 사이로 22층을 향한 지독한 살기를 뿜어냈다. 이성을 잃고 완벽한 괴물로 부화한 늙은 폭군이, 쿵쾅거리는 발소리를 내며 복도로 뛰쳐나왔다.


“오세요, 본부장님.”


지안은 책상 위를 깔끔하게 정돈하고, 두 손을 모아 무릎 위에 다소곳이 올려놓았다.


가장 연약하고 가련한 사슴의 표정을 얼굴에 뒤집어쓴 채, 현대의 이단심문관은 이 미친 괴물이 스스로 지옥불로 뛰어드는 소리를 가장 우아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이전 15화제15화. 집단 착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