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속 주인공은 어느 날 아침 눈을 떠보니 자신이 흉측한 벌레로 변해 있음을 깨닫는다. 인간으로서 쌓아 올렸던 모든 존엄과 이성이 증발하고, 오직 징그러운 다리를 버둥거리는 곤충의 본능만이 남게 된 그 끔찍한 기상.
재벌 3세로서 평생을 신처럼 군림해 온 부사장에게도 그 비극적인 변신의 순간이 찾아왔다. 수십 년간 두르고 있던 오너 일가라는 화려한 외피가 산산조각 나고, 그 안에 숨겨져 있던 나약하고 비루한 본성이 완벽하게 발가벗겨지는 끔찍한 카타르시스의 무대.
태성그룹 지하 5층, 외부의 빛과 소음이 완벽하게 차단된 VVIP 전용 보안 대기실.
이사회에서 짐짝처럼 끌려 나온 부사장은, 경찰의 정식 압송 절차가 준비되는 동안 이 서늘한 콘크리트 밀실에 임시로 수감되어 있었다.
“씨발… 씨발! 열어! 당장 문 안 열어!!”
부사장은 넥타이가 쥐어뜯긴 채, 굳게 닫힌 철문을 발로 차며 짐승처럼 울부짖고 있었다. 그의 양손은 단단한 수갑에 묶여 있었고, 최고급 맞춤 정장은 바닥을 구른 탓에 먼지와 구김으로 엉망진창이었다.
“내가 누군지 알아?! 내가 태성그룹 오너야! 40층 영감탱이가 나를 함정에 빠뜨린 거라고!! 당장 내 변호사 불러! 김앤장 싹 다 끌어오라고!!”
피거품을 물며 소리치던 부사장은 제풀에 지쳐 차가운 바닥에 주저앉았다. 숨이 턱턱 막혀왔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그룹의 제왕이었던 자신이, 수갑을 차고 지하실에 처박혀 있다는 현실이 뇌에서 도무지 연산되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은 반역이다. 40층의 늙은 대표이사와, 미국에 있는 천박한 혼외자 새끼가 결탁하여 자신의 왕관을 강탈한 끔찍한 쿠데타.
‘서지안. 그래, 서지안 그년이 분명 밖에서 여론을 뒤집고 증거를 모으고 있을 거야. 그년은 내 사냥개니까. 내가 왕좌에 앉혀주겠다고 약속했으니, 어떻게든 날 꺼내줄 거야.’
이성이 마비된 부사장은 자신이 당한 모든 파멸이 서지안의 설계임을 아직도 온전히 깨닫지 못한 채, 지독한 확증 편향 속에서 그녀를 구원자로 기다리고 있었다. 권력자의 오만함이 만들어낸 가장 비참한 맹신이었다.
철컥.
육중한 보안 문의 잠금장치가 풀리는 소리가 지하실의 적막을 깼다.
부사장이 핏발 선 눈을 번쩍 뜨며 고개를 쳐들었다.
열린 문틈 사이로 복도의 차가운 백색 조명이 쏟아져 들어오고, 그 빛을 등진 채 완벽한 새하얀 화이트 수트를 차려입은 실루엣이 걸어 들어왔다.
서지안이었다.
“서, 서 실장…!”
부사장은 구세주를 만난 듯 반색하며 수갑 찬 두 손을 바닥에 짚고 비틀비틀 일어났다.
“어떻게 됐어! 언론은 막았어? 40층 영감탱이가 내 비자금 장부 조작해서 나를 횡령범으로 몰았다고 경찰에 말했지?! 내가, 내가 시킨 거 아니라고 했지?!”
부사장은 다급하게 다가가 지안의 소매를 붙잡으려 했다.
하지만.
지안은 우아하고도 서늘한 동작으로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부사장의 손길을 가볍게 피했다. 마치 길가의 더러운 오물이 옷깃에 닿는 것을 경멸하듯, 지독하게 차갑고 무심한 동작이었다.
“부, 부사장님이라니요. 이제는 그 직함도 내려놓으셨지 않습니까.”
지안의 붉은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 목소리는, 부사장이 평소 알던 그 나긋하고 순종적인 사냥개의 음성이 아니었다. 얼음송곳처럼 날카롭고, 오만할 정도로 권위적인 지배자의 하대(下待)였다.
부사장의 얼굴에 당혹감이 서렸다.
“너… 지금 나한테 뭐라고 지껄인….”
“경찰 압송 차량이 도착하기 전까지 10분 정도 시간이 남았더군요. 이대로 당신을 보내면, 평생 자신이 왜 감옥에서 썩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 헛소리만 지껄일 것 같아서 마지막으로 친절을 베풀러 왔습니다.”
지안은 구두코로 지하실 바닥을 가볍게 두드리며, 짐승처럼 헐떡이는 부사장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현실을 똑바로 직시하게 해드리죠.”
“현실? 닥쳐! 네년도 40층 영감탱이한테 매수당한 거냐? 그 늙은이가 나를 치고 미국에 있는 사생아 새끼한테 회사를 넘긴다니까, 네년도 그쪽에 줄을 댄 거야?!”
부사장이 침을 튀기며 악을 썼다.
지안은 그 참담한 꼴을 보며 소리 내어 길게 웃음을 터뜨렸다. 서늘한 지하실 벽을 타고 울리는 지안의 웃음소리는 소름이 끼칠 만큼 매혹적이고 잔혹했다.
“하하하… 아, 정말. 끝까지 그 알량한 피해망상에서 벗어나지를 못하시네요.”
지안이 웃음기를 거두고, 얼음장처럼 차가운 눈동자로 부사장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미국에 있는 사생아 새끼? 40층 대표이사의 역모? 회장님의 지분 양도 서류?”
지안은 한 걸음 다가가, 부사장의 귓가에 치명적인 진실을 속삭였다.
“그런 건 처음부터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뭐?”
부사장의 동공이 미친 듯이 요동쳤다.
“제가 점심시간에 워드로 대충 타이핑해서 대표이사 직인을 위조해 찍어낸 종이 쪼가리일 뿐이죠. 주차장에서 비서실장의 차를 들이받게 한 것도 저고, 당신의 프락치에게 그 가짜 서류 사진을 전송하게 만든 것도 접니다. 40층 영감님은 당신을 몰아낼 생각 따윈 하지도 않았고, 병상에 계신 회장님은 지분 양도는커녕 당신의 이복동생이 미국 어디에 사는지조차 관심이 없으십니다.”
부사장의 숨이 턱, 하고 멎었다.
마치 머리를 거대한 쇠망치로 얻어맞은 듯, 그의 뇌 속에서 돌아가던 모든 톱니바퀴가 일순간 박살 나며 정지해 버렸다.
“그… 그게, 무슨….”
“당신은 처음부터 허공에 대고 칼질을 한 겁니다.”
지안이 부사장의 핏발 선 눈을 향해 잔혹한 쐐기를 박아 넣었다.
“당신 내면의 그 지독한 열등감,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사생아에게 그룹을 뺏길지도 모른다는 그 역겨운 공포심. 저는 그저 그곳에 아주 작은 환상의 불씨 하나를 던져주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어떻게 했죠? 그 환상에 지레 겁을 먹고 미쳐 날뛰며, 스스로 회삿돈을 횡령하고 주가를 폭락시키며 제 무덤을 완벽하게 파주더군요.”
부사장의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는 털썩, 소리를 내며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아… 아아….”
머릿속이 하얗게 표백되었다.
자신을 옭아맨 모든 음모와 쿠데타가 사실은 서지안이 설계한 완벽한 가상현실이었으며, 자신은 그 허상에 속아 스스로 자신의 팔다리를 자르고 회사에 불을 지른 미치광이였다는 끔찍한 진실.
송태섭, 백도훈, 최동욱을 처형할 때 환호하며 지켜보았던 그 악마 같은 심리전의 최종 타겟이 다름 아닌 자신이었다.
“너… 네년이 처음부터 나를….”
“네. 처음부터 당신이 타겟이었습니다.”
지안은 무릎을 꿇은 부사장 앞에 우아하게 쪼그려 앉았다.
“나는 당신의 사냥개가 아닙니다. 당신 같은 무능하고 천박한 수컷이 감히 목줄을 쥘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고요.”
지안의 목소리에 짙은 혐오와 경멸이 뚝뚝 묻어났다. 그녀는 지난번 요정에서 부사장이 노골적으로 훑어내리고 주물렀던 자신의 허벅지와 어깨를 차갑게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기억하십니까? 내 옆에 착 붙어서 눈과 귀를 즐겁게 해달라며 내 몸을 더듬었던 당신의 그 역겨운 손길. 핏줄 하나 잘 타고난 덕에 꼭대기에 앉아서, 타인을 도구나 노리개로 취급하며 희롱하던 그 비릿한 눈빛.”
부사장은 몸을 덜덜 떨며 뒤로 물러서려 했지만, 지안의 압도적인 기세에 짓눌려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당신 같은 쓰레기들이 권력의 껍데기를 쓰고 거들먹거리는 꼴을, 나는 단 하루도 더 봐줄 수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그 껍데기를 완벽하게 벗겨내고 가장 냄새나는 시궁창에 처박아 주기로 결심한 겁니다.”
완벽한 선고.
부사장은 이제 자신이 맞서 싸우고 있던 대상이 아버지도, 대표이사도 아닌, 자신의 오만함이 만들어낸 괴물 그 자체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괴물의 목줄을 쥐고 있는 유일한 신(神)이 바로 눈앞에 있는 서지안이었다.
이성이 무너지고 자아가 붕괴한 자리에 남은 것은, 오직 형벌과 죽음에 대한 원초적인 공포뿐이었다.
이대로 검찰에 넘어가면 끝이다. 수백억 원의 배임과 횡령, 주가 조작. 최소 징역 15년 이상의 중형. 평생을 재벌 3세로 호의호식하며 살아온 그에게 교도소의 차가운 독방은 죽음보다 더 끔찍한 지옥이었다.
“서, 서 실장… 아니, 서지안… 지안아….”
부사장의 입에서 나온 것은 명령도, 분노도 아니었다.
그것은 생존을 위해 모든 존엄을 내던진 짐승의 끔찍한 애원이었다.
부사장은 바닥을 기어 지안의 발밑으로 다가갔다. 수갑이 채워진 두 손을 비비며,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된 얼굴을 지안의 새하얀 구두코에 들이밀었다.
“내가, 내가 잘못했어… 내가 미친놈이었어. 네 능력을 몰라보고 함부로 대해서 미안해. 제발, 제발 나 좀 살려줘.”
가장 완벽했던 황태자의 끔찍한 붕괴.
수만 명의 직원을 거느리던 제왕이, 일개 부실장의 발등에 입을 맞추듯 이마를 비비며 헐떡였다.
“비자금 장부 네가 다 가지고 있잖아… 네가 다 조작한 거니까, 마음만 먹으면 그 증거들 다 없앨 수 있잖아! 내가 가진 차명 주식, 스위스 계좌에 있는 1000억 원… 그거 싹 다 너한테 줄게! 네가 이 회사 오너 해! 나는 그냥 조용히 미국으로 도망가서 숨어 살 테니까 제발 감옥에만 보내지 마… 흐윽, 제발….”
돈. 권력.
그가 평생을 바쳐 숭배했던 모든 것을 내던지며 목숨을 구걸하는 추악한 몰골.
지안은 그 황홀한 도축의 현장을 내려다보며 붉은 입술을 매혹적으로 끌어올렸다. 그녀가 그토록 갈구했던, 오만한 수컷의 영혼을 완벽하게 짓밟아 터뜨리는 카타르시스가 온몸의 혈관을 타고 짜릿하게 뻗어 나갔다.
“1000억? 스위스 계좌?”
지안이 나긋하게 웃으며 부사장의 헝클어진 머리칼을 구두 앞코로 툭, 툭 건드렸다.
“멍청하시네요, 끝까지. 당신이 저한테 그 돈을 주는 게 아닙니다. 어차피 당신이 감옥에 들어가면 그 차명 계좌의 비밀번호를 알고 있는 박 대리가 모조리 빼내어 우리 특감팀의 성과급으로 나눠 가질 예정이거든요.”
부사장의 숨이 컥, 하고 막혔다.
“그리고 내가 왜 당신을 살려줍니까. 당신이 횡령범으로 완벽하게 감옥에서 썩어줘야, 내가 이 태성그룹의 실질적인 1인자로 가장 우아하고 깨끗하게 올라설 수 있는데.”
지안은 구두코로 부사장의 어깨를 꽉 짓눌러 바닥에 완전히 엎드리게 만들었다.
“감옥에 들어가서 뼈저리게 후회하세요. 자신이 얼마나 무능하고 역겨운 벌레였는지. 아, 그리고 걱정하지 마세요. 당신이 유치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발악하지 못하도록, 아주 철저하게 감시하라고 교도소 쪽에 두둑하게 손을 써둘 테니까.”
지안은 말을 마치고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안 돼… 안 돼! 서지안!! 살려줘! 제발 살려줘어어!!!”
등 뒤에서 바닥에 이마를 찧으며 피를 흘리는 짐승의 처절한 절규가 지하실을 찢을 듯이 울려 퍼졌다.
하지만 지안의 걸음은 단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우아하고 가벼웠다.
철컥, 하고 무거운 보안 문이 닫히며 부사장의 울부짖음은 완벽한 어둠 속으로 영원히 차단되었다.
오후 2시. 태성그룹 본사 1층 로비.
로비 밖에는 수십 대의 방송국 카메라와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폴리스 라인이 쳐지고, 임직원들은 분노에 찬 얼굴로 횡령범의 압송을 기다렸다.
자동문이 열리고, 형사들의 양팔에 제압당한 채 수갑을 차고 끌려 나오는 부사장.
그의 얼굴은 눈물과 땀, 피로 얼룩져 있었고, 입에서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알 수 없는 헛소리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플래시 세례가 폭우처럼 쏟아졌다.
“부사장님! 500억 횡령 혐의 인정하십니까!”
“주가 조작으로 피해를 본 주주들에게 할 말 없으십니까!”
기자들의 날 선 질문이 쏟아졌지만, 부사장은 초점 잃은 눈으로 허공을 헤매다 그저 짐승처럼 앓는 소리를 내며 호송차에 쑤셔 박혔다.
그 참담하고도 역사적인 붕괴의 현장을, 지안은 2층 난간에 기대어 커피를 마시며 여유롭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등 뒤로 오 과장과 7명의 팀원들이 도열해 그 완벽한 승리를 함께 만끽하고 있었다.
“이제 끝났네요.”
지안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나긋하게 중얼거렸다.
태성그룹이라는 거대한 제국을 더럽히고 있던 가장 굵직한 종양들이 완벽하게 도려내졌다. 이제 무균실 안에는 그 누구도 그녀의 권위에 도전할 수 없는 완벽한 진공 상태가 만들어졌다.
부사장이 탄 호송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멀어져 가는 것을 지켜보던 지안의 붉은 입술이, 세상에서 가장 서늘하고 치명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처형대 위의 피비린내 나는 왈츠가 끝나고, 마침내 새로운 제왕의 대관식이 준비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