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의 완성은 사냥감의 숨통을 끊는 순간에 있지 않다.
피투성이가 된 도축장을 가장 성스럽고 아름다운 제단으로 포장하여, 군중들로 하여금 그 살육을 정의로운 심판으로 찬양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야말로 완벽한 사냥의 마침표이자 권력의 진정한 미학이다.
서지안은 부사장을 짐승처럼 바닥에 꿇리고 수갑을 채워 경찰에 넘겼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대중의 분노는 불길과 같아서, 횡령범인 부사장 한 명을 태우고 나면 필연적으로 그가 속해 있던 태성그룹 전체를 향해 번지게 되어 있었다. 그룹의 주가가 폭락하고 불매 운동이 벌어진다면, 지안이 앞으로 집어삼킬 왕국의 가치가 훼손되는 셈이었다.
그래서 지안은 대중의 분노를 진화하고 자신을 신격화할 가장 우아하고도 기만적인 소방수를 자처하기로 했다.
월요일 자정.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취조실 및 회의실.
담당 검사들은 책상 위에 산더미처럼 쌓인 박스들을 보며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태성그룹 부사장의 구속 영장이 청구되자마자, 검찰청 앞으로 익명의 제보자가 보낸 수십 개의 사과 상자가 도착했다. 그 안에는 부사장이 지난 수년간 저지른 비위 사실들이, 마치 교과서처럼 완벽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부장님. 이거… 장난이 아닙니다.”
수석 검사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서류철 하나를 넘기며 보고했다.
“부사장이 스위스와 홍콩에 세운 페이퍼 컴퍼니의 자금 흐름도, 자금 세탁에 동원된 차명 계좌 140개의 비밀번호와 공인인증서 내역, 심지어 주가 조작 세력과 주고받은 텔레그램 대화 내역까지 텍스트로 전부 복원되어 있습니다.”
“뭐라고? 압수수색을 나가기도 전인데 내부 자료가 이렇게 완벽하게 넘어왔다고?”
부장검사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서류를 낚아챘다.
자료는 기괴할 정도로 완벽했다. 범죄 사실을 증명할 물증뿐만 아니라, 부사장이 이 모든 범죄를 철저하게 ‘단독’으로 기획하고 실행했다는 점을 강조하는 정황 증거들이 치밀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다른 임원들이나 대표이사의 개입 여부는 완벽하게 차단된, 오직 부사장 한 명만을 찢어 죽이기 위해 맞춤 제작된 사형 선고문.
“이건 내부의 핵심 수뇌부가 아니면 절대 접근할 수 없는 1급 기밀들입니다. 누군가 작정하고 부사장의 목을 치기 위해 오랜 시간 칼을 갈아온 겁니다.”
수석 검사의 말에 부장검사는 침을 꿀꺽 삼켰다.
“누가 보냈든 상관없어. 이 정도면 법정에서 변호인단이 입도 뻥긋 못 할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야. 태성그룹 오너 일가를 우리 손으로 완벽하게 구속할 수 있는 역대급 스코어라고. 당장 언론에 수사 진행 상황 흘리고, 내일 아침 브리핑 준비해!”
검찰은 자신들이 거대한 정의를 실현한다고 믿으며 축배를 들었지만, 사실 그들은 지안이 짜놓은 판 위에서 열심히 춤을 추는 꼭두각시에 불과했다. 부사장을 영원히 햇빛을 보지 못하는 감옥 깊은 곳에 묻어버리기 위해, 지안이 국가의 사법 시스템마저 자신의 사형 집행인으로 철저하게 이용한 것이다.
화요일 오전 10시. 태성그룹 본사 1층 대강당.
수백 명의 기자들과 방송국 카메라가 대강당을 빈틈없이 채우고 있었다.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는 소리가 마치 소나기처럼 요란했다.
어제 부사장이 긴급 체포된 직후, 태성그룹 측에서 대국민 사과 및 사태 해결을 위한 긴급 기자회견을 자청한 것이다. 단상 위에는 수십 개의 마이크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고, 그 앞에는 굳은 표정의 태성그룹 핵심 임원들이 고개를 숙인 채 도열해 있었다.
장내가 웅성거리는 가운데, 무대 측면의 장막이 열리고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단정하고 짙은 네이비색 수트. 화장기를 거의 지운 창백하고 수척한 얼굴.
불과 며칠 전 경찰들 앞에서 공포에 질려 벌벌 떨던 가련한 피해자의 얼굴은 온데간데없고, 회사의 존망이 걸린 위기 앞에서 결연하게 십자가를 짊어진 강인한 잔다르크의 얼굴을 한 서지안이었다.
지안이 단상 중앙의 마이크 앞에 서자, 장내의 모든 소음이 일순간 잦아들었다. 플래시 세례만이 그녀의 창백한 얼굴을 쉴 새 없이 때렸다.
“안녕하십니까. 태성그룹 전략기획실 부실장 서지안입니다.”
차분하고 묵직한 목소리. 약간의 떨림이 섞인 그 음성은 묘하게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드는 호소력이 있었다.
“먼저, 저희 태성그룹을 믿고 응원해 주신 국민 여러분과 주주 여러분, 그리고 밤낮으로 현장에서 땀 흘려온 수만 명의 임직원 여러분께 진심으로 머리 숙여 사죄드립니다.”
지안은 단상 옆으로 걸어 나와, 허리를 90도로 깊게 굽혔다.
도열해 있던 늙은 임원들 역시 지안의 뒤를 따라 일제히 허리를 굽혔다. 젊은 여성 임원이 가장 앞장서서 거대 재벌의 치부를 사과하는 이 이질적이고도 극적인 시각적 연출은, 카메라 렌즈를 통해 실시간으로 전국에 송출되었다.
지안은 다시 마이크 앞으로 돌아와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시울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지만, 눈빛만큼은 올곧고 단호했다.
“저희는 뼈를 깎는 심정으로 진실을 마주하고자 합니다. 어제 구속된 전(前) 부사장의 횡령 및 주가 조작 혐의는… 참담하게도 모두 사실입니다.”
장내에서 헉, 하는 탄식과 함께 기자들의 타자 치는 소리가 미친 듯이 빨라졌다. 재벌 기업이 오너 일가의 범죄 사실을 이토록 투명하고 즉각적으로 시인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여러분. 이 끔찍한 범죄는 태성그룹이라는 조직이 용인한 것이 아닙니다. 오너 일가라는 특권을 악용하여, 권력에 눈이 먼 한 개인의 맹목적인 탐욕이 빚어낸 참사입니다.”
지안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준비해 온 완벽한 서사를 대중의 뇌리에 주입하기 시작했다.
“저는 특별감사팀장으로 재직하던 시절부터, 부사장의 비정상적인 자금 흐름과 내부 권력 남용을 은밀하게 추적해 왔습니다. 오너의 뒤를 캔다는 것은 제 직장 생활, 아니 제 목숨을 걸어야 하는 끔찍한 공포였습니다. 실제로 부사장은 자신의 범행이 발각될 위기에 처하자, 흉기를 들고 저와 제 팀원들을 살해하려 난입하기까지 했습니다.”
지안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갈라졌다. 극한의 공포를 이겨낸 내부 고발자의 숭고한 희생. 기자들은 숨을 죽인 채 그녀의 입술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저는 멈출 수 없었습니다. 부사장의 개인적인 비자금을 채우기 위해, 우리 임직원들이 피땀 흘려 모은 우리사주가 휴지 조각이 되고 선량한 개미 투자자들이 피눈물을 흘리는 것을 도저히 방관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안의 두 눈에서 마침내 투명한 눈물 한 방울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것은 악어의 눈물이 만들어낸 가장 완벽하고 아름다운 예술 작품이었다. 대중은 기득권의 오만함에는 분노하지만, 거대한 권력에 맞서 계란으로 바위를 치다 상처 입은 약자의 눈물 앞에서는 무장 해제되기 마련이다.
“오늘 새벽, 저희 전략기획실은 부사장의 모든 범죄 사실을 입증할 완벽한 내부 감찰 자료를 검찰에 자진 제출했습니다. 태성그룹은 법의 심판 앞에 단 한 점의 숨김도 없이 협조할 것입니다.”
장내가 술렁였다. 검찰을 경악하게 만들었던 그 방대한 증거 자료가, 바로 저 젊고 연약해 보이는 여성 임원이 목숨을 걸고 수집해 넘긴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저희는 부사장이 빼돌린 자금을 끝까지 추적하여 전액 환수할 것이며, 이번 사태로 피해를 본 주주분들과 임직원들의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그룹 차원의 천문학적인 책임 기금을 조성하겠습니다.”
지안은 맺힌 눈물을 닦아내고, 단상을 꽉 쥐며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태성그룹은 죽지 않았습니다. 썩은 살을 도려내는 고통을 피하지 않겠습니다. 오너 일가의 전횡이 두 번 다시 발붙이지 못하도록, 이사회의 투명성을 강화하고 전문 경영인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부디 저희 태성이 다시 한번 신뢰받는 기업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지켜봐 주십시오.”
지안은 다시 한번 90도로 허리를 굽혔다.
플래시 세례가 대강당을 눈이 멀 정도로 하얗게 뒤덮었다.
질문이 쏟아지려 했지만, 지안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보안 요원들의 호위를 받아 단상을 내려갔다. 진실을 밝히고 묵묵히 책임을 지러 떠나는 고독한 영웅의 뒷모습. 그것으로 완벽했다.
오후 2시. 태성그룹 본사 39층 부실장 집무실.
“부실장님! 여론이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박 대리가 스마트폰을 들고 집무실로 뛰어 들어왔다. 그의 얼굴에는 경이로움과 흥분이 가득했다.
“기자회견 직후 주요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를 부실장님 이름이 장악했습니다. 네티즌들과 여론의 반응이 그야말로 폭발적입니다!”
지안은 블라인드 틈새로 들어오는 햇살을 받으며 여유롭게 홍차를 마시고 있었다.
“기사 헤드라인 몇 개만 읽어보세요.”
박 대리는 침을 삼키며 기사 제목들을 줄줄 읊었다.
[단독: 목숨 건 내부 고발. 태성그룹 서지안 부실장, 오너 일가의 횡포를 맨몸으로 막아내다]
[재벌 개혁의 잔다르크 탄생. 흉기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500억 횡령 비리 밝혀낸 여성 임원]
[태성그룹 개미 투자자들 연합, "서지안 부실장에게 감사패 전달하겠다" 성명 발표]
[주식 시장의 기적? 태성그룹, 대국민 사과 직후 하한가 탈출하며 주가 급반등]
“잔다르크라. 꽤 촌스럽지만 대중들이 소비하기엔 아주 맛있는 키워드네요.”
지안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나긋하게 웃었다.
자신이 파놓은 덫에 부사장을 밀어 넣고, 그가 저지른 횡령의 결과를 이용해 자신을 정의의 사도로 포장했다. 그녀의 예상대로 대중은 복잡한 진실을 파헤치려 하지 않았다. 오직 ‘거악(부사장)을 물리치고 회사를 구한 젊고 정의로운 여성 영웅’이라는 한 편의 감동적인 영화적 서사에 완벽하게 매료되어 열광하고 있을 뿐이었다.
“실장님, 아니 부실장님은 정말 신이십니다. 어떻게 이 거대한 여론의 흐름을 단 한 번의 기자회견으로 완벽하게 통제하셨습니까?”
오 과장 역시 등 뒤에서 감탄사를 연발했다.
“대중의 심리는 진자를 닮아 있습니다.”
지안이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고요하게 말했다.
“오너를 향한 극도의 혐오감과 분노가 극에 달했을 때, 그 분노를 단숨에 해소해 줄 제물(검찰 고발)과, 그들을 위로해 줄 희생양(흉기 위협을 받은 나)을 동시에 던져주면… 진자는 순식간에 반대 방향으로 맹렬하게 튕겨 올라갑니다. 분노가 컸던 만큼, 구원자를 향한 찬양과 맹신은 더욱 거대해지죠.”
지안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발밑으로 내려다보이는 서울의 도심이 묘하게 고요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부사장을 파멸시킴으로써 그녀가 얻은 것은 단순한 복수가 아니었다.
태성그룹 내에서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막강한 명분. 주주들과 임직원들의 맹목적인 지지. 그리고 언론과 대중이 만들어준 ‘태성그룹을 구한 성역’이라는 절대적인 타이틀.
이제 사내의 그 어떤 늙은 임원도, 심지어 40층의 대표이사조차도 감히 서지안을 함부로 건드릴 수 없게 되었다. 만약 그녀를 건드린다면 그것은 곧 회사를 구한 영웅을 내치는 배신 행위로 규정되어 거대한 역풍을 맞게 될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다.
“부실장님. 40층 대표이사님 비서실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인터폰이 울리며 비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후 3시에, 대표이사님께서 긴급 임원 회의를 소집하셨습니다. 서 부실장님께서도 반드시 참석해 달라는 하명이십니다.”
“알겠습니다.”
지안은 인터폰을 끊고, 옷걸이에 걸려 있던 새하얀 재킷을 다시 걸쳐 입었다. 거울 앞에 선 그녀의 얼굴에는 방금 전 대중 앞에서 보여주었던 그 슬프고 연약한 기색은 완전히 지워져 있었다. 오직 먹이사슬의 정점에 선 포식자의 서늘하고 오만한 안광만이 빛나고 있었다.
“박 대리, 오 과장.”
“네, 부실장님.”
“준비하세요. 부사장이라는 오물이 치워졌으니, 이제 그 피 묻은 왕관을 머리에 쓸 주인이 입장할 시간입니다.”
지안의 하이힐 소리가 경쾌하게 39층 집무실을 울렸다.
완벽한 마침표를 찍은 이단심문관. 그녀가 설계한 가장 끔찍하고도 아름다운 지옥 위에서, 태성그룹의 새로운 제왕을 맞이하기 위한 붉은 카펫이 조용히 깔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