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화. 영원한 사냥 (에필로그)

by 연구소장

혁명 직후의 권력은 언제나 가장 위태로운 법이다.


기존의 질서가 무너진 폐허 위에서, 살아남은 기득권들은 호시탐탐 새로운 지배자의 약점을 찾아내어 자신들의 밥그릇을 되찾으려 발악하기 마련이다.


서지안이 그룹 총괄 사장으로 취임하고, 그녀의 수족이었던 7명의 평사원과 대리급 요원들이 그룹의 핵심 본부장과 전무급으로 파격 승진했다는 인사가 사내망에 공지되자마자, 태성그룹의 늙은 임원진들은 벌떼처럼 들고일어났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인사 전횡입니다! 입사 5년 차 대리가 하루아침에 IT 총괄 전무라니요!”


취임 첫 주, 40층 대회의실.


계열사 사장단과 핵심 본부장들이 모인 자리에서, 건설 부문을 맡고 있는 60대의 최 사장이 핏대를 세우며 테이블을 내리쳤다. 그의 뒤로 다른 늙은 임원들 역시 동조하는 눈빛으로 웅성거렸다.


“아무리 서 사장님이 회장님의 비상 대권을 위임받았다고는 하나, 기업에는 근속 연수와 위계질서라는 게 있습니다! 이런 기형적인 낙하산 인사는 기존 직원들의 사기를 꺾고 그룹의 기강을 무너뜨리는….”


“기강이라.”


상석에 앉아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던 지안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최 사장의 말을 툭 잘랐다. 그녀의 서늘한 목소리에 장내가 일순간 조용해졌다.


지안은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그녀의 등 뒤에 서 있던 새파랗게 젊은 ‘신임 감사 부본부장’ 오창석(전 특감팀 과장)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두꺼운 파일 하나를 최 사장의 얼굴 앞으로 집어 던졌다.


퍽, 소리와 함께 파일이 열리며 수십 장의 사진과 영수증들이 쏟아져 나왔다.


“최 사장님. 지난 3년간 건설 자재 단가를 부풀려 친동생이 운영하는 페이퍼 컴퍼니로 70억 원의 리베이트를 빼돌리셨더군요. 게다가 사내 하도급 업체 여직원들에게 상습적으로 성희롱을 일삼은 녹취록도 여기 아주 선명하게 담겨 있습니다.”


최 사장의 얼굴에서 핏기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이, 이건… 조작이야! 어디서 이런 쓰레기 같은…!”


“저희 신임 IT 총괄 전무이신 박준영 전무의 솜씨입니다.”


지안이 나긋하게 웃었다.


“입사 5년 차 대리 나부랭이가 단 이틀 만에 당신이 10년간 겹겹이 숨겨둔 역겨운 비자금 장부를 완벽하게 해킹해서 털어왔는데. 당신같이 무능하고 부패한 늙은이 열 명보다, 내 수족 하나가 회사에 가져다주는 이익이 훨씬 크지 않습니까?”


지안의 얼음장 같은 시선이 회의실에 앉은 모든 임원들을 하나하나 훑고 지나갔다.


“여기 계신 분들 중, 제가 방금 하사한 7명의 신임 임원진들의 자격에 불만이 있으신 분들은 언제든 손을 들고 말씀하십시오. 단, 손을 드는 순간 우리 오창석 부본부장이 여러분의 과거 10년 치 장부와 법인카드 내역, 그리고 사생활까지 완벽하게 털어서 내일 아침 검찰 포토라인에 세워드릴 겁니다. 최동욱과 부사장이 어떻게 날아갔는지 똑똑히 보셨을 텐데요.”


완벽한 공포 정치.


자신들의 목줄(치부)이 이미 7명의 젊은 맹견들에게 완벽하게 잡혀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늙은 임원들은, 그 누구도 입을 열지 못한 채 바들바들 떨며 고개를 숙였다.


“회사에 위계질서란 없습니다. 오직 능력을 증명하고 나에게 복종하는 자만이 자리를 차지할 뿐.”


지안은 자리에서 일어나 선언했다.


“불만이 있는 임원들은 오늘부로 사직서를 제출하십시오. 두둑한 퇴직금은 챙겨서 조용히 쫓아내 드리죠. 하지만 내일부터 내 성벽 안에서 딴마음을 품는 쥐새끼가 발견된다면, 그땐 뼈도 못 추리게 될 겁니다.”


반발하던 기득권은 그렇게 단 한 번의 회의로 완벽하게 짓밟혔다. 늙고 부패한 임원들은 서지안의 그림자만 보아도 벌벌 기며 그녀의 7명 심복들에게 90도로 허리를 굽히기 시작했다.


임원진을 공포로 찍어 누른 지안의 다음 타겟은, 이번 파격 인사에 의구심을 가질 수 있는 수만 명의 일반 ‘평사원’들이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은 공포로 다스릴 수 있지만, 잃을 것이 없는 군중을 통제하는 가장 완벽한 무기는 바로 ‘압도적인 빵과 서커스’다. 지안은 사내 익명 게시판에 자신을 향한 의심의 글이 올라오기 직전, 사내 인트라넷을 통해 ‘총괄 사장 특별 담화문’을 발표했다.


그 내용은 태성그룹 창사 이래 가장 충격적이고 파격적인 것이었다.


[과거 경영진의 부패를 끊어내고 회사를 지켜주신 수만 명의 임직원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전임 부사장과 임원진들이 불법으로 빼돌렸던 비자금 수천억 원을 전액 국고로 환수하지 않고,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사내 복지 기금으로 전환했습니다.


오늘 자정부로, 태성그룹의 모든 대리, 사원, 과장급 실무진 전원에게 기본급의 500%에 달하는 ‘위기 극복 특별 격려금’을 일시불로 지급합니다. 아울러 사내 대출 이자 전면 탕감 및 주가 폭락으로 인한 우리사주 손실분을 회사 차원에서 100% 보전해 드릴 것을 약속합니다.]


담화문이 발표된 직후, 태성그룹 본사와 전국의 계열사들은 그야말로 열광의 도가니로 변했다.


“미쳤어! 통장에 방금 보너스 4천만 원 꽂혔어!!”


“대박… 대출 이자 탕감에 우리사주 원금 보장이라니! 서지안 사장님 진짜 미치신 거 아니야?!”


“잔다르크가 아니라 갓(God)지안이다 진짜! 평생 충성하겠습니다!!”


사내 게시판은 서지안을 찬양하는 광적인 글로 도배되었다.


22층 특감팀 출신의 젊은 대리들이 낙하산으로 임원이 되었다는 절차적 불만이나 의구심 따위는, 통장에 찍힌 엄청난 액수의 현금 앞에서 한낱 먼지처럼 증발해 버렸다.


‘내가 돈을 받았는데, 윗자리에 누가 앉든 그게 무슨 상관인가? 오히려 우리 같은 젊은 실무진들을 임원으로 파격 발탁하는 서 사장님의 실력주의야말로 진정한 혁신이다!’


대중은 가장 이기적이면서도 가장 단순한 동물이다. 지안은 부사장의 비자금으로 평사원들의 입을 완벽하게 틀어막고, 그들을 자신의 가장 든든한 우호 세력이자 광신도로 만들어버렸다.


위로는 임원들의 약점을 쥐고 흔드는 공포 정치, 아래로는 막대한 자본을 뿌려대는 포퓰리즘. 이 완벽한 양동 작전을 통해 서지안의 지배 체제는 단 일주일 만에 감히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난공불락의 요새로 굳어졌다.


그로부터 6개월 후.


태성그룹은 서지안의 1인 독재 체제 아래 그 어느 때보다 무섭게 성장하고 있었다.


과거의 부패한 파벌 싸움이 사라진 무균실 속에서, 7명의 사냥개들은 지안의 수족이 되어 회사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박 전무(전 박 대리)는 경쟁사의 기술을 은밀하게 빼내어 IT 점유율을 독식했고, 오 부본부장(전 오 과장)은 공격적인 M&A를 통해 중소기업들을 무자비하게 집어삼켰다.


인사, 재무, 법무, 홍보를 장악한 7명의 요원들은 태성그룹을 오직 이익과 생존만을 위해 굴러가는 거대하고 잔혹한 기계로 개조해 놓았다. 그들은 지안이 하사한 권력의 단맛에 완벽하게 중독되어, 지안이 가리키는 곳이라면 그 어떤 불법과 도덕적 타락도 서슴지 않는 완벽한 괴물들이 되어 있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깊은 밤.


본사 최상층, 그룹 총괄 사장 펜트하우스 집무실.


모든 조명이 꺼진 어두운 집무실 안, 거대한 통유리창 앞에 서지안이 서 있었다. 최고급 와인이 담긴 크리스탈 잔을 한 손에 든 채, 그녀는 빗방울이 부딪히는 유리창 너머로 까마득하게 펼쳐진 서울의 야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과거 이 빌딩의 가장 낮은 곳에서 늙은 수컷 임원들의 역겨운 시선과 희롱을 억지웃음으로 견뎌내야 했던 여자. 권력자들의 사소한 심기 하나에 목숨이 잘려 나갈까 봐 밤잠을 설치며 복수의 칼을 갈았던 이단심문관.


이제 그녀를 짓밟으려 했던 자들은 모두 지옥으로 떨어졌다.


자신을 애완견 취급했던 부사장은 교도소 독방에서 벽에 머리를 찧으며 미쳐가고 있었고, 최동욱과 잔당들은 사회에서 완벽하게 매장당했다. 이 거대한 제국 안에서 서지안의 그림자를 밟을 수 있는 자는 이제 단 한 명도 남아있지 않았다.


“왕관의 무게는… 생각보다 가볍고 달콤하네.”


지안은 잔을 가볍게 흔들며 붉은 입술을 매혹적으로 끌어올렸다.


완벽한 무균실. 모든 바이러스와 적이 소각된 이 평화로운 꼭대기에서, 그녀는 영원한 안식을 누릴 자격이 있었다.


하지만.


사냥개로 길러져 포식자로 진화한 괴물의 본능은, 결코 이 고요한 평화에 만족하지 못했다. 먹잇감이 사라진 밀림은 포식자에게 지루한 무덤과도 같았다. 사냥감이 뿜어내는 극도의 공포와, 그들이 파멸하며 터져 나오는 비명 소리. 그것은 지안에게 있어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유일한 마약이었다.


지안은 뒤로 돌아, 대리석 책상 위로 걸어갔다.


그곳에는 오늘 오후 정보통신본부의 박 전무가 은밀하게 수집하여 올려둔 ‘VIP 특별 보고서’가 놓여 있었다.


지안이 서류철을 넘기자, 어둠 속에서 태블릿의 푸른 불빛이 그녀의 서늘하고 눈부신 얼굴을 비추었다. 화면에는 태성그룹을 넘어, 대한민국 전체를 쥐락펴락하는 더 거대한 짐승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차기 대권을 노리며 태성그룹의 이권을 뜯어먹으려 협박해 오는 여당의 유력 대선 후보. 그리고 그와 결탁하여 태성의 숨통을 조이려 드는 경쟁 재벌 그룹의 교활한 회장.


우물 안의 늙은 쥐새끼들 사냥은 끝났다.


이제 그녀의 시선은 태성그룹의 성벽을 넘어, 대한민국의 권력 정점을 향해 똑바로 뻗어가고 있었다.


“새로운 사냥감이 꽤나 덩치가 크고 역겨운 놈들이네.”


지안은 와인을 단숨에 털어 넣고, 텅 빈 잔을 책상 위에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박 전무에게 전해. 다음 주부터 여당 대선 후보의 캠프 내부망에 백도어를 뚫고, 경쟁사 회장의 혼외자 명단을 털기 시작하라고.”


명령을 내리는 그녀의 붉은 립스틱이, 어둠 속에서 피를 머금은 뱀처럼 치명적이고 서늘한 호선을 그렸다.


자신을 가두었던 모든 족쇄를 끊어내고 완벽한 괴물로 각성한 여자.


가장 우아하고 잔혹한 이단심문관의 사냥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먹이사슬의 정점에 선 새로운 제왕은, 이제 더 넓고 핏빛으로 물든 세상을 향해 영원히 끝나지 않을 끔찍한 사냥을 막 시작했을 뿐이었다.


끝나지 않는 비가 서울의 빌딩 숲을 적시는 가운데, 태성그룹 최상층의 창문만이 지옥의 불꽃처럼 붉고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태성그룹 이단심문관 -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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