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善行과 功德의 대표적인 사례

善의 씨앗을 퍼트려 萬物(만물)을 움트게 하라 (3)

by 운상

[선행공덕의 대표적인 사례 ]

옛날에 공자(孔子)의 외할아버지인 안씨(顔氏)가 장차 자기 딸을 숙량홀(叔梁紇:孔子의 父親)에게 아내로 주려고 할 때, 먼저 그 집안에 조상들의 쌓은 음덕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숙량흘의 조상(祖宗)들이 대대로 쌓은 덕이 오래되었고 또 몹시 큰 것을 보고, 그 자손들이 반드시 흥성할 줄을 미리 알았다. 과연 시간이 흘러 만세의 사표인 공자를 낳았다. 그리고 공자는 순(舜) 임금의 큰 효도(大孝)를 이렇게 칭찬했다.


“종묘(宗廟)에서 순 임금을 제사 지내고, 자손들이 그를 대대로 보전하네(宗廟饗之, 子孫保之).”


“善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남아도는 경사가 있고, 不善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재앙이 따른다.”는 이야기와 관련하여, 왜 善行을 쌓으라고 하는지? 善行을 쌓으면 자손들에게 어떤 이익이 있는지 등에 대해, 善行과 功德의 대표적인 사례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선행공덕의 대표적인 사례(1)

소사(少師:관직)인 양영(楊榮)은 복건성(福建省) 건녕(建寧) 사람인데, 그 집안은 대대로 강에서 배로 행인들에게 물을 건네주는 뱃사공 일을 생업으로 하고 있었다. 한 번은 장맛비가 오래 와서 강물이 불어 넘치고, 마침내 제방이 무너져 민가가 온통 물에 잠겼다. 급류에 밀려 가재도구, 죽은 사람들까지 물길을 따라 하류로 떠내려왔다. 다른 배의 주인들은 모두 떠내려오는 재물만 건져 배에 싣는 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런데 유독 양 소사의 증조할아버지와 조부는 사람을 구하는 데에만 힘을 쓰고, 재물에는 일체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은 그들이 하는 행위를 보고 재물도 못 챙기는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비웃었다. 그러나 소사의 아버지가 태어난 이후에 집안이 점점 부유해졌다.


하루는 어떤 신선이 도인(道人)으로 변장하여, 양영(楊榮)의 부친에게 이렇게 일러 주었다. “그대의 조부와 부친께서 음덕(陰德)을 많이 쌓아, 자손들이 틀림없이 부귀영달(榮達)을 누릴 것이니, 저곳에 조상들의 묘지를 이장하여 쓰는 것이 좋겠소.”마침내 양영의 부친은 그가 손가락으로 가르쳐 준 곳에 묫자리를 썼는데, 후세 사람들은 이 묘가 있는 지금의 묫자리를 백토분(白兎墳)이라 불렀다.


그 후 아버지가 소사(양영)를 낳았는데, 스무 살의 약관(弱冠)에 과거에 급제했다. 그리고 그 지위가 삼공(三公)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아울러 그 증조부와 조부, 부친 모두에게 소사의 관직에 맞추어 벼슬을 추증(追贈) 받았다. 그 자손들이 몹시 부귀하고 흥성하여, 지금도 유명한 자가 많이 나오고 있다.



선행공덕의 대표적인 사례(2)

가흥부[嘉興府:절강성의 한 府(관청)]의 도강희(屠康僖) 공(公)은 처음에 형부주사(刑部主事:중급 관리)가 되었다. 감옥에서 숙직하면서 여러 죄수들의 정상(情狀:있는 그대로의 사정과 형편)을 자상하게 물어보아, 죄가 없는 자가 몇 명 있는 것을 알아내었다. 그러나 도공(屠公)은 그것을 자기의 공(功)으로 만들지 않고, 은밀히 그 일을 글로 적어 당관(堂官:직속 관할 최고 기관)인 형부상서(刑部尙書)에게 아뢰었다.


그 뒤 조정에서 심리(審理:재판)할 때, 당관이 그 말(도강희가 알린 내용)을 지적하여 여러 죄수를 신문(汛問)하였다. 그 결과 깊이 공감을 느끼고 마음으로 복종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이에 억울한 10여 명을 풀어 주었다. 그러자 당시 황제 주위에 있던 관료들이 모두 상서(尙書)의 현명함을 일시에 칭송하였다.


그러자 도공(屠公)이 다시 당관에게 아뢰었다.


“황제의 계단 아래에서 직접 재판하는 데에도 이처럼 억울한 사람이 많은데, 하물며 드넓은 사방 천하의 억조창생(億兆蒼生:수많은 백성) 중에서 어찌 억울한 자가 없겠습니까? 그래서 마땅히 5년마다 형벌을 감해주는 감형관(減刑官)을 각 지방에 파견하여 죄수가 죄를 범한 실정을 자세히 조사하여 억울한 사정이 있으면 경중을 참작하여 진실을 되살리고 억울함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이에 상서가 그러한 내용의 주청(奏請:임금에게 아뢰어 청하는 일)을 올리자, 황제가 그 의론(議論)을 윤허(允許:허락)하였다. 이때 도공(屠公)도 역시 감형 특사(減刑官)의 한 사람으로 파견되었는데, 꿈에 한 신선이 나타나서 이렇게 일러 주었다.


“그대의 운명에는 본래 자식이 없는데, 지급 감형의 논의를 제기하여 억울한 죄수들을 풀어 주는 일은 하늘의 마음(天心)에 깊이 부합하므로, 옥황상제(上帝)께서 그대에게 세 명의 자식을 내려 주시기로 하였다. 그들은 모두 다 자줏빛 옷을 입고 금빛 허리띠를 찰 것이다.”


이날 밤 도공의 부인이 임신을 하였다. 후에 응훈(應塤), 응곤(應坤), 응준(應埈)을 차례로 낳았는데, 과연 삼 형제 모두 높은 관직에 올랐다.

※ 참고) 운명을 뛰어넘는 길(요범사훈:了凡四訓)



선행공덕의 대표적인 사례(3)

조선 후기의 선비인 정원용(鄭元容)(1783~1873)은 양반집에서 태어났다. 어린 나이에 일찍 결혼하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부모님을 일찍 여의게 되었다. 그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망설이다가 과거를 보기 위해 열심히 글을 읽었다. 그러니 물려받은 재산도 넉넉지 못한지라, 남아날 재산이라곤 없었다. 더욱이 남은 재산이 없으니, 장사를 하거나 농사를 짓는 것은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할 수 없이 가재도구를 모두 처분하였고, 마침내는 끼니를 이을 수 없을 정도로 몹시 가난(窮塞)해져 버렸다. 그이 나이 20세의 일이다.


하루는 사랑방에서 글을 읽다가 어찌나 배가 고팠던지, 아내에게 먹을 것이 없는지를 물으려고 안방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런데 마침 아내가 무엇인가를 먹다가 무릎 밑으로 황급히 감추는 것이었다. 정원용은 서운한 마음이 들어 아내에게 나무라기까지 하였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부부간에 밥 한 톨이라도 나누어 먹어야지, 어찌 혼자서 무엇인가를 먹다가 감추는 것인가? 세상에 어찌 그럴 수가 있소?”


잔뜩 속이 뒤틀린 정원용은 뒤돌아서서 나오다가 다시 안방으로 들어가 아내를 나무랐다.

“도대체 무엇을 먹다가 무릎 밑에 감추었소? 당신이 어찌 그럴 수가 있소?”


나무라는 남편을 한참 동안이나 물끄러미 쳐다보던 아내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요즘 들어서 저에게 무엇을 주셨나요? 돈을 주셨나요, 쌀을 주셨나요? 아무것도 주지 않았으면서 무엇을 먹는다고 그리도 야단입니까? 사방을 둘러봐도 먹을 것은 없고 어찌나 배가 고프든지, 녹두 가루로 만든 비누가 그릇에 조금 붙어 있기에 그것도 곡식이라고 빨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당신이 들어온 것입니다. 너무나 부끄러워서 말도 못 하고, 당신이 민망해할까 봐 무릎 밑에 감추었습니다. 자, 이게 그것이니 빨아 봐요, 무엇이 묻어 있기나 한지?”


정원용은 사랑방에 틀어박혀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별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돈이 있어야 장사라도 하고, 땅이 있어야 농사를 짓기라도 하건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한탄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문득 떠오른 것이 도둑질이었다. 그러나 막상 도둑질하려는 마음을 먹었으나 어떻게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우선 동네를 돌아본 뒤에 결심하기로 마음먹었다.


동네는 양반들이 살고 있어서 대부분 담장이 높은 집들이 많았다. 그래서 담장이나 울타리가 없는 집을 골라 무작정 들어가기로 마음먹었다.


한참을 기웃거리며 다니다 보니 과연 울타리나 담장이 없는 집이 하나 보였다. 몰래 그 집에 들어가 보니 뒷마루에 무엇인가가 담겨 있는 자루가 하나 보였다. 손으로 만져보니 나락(벼)이 한 말쯤 들어 있는 것 같았다. “이것이면 됐다. 정원용은 그 나락 자루를 어깨에 메고 황급히 집으로 돌아와서 자루를 막 내려놓다가 한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울타리도 담도 없는 그 집도 얼마나 먹을 것이 없으면 이 나락을 식량으로 구해 놓았을까? 내가 훔쳐 왔으니………, 그 사람들은 무엇을 먹고사나? 내가 죽으면 죽었지 절대로 이런 짓은 하면 안 된다."


생각을 바꾸어 본래의 순수한 마음자리로 돌아온 정원용은 나락 자루를 다시 본래의 집에 갖다 놓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도둑질하려고 해도 내 마음이 용납하지 않으니, 이제 정말 어떻게 해야 하나? 나도 그렇지만, 나에게 시집을 온 저 불쌍한 아내는 이제 어떻게 하나? 아내가 무슨 죄가 있나?………, 잠을 이루지 못하고 깊이 근심에 사로잡혀 있을 때였다. 갑자기 허공에서 “정원용아, 이제 복을 받아라!” 하는 소리가 뚜렷하게 들렸다. 복이라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닌지라, 어떤 좋은 일이 생길 것인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이튿날이 되자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의논을 시작한 것이다.


“정원용 내외를 저대로 놔두면 틀림없이 굶어 죽을 것이다. 우리들이 힘을 모아 도와주자”그리고는 양식도 갖다주고 옷도 갖다 주어서 굶는 것을 면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해에 열심히 공부한 결과 과거에 합격하여 약관 20세의 나이로 벼슬길에 올랐다. 정원용은 늘 바른 생각으로 검소하게 살았고 청렴결백하게 관직 생활을 하였는데, 차츰 벼슬이 높아져 나이 56세에 영의정이 되었다.


그 뒤 20여 년 동안 최고의 관직에 있다가 91세의 나이로 죽었는데, 아들과 손자들도 정승과 판사를 지내는 등 집안의 경사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참고) 법공양 통권 345호, 불교신행연구원.


여기서 한번 생각해 봐야 할 일은 나 자신과 우리 가족만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 내가 죽을 지경에 처하더라도 상대방의 이익과 안위를 먼저 걱정했다는 점이다. 한순간 잘못 생각해서 남의 물건을 훔쳐 왔으나, 상대의 입장을 헤아려 훔쳐 온 물건을 다시 갖다 놓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어찌 하늘이 복을 내리지 않겠는가? 먹을 것이 없어 죽을 지경에 이른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남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는 그 순수한 마음은 하늘이 감동하여 복을 내리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보통 어리석은 자들이 나쁜 행위를 할 적에는 내가 하는 행위가 아무도 모를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세상에는 비밀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리석은 행동을 하고도 부끄러운 줄을 모르고, 반성할 줄 모르는 것이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역경에 처할지라도 항상 마음을 바르게 가져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사례에서 배우고 반성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런 善行 功德의 사례는 오직 정성이 지극하면 영험한 감응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속담에 至誠이면 感天(지성감천)이란 말이 있다. 즉 정성이 지극하면 하늘이 감동한다는 뜻이다. 일반 중생들의 평범한 수준에서는 자신이 경험하고 몸에 익힌 경계밖에 볼 수 없기 때문에, 이런 경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위의 예에서 신비하리만큼 이적을 보이는 것은 사람이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고, 살아 있을 때의 어떤 행위를 했느냐에 따라 사후에 그 과보를 받게 되니 경거망동하지 말고, 삿된 행동을 해서는 안 되니 항상 조심해서 행동하라는 하늘이 내리는 경고의 메시지가 담겨있다.


그러니 옛날 나이 지긋한 지혜를 갖춘 어르신들이 말씀하시길 “항상 福을 짓는 행위를 하라. 善을 쌓는 행위를 하라” 라고 늘 강조하신 이유가 바로 이런 깊은 뜻이 담겨 있는 것이다.


나이가 많고 적은 것을 떠나 지금부터 善을 증장시키는 일을 꾸준히 해야 한다. 인생 100세라고 하지만, 어찌 보면 눈 깜짝할 새 지나가는 것이다. 20-40대 젊은이들은 아직 내가 젊었으니, 나에게 늙음이 까마득하게 멀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50세가 넘어가면, 누구를 막론하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하게 된다.


그러니 늙음과 죽음은 한순간 지나가는 것이니 건강하고, 젊었을 뼈부터 福을 짓고 善을 쌓는 행위를 멈추지 말고, 부지런히 해야 한다. 그래야 늙음에 임해서도 당황하지 않고,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특히 주의해야 할 점은, 누가 삿된 일을 시키면 시키는 대로 아무 일이나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누가 압력을 행사하여 삿된 일을 시키면, 그 일이 법규에 어긋나고 사회상규에 어긋나는 것이라면, 삿된 행위는 절대로 행해서는 안 된다.


그 이유는 시킨 사람과 행하는 사람 모두 죄업을 짓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항상 마음은 義을 향해 고정되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나라의 인재로 자리매김할 수 있고, 의로운 사회를 만드는데 모두 주인공의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자녀들이 잘되길 바란다면, 부모 자신이 하는 행실부터 법도가 살아 숨 쉬고 모든 면에서 모범이 되어야 한다. 자녀들은 암암리에 말없이 부모를 닮아 가는 것이라오. 자신은 모범을 보이지 않으면서 자녀가 잘되길 바란다면 농사를 짓지 않고 수확을 바라는 어리석고 한심한 농부와 같은 것이다.


자녀들이 어려서부터 제 성질대로 하도록 버릇이 든다면, 후천 교육이 없이는 제아무리 타고난 자질이 뛰어나고 학식이 갖추어졌다 하더라도 결국 문자 공부에 매달려 자격증이나 취득한 어리석은 서생(書生)에 불과할 뿐이다.


우리는 모두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란다. 나만을 위한 삶, 우리만(특정 집단)을 위한 삶을 살아오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만약 그렇다면 이제는 우리 모두를 위한 삶으로 마음을 바꿔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모두 잘 살아야 가정, 사회, 국가가 함께 잘살게 되기 때문이다.


사회를 탓하고 나라를 탓하기 전에, 자신이 지금까지 어떻게 행동하고 살아왔는지를 되돌아봐야 할 필요가 있다. 나 자신이 모범을 보이면서 다른 사람에게 귀감이 되는 행동을 해 왔는지를 보면 된다.


혹여 많은 사람들을 삿된 길로 가도록 압력을 행사하고, 사회 정의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도록 부추기지는 않았는지 반성해야 한다. 삿된 행동을 하게 되면 그 행위에 의해 業을 짓게 되기 때문에 언젠가는 罪業의 대가를 반드시 치러야 한다. 습관적으로 혹은 악의적으로 삿된 행동을 일삼는 자, 다른 사람에게 악행을 하도록 부추기고, 압력을 행사하는 자들을 가리켜 “정또집(정신 나간, 또라이 집단)”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집단을 이루어 사회 전반에 폐습적인 문화를 조장하여 국법 질서를 어지럽혀 온 무리는 죄업이 매우 크다. 이런 행위는 共業에 해당하는 인과응보를 받게 된다.


“선과 악의 과보는 한 치도 어긋남이 없어, 마치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는 것과 같다.”라고 했다. 그러니 망령되이 패거리를 이루어 남을 비방하고, 사회 정의에 반하는 행동을 하면서 남에게 공갈 협박하는 등 악행을 저지르는 것은 그 재앙이 자손에까지 미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어리석은 행동을 자행하게 되는 것이다. 위의 선행 사례들을 마음속 깊이 받아들여 티끌만큼의 작은 罪業이라도 짓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사람은 죽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함부로 행동하는 자들이 있다. 다음 생을 위해서는 현재 살아 있을 때 福을 짓고 善을 쌓는 일을 부지런히 해 놓지 않는다면, 비참한 생을 맞이하게 될 수도 있다. 자라는 청소년들을 위해서, 혹은 자녀들을 위해서 부모는 항상 모범을 보여야 한다.


그래야 자녀들이 부모가 하는 행위를 보고 바르게 성장할 수 있다. 자녀에게 가장 모범이 되어야 할 사람은 바로 부모이기 때문이다. 부모가 돈이 많다고 하여 자녀가 사달라는 대로 마음껏 사주고, 용돈을 푸짐하게 준다고 하여 자녀가 반듯하게 자리지 않는다. 핵심은 부모의 말 없는 가운데 모범적이 행동이다. 비록 부모가 가난하여 몹시 어렵게 살더라도 부모의 가치관이 뚜렷하고 사상이 올바르면 자녀들은 반듯하게 성장할 수 있다.


흔히 부모가 말싸움도 하지 않고 서로를 위하며 사랑스럽게 잘 지내면, 그런 환경에서 자란 자녀는 효자가 될 것으로 착각한다. 효자는 慈愛(자애:아랫사람에게 베푸는 도타운 사랑)로 운 가정에서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 어떤 가정에서 효자가 나오는가? 노자는 肉親(육친: 부모 형제같이 혈족관계에 있는 사람)이 화목하지 않을 때 孝(효)가 나온다고 하였다.


왜 가정이 화목하지 못하는데 효자가 나올까? 의심스러울 것이다. 그것은 가정에 불화와 위기가 지속적으로 닥쳤음에도 불구하고 부모가 그런 환경에 무너지지 않고 잘 극복하며 헤쳐 나가는 과정을 지켜볼 때에 자녀들의 효행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충신이 나라가 안정될 때 나오지 않고, 전시 같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나온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충분히 이해가 가리라. 안중근 의사. 유관순 열사, 이순신 장군, 맥아더 장군 등 수많은 인재가 모두 나라가 매우 혼란한 시기에 출현했다는 점을 알고 나면, 충분히 이해가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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