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흥행을 보고
'왜 잘 되는 걸까?'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흥행가도를 보고 한 생각입니다. 이 작품의 흥행을 이해할 수 없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저 본질적인 이유가 궁금했었죠. 나름의 상상을 펼쳐보면 그 이유는 한없이 많을 겁니다. 운과 시기의 결합일 수도 있고,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장항준 감독 특유의 유머, 역사에 기반한 팩션의 매력, 단종의 비극적인 서사 등등 각자가 느낀 즐거움의 요소는 이 영화를 즐긴 관객의 수만큼 다양할 겁니다. 그러나 저는 조금 다른 이유가 떠올랐습니다. 근래 관객들이 행복을 더 갈구하기에 이 작품이 잘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스쳤죠.
당시 저는 이 영화를 어머니와 봤습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눈물을 닦으시며 말씀하셨죠. "이 영화 천만 갈 것 같아!" 관람 직후, 머릿속으로 연출과 이야기를 버릇처럼 짜 맞추고 있던 중 들은 의외의 이야기였습니다. 사실 이 작품의 만듦새에 물음표를 던지던 중이었거든요. 이에 이유가 궁금해진 저는 물었습니다. "왜? 재밌었어?" 이에 생각지 않은 대답이 나왔습니다. "응. 이야기가 너무 슬프잖아."라고요.
우리는 유명하고 재밌다고 하는 것에 시간과 돈을 투자합니다. 당연하겠지만, 확실하게 보장된 오락성을 얻길 원하니까요. 근래에 대표적인 것이 두바이 쫀득 쿠키였죠. 모두가 입을 모아 맛있다고 말했고 온-오프라인에서는 밈까지 형성되어 하나의 작은 문화로 발전해 가는 것을 직접 겪었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유행들의 수명이 짧았듯, 이제는 사그라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예약을 해야만 살 수 있던 두쫀쿠들은 이젠 마트 또는 집 근처 제과점에서 쉽게 볼 수 있게 됐으니 말입니다. 그렇게 매번 유행의 파도를 거꾸로 헤엄치는 제가 겨우 먹은 두쫀쿠는 실제로 꽤나 맛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넘실 올라왔죠. '맛있긴 한데 이게 그 정도인가?'라고요.
물론 저는 이런 유행을 좋아합니다. 누군가와 얘기할 수 있는 하나의 스몰토크 요소이자, 한국의 문화이고, 어찌 보면 새로운 경험이니까요. 다시 말해, 저를 포함한 많은 이들은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즐거움을 삽니다. 과거 우리를 열광하게 한 스포츠들이 그랬고, 짧게 시대를 향유한 디저트와 음식, 천만이 넘은 영화들, 유행하는 넷플릭스 콘텐츠들이 그랬죠. 저희를 즐겁게 한 이 모든 것들의 공통점은 각 매체의 매력과 이를 만들어간 이들의 노력이라는 요소가 있었겠지만, 사회 전체가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보장된 즐거움을 갖추었기 때문일 겁니다.
다시 돌아와,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보고 난 뒤 어머니의 감상은 슬퍼서 좋았다였습니다. 저희 어머니처럼 이 작품을 보고 난 뒤에 감상들은 대부분 감정 위주의 평이 많았습니다. 저도 그랬고요. 감정의 흐름이 정말 중요한 영화니까 당연한 감상일 겁니다.
약 2-3개월 전 과거 피드메이커란 활동을 한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주제를 담아 글을 적는 블로그 활동이죠. 당시 저는 영화를 주제로 참여했기에 사람들이 어떤 장르를 즐기고, 왜 즐기는가에 대해 찾아본 적이 있었습니다. 알아본 결과, 공포영화에서 느끼는 쾌감은 피서나 매운 음식을 먹을 때 얻는 유희와 유사하다고 합니다. 공포영화 장르에 담긴 서늘함과 불쾌감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려는 것이죠. 액션 영화에서는 폭력의 쾌감을 통해 파괴 욕구를 대리로 해소하는 것이며, 코미디에서는 우울함을 날려버리는 즐거움을 원합니다. 그렇다면 단종의 비극적인 서사를 담은 이 영화를 보고 우리가 느끼는 쾌감의 정체는 뭘까요? 왜 우리는 비극과 슬픔을 갈구하는 걸까요?
앞서 두쫀쿠에 모두가 열광했듯 우리는 보장된 즐거움을 갖고 싶어 합니다. 즐거움을 주는 매체 중 영화는 장르라는 틀을 통해 특정 쾌감을 선사하죠. 그리고 국내에서 흥행한 소위 천만 영화들은 감정적이고 슬픈 신파 영화가 많습니다. 이에 저는 이러한 영화의 수요는 많은 사람들이 울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으로 이어졌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 사회는 오랜 시간 슬픔을 해소할 무언가를 계속 찾는 것이 아닐까 하는 조심스러운 생각이 들었죠. 삼촌 세조에 의해 폐위되어 쓸쓸히 죽어간 단종의 이야기를 수많은 이들이 깊이 슬퍼하고 공감하는 이유는 이를 통해 감정의 응어리를 해소하고 싶은 욕구 때문이고, 그 숫자가 1,500만이라는 수로 나타난 것만 같아 마음이 조금 무거워졌습니다. 1,500만이란 관객 수는 엄청나면서도 이상한 숫자이니까요. 이 생각의 연장선에서 저의 작은 블로그에도 가끔씩 달리는 악플들, 슬픈 영화를 보시고 긴 비밀 댓글들이 주시는 이유를 혼자 되뇌어보면 많은 분들이 마음속 응어리를 해소할 무언가를 찾으시는 게 아닐까 합니다. 저 또한 무의식적으로 평온하고 즐거운 영화를 찾는 것을 보면 사실 이 영화의 흥행의 이유 중 하나는 감정의 해소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우리는 모두 행복해지고 싶으니까요.
벌써 한 해의 1/4가 지났습니다. 지난 몇 년간 천만 이상의 영화가 없이 주춤했던 국내 영화시장에서 왕과 사는 남자가 급격한 흥행가도를 달리는 있었던 것은 영화 자체의 매력도 당연히 크겠지만, 두쫀쿠의 유행처럼 슬픈 감정을 명확하게 해소하길 바라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슬픈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닌 분들이 더 많겠지만요.
그럼에도 만약 슬픔을 찾아 극장으로 온 ‘단종들’이 있다면, 이제는 그 감정 위에서 다시 스스로 일어날 수 있기를. 엄흥도가 단종을 위해 당기던 줄이 여러분의 마음을 옥죄던 고민과 감정들을 풀어주는 작은 동아줄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