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와디 카

수상한 태국 며느리

by Jackie Song

이제는 핵가족도 아닌 핵 개인 시대이다. 8년 안에 전체 인구의 30퍼센트가 2인 가족, 많으면 3인 가족이 보편적인 인구의 숫자가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제는 '핵 개인'이란 단어는 다양성이 아닌 보편성으로 존재하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누구나 다 핵 개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태국 사람은 이미 아니, 원래 모양이 핵 개인스럽다. 특히 식사 문화에서 두드러진 개인주의가 많이 나타나는데 한국과 비교를 하면 아주 상반된다. 사람들이 모여 함께 식사를 할 때에도(오늘 같이 브런치를 먹은 사람과 내일 다시 만날 확률은 지극히 드물다) 같은 음식을 시키는 경우가 없고 메뉴는 당연히 제각각이다. 그러면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냐고? 마이 뺀 라이(괜찮다).. 계산도 당연히 각자 지불이다. 태국 사람들은 특히 소식을 자주 하고 자연식을 즐긴다. 많은 양의 음식을 먹을 때에는 나름 먹는 순서를 의식하는 편인데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예를 들면 식전 음료를 주문하고 (대부분 식사를 시킬 때 한 번에 주문한다) 식초를 기본으로 하는 메뉴나 소량의 전채를 먼저 먹는 것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지만 사람마다 각자 다르다. 다음으로 단백질이나 지방, 탄수화물 순서이다. 쌀로 만든 주식들은 비교적 소화가 잘 되며 정제된 탄수화물을 싫어하는 나 같은 사람은 잡곡이나 통곡물을 많이 먹는다. 특이한 점은 식사 중간에 차나 음료를 음식과 함께 먹고 오랜 시간 동안 음식을 즐긴다. 식사 후에는 적게라도 꼭 달콤한 디저트를 꼭 챙겨 먹는다는 것이다(먹지 않는 사람도 많다)


태국음식의 3대 특징은 새콤, 매콤, 달콤한 맛이다. 태국의 음식 문화는 보통 한 접시 문화이다. 하나의 접시(plate)에 밥과 야채를 곁들인 돼지고기/ 닭고기/ 새우 요리를 먹고 계란(주로 밥 위에 덮는다)을 함께 곁들이면 한 끼의 식사가 완성이 된다. 또 하나의 선호 음식은 볶음밥이다. 태국은 전 세계 1등 쌀 수출국가이고 동남아쌀의 특징은 죽이나 볶음밥을 만들었을 때 쌀 특유의 오일향이 음식의 맛과 풍미를 더 해준다. 또 쌀국수는 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선호 음식인 인데, 물이 있는 것은 ‘남숩‘이라고 하고 볶음국수는 ’행’이라고 발음한다. 태국어의 발음과 성조는 다음에 얘기하기로 하자. 태국은 양이 많은 요리를 함께 먹을 때는 접시에 나오는 요리마다 공동 스푼(천 끌랑)이 있어서 각자 개인 접시에 먹을 양만큼 덜어 먹는 문화이다. 그리고 가사 노동을 많이 하지 않는 특성상 주로 도시락을 싸는 문화(take away)가 발달했는데 태국 말로는 '아오 깝반'(집으로 가져간다)이라고 말한다.(실질적으로 집에 않는다.) 포장 문화도 기가 막히다. 하지만 친환경과 지구 온난화에 관심이 많으며 호텔이나 서비스 산업에서 많이 소비될 수 있는 일회용품을 줄이고 전력 소비를 감소하며 자연을 보호하려는 사회적 실천을 중요시해 오고 있다는 점에서 태국은 벌써 문화 선진국이었다.


태국 음식을 먹을 때는 소리를 내지 않고(특히 국물이 있는 음식) 양손을 사용한다. 포크와 스푼을 사용하는데, 오른손과 왼손 사용은 개인의 성향에 따라 차이가 있다. 메인 요리로 갈수록 오감을 자극하는 향신료와 코코넛 오일 또는 코코넛 밀크가 사용되는 것이 특징이다. 향신료 중에서는 고추, 레몬그라스, 라임, 생강을 많이 사용하고 강황성분(카레에 사용)이 느껴지는 맛의 요리도 많다. 캐주얼한 음식을 자주, 적게 먹는 편인데 그중에서 유기농 과채를 이용한 신선한 주스나 탄산성분을 함유한 음료수를 즐긴다. 대표적인 독특한 태국요리는 똠얌꿍(맵고 시큼한 새웃국), 팟타이(태국 볶음국수), 팟카파오 무쌉(매운 바질 돼지고기), 솜땀(파파야 샐러드)등이 있다. 물론 현지인들에게는 생선요리가 더 좋지만... 기본요리 옆에는 항상 음식에 곁들일 수 있는 4가지 소스(식초, 고춧가루, 간장, 설탕)가 준비되어 있는데 기호에 맞게 넣으면 된다. 그 이외에도 많은 종류의 양념 소스들이 있는데 이것들은 태국음식의 풍미를 한층 도와주는 특색 있는 음식 문화이다.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일본식당과 태국식당은 흔하게 찾을 수 있는 대중적인 음식이라고 한다. 물론 향신료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인들은 특히 동남아를 방문할 때 주의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다시 코로나 일상으의 이야기로 돌아왔다.

1년이 지나도 태국으로 향하는 하늘의 문은 열리지 않았고 나는 향신료 음식이 무척이나 그리웠다. 음식이 이렇게 정서적으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할 줄은 몰랐다. 하지만 인생에서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이 있었다. 코로나 시국에 운이 좋아서 한국의 공공기관에서 잠시 일을 하게 되었는데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보람도 있었다. 하지만 너무나 바쁜 일상이 목을 조여왔고 한국에서는 대부분 누구보다 바쁘게 살아가는 일상들이 한국인의 위상이나 자존심 같아 보였다. 숨이 가쁠 정도로 바쁜 일상에서의 회복은 무엇으로도 보상이 되진 않았지만 번아웃이 오지 않도록 노력했다. 혼자만의 긴 호흡이 필요할 때에는 근처의 산으로 도망치듯 달려갔다. 타인을 향한 깊은 배려와 지나친 관심의 시선으로부터 도피하여 나의 자율성을 지켜가는 동안 시간은 또 화살처럼 흘러가고, 세상의 빠른 변화 속도와 기술의 발전에 스스로 놀라고 있었다. 그리고 다가올 미래의 내 삶의 그림도 점점 선명해지고 있었다. 분명히 감사한 일이었다. 처음에는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이 뒤로 가는 세상에 온 줄 알았지만 사실은 그 반대였다. 낯선 나의 땅에서의 하루하루는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갈망하는 기다림의 연속이었고 그 안에는 시간의 무게만큼 배움의 밀도가 있었다. 삶을 애타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하루하루를 보면서 나의 마음이 이들과 똑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2년이란 세월, 이 값진 시간을 통해서 나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사는 방식을 배웠다. 언제 어디에 있어도 내가 존재하는 곳에서는 나의 세상이 존재한다. 우주의 중심은 바로 '나'인 것이다. 나의 무의식이 매일의 의식을 지배하는 방식을 나 스스로 터득했다. 물론 책의 영향이 컸다. 한국을 잠깐 살게 되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태국살이 20년 동안, 내가 가장 그립고 애틋하게 원했던 것은 한국의 음식도 집밥도 아니었다.) 바로 내 나라의 글로 써져 있는 한국어 글씨의 '책'이었다. 타향살이 동안 한국 책과의 결별(?) 보상 심리로 난 매일 공공기관의 업무가 끝나는 시간부터 도서관이 끝나는 시간까지 책을 읽었고 이것은 나의 힘들었던 시간을 지탱해 주는 오아시스 같은 시간이었다. 책으로의 여행, 그 덕택에 시댁(남편이 살았던 집)에서는 나를'오랜만에 고향집에 돌아온 수상한 태국 며느리'라고 생각했지만 이해를 구할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 업무를 시작한 지 일주일 만에 나는 하루하루를 48시간처럼 살아냈고 내가 해야 할, 그리고 알아야 할 세상의 숙제들을 차근차근 해 내고 있었다. 물론 아무도 알 수 없는 나만의 과제였지만 나의 무의식, 지배의 힘은 생각보다 강했다. 나는 스스로의 과제를 열심히 체크했고 주어진 미션들은 하나씩 수행했다. 일에서도 내 인생의 숙제에서도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알게 되었다. 작은 두려움이나 걱정 따위로 하루하루를 흘려보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인생살이는 걱정의 순간도 기다리면 사라지고, 기쁨의 순간이 오지만, 잠깐 지나면 또 다른 걱정의 순간이 어김없이 찾아온다는 것을 안다. 그렇기에 너무 기뻐하지도 너무 슬퍼하지도 않아도 될, 넘칠 것도 모자랄 것도 없는 것이 인생이라는 점을 깨닫았을 때 삶을 바라보는 시선도 좀 편안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삶의 철학을 나는'내 안의 왕국'속으로 적용해 나가고 있다..


나는 성장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태국에서도..

물리적인 공간의 자유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시간의 자유는 나 스스로가 선택하는 방식으로 만들어낸다.

세상에는 남들을 도와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너무나 많으며(물질이 아니어도 된다) , 인생은 내가 거울 속에 비치고 싶은 모습대로 살아지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서도 자유로워져야 한다. 결국 나 스스로가 타자들의 시선도, '나'라는 우주의 작은 존재가 그들에게는 그다지 흥미로운 주제는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된다. 사람은 지극히 서로의 입장을 공감할 수 있을 때, 나의 노력이 타인의 삶에 한 가닥 도움이 될 수 있을 때, 이 세상은 함께 사는 의미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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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깨달은 삶의 교훈이 있다면 '부의 추월 차선'이건 '부의 비밀'이건 간에 '부'의 최종 목적은 남들을 도우기 위함이며 우리 사회의 가치와 선행을 위해 품위 있게 쓰여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도 심장이 뜨거워지도록 열심히 살지는 말고, 가치 있는 생각을 하며 살기로 결정했다. - 사와디 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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