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의 겨울이 끝나다...
올해 겨울은 유난히 춥다. 사람들 말로는 겨울치고는 그리 추운 날씨는 아니라고 한다. 내 마음속의 겨울은 길게만 느껴졌다. 1년을 예상했던 팬데믹의 시간은 아직도 끝나지 않고 있고 <행지복지센터>의 임시 근무도 이제 3개월 남았다. 마지막 시즌 업무의 제목은 생계비 지원 업무도, 공공일자리 상담도 아니다. 백신 3차 접종 예약 신청을 마무리하는 과정이었다. 내가 2년 동안 한 동네에 살면서 유난히 얼굴을 정확히 기억할 정도로 주민센터에 자주 오시는 민원 한 분이 있었는데 아직도 내 무의식은 가끔 그분을 기억한다.
"이제 이것(백신)만 맞으면 죽지 않는 건가요?" 그런데 병원에서는 평소 먹는 약이 백신의 부작용을 일으킬 수도 있으니 알아서 선택하라는 것이다. 평소 지병이 있는 사람도 백신접종 후 나타나는 건강상태에 대해서는 뭐라고 정확히 말하기 쉽지 않고 한다. 맞는 말이지만, 민원께서는 그녀의 선택권을 대신해 누군가가 명백히 결정을 내려주길 주길 바라였고 어떤 위로나 공감을 기대하는 마음이 컸다. 주민 센터를 방문하는 100명 중에 35명이 비슷한 질문을 한다. 하지만 선택은 개인이다. 어떤 백신을 언제 맞을지, 혹은 안 맞을지,,, 하지만 2분도 안 지나서 들리는 외침들은 "제발 누가 뭐라고 말이라도 하든지, 조언이라도 좀 하라고!!! 였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살면서 나 스스로가 모든 것을 선택해야 하는 공포스러운 순간은 매번 찾아오기 마련이다. 어떤 상황에서 나타나는 계속되는 불안증(anxiety)이나 걱정은 심리적인 병이다. 누구나 다 가지고 산다. 하지만 반드시 일어나지 않을 현상들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은 만성적인 습관이 되고 선택의 결과는 후회와 비교와 고민으로 반복된다. 걱정의 소용돌이로 반복되는 의식은 신체적, 심리적, 환경적 공황장애(penic disorder)로 몰고 갈 수가 있다. 그리고 때로는 잘못된 정보의 홍수로 인한 집단적 맹신도 빠르게 일어나는데 마치 유행성 감기처럼 금방 왔다가 소리 없이 사라진다. 인간의 뇌는 좋은 기억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은 습성이 있지만 때로는 사고나 트라우마 이후에 생기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 traumatic stress syndrome)에 의해서 좋지 않은 기억들도 무의식 속에 오래 남아서 의식을 좌우한다.
▷단어의 쓰임에 있어서 혼돈을 막기 위해 의료용어를 영어와 함께 표기하였다.
단기간 이나마 민원서비스에 익숙해져 가고 있던 시간 동안 나는 다시 한국과 태국과의 적지 않은 문화의 차이를 실감했다. '언어 환경'이라고 하는 것은 문화를 대변하기도 하지만 환경에 따라 같은 말이라도 소통이나 대화의 느낌이 다르게 다가온다.
내가 근무했던 주민센터의 지방 공무원들의 말해 의하면, "지금 일하는 기관에서는 민원들을 대할 때 '마이 뺀 라이(괜찮아요)'라는 말과 '컵쿤카(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아주 조심스럽게(?) 써야 하세요".라고 하였다. 그 말은 즉, 나의 대답이 공공기관 입장에서는 심도 있는 책임을 부과받는데 깊이 관련되어 있다는 의미임을 알았다.. 하지만 나는 느낌이 좀 달랐다. 내 코로나 팬데믹 기간 동안 사람들은 매일 출근하듯이 주민센터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마스크를 낀 채 열 체크를 하고 내 앞에서 매일 소리치는 이 민원들이 왠지 모르게 나는 감사했다. 그리고 눈물이 났다. 우리는 같이 살아남아야 했기 때문이었다.(타인의 아픔이나 통증을 물리적, 심리적으로 일반인보다 더 예민하게 공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내가 그런 부류의 사람이다.)그리고 마음속으로 혼자 말했다. "감사합니다."라고... 15분의 시간이 흐른 후 사람들은 내게 다시 질문했다. "저기,, 선생님!, 내일 다시 와서 결정해도 되나요?" 나는 짧지만 조용한 미소로 대답했다. "괜찮아요."
인생은 우리가 삶을 마감하는 시간까지 끊임없는 선택의 순간이 찾아온다.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서 최고의 조건을 선택해서, 또한 충분한 기회를 통해 결정하고 살아왔다고 할지라도, 결정적인 선택의 순간은 약속한 듯 찾아오고 또다시 묻는다. 지금은 또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이냐고... 태국말에 '아라이 꺼다이'(아무 선택이나 괜찮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순간순간 몰입해서 하루를 최대한 열심히 살아내도 삶은 내 뜻대로 안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이동진 문학 평론가의 표현에 의하면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아내고, 인생은 그냥 흘러 보내라!'라는 말에 깊이 공감한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하기에는 이 세상은 너무 복잡하고 선택의 순간에 우리는 항상 철저히 혼자이며 그 책임도 온전히 스스로의 몫이다. 그러니 내가 스스로 선택한 결정에 대해 너무 후회하거나 비하지 말고 이것 또한 빨리 흘려보내라.
인생의 무게가 너무 무거우면 의식적으로 덜어내야 한다고 느낀다. 하지만 여렵다. 하지만 조금만 더 느리게 시간을 갖고 천천히 늙어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많이 한다. 그래야지 더 행복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팬데믹을 겪으면서 누구나 3차례의 백신을 맞았고 마지막에 나는 내 마음의 백신도 같이 맞게 된 것 같다. 이 백신의 면역의 효과는 상당했다. 사람과 세상의 가치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나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치유하는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팬데믹 시절동안 내 마음을 다스리는 글을 써 보겠다는 생각을 왜 한 번도 안 했을까? 감사의 글, 치유의 글, 행복한 글, 마음의 일기 등, 하지만 돌이켜보면 잘 살아냈다. 2년이라는 한국에서의 제한적인 나의 삶을 참 기특하게 잘 살아냈다. 삶은 이렇게 시간이 지나고 나중에 돌이켜보면 힘들고 아팠던 기억도 추억이 되고 용서가 되는 게 신기하다. 신이 인간에게 선사해 준 귀중한 선물 같은 게 아닐까? 나는 비로소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다. 누가 보든, 보지 않든, 읽고 쓴다. 삶은 쓰는 데로 이루어진다.
2번의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아직까지 하늘의 길이 열릴 계획은 없나 보다. 남편은 늦은 나이에 30년 만의 혹독한(?) 겨울을 견뎌내야 했고 나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의식적인 시간의 견뎌냄이 지금을 더 감사하는 삶으로 느끼게 되었다.(안구 건조증과 스트레스성 탈모, 피부의 건선만 빼면 그런대로 견딜만하다. 아마도 환경 탓이리라...) 의식주가 불편했던 것이 가장 큰 문제 이긴 했지만 항상 말하듯이 물리적 환경은 그다지 중요한 부분이 아니라는 점이 삶의 원칙이라서 괜찮다. "마이 뺀 라이"
확실히 태국이 '노잼(요즘말로 재미없음)은 아닌 것 같다. 물론 태국은 관광대국이고 1년에 돌아오는 연휴가 '해피뉴이어', '차이니스뉴이어', '러이끄라통', '송크란'(최대 태국 명절), 그 사이에 크고 작은 불교축제와 국제 페스티벌과 박람회까지 합치면 태국에서의 삶은 축제와 여행으로 인생의 여정이 마무리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태국생활에서의 주의점은 풍요 속 빈곤에서 벗어나야 한다. 보이는 화려함과 반대로 탄탄히 다져진 안티프레질한 삶의 내공이 없다면 쉽게 휘둘리는 삶을 살기 쉽다. 유혹도 많다. 인생이든 무엇이든, 단타로 해결되는 것은 없다. 실력의 영역도 운의 영역도 다 성실하고 진실한 사람들이 얻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태국사람들의 문화를 경제적 관점에서 우리나라와 비교하자면 수입이 많다고 해서 열심히 돈벌이를 하는 것도 아니다. '빨리빨리'를 제일 혐오하는 태국 문화는 중국의 '만만디'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다. 결국 느리더라도 어느 순간에 모든 문제는 해결이 된다. 태국말에 '짜이엔엔'(마음을 냉정하게 다스리다.)이라는 표현이 있다. 대부분 외국사람들과 소통할 일이 있을 때 많이 쓰는 편이고 태국 사람들 사이에서는 별로 쓸 일이 없다. 이미 태생 자체가 짜이엔엔으로 태어났으니... 태국 사회는 교육열도 높은 편이지만 학원 등의 사교육은 별로 선호하지 않고 국제 학교나 공교육의 시스템이 싱가포르이나 말레이시아처럼 잘 되어 있는 편이다. 태국 사람들은 일도, 공부도, 재미있지 않으면 모든 것은 인생의 버킷리스트에서 제외된다.'사눅사눅'(재미있다)하자라는 말은 항상 들리는 행복한 말이다.
인생의 여정에서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수입과 적거나 없을 수도 있지만 가치 있는 일)을 동시에 가지려고 하는 습성은 태국 사람들이 현대를 살아가는 방식을 시대에 앞서 미리 터득한 한 것 같기도 하다. 아님, 민민족성인가? 물론 사람마다 같지는 않다. 사람마다 업종마다 소득 수준은 차이가 나고 다양한 문화와 생활양식을 동시에 가지고 있어서 사실, 평균(Average)이라는 말은 이젠 무색한 단어가 되었다. '방콕'이라는 코스모 폴리탄적인 도시에서 100명의 사람이 있다면 살아가는 모습은 100가지 인 듯하다. 방콕과 치앙마이, 푸껫은 외국인 여행자나 장기 거주자가 많이 살고 있는데(비자가 문제가 없어야 함) 각자가 가지고 있는 본연의 다양성과 태국의 고유성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는 점이 흥미롭다. 서로의 문화와 다양성이 존중되고 거부감 없는 포용 문화는 태국의 강점이다. 하지만 태국의 부드러운 미소는 절대로 약하지 않다. 지방으로 갈수록 더 로컬적인 특색이 강하고 음식의 맛이나 사람들의 성격도 차이가 난다. 지방 도시는 외국인 여행자들을 더 반갑게 환대하는 경향이 있는데 장기 여행자나 거주자들(특히 북쪽과 남쪽이 많이 다름)에게는 태국의 자동차 여행을 추천한다.
태국 사람들이 삶에서 가장 중요한 행복은 다른 무엇보다도 '하루의 건강'이다. 다시 말해 '건강한 오늘의 순간을 사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건강이 가장 중요한 자산이자 투자이익이라는 마인드가 강하다. Health is Wealth라는 말은 태국 대표하는 슬로건 중에 가장 흔하게 듣게 되는 표현이다. 2023년 태국을 의료관광으로 방문했던 인바운드 관광객은 60만 6천 명이다. 참고로 태국은 아시아에서 싱가포르 다음으로 미국의 국제병원을 평가하는 프로그램인 JCI(joint commission international)의 인증을 받았다. 웰니스를 실천하는 민간요법 중에서는 '요가', '명상', '마사지'가 발달했고 예방의학을 좋아한다. 태국 정부는 이를 인도의 '아유베르다' 대체의학과 접목 시키고 치료와 휴양이 동시에 가능한 의료관광 국가로 성장시켰다. 태국의 국제적 의료진들과 첨단기술, 글로벌 서비스 마인드는 국제의료관광 측면에서 태국의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외국인 환자 유치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태국 사람들의 작은 습관 중에서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고 하루 일상 중 뇌를 쉬게 하는 훈련을 좋아한다.(흔히 알고 있는 '멍 때리기','부 교감신경 활성화하기' 등) 몸과 마음을 동시에 치유하고 휴양하는 건강요법이다.
코로나 기간 동안 주말이면 한 번씩 태국에서 한국 분들이 운영하시는 유튜브 방송을 보면서 향수병을 달래기도 했는데 보통 주제는 비대면으로 대체할 수 있는 태국 여행 들이었다(스토리 중에 태국의 편의점인 '세븐 일레븐'이 굉장히 자주 등장하는데 여행 오시는 분들은 꼭 방문해 보시길 바란다.- hello welcome!) 뉴 노멀시대를 준비하는 전 세계 사람들의 놀라운 변화 속도를 보면서 AI와 더불어 기하급수적으로 변화할 세상을 미리 감지하는 것만 해도 벅찬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많은 위안이 되었고 내 삶의 방향을 잡아나가는 속도도 빨라지고 있었다. 팬데믹 환경의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가고 있는 사람들도 대단했지만 이 순간에도 매일의 일상을 포트폴리오로 만들어 나가는 일은 의식이 깨어있는 자만의 약속된 루틴처럼 보이기도 했다. '되는 사람은 뭘 해도 되는구나' 나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편이다. 물론 재능보다는 노력을 더 중요히 여긴다.
이렇게... 시간은 지나가고, 드디어 기다리던 하늘의 문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