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들깨 삼계탕의 인연
복날을 맞아 봉수와 같이 동네 맛집인 들깨 삼계탕을 먹으러 갔다. 무더운 여름을 체력적으로 버티기 위해서는 보양식을 꼭 챙겨 먹어야 한다며 봉수는 30살이면 이제 그럴 나이가 되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서로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아저씨가 되어가고 있음을 서로 실감했다. 여러 가지의 여름 보양식 중에서도 구수한 들깨가 들어간 삼계탕이야말로 보양식의 끝판왕처럼 느껴졌다. 역시나 날이 날인만큼 식당은 손님으로 북적거렸다. 가게의 주차장까지 길게 줄을 서있는 대기줄을 지나면 은색 알루미늄 프레임에 불투명한 유리로 된 미닫이문에는 세로로 빨갛게 들깨 삼계탕이 쓰여있었다. 예전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정집처럼 생긴 삼계탕 가게는 왠지 모르게 정감이 갔다. 뜨거운 햇살이 머리를 뜨겁게 내리쬐는 바람에 머리는 자연 온천이 들끓는 듯했다. 봉수와 나도 대기에는 예외가 없었기에 한참 기다리다가 가게로 들어섰다. 가게 안쪽도 사정이 그리 다르지는 않았다. 에어컨이 있어도 뜨거운 음식이 왔다 갔다 하고 차가운 공기가 가게 내부에 찰 만 하면 문이 열리고 닫혔고 사람들이 자주 돌아다니다 보니 사실상 무용지물이었다. 차라리 자리마다 놓여있는 작은 선풍기 하나가 더위를 잊게 하기에는 훨씬 위력이 좋았다.
삼계탕 가게의 시스템은 인원수만 확인하고 단일 메뉴로 반찬과 뚝배기에 담긴 삼계탕을 내어주신다. 반찬이라고 해봐야 배추김치와 깍두기가 있고 오이고추, 생오이, 생당근과 찍어 먹을 소스인 된장을 조그만 종지 그릇에 주셨다. 조금만 기다리면 뚝배기에 담긴 주인공이 등장한다. 걸쭉한 하얀색 국물이 바글거리는 것을 보고 있으면 마치 마그마가 화산에서 부글거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먼저 국물을 한 숟가락 떠먹으며 식사를 시작하는데 가장 흥미로운 장면은 모두가 이 뜨거운 국물을 호호 불어가며 입에 한 수저 넣고는 너나 할 것 없이 감탄사를 내뱉거나 ‘시원하다’라고 표현했다. 분명히 엄청나게 뜨거운데도 시원하다고 표현하는 걸 어릴 때는 이해하지 못했었다. 지금은 어느 정도 알 것 같다. 나이가 들어가고 있다는 반증이겠지.
봉수와 나는 항상 어떤 음식을 먹더라도 음식이 나온 뒤에는 대화가 단절됐다. 오직 눈앞의 적에게 집중하며 그릇의 바닥이 보일 때까지 손과 입을 멈추지 않았다. ‘꺼억~’ 서로 만족한 듯 배를 두드리는 속도나 식사 속도도 그리 딱 맞는지 ‘베스트프렌드’란 바로 이런 모습을 보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초복 날 개운하게 들깨 삼계탕 한 그릇으로 보양을 끝내고 봉수에게 계산을 맡겨둔 뒤 가게 밖으로 발걸음을 천천히 옮겼다. 사람이 워낙 많아서 나가는 사람 숫자만큼 바로 유입이 되기에 엄청나게 복잡했다. 정체 중인 고속도로처럼 앞사람의 발만 보고 걸음 속도에 맞추어 걸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마침내 한 발짝만 더 나가면 해방의 기분을 간접 체험할 수 있다. 바깥의 날씨도 무척 더웠지만 그래도 사람의 체온이 서로 닿아서 끈적거리는 가게 내부보다는 훨씬 나을 것 같았다. 앞사람의 발에 집중해서 걷다가 희망이 바로 눈앞에 다가왔을 때였다. 옛날 미닫이 문의 특성상 바닥에도 알루미늄 샷시가 있었는데 앞사람이 미처 그걸 생각하지 못했는지 오른발이 걸려 넘어지려고 할 때 나는 본능적으로 앞사람의 등 쪽의 옷을 오른손으로 잡아당겨서 넘어지지 않게 지탱해주었다. 워낙 갑자기 일어난 일이고 반사적으로 행동이 먼저 튀어나가는 바람에 어깨나 팔을 잡았다면 차라리 나았을 텐데 반사적으로 눈앞에 보이는 등을 잡을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앞사람이 여성분이셨고 나이는 나와 비슷하거나 어려 보였다. 여성분은 넘어지지 않은 것에 안도하는 표정이면서도 난감함과 민망함 사이 그 어디쯤의 표정으로 찰나의 순간에 고개를 돌려 나를 돌아보았다. 내 손으로 잡은 등 쪽의 옷이 여성분의 속옷과 같이 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겨울이었다면 외투가 있어서 이런 불상사가 벌어지지 않았겠지만 여름이라는 계절 특성이 만든 일종의 사고였다. 나도 처음에는 자각하지 못하다가 여성분이 돌아보시자 표정을 보고는 알아챘다. 황급히 손을 떼고 연신 죄송하다고 사과의 인사를 했다. 여성분은 여전히 민망하다는 표정과 괜찮다는 표정이 섞인 느낌으로 괜찮다고 넘어지지 않게 잡아주셔서 감사하다고 해주셨다. 아무리 급했어도 하필 손에 잡힌 게 속옷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미친 사람 혹은 변태처럼 느끼셨을 것 같아서 괜히 도와주고도 죄송한 마음이 더 컸다.
이윽고 계산을 끝낸 봉수가 나와서 상황을 듣고 같이 사과했다. 여성분은 다행히도 환하게 웃더니 참 예의가 바른 사람들 같다며 칭찬을 해주셨다. 여성분도 복날을 맞아 친구와 함께 보양하러 왔다가 지금과 같은 불상사가 발생했지만 민망하긴 해도 사람이 많은 곳에서 넘어졌다면 다쳤을 텐데 그런 상황까지는 만들어지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며 우리를 안심시키려 노력하셨다. 평생 여름이 되면 기억에 남을 에피소드가 하나 생겼다고 농담도 했다. 그렇게 봉수와 나는 계속 사과하고 여성분들은 정말 괜찮다고 하는 공방의 상황이 이어지다가 봉수는 사과의 뜻으로 커피 한 잔을 사드리겠다며 카페로 갈 것을 제안했다. 여성분들은 서로 눈빛으로 사인을 보내더니 봉수의 제안을 받아들여 가까운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나는 개인적으로 쓴 음료를 좋아하지 않아서 단 음료 종류 중에서도 돌체라떼를 선호한다. 커피에 우유가 들어간 기본 라떼에 연유를 섞어 만든 메뉴의 종류이다. 봉수는 나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취향을 알기에 자연스럽게 주문했고 내가 잡아드렸던 여성분도 나와 같은 메뉴를 고르셨다. 커피 취향은 자연스럽게 대화의 주제로도 이어질 수 있었다. 여성분 역시도 나와 비슷하게 쓴맛의 음료를 선호하지 않으신다며 같은 메뉴를 좋아한다고 했다. 주문한 음료가 나온 뒤 사소한 대화를 나누다가 자연스레 호구조사를 하게 되었다. 봉수 소개도 하고 친구분의 소개도 하고 그 여성분의 소개도 이어졌다. 나이는 우리보다 2살이 어린 28살이고 이름은 박소현이라고 했다. 키는 어림잡아 160cm쯤 돼 보였고 하얗고 굉장히 마른 체형의 소유자였다. 그리고 내 소개를 하는데 이름 이야기를 하니 거짓말이라고 웃으며 처음엔 믿지 않았다. 증거물로 신분증을 보여준 후에야 내 이름을 증명할 수 있었다. 소현과 친구는 이 동네 사람은 아니고 다른 지방의 사람이었다. 차를 타고는 2시간 30분 정도 거리가 되는 곳이었다. 여행을 왔다가 맛집이라고 하여 우리가 갔던 삼계탕 가게에 들렀고 그곳에서 그런 사고가 벌어졌던 것이다.
소현은 발이 샷시에 걸렸다고 느끼는 순간 당연히 넘어질 거라 예상했는데 넘어지지 않아서 당황했으나 다행이라고 생각했고 이내 민망해지기 시작했다고 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반사신경이 작용해서 무의식적으로 넘어지려는 사람을 일으켜 세웠는데 잡은 위치가 하필이면 당황할 수밖에 없는 위치여서 민망해졌고 어떻게 사과해야 할지 몰라 식은땀이 줄줄 났다며 모두가 웃었다. 우리만의 복날 작은 에피소드가 추억으로 남았다.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마치고 소현과 친구는 여행의 다른 일정이 있어서 가야 한다고 했고 자리에서 일어나 카페의 바깥으로 나왔다. 그때 마침 봉수와 소현의 친구는 화장실을 갔고 나와 소현만 밖으로 나와 서로 쭈뼛거리며 괜히 울리지도 않는 핸드폰을 쳐다보고 있었다. 해는 뜨거운데 왜 이렇게 심장도 두근거리고 더워서 땀이 나는 건지 심장이 빨리 뛰는 바람에 식은땀이 나는 건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때 소현이 말을 걸어왔다.
“저..기..... 오빠..라고 불러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연락처 알려주실 수 있나요? 나름 생명의 은인이시기도 하고.. 뭐... 음....”
소현은 부끄러워하는 표정으로 핑계를 갖은 늘어놓으며 내게 연락처를 물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로 쭈뼛대는 상태로 소현의 핸드폰을 받아 내 핸드폰 번호를 입력해 주었다. 사실 나도 소현의 생김새나 말투 같은 기본적인 태도가 마음에 들었었다. 그래서 먼저 연락처를 물어보고 싶었지만 워낙 앞에 민망한 상황이 있었기에 괜히 오해를 사지 않을지 하는 두려운 마음에 선뜻 용기를 내지 못했는데 마음이 통했는지 소현이 먼저 물어봐 주어서 나는 쾌재를 불렀다. 물리적인 거리는 멀어도 시간이 있을 때 꼭 한번 둘이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서로의 연락처를 교환하고도 우리 둘은 둘 다 부끄러움에 쭈뼛대느라 대화를 이어가지는 못했다.
잠시 후 봉수와 소현의 친구가 밖으로 나오고 우리는 뿔뿔이 흩어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봉수는 귀신같이 나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연락처를 교환했는지 물었다. 소현이 먼저 물어봐서 교환은 하게 되었다고 말하자 봉수는 나에게 남자 새끼도 아니라며 등짝을 세게 한 대 때렸다. 아파도 기분이 좋았다. 아무렴 어때 결과적으로 해피엔딩이라는 게 중요하지.
그날 저녁부터 소현과 나는 연락을 주고받았다. 처음엔 무슨 말로 대화를 이어가야 할지 몰라서 계속 메시지를 지웠다 썼다만 반복했다. 아무리 연애를 못 해본 지 6개월이 넘었다 해도 연애 세포들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소현과 연락을 할 때면 마치 연애가 처음인 사람처럼 쉽게 당황했다. 나이 30살에 귀엽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계속 대화를 이어가는 내내 당황하는 게 메시지 내용으로도 느껴졌나 보다. 연락하는 시간이 일주일이 넘어가고 점점 편해지긴 했으나 서로의 감정이 더 깊어지기 전에 나에 대해서 먼저 말해주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그날 저녁 말해줄 것이 있다며 소현에게 처음으로 전화 통화를 제안했다. 삼계탕을 먹던 날 말고는 목소리로 대화해본 건 처음이었다. 모두 메시지에 의존해 텍스트로만 대화를 이어왔었다. 소현이 나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따르릉’ 거리는 전화 연결음에도 심장이 터질 듯 두근거렸다. 그때 은수와의 기억이 스치듯 지나갔다. 혹시나 소현도 내가 ‘돌싱’이라는 사실에 실망해 버리면 어떻게 해야 할지 긴장됐다. 몇 초 걸리지도 않은 전화 연결음 동안에 수십 가지의 생각이 지나갔다. 소현이 전화를 받고 ‘여보세요’하는 짧은 인사말에도 심장은 터질 듯 요동쳤다. 자칫 심장 박동 소리가 목으로 넘어오지 않을지 의심이 될 정도였다. 소현의 전화 목소리는 실제로 들었을 때 목소리와는 조금 차이가 있었다. 전화상 목소리는 뭔가 한층 더 차분했다. 할 말이 있다며 전화를 건 나는 먼저 시답잖은 농담으로 긴장을 풀려고 노력했다. 그러다가 이내 한숨을 한번 푹 쉬고는 소현에게 나의 비밀에 대해서 진지하게 털어놓았다.
“소현아 사실 나는 이혼을 한 번 한 적이 있어. 먼저 빨리 말해주지 못해서 실망했다면 미안해. 그래도 더 가까워지기 전에 나의 비밀을 먼저 털어놓고 싶었어”
소현은 나의 이야기를 듣고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전화를 받고 있음에도 적막이 가득했고 심장 소리만 더 크게 울렸다. 말이 없던 소현이 말을 꺼냈다.
“지금이라도 말해줘서 고마워요 근데 그게 뭐 중요한 비밀 씩이나 될 일인가요?”
소현의 답변을 나는 어떤 의미인지 단번에 알아채기 어려웠다. 연인이 아닌 친구 사이에 필요한 이야기가 아닌데 굳이 말하냐는 뜻인지 그게 아니면 ‘돌싱’ 자체가 별로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인지 어느 쪽의 의도인지 파악하지 못했다. 결과는 천만다행으로 후자였다. 내가 소현의 답을 듣고도 대답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자 계속해서 자신의 가치관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다.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 과거보다는 현재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했고 대화를 나누다 보면 과거의 이야기만 주로 해서 미래를 위한 현재를 사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영광에 파묻혀 다시 돌아가고자 하는 부류의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본인에게 내가 비밀을 털어놓은 건 우리의 관계가 더 가까워지고 싶다는 의미를 담은 것이 아니냐며 마음을 꿰뚫어 본 것처럼 말했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덧붙였다.
“오빠가 나한테 이 말을 저한테 하기까지 얼마나 고민하고 힘들었을지 상상이 돼요. 그래서 고마워요, 그리고 앞으로는 너무 힘들어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내가 언제나 오빠의 마음을 돌보는 힘이 되어줄게요”
소현의 마지막 한마디를 들은 나는 온몸이 떨렸다. 세상에 태어나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는 떨림이었다. 응어리진 마음 한가운데서 빛이 깨어나 온몸에 퍼지는 느낌이었다. 부모님을 포함해 주변의 그 어떤 사람도 나에게 힘이 되어주겠다는 말을 해준 적 없었다. 눈에서는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어떻게 알게 된 지 일주일 된 사람이 내게 어떤 의도로 저런 말을 하는지 단번에 이해할 순 없었다. 그래서 즉흥적이지만 그녀의 진심을 알고 싶어 졌고 봉수의 차를 빌려 그녀에게로 갔다. 약속했던 장소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그녀는 삼계탕을 먹던 그날의 그 옷차림 그대로였다. 그녀는 차에서 내려 다가가는 나를 발견하고는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나는 그대로 뚜벅뚜벅 걸어가 그녀의 팔을 잡아당겨 품에 꼭 안았다. 처음에는 당황한 듯했으나 그녀도 나의 등을 가만히 토닥여 주었다. 한참을 안고 있다가 겨우 떨어져서 우리는 차에서 대화를 이어갔다. 늦은 밤이었기에 문을 연 카페나 식당도 없었고 밖에서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모기들이 우리를 괴롭혔다. 나는 먼저 가장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다. 대체 왜 어떤 이유에서 만난 기간이 짧음에도 내게 힘이 되어주고 싶다는 말을 할 수 있었는지가 궁금했다. 그녀의 대답은 생각보다 간단하면서도 명료했다.
“눈이 슬퍼 보였어요. 입은 웃고 있었지만 슬픔이 가득해 보였어요. 마치 삐에로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