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 피폐한 로맨스
“그럼... 내가 그런 식으로 여자들과... 잔 건... 다 네가 돈으로...”
“솔직히 전부 다는 아니고... 거의 대부분이라고 하는 게 맞겠지. 큭큭큭.”
충격이었다.
서성호는 그런 내 모습을 보면서 악마의 미소를 지었다.
조현영과 사귀기 전 만났었던 그 수많은 하룻밤 여자들이...
사실은 서성호의 농간에 의해 철저하게 계획하에서 만난 여자였다니...
“그렇게 널 길들이고 난 뒤. 현영이 엄마란 년에게 상납하려는 그 순간... 갑자기 생각도 못한 현영이가 나타나 너랑 그렇게 된 거야. 더러운 엄마란 미친년 대신에... 그 딸년이...”
“...”
그럴까?
진짜 그랬을까?
그래 난 사실.
그들이 만든 더러운 제단 위에 올려진 제물일지도 모르겠지.
마치 제물로 바쳐진 목이 잘린 어린양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 너희들은 내 잘려 있는 살과 목에서 흘러내리는 검붉은 피를 마시며
즐거워했을지도 모르겠다.
날 가지고 놀다니...
내가 너희들에게 기껏 그런 존재였다니...
아니야.
내가 만약 놈들이 쳐놓은 쾌락이라는 함정에 빠지지 않았다면...
이런 개 같은 일도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 잘난 서울대 학생증으로 하룻밤 쾌락을 취하려던 나의 얄팍한 계획이.
결국 이런 식으로 날 비참한 나락으로 빠지게 만든 것이다.
그래 내 앞에 미소 짓고 있는 서성호나.
서성호를 괴롭히기 위해 나 같은 인간을 데려오라던 현영의 엄마...
그래 그들에게는 죄가 없다.
죄가 있다면 쾌락에 눈이 멀어.
나 스스로를 이런 더러운 놈들에게 제물로 던져 버린 내 잘못이지.
난 부모님의 말대로 이 세상에 태어나선 안 되는 놈이었다.
원래 죄악이 너무 깊어 절대 이 타락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할 놈...
여자와의 쾌락에 절어 시궁창 냄새가 진동하는 쓰레기...
그래 그게 나다.
누굴 탓하고 말 것도 없이.
나란 놈은 그런 놈이야.
그러니 이런 형벌을 받는 게 당연한 거지...
“아니다. 원래부터 그 딸년에게 널 주려고 한 고도의 계략인지도 모르겠네... 워낙에 그쪽 집안이 그런 쪽으로는 엄청 더럽거든...”
“으으...”
서성호는 지나치게 자책하면 괴로워하는 날 보며.
자신이 말이 조금 과했다고 생각한 거 같았다.
하지만 말이다.
그런 싸구려 동정은 오히려 날 더욱 비참하게 만들 뿐이다.
그런 비열한 동정은 오히려 성호에게 내가 더 놀아난다는 생각만 들도록 만들었다.
아니지. 그러고 보니 성호뿐만이 아니다.
얼굴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조현영의 죽은 엄마란 여자에게도,
난 철저하게 놀아난 거야.
결국 난 모두에게 그런 식으로 노리개가 된 거지...
놈들이 내게 던져준 쾌락이라는 먹이를 먹기 위해
머리를 땅에 처박는 그런 개처럼...
그래 난 개다...
그래 개야...
개라고...
“난 솔직히 말해서... 너 못지않게 그걸 지독히도 밝히는 현영이가, 널 금방 질려할 줄 알았거든...”
“...”
“그런데 이상할 정도로 오래가더라... 원래 현영이 성격이 한 남자와 오래가는 성격이 절대 아닌데... 이상하게 너랑은 제법 오래가더라고... 그것도 무려 1년이나... 큭큭큭.”
놈을 보며 주체할 수 없는 화가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솟구치다가.
갑자기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성호에게 질질 끌려가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놈에게 카운터를 먹여야 한다.
그래 카운터.
놈을 꼼짝 못 하게 할 그런 결정적인 한 방...
그때 이 상황을 뒤집을 좋은 생각이 났다.
“오호라... 그래 그런 식으로 내가 현영이와 1년이나 붙어먹으니까... 넌 배가 굉장히 아팠던 거니?”
“응?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내 반격이 성호에게 먹히는지. 놈이 반응했다.
“그래서 나에게 이태원에서 벨기에 남자를 만나 나랑은 더 이상 만나지 못하겠다고... 현영이는 하지도 않은 거짓말을 나에게 뻔뻔하게 하고... 결국 나에겐 소영이를 소개해 준 거야?”
“뭐? 하하하. 난 또 뭐라고... 하하하.”
나름 놈에게 결정적인 반격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서성호는 너무나 태연하게 내 말을 부정하며 웃었다.
내 반격이 나름 잘 먹힐 거라 생각했는데...
지금 놈의 말과 행동이 지나칠 정도로 자연스럽다.
이건 즉흥적으로 하는 거짓말이 아니다.
왜냐고?
이렇게 생각 없이 바로 대답할 수 있다는 건.
절대 거짓말이 아니란 뜻이니까.
“아... 아니라고???”
“그래. 이 바보야. 그땐 내가 널 살리려고 그렇게 한 거야!”
“뭐? 날 살려???”
내가 한 말은 놈에게 큰 충격을 줄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성호는 내가 흥미로운 말을 했다.
성호는 날 살리기 위해...
그 방법으로 조현영과 헤어지도록 만들었다는 건데?
그게 무슨 뜻인지...
성호의 말을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조현영이나 그 엄마란 년이나, 또 그 아빠란 놈이나 다 똑같은 집구석이야. 놈들이 한 짓을 생각만 해도 먹었던 걸 모두 토해 낼 것처럼 썩은 내가 풀풀 풍기는 더러운 놈들이라고.”
“그딴 말보다... 날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했다는 너의 거짓말이 무슨 의미인지 그거나 빨리 말해!”
“오오오.. 좀 진정해. 지금 다 말하고 있잖아... 성격이 엄청 급해서는...”
서성호는 담배를 새로 피우려고 하다가.
자신의 빈 담뱃갑을 보고는 내 담배를 아무렇지도 않게 가져다 피웠다.
평소라면 아무것도 아닌 행동인데.
지금 성호 행동은 굉장히 얄미웠다.
“그 벨기에 놈 말이야... 사실 현영이가 아니라 그 엄마란 년과 그렇고 그런 사이였어.”
“뭐... 뭐라고???”
놈은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현영이 아빠란 놈도 장난 아닌 난봉꾼이지만... 자기 집구석이 아무리 막장이어도 외국 놈과 바람피우는 건 딱 질색이었나 봐. 자기 마누라가 혹시라도 재수 없게 외국 놈 아이를 가지는 건 아니라고 본 거지.”
성호는 마치 자신이 임산부라도 되는 것처럼 자기 배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서... 설마...”
“맞아... 그 벨기에 놈이나 현영이 엄마란 년이나, 두 연놈이 둘 다 능력이 엄청 좋은 건지는 잘 모르겠는데 말이야... 그 나이에 임신을 한 거 같더라고...”
“...”
엄청난 충격이었다.
지금 서성호가 하는 말 전체가 내겐 너무 충격적인 말인데.
이건 그중에서도 더욱 충격적인 말이었다.
너무 충격적인 말이라 그랬을까?
지금 성호가 이야기하는 것 모두가 전혀 사실이 아닌,
그냥 꿈속에서 꾸는 것처럼 현실성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황당무계한 이야기로만 느껴졌다.
“그것 때문에 현영이 아빠란 놈은 화가 잔뜩 나서, 그 벨기에 놈을 사고사로 위장해... 아마 그렇게 죽였다고 한 거 같은데...”
놈은 말을 하다 잠시 내 눈치를 살폈다.
“사고사...?”
“그래, 갑자기 높은 건물에서 후욱하고... 떨어져서...”
“...”
놈은 들고 있던 담배꽁초를, 마치 사람이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것처럼, 재떨이를 향해 떨어트렸다.
“그때 말이야. 사실 너도 현영이 아빠 놈에게 엄청난 의심을 받고 있었다고..”
“내... 내가???”
“그래, 자기 마누라 하고 네가 몰래 만나 바람을 피우는데... 그걸 숨기려고 자기 딸년인 현영이랑은 거짓으로 만나면서 자신을 속이기 위해 연기를 한다고 생각했었으니까.”
“그걸 네가 어떻게 아는데???”
성호는 날 잠시 한심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우리 집구석이 지금 누구 밑에서 일하며 빌어먹고 있는지... 너 정말 몰라서 그래?”
“...”
“원래 여자가 질투를 하면 무서운 법인데... 그것보다 남자가 하는 질투는 그것과 비교도 안될 만큼 훨씬 더 무서운 법이거든... 특히나 현영이 아빠처럼 돈으로 사람을 확실하게 제거할 능력까지 있다면 말이야.”
성호는 손을 들어 자기 목을 칼질하듯 손끝으로 계속 흔들었다.
나도 모르게 담배를 들고 있던 손이 벌벌 떨렸다.
까딱 잘못했으면...
나도 이 세상 사람이 아닐 뻔했다는 게 아닌가.
“하아... 그런 엄청난 일이...”
“난 그렇게까지 널 생각해 준 건데... 넌 그런 것도 모르고 날 대놓고 무시하기나 하고... 그래서 너무 섭섭하지.”
성호는 날 몹시 못마땅한 얼굴로 바라보다 내 담배를 다시 입에 물고는 고개를 돌렸다.
지금 나에게 자신을 향해 고맙다는 말이라도 하라는 건가?
그런데 생각해 보니 놈이 하는 말에는 증거가 없었다.
그래 증거...
성호의 말이 맞다면 내게 증거를... 확실한 물증을 보여주어야지.
이렇게 말로만 한다고 해서 내가 굳이 놈의 말을 믿어야 하나?
놈은 내게 거짓말을 밥 먹듯 한 놈이다.
이미 나에겐 신뢰가 완전히 사라진 놈인데, 내가 왜 놈의 말을 믿어야 하는 거지?
얼른 놈에게 물었다.
“그런데... 성호야, 지금 네가 하는 그 말, 말이야... 혹시 증거 있어?”
“응??? 뭐... 뭐라고?”
성호는 황당한 얼굴로 날 바라보았다.
하지만 난 놈이 하는 말을 믿고 싶지 않았다.
솔직히 너무 황당한 말들 뿐이었으니까.
그렇지 않나.
지금 같은 세상에 사람을 아무렇지도 않게 죽이다니... 말도 안 된다.
무슨 영화나 드라마도 아니고.
아무리 돈이 많아도 일반 상식에서 너무 벗어난 말들이라.
난 더욱 믿을 수 없었다.
거기다 결정적으로 서성호는 나에게 거짓말을 밥 먹듯 한 전적이 있는 놈이다.
이놈이 나에게 지금 하는 말이 평소처럼 전부 거짓말이라고 해도,
그걸 확실하게 진실인지 거짓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면...
내가 성호가 했던 지금의 말을 굳이 믿어야 할 필요는 없는 게 아닌가.
그렇잖아.
놈이 또 날 속이고 있다면...
“성호야, 솔직히 말해 그렇잖아. 지금 네가 나에게 하는 말... 전부 너의 말뿐이지. 솔직히 증거라고 할 만한 게 전혀 없잖아.”
“그... 그건, 네가 현영이 엄마가... 어떻게 죽었는지 몰라서 그래.”
놈은 내 말에 엄청 당황했다.
내가 이런 식으로 자신에게 반격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거 같았다.
“좋아. 믿을게. 그러니 내게 증거를 보여줘. 아무 거라도 좋으니까. 그럼 내가 믿을게.”
“그건 당장... 증거를 보여줄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당황했는지 말까지 버벅거리는 서성호.
그 모습을 보니 지금 나에게 놈이 한 말 모두가,
역시나 모두 거짓말이란 확신이 생기기 시작했다.
“혀... 현영이 부모란 사람들은 서로를 죽이고... 막대한 재산을 혼자 독차지한 후에... 본격적으로 혼자서 즐기려고 혈안이었어.”
“그래그래 다 좋아... 성호야, 그러니까. 아무 증거라도 좀 보여줘. 확실한 물증 말이야.”
당황한 서성호는 피우고 있던 담배마저 손에서 놓칠 정도였다.
‘멍청한 놈... 내가 그렇게 호구로 보였나?’
놈은 얼른 바닥에 떨어진 담배를 다시 입에 물었다.
역시나 놈은 양치기 소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놈이다.
놈이 당황한 모습을 보니 성호의 말은 신뢰도가 더욱 급락했다.
역시나 놈은 날 너무 우습게 아는 거였다.
내가 자기를 심하게 의심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아무리 가출을 밥 먹듯 해서 정규 교육 공부를 안 했다고 해도,
거짓말을 일삼던 양치기 소년의 최후를 모를 리는 없을 텐데...
“그 외국 놈이 너의 말처럼 진짜 타살된 거라면? 그럼, 간단하잖아. 지금 네가 한 그 말의 증거를 보여주라고. 그럼 믿을 테니까.”
“그... 그거야... 증거야 당연히 있지. 하지만 그건 네 말처럼 지금 당장 증거를 보여줄 순 없어. 그걸 보려면 말이야... 죽음을 각오해야 해.”
45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