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펜하우어 인생론 에세이 '사랑은 없다'
감사하면서 사는 거 중요하다.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고뇌하는 이유는 더 갖지 못해서, 더 누리지 못해서, 더 즐기지 못해서, 더, 더, 더… 라는 상대적 빈곤 때문에 괴로와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가지고 싶고, 성취하고 싶은 욕구가 없다면, 어제가 오늘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어떻게 보면 발전없는 삶이 될 수가 있지 않을까?
쇼펜하우어의 인생론 에세이를 읽어보면 ‘괴로움은 적극적인 마음에서 비롯되고 행복은 소극적인 마음에서 나온다. 마음의 안정과 고요와 평온함은 야망과 부산스럽고 시끄럽고 바쁜 것으로부터 오는 불행보다 훨씬 낫다’ 라고 가르치고 있으니 행복해 지기 위해서 나를 괴롭히는 모든 것을 버리고 저 산야에 묻혀야 하는 것 인가?
틀린 말은 아니다.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고 독서와 명상과 기도에 몰두하는 종교인들은 평화롭고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는 반면 수십 수백명의 종업원을 거느리고 몇백억대의 매출을 창출하는 기업인들은 지금 보다 더 늘리고 더 벌고 더 얻고자 하는 데 매일 고민하고 있으니 행복할 수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것을 소유하고 또 행복해 질 수는 없는 것일까? 자신이 원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하에 많은 일들이 성취되었을 때 그것이 행복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일까?
사는 동안 계속 고민해 봐야 하는 문제인 것 같다.
어떻하면 많이 가지고 많이 행복해 질 수 있을까?
흔히들 청운의 품을 꿈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면서 사는 사람이 훌륭하다고 말하고 또 그렇게 사는 사람은 성취감에 젖어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행복은 그렇다. 부귀명화도 좋지만 자아를 실현하고 자신의 생활터전에서 열심히 사는 사람이 행복하다고 본다. 반대로 꿈도 희망도 없이 부평초처럼 이리 저리 떠돌아 다니는 사람은 불안하고 불행하기 그지 없다. 항상 불안전하기 때문에 손에 잡히지 않는 무언가를 갈구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물론 큰 꿈을 가지고 그것을 이룩하려고 아웅다웅 하다보면 자기 욕심먼저 챙겨야 하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다른 사람의 희생을 요구하게 될 수 도 있고 꿈을 키우다 보면 과욕이 생겨 자신이 만들어 놓은 허영심의 굴레 속에서 괴로워하게 될 수 도 있다. 인생의 목표가 쾌락을 쫓는데만 있지 않다는 말에는 동감한다. 중독증 환자들을 재활 치료 할 때 일상 생활의 소소한 즐거움을 찾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있다. 마약이든 도박이든 술이든 중독된 상태에는 최절정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기 때문에 자꾸 그러한 물질을 찾게되는 것이며 평소의 상태에서는 만족을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식사, 꽃이 만발한 정원에서의 산책, 가벼운 운동 등 즐거움은 향락과 쾌락에만 있지 않고 작지만 소박한 일상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우리가 죽음에 이르렀을 때 희망은 이루어졌던가? 미래는 우리들의 희망을 배반할 수 있으며, 지난 과거 역시 확실한 것인지 의심스럽다. 무엇을 위해 살았기에 확실했다고 자부할 수 있는가? 희망의 결과는 보았는가?’ 를 해석해보자면 ‘아무리 애를 써봐도 안 되더라. 에라~! 그냥 때려치고 포기하자. ‘ 라는 생각으로 이런 결론에 도달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아니면, ‘그래 될 데로 되라. 이렇게 있다 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며 ‘운’ 에 맞기는 태도 또한 싫다. 나도 물론 점을 보고 아주 좋아하긴 하지만 그래도 두 손 놓고 대박나는 그 때만을 속절없이 기다리고 싶지 않은 것이다. 내가 못하는 것 중에 하나가 기다리는 것이다.
설령 미래가 나의 희망을 배반할 지언정 나는 계속 꿈을 꿀 것이고 희망을 가지고 싶은 욕구는 사그라들 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 난 할 것이 너무 많고 희망에 대해 회의적이기 싶지 않다.
하지만 마음에 의욕이 가득차 있고 눈에는 투지가 불타오르면 물론 좋은 점도 있지만 마음이 성급해진 나머지 분별을 잃고 판단력이 흐려지거나 멀리 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기에 인생은 계속해서 기다리라 하고 마음을 다스리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투우를 보면 소를 우리에 가두고 칼로 쑤셔 잔뜩 흥분시키게 한 다음 우리 문을 열어 투우사와 접전 시키게 한다. 문이 열리는 순간 소는 그 동안 갇혀있던 모욕감과 울분을 (소도 이런 감정을 느끼는 지 모르겠으나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 토해내며 인정 사정없이 투우사에게 돌진 한다.
그렇게 용맹스럽게 돌진해도 싸우다 지쳐 결국은 투우사의 칼에 꽃히게 된다. 그냥 냅다 달리고 싸우다가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나는 이런 소가 되면 안되겠다. 문이 열리는 순간 세상을 제압 할 것 같이 열심히 하지만 처참한 결과를 맞이하는 소처럼 되서는 안되겠다. 그러기에 평정심을 잃지 않도록 다소 느긋하게 약간은 포기하면서 때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하겠다.
생각할 때가 있고 행동할 때가 있고 기다릴 때가 있다. 힘들지만 그렇게 해야만이 처참한 최후를 맞이하지 않을 수 있다. 희망이 무엇이며 욕구가 무엇인지 분별할 줄 알고 내가 지나치게 행동하는 것이 아닌지 항상 깨어서 돌아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