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에서 왕따 당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난 이런 글을 썼다.
내 본연의 모습을 유지하기란 강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혜안이 생기고 사람에 대한 관용과 세상에 대한 믿음이 생겨야 하는 법.
하지만 그곳에는 그런건 따위 없었다.
몇 년 동안 같은 밥을 먹는 한 솥 식구일 지라도 누군가 약한 모습을 보이면 덮어주고 이끌어 주는 것이 아니라 바닥에 있을 때 아예 밟아버려 다시는 일어나지 못 하게 하는 것이 그 곳의 생리였다.
내 연골이 닳아 없어지도록 일을 해도 내게 돌아오는 것은 질책 뿐.
나의 존재는 다른 사람 안중에 중요하지 않았다.
지루한 기다림 끝에 찾아온 기회, 난 그 곳에서의 첫 날을 잊을 수 없다.
그들은 웃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삶에 무게에 짖눌려 다른 사람을 향한 배려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들이 가질 수 있는 감정이라곤 욕망과 분노, 짜증, 투기와 근성.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너그럽게 대할라 치면 그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나를 산채로 잡아 먹어버린다.
먹이감을 찾아 눈알을 부라리는 야생의 짐승 속에서 잡혀 먹히지 않기 위해 나 또한 한 마리 들개가 될 수 밖에 없다.
만약 날카로운 이빨과 피비린내를 마다하지 않는 잔혹함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올빼미나 박쥐가 되어 눈에 띄지 않게 다니는 수 밖에 없다.
아니면 초파리가 되어 맹수들의 꽁무니를 따라 사냥감을 조금 맛 볼 수도 있다.
이 때 허리 통증이 처음으로 생겼었는데 아침에 눈을 뜨고 보니 침대에서 몸이 일으켜지지 않았다. 마치 몸이 침대에 붙어버린 것 같은, 허리에 엄청나게 무거운 추가 달려 있는 듯 한, 난생 처음 겪어보는 경험이었다.
정말 식은 땀을 줄줄 흘리고 엉금엉금 기다시피해서 출근을 했다. 전화로 내 결근을 통보하기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일단 출근해서 내 상태를 알리고 그 동안 쓰지 않았던 연차를 모아 2주를 통으로 병가를 냈다. 그리고 전화기도 꺼놨다. 바로 병원에 입원해서 수술이 필요한지 이것 저것 검사했다. 다행이 디스크가 터진 것이 아니라 연골이 마모되어 협착증이 생겼던 것이다. 통증이 심해지면 병원에 와서 주사치료를 하고 꾸준한 운동밖에는 없다고 했다.
그 뒤로 종종 통증이 있긴 하지만 주사맞고 침 맞기를 반복하며 운동으로 다스리고 있다.
그리고 난 부서를 이동해서 1년 조금 넘게 다니다가 퇴사를 했다. 정말 빡빡하고 인간미 없는 곳이었다.
왜 그런 곳 있지 않은가? 모두 심각한 얼굴이고 상사 눈치보며 실수라도 할까 조마조마해 하는. 내 코가 석자라 다른 사람들을 챙겨 줄 수 없는. 정치적으로 편을 잘 짜야 하며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그런 곳.
새로 취업한 회사에서는 잘 다녔었는데 아이러니 하게 전 직장에서 단련이 많이 되었던 것 같다.
지나고 보면 쓸데 없는 경험은 없다. 어디에서 어떤 경험을 하던 내가 파괴되지 않는게 제일 중요하다.
'내가 더 열심히 했어야 하는데' 하는 후회는 안 해도 좋다. 이걸 지나고 나면 나는 더 단단해져 있을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