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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엉덩이 안에 이런 게 있다니

초면인데 인상이 강하시네요.

by B쁠 엄마 Mar 27. 2025

아줌마 인생 훔쳐보기는 시리즈로 연재됩니다!

<<첫 화 보러가기 >>




환도라는 부위를 아시나요?



브런치 글 이미지 1



환도라는 부위는 임신 초기부터 통증으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환도 선다'라는 말 자체를 그때 처음 들어봤다. 엉덩이 안쪽에 존재하는 부위인데, 존재조차 몰랐던 부위에서 갑자기 통증이 심하게 느껴지면서 아예 걸을 수가 없었다. 임신과 함께 이 부위의 존재를 알게 된 건데, 초면인 것 치고 굉장히 강력한 인상을 남겼다. 예고 없이 큰 통증이 찾아올 때마다 한 걸음도 걷지 못한 채, 남편이 출동해서 구원해줄 때까지 눈물로 기다릴 뿐이었다. 그나마 괜찮을 때는 조금씩 천천히 걸을 수 있었는데, 횡단보도를 한 번에 건너지 못해서 반으로 나눠서 건너야 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내 몸속 이런 부분도 아플 수가 있구나~' 하고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약 2주간의 짧은 통증이었고 신기한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는 정도였다. 괜찮았다. 


요동치는 호르몬 속에서도 괜찮았다. 선행학습을 통해서 나의 감정을 컨트롤하기 쉽지 않을 것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리저리 휘둘렸지만 '이건 진짜 나의 모습이 아니다' 생각하면 그만이었다. 다만 남편 및 주변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니 미안하긴 하다. 임신 초반에는 롤러코스터 타는 감정 덕분에 쉽게 화가 났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친정 아빠가 내가 먹고 싶다던 소고기를 사서 구워주셨는데 딱 한 입 먹고 "아.. 왜 이렇게 맛없게 구워!! 나 안 먹어!!" 하고 젓가락을 탁 하고 식탁에 내려놨다. (적고 보니 이런 사건은 나이를 몇 살 먹었는지 상관없이 회초리 맞아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 '뭐 이런 자식이 있나..?' 싶으셨을 텐데 "아빠가 잘 구워줄게~ 다시 먹어봐" 하면서 달래주셨다. 역시 경력자를 뽑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아이 셋을 출산한 엄마 옆을 지키던 경력자 아빠는 나의 이런 모습에도 당황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봐도 정신이 상당히 이상한데, 그땐 그랬다. 어느 정도로 이상했냐면, 자다가 갑자기 분노로 잠에서 깨었고 옆을 보니 남편이 잘 자고 있었다. 잘 자고 있는 남편 머리를 망치로 때리고 싶었다. 이런 말을 쓰기 좀 그렇지만 사실을 인정해 본다. 그 시절 나는, 인성 쓰레기였다. 


그럴만한 게 임신 초반부터 입덧으로 고생하면서 아예 못 먹는 날의 연속이었다. 혈압은 80/50까지 떨어진 상태로 살았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은 냉면 국물뿐이었다. 그 당시 다니던 회사는 점심시간이 되면 직접 요리를 해서 먹었는데, 요리 냄새가 나기 시작하면 헛구역질을 견딜 수가 없었다. 밖으로 나가서 고기와 냉면을 함께 파는 육쌈냉면 집으로 가서 냉면 육수만 몇 스푼 먹고 다 버리기를 몇 주가 지속됐다. 주기적으로 링거를 맞으면 그나마 살만해졌고 그날은 약간 온순해졌다. 


그래도 괜찮았다. 생각보다 힘들었지만 그래도 할만했다. 버틸만했다. 입덧은 12주부터 슬슬 잠잠해지더니 14주가 되고 싹! 사라졌다. 세상 음식들이 이렇게나 맛있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으며 혈색이 돌았다. 산부인과에서는 지금이 임신 황금기라고 하셨다. 살만해지는 시기! 


그렇게 내 몸과 마음에도 평안이 찾아왔고 다시 근거 없는 자신감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오, 이 정도면 38주쯤에 자연분만으로 힘 몇 번 주고 쑥 낳는 거 아니야~? 나 임신 체질이네!'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멈췄어야 했다. 


'멈춰, 이건 절대 막지 못할 클리셰야...!'


 그렇게 나는 임신 23주. 고위험 산모실에 입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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