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 홀로 사랑, 앓이는 성숙이다
[ 허무/여한(餘恨)/방황/하소연/여울 ]
[ 허무 ]
그 어떤 선택의 여지도 없었지요
야멸스레 몰라라 하리라고는
아예 상상조차 못 하였으니까요
무엇이 그리도 미덥지 않아서
외면으로 거리를 두어야만 하였는지
어이 응해야 할지를 모르겠어요
마주할 기회만 주어졌더라도
이리 허무하지는 않잖아요
속상함에 서운타 넋두리 펼치어도
모두가 부질없는 헛짓이잖아요
딱 한 번만 얼굴 보았더라면
웃어넘길 추억으로 남았을 거예요
이해의 말을 조금만 건네었어도
공허한 나락에 머무느라
한동안 두문불출하진 않았겠지요
이제 와 아파한들 무엇하겠어요
바라보는 삶이 다를 뿐인데
눈총 줌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 여한(餘恨) ]
못다 한 짝사랑이라 한이 남아
망연히 허공만을 주시하며
끝이 없는 그리움에 사무칩니다
그땐 왜 용기 내지 못했는지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내가
자꾸 미움으로 다가섭니다
선택의 여지가 딱히 없었노라고
위안으로 넋두리 훑어내어도
가슴은 이내 숯이 되고 맙니다
인연의 끈을 부여잡는다고 해도
멍든 상처는 아물길 없기에
마른 눈물이 아우성 거립니다
도저히 어쩌지 못할 연이라서
미련의 끝자락 은하에 내어
눈시울 적시며 마냥 바라봅니다
[ 방황 ]
생명의 존귀함을 잊어버린
어리석은 소년이여!
파도가 밀리어 와 암초에 부딪히고
스스로 사그라져 버리듯
너는 파멸의 나날을 즐기려 한다
애처로운 눈초리 사선 그을 때
두 줄기 눈물 조용히 흐른다
생기 잃은 약골처럼 초췌한 형상으로
방 모서리에 육신을 팽개치니
초점 잃은 눈망울엔 희미한 그림자
환상의 춤을 추어대고
미움의 잔재들을 조각조각 모아
구차스러운 순애보 만들어
소녀에게 고이 바치려 하지만
허공에 비친 상은 찰나로 사라지고
여운마저 흐트러졌다
[ 하소연 ]
무어라 애써 말하기는 그러하지만
마음이 둥둥 떠서 허하다 보니
이런저런 서운함이 잇따라 가세하여
푸념에다 원망이 곁들여집니다
내 그토록 간절하게 구애했건만
단호한 꺼림으로 회피이더니
급기야 생기지 말았으면 좋았을 아픔이
자릴 잡아 상처를 냅니다
되돌아 추스를 여력만 가졌어도
이다지 아파하지는 않으련만
그리도 야멸스레 외면해야 하였는지
하소연을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이미 허공으로 사라져버린 일인데
그 흔적 찾아서 뭐 하겠느냐고
체념하기엔 아쉬움이 이내 남아
마른 눈물이 파리한 입가에 머뭅니다
[ 여울 ]
돌아서 잊히면 그만인 것을
뭐가 그리도 아쉬워
다시 찾는 기억 속에 순간들
들추어지는 가슴 결이 너무도 외로움을 타는구려
한 줌의 흙일지라도 소홀히 다루어질 수 없음이
생명이 있기 때문이라면
하물며 고귀한 사연이야 끝끝내 못 잊어
그대 모습 포근히 감싸리다
지금은 어찌할 수 없는 타인들이
살며시 마음의 문을 열고
눈망울이 곱도록 풋풋한 인정미를 삼키며
손에 손을 마주 잡고 사는구려
못다 이룬 꿈이기에 간절한 소망으로 기원했건만
그리도 순수하게 태워버린 열정은
쓸모없는 재가 되고
純愛談은 이별의 끝말로써 알고 사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