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때로 불규칙할 때 가장 완전하다
“너는 모든 걸 너무 열심히 하려고 하는 것 같아. 매사에 힘을 너무 준달까.”
S와 헤어지던 순간, 그는 마치 불량품에 라벨링이라도 하는 듯 슴슴하게 덧붙였다.
순간 그 말의 의중을 파악하기 어려워, 그저 앞에 앉아있는 그의 표정을 읽어내려 애썼다. 하지만 S가 떠날 때까지 내 머리는 작동을 멈추기라도 한 듯 움직이지 않았고, 나는 혼자 단어들을 삼키며 허공을 빙글빙글 돌았다.
나는 늘 그랬다. 누군가 내게 붙여주는 꼬리표를 쉽게 떼어내지 못하고, 오히려 계속 되새김질한달까.
그는 왜 그런 말을 했을까?
혹시 내 태도가 마음에 안 든다는 뜻이었을까.
뭐든 열심히 한다는 것.
하나하나 정성 들여 만들어진 결과물은 보통 나쁘기 어렵다.
’바쁜 세상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매사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고민해 봐도, 내 머릿속에는 공부나 운동, 요리 등 열심히 하지 않으면 실패하는 것들만 둥둥 떠 다녔기 때문에 더 어려웠다.
힘을 좀 빼고 무언가를 해도 괜찮은 걸까?
그 질문에 나는 쉽게 확답을 내릴 수가 없었다. 성공은 늘 노력과 비례한다고 믿었던 나이기에 더욱 그랬던 것 같다.
나는 비판을 들으면 조용히 생각에 잠기는 버릇이 있다. 그 시간은 소중하다. 오롯이 스스로를 점검하기 위한 시간. 찬찬히 내면과 외면을 돌아보고, 개선해야 될 점을 마음속에 한 글자씩 천천히 새기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고쳐나간 나의 단점들은, 결코 잊히는 법이 없다.
매사에 너무 열심히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특히 어려웠다. 마치 추상적인 낱말들로 작품들을 정의해야 하는 도슨트처럼, 끝없는 말장난의 미궁에 빠진듯한 기분이었다. 너무 열심히라서 좋지 않다니.
가만히 소파에 걸터앉아 있다가 일어섰다. 뭐라도 생산적인 일을 하면서 고민해 보자.
수제비를 만들기로 했다. 뭔가 상념에 빠져있을 때 하는 요리로는 수제비가 제격이다.
밀가루를 꺼내 오목한 그릇에 톡톡 털어 넣는다.
이때 물 한 컵, 소금 몇 꼬집을 넣어야 한다. 반죽 본연의 찰기와 감칠맛을 위해.
반죽을 얼마간 주물러 둥그런 모양을 잡은 뒤, 냉장고에 1시간가량 넣어둔다.
수제비를 끓이다 보면 마음이 정화되는듯한 기분이 든다. 보글보글 끓는 육수 위로 애호박, 당근, 감자를 채 썰어 넣고, 뭉근하게 피어오르는 수증기를 가만히 바라본다. 날카롭게 공기 중을 떠 다니던 나의 고민이 수증기에 묻혀 옅어진다. 아릿한 시선도 덩달아 포근해진다.
밀가루 반죽을 손으로 뜯어서 끓는 국물에 익혀낸 음식인 수제비는 간편하면서도, 잠시 딴생각에 빠져있을 시간을 주므로 내게는 뭔지 모를 안정감을 준다. 혹여나 정해진 시간보다 더 끓인다고 해서 타버리거나, 불어버리지 않는, 딱히 큰일이 일어나지 않는 조용하고 편안한 요리.
그는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냉장고에서 차갑게 기다리고 있는 동그란 수제비 반죽이 마치 내 모습 같아서 서글퍼졌다.
수제비 반죽을 꺼낸다. 사기그릇에 담아 냉장고에 넣었더니 손에 시원한 통증이 감긴다.
수제비는 너무 성의 있게 만들면 오히려 맛이 없다고 한다. 반죽을 대충대충 찢어서 모양이 제멋대로 되게 만들어야 맛도 좋고 식감도 재밌다고 한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늘 반죽 조각 하나하나를 정성 들여 주물러 떼어내었고, 결론적으로 비슷비슷한 두께의 그저 그런 수제비만 만들어지곤 했다.
어쩌면 나도 지나친 정성이 들어간, 한 꼬집 한 꼬집 시간을 들여 빚은 수제비 반죽 같은 게 아니었을까?
그가 원하던 건 대충 주욱 찢어, 빠르게 끓여낸 불규칙한 수제비였는데, 내가 너무 규칙적이어서 숨 막혔던 것일까. 공기구멍 하나 없는 내 사랑에 그는 질려버렸는지도 모른다.
주욱-
반죽을 아무렇게나 찢어 힘차게 끓는 육수 위로 던져 넣었다.
바글바글 경쾌한 소리를 내며 애호박과 함께 빙글빙글 익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알맞게 익은 수제비를 그릇에 덜어낸다.
대충 만든 수제비를 입에 넣고 가만히 씹는다.
평소보다 맛있게 만들어진 수제비의 맛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거 아시나요? 유명한 수제비 맛집에는 한 가지 비결이 있다고 합니다. 장사가 잘 안 되는 식당에서는 시간이 남아서 수제비를 천천히 균일하게 만드는 반면, 손님이 많은 식당에서는 바쁘다 보니 빠르게 뜯어서 만드는데 오히려 그게 수제비 맛의 비법이라더군요. 대충 만들어야 맛있는 음식이라니, 특이하면서도 재밌다고 생각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