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김치말이국수

익숙한 것이 주는 다정함

by 녕인

”어? 너 흰머리 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머리를 가리키는 저를 보며 J는 아무렇지 않은 듯 눈을 마주치고 웃습니다.


“한... 5개 있는 것 같아. 뒷머리에만. 뽑아줄까?”


머리를 향해 뻗는 저의 손을 살짝 잡으며 J는 담담하게 대답합니다.


“나 어디서 들었는데, 흰머리는 사실 안 뽑는 게 맞대. 그냥 두어야 한다는 거 있지.“


저는 J의 새까만 머리 사이에서 반짝이는 흰머리 몇 가닥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문득 머리가 전부 하얗게 세 버린 J의 모습은 어떨지 궁금해졌습니다.




국숫집에 가면 J는 항상 멸치국수를 주문한다고 했습니다.

늘 맛이 그럭저럭 괜찮았던 터라, 다른 메뉴는 도전해 본 적도, 먹어본 적도 없다고 했지요.


하지만 사실 그 집은 김치말이국수가 무척 맛있다는 걸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매번 같은 음식을 먹는 J에게 새로운 걸 먹여주고 싶었지요.


그날은 그런 날이었습니다.

J의 얼굴을 곁에서 가만히 뜯어보다가 문득 늘어난 흰머리를 발견했던 날.

부쩍 추워진 날씨에 따뜻한 국수 한 그릇이 생각났던 날.



김치말이 국수는 입 안에서 몇 번 씹지 않아도 부드럽게 넘어갑니다.

아삭아삭 씹히는 김치는 상큼해서 국수의 맛을 더욱 개운하게 만들어줍니다.

달짝지근한 김가루 고명이 섞여 감칠맛을 더해줍니다.


동네 국숫집에서 김치말이 국수를 먹을 때면,

노란 조명빛과 따뜻한 나뭇결무늬의 식탁이 함께 어우러져 아늑하고 다정한 기분이 찾아옵니다.

마치 오랫동안 함께해 온 연인처럼, 어느새 내 일부가 된 듯한 안정감.

따뜻하게 위장을 채워주는 익숙한 재료들의 정다운 맛.


처음 먹어보는데 되게 맛있다,

활짝 웃으며 면 가닥을 삼키는 J를 흐뭇한 얼굴로 바라봅니다.


너의 검은 머리가 모두 이 국수처럼 하얘지더라도,

더 이상 흰머리가 낯설지 않은 순간이 찾아오더라도,

우리 이 국수처럼 오래도록 조화롭게 잘 지내자.

늘 너의 모습을 따뜻하게 비춰줄게.


그런 생각을 하며 J를 바라보았습니다.


저는 누군가의 머리에서 새치를 발견할 때마다 왠지 모르게 슬픈 기분이 듭니다. 내 곁의 사람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어느새 훌쩍 나이가 들어간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영화 '찰리와 초콜릿공장' 에서도, 윌리 웡카가 후계자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가 새치 한 올인 것으로 나오지요. 그만큼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영원한 것이라곤 단 하나도 없는 삶 속에서, 영원을 약속하는 것만큼 낭만적인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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